복잡한 입력 방식을 벗어나 대화(Chat)라는 인터페이스를 도입한 엔진(GPT)의 파급력은 인공지능의 대중화를 열었다. ‘프롬프트’, ‘환각’이라는 낯선 단어들은 일상어로 자리잡았고, 도서관 현장에서도 생성형 AI 도입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제 4년이 지난 시간이지만 현재 학계, 산업계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다음 키워드는 ‘에이전틱 AI(Agentic AI)’다.
에이전틱 AI는 기존 Chat 기반의 응답 도구가 아니다. 에이전틱 AI는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외부 도구를 호출하며, 다단계 추론을 거쳐 과제를 완수한다. 종전의 LLM 기반 도구들이 ‘말하는 기계’였다면, 에이전틱 AI는 ‘일하는 기계’다. 검색하고, 코드를 실행하고, 다른 에이전트와 협업하고 결과를 검증한다. Staufer 등(2025)이 발표한 「2025 AI Agent Index」에 따르면 이미 30개 이상의 상용 에이전트가 존재하며, 활용 범위는 데이터 분석에서 고객 응대, 학술연구 보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짧지만 지난 4년의 흐름을 살펴보면, 2023년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해였다. 2024년은 RAG(검색증강생성)의 해였고, 2025년에 들어 RAG의 한계—단발 검색의 부정확성, 다중 출처 통합의 어려움—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에이전틱 RAG였다. 2026년 현재 산업계의 관심은 거의 ‘완전 자율형 에이전트’로 옮겨가 있다. 이 흐름은 단순 마케팅 용어의 교체로 볼 수가 없다. 정보 시스템 설계의 무게중심이 ‘좋은 답을 빠르게’에서 ‘복잡한 과제를 끝까지’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다.
찾아주는 AI에서 해내는 AI로
도서관과 정보학의 전통적이자 기본적인 관심사는 ‘적합 문헌을 찾아주는 일’이다. 색인어 매칭, 시맨틱 검색, RAG(검색증강생성)로 이어지는 기술 발달은 모두 질의와 결과의 정밀도를 높이는 흐름이었다. 특히 RAG는 LLM 기반 도구들이 답변을 생성하기 전 최신 문서를 실시간으로 참조하게 함으로써 정확성, 최신성을 담보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에이전틱 RAG는 이 구도를 흔든다. 에이전틱 맥락 검색은 다중 출처를 통합하여, 구조화된 추론을 수행하며, 자기 검증을 결합하여 답변 정확도와 설명 일관성, 검색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린다(Zhang 등, 2025). 사용자는 더 이상 “이 키워드와 가장 잘 맞는 자료를 찾아 달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이번 학기 졸업논문 주제로 ‘공공도서관의 데이터 거버넌스’를 다루려 한다. 국내외 최근 5년 치 학술 동향을 정리하고 비교 분석을 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요구에 대응하려면 시스템은 질의를 하위 문제, 즉 단위 과제로 분해하고, 각각에 적합한 도구를 호출하고, 결과를 평가하며, 부족하면 다시 탐색해야 한다. 이 과정은 반영(reflection), 계획(planning), 도구 사용(tool use), 다중 에이전트 협업이라는 네 가지 패턴으로 정리할 수 있다(Singh 등, 2025). 흥미로운 점은 이 네 가지 절차는 숙련된 사서가 참고 질의에 대응할 때 자연스럽게 따르던 절차라는 점이다. 사서가 오랫동안 ‘암묵지’로 갖고 있던 정보 탐색 절차가 비로소 시스템의 ‘형식지’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과 사서, 무엇이 달라질까?
에이전틱 AI는 도서관과 사서에게 다양한 관점의 변화를 요구한다. 여기서는 대표적으로 네 가지 요소별 변화를 살펴본다. 첫 번째는 참고 정보 서비스의 변화다. 공공도서관이 AI를 활용해 자동 답변형 참고 서비스와 이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미 수년 전부터 있어 왔다(곽우정, 노영희, 2021). 그런데 에이전틱 AI 시대의 참고 서비스는 단순히 ‘답해주는’ 수준을 넘어 ‘대신 일을 처리해주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서의 역할도 바뀐다. 사서는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에이전트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설계하고 감독하고 검증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메타데이터의 위상이다. 도서관의 메타데이터는 오랫동안 ‘서지 기술’의 도구였다. 하지만 에이전틱 AI에게 메타데이터는 추론의 단서다. 우리가 만드는 메타데이터의 품질이 곧 AI 답변의 품질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잘못된 분류, 누락된 식별자, 모호한 주제어는 사소한 오류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신뢰도를 흔드는 요인이다.
세 번째는 정보 리터러시 교육의 재설계다. 도서관의 AI 연구에 있어서 기술 도입보다 그 결과가 이용자의 정보 탐색 행위와 비판적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있다(Cox & Wang, 2025). 지금까지의 정보 리터러시는 정보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과 결과 그리고 과정과 결과에 대한 성찰을 중요시했다. 정보 탐색 측면에서 보면 적절한 검색어 생성, 결과의 신뢰성 판단, 출처 표기 능력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에이전트가 여러 단계의 도구 호출과 결합을 거쳐 답을 내놓는 환경에서는 무엇을 ‘출처’로 보아야 하는지 자체가 불분명하다. 이용자의 평가 대상은 결과 페이지가 아니라 에이전트의 추론 경로 전체로 볼 수 있다. 사서가 갖춰야 할 새로운 역량은 ‘에이전트의 작업 흐름을 의심하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프라이버시 문제도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 있다. 에이전트가 맥락을 잘 이해하고 다단계 추론을 수행하려면 이용자의 질의 기록, 개인 선호도, 진행 중인 과제 정보, 과거 선호를 누적해서 보유해야 한다. 자료 이용 기록이 이용자의 자유로운 정보 접근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오래된 것이지만, 에이전틱 AI 앞에서 그 무게는 한층 무거워진다. 대출 기록과 달리 질의의 누적 기록은 이용자의 사고 과정 자체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외부 에이전트를 도입할 때 ‘무엇을 보관하지 않을 권리’를 설계 단계에서부터 명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도서관계의 상황을 보면 이 흐름은 더 구체적인 기회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KISTI의 학술정보 검색 시스템, 도서관정보나루의 통계 포털은 이미 풍부한 메타데이터와 색인 자원을 갖추고 있다. 이 자원들이 외부 LLM과 잘 연결된다면, 학생의 복잡한 연구 질의에 정책 보고서·학술논문·통계·사례를 한꺼번에 정리해주는 에이전트가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한 가지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외부 모델이 우리 메타데이터를 재료로만 소비하고 그 결과는 외부 사업자의 인터페이스 안에만 머무는 구조라면, 도서관은 자원을 제공하면서도 이용자와의 접점은 잃게 된다. 준비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체 에이전트를 일부라도 개발하거나 공동 구축하는 것, 다른 하나는 외부 모델과 연동할 때 표준 프로토콜과 출처 표기를 강제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마련하는 것이다.
Ⓒ THE LIVERARY 에디터팀
그늘—환각, 책임 소재, 그리고 블랙박스
이렇게 화려해 보이는 에이전틱 AI에도 짙은 그늘이 있다.
첫 번째는 환각이다. 환각 문제는 이미 이전에도 문제로 언급되었지만 다단계 추론에서는 한 단계의 오류가 다음 단계로 증폭된다는 점에서 더 위험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책임 소재다. 앞서 언급한 「2025 AI Agent Index」에 따르면 30개 상용 에이전트 중 절반 이상이 안전성 평가나 거버넌스에 관한 정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고 시 책임 소재, 어느 지점에서 의사결정이 문제인지 외부에서 추적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세 번째는 블랙박스 문제다. 도서관은 오랫동안 ‘출처를 밝히는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그런데 에이전트가 수십 개의 도구를 호출하고 중간 결과를 합성해 답을 내놓을 때, 그 답의 출처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IFLA가 2024년 트렌드 보고서에서 저작권과 신뢰의 균형 문제를 핵심 의제로 제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Dezuanni 등, 2024).
이 세 가지 그늘은 서로 얽혀 있다. 환각이 발생해도 책임 소재가 분산되어 있으면 누구도 시정에 나서지 않는다. 책임이 모호한 채 블랙박스가 깊어지면 환각의 빈도와 패턴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에이전틱 AI 시대에 도서관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기록과 추적’의 문화다. 어떤 질의가 들어왔고, 어떤 도구가 호출되었으며, 어떤 자료가 인용되었는지를 사후에 검증할 수 있는 로그 체계를 말한다. 이는 기술적 요구이기 이전에, 도서관이 100년 넘게 지켜온 ‘출처 책임’의 디지털 시대 버전이다.
사서가 던져야 할 질문
기술 트렌드는 매년 바뀐다. 하지만 사서가 던져야 할 질문은 늘 비슷하다. ‘이 도구는 이용자에게 더 나은 정보 경험을 제공하는가?’, ‘우리가 도구를 끌고 가는가, 도구가 우리를 끌고 가는가?’
에이전틱 AI는 강력한 협력자이자 동시에 경쟁자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도서관에는 두 가지 유혹이 늘 함께한다. 하나는 무조건 받아들이려는 기술 낙관주의고, 다른 하나는 우리 일과 무관하다며 외면하는 기술 회피주의다. 두 태도 모두 위험하다. 받아들이되 비판적으로 다듬고, 거리를 두되 이해는 정확하게 해야 한다. 이 어려운 길의 그 어중간한 자리에 사서의 자리가 있다.
도서관이 ‘정보의 책임 있는 매개자’라는 정체성을 붙잡고 있다면, 2026년의 가장 뜨거운 기술 트렌드는 위협이 아니라 기회의 다른 이름이 될 것이다.
박진호_한성대 크리에이티브인문대학 지식정보문화트랙 교수
한성대 크리에이티브인문대학 지식정보문화트랙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다. 주요 연구 관심사는 오픈 데이터와 시맨틱 웹이며, 정보기술 관련 주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오전 8시 22분. 437번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하나둘 올라탔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오른 존재는 사람이 아니었다.키 약 130센티미터, 바퀴 기능을 갖춘 두 다리에 팔 두 개, 가슴팍에는 작은 화면이 달린 로봇이었다.로봇은 잠시 멈추더니 교통카드 단말기 앞에 섰다. 위의 장면은 아직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2024년 1월, 미국 뉴햄프셔주 예비선거를 앞두고 ‘투표하지 말라’는 전화가 수만 명의 유권자에게 걸려왔다. 문제는 전화의 목소리가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의 목소리였다는 점이다.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이 동급생 얼굴을 합성한 성착취물을 텔레그램으로 유통하다 적발되었다. 이즈음부터 유명인을 대상으로 합성 미디어를 제작한 사기 광고, 투자
새로운 형태의 정보 격차를 재생산하는 AI 기술의 이중성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는 정보 생태계의 근본을 뒤흔들고 있다. AI 기반 추천 시스템과 콘텐츠 자동 생성 기술은 정보 생산과 유통 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켰고, 이용자 맞춤형 서비스의 정밀도도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이런 기술은 정보 접근과 해석 과정에 알고리즘을 매개로 한 새로운 중개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