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메신저는 책과 언어 그리고 독서를 매개로 다양한 실험과 변화를 모색하는 분들을 만나는 인터뷰 코너이다.
6월호에서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와 학습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치마켓 함의영 대표를 만났다.
책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해석을 통해 책과 독서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Q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피치마켓 함의영이라고 합니다. 저희 피치마켓은 문해력 혹은 인지 능력이 낮아 배움의 속도와 이해가 더딘 학습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만들고 그 글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고, 도서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느린 학습자라면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요.
A 예를 들면 경계선 지능인, 발달장애인, 다문화가정 청소년, 새터민 등 느리더라도 학습이 가능한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Q 유엔환경계획 한국위원회 기획팀장을 그만두시고 느린 학습자를 위한 책을 만드는 피치마켓을 설립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피치마켓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우선 정보 격차의 문제를 해소하고 싶었습니다. 느린 학습자들에게는 너무나 낯선 것들이 많고, 비장애인들 혹은 비 느린 학습자들에게는 상식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여전히 어려운 정보이기도 하니까요. 교육을 할 수 있는 주제들이 다양해지려면 콘텐츠가 더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느린 학습자를 위한 콘텐츠를 직접적으로 많이 만들어내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자는 의지를 가지게 됐고, 피치마켓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Q 피치마켓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A 피치는 다들 알고 계신 것처럼 복숭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저희가 피치마켓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피치마켓은 원래 경제학에서 쓰이던 용어였어요. 물건을 거래하는 시장에서 제품에 대해 판매자와 구매자의 정보가 불일치하면 안 좋은 제품들이 거래되는데, 그 시장을 ‘레몬마켓’이라고 하죠. 반대로 제품에 대한 정보가 일치하면 속여서 팔 수 없는 고품질의 상품이 거래되는데 그런 시장을 ‘피치마켓’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정보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에서 피치마켓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Q 느린 학습자를 위한 책을 만드실 때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A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되는데요, 개인차는 있지만 느린 학습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 중 하나는 소위 상식이라고 하는 것들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또 유추 해석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죠. 그런 것들을 저희가 더 리서치하고 더 객관적인 정보들을 함께 담아줘서, 상식이 좀 부족하더라도 글을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문장의 구조라든지 사용하는 단어, 어순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가장 쉬운 방향으로 맞춰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행정안전부에서 국민행동요령으로 만들었던 원문에 ‘평소 화재에 대한 관심과 행동 방법을 숙지하여’ 같은 표현이 있어요. 여기에서 ‘화재’라는 단어가 한자이다 보니까 당연히 어려울 수 있고 그 외에도 어려운 말들이 많이 있는데요, 첫 번째로는 비문이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관심과 행동 방법을 숙지하여’라고 얘기할 때 (관심을) ‘가지다’라는 동사가 빠져 있거든요. 어휘력이 높지 않은 분들은 ‘관심을 어떻게 해야 한다’를 문장을 통해서 정확하게 파악을 해야 하는데, 문장에서 그 동사가 빠짐으로써 해석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행동 방법’이 어떤 건지를 아는 것도 이제는 상식이 됐는데, 그 상식이 없는 사람한테는 행동 방법이 어떤 걸 말하는지에 대해서 맥락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이것을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면, ‘관심’이라는 단어를 ‘조심하다’라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바꿔줘서 ‘불에 항상 조심한다. 그리고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다’라고 하고, 그 행동 방법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쉬운 글로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Q 피치마켓을 통해서 책을 읽는 재미를 느낀 느린 학습자가 많아졌을 것 같아요. 피치마켓 독자가 남긴, 기억에 남는 말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A 저희는 지금 도서문화재단 씨앗이랑 라이브러리 피치라는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우연히 발달장애인 한 분이 저희 도서관을 방문해주셨어요. 이 도서관에 왔다가 책이 너무 많아서 관심을 안 가졌는데, 저희와 대화를 나누면서 책을 조금씩 접해보게 됐고 그런 경험을 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처음 얻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퇴근하면 집과는 정반대 방향에 있는 저희 도서관을 매일 방문했다가 귀가하신다는 거였어요. 이분이 거의 6개월 이상 저희 도서관을 매일 방문하고 계신데, 저희 프로그램 중에서 시 쓰는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셨어요. 시라는 걸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셨는데, 생각보다 만만하게 쓸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자기가 시를 쓸 수 있게 됐다는 것에 너무 놀라서 “내가 시를 쓰다니!”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그게 좀 기억에 남습니다.
Q 라이브러리 피치는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도서관이라는 특성을 활용해 느린 학습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벌어지는 곳 같아요. 최근 라이브러리 피치에서 진행했던 재밌는 프로그램을 하나 소개해주신다면?
A 저희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책을 읽기 위한 프로그램인데요, 전면에 책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요. 왜냐하면 문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분들에게 “책 읽는 시간입니다”라는 말 자체로 활동에 재미를 못 느끼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요리 프로그램을 하면서 함께 책을 읽는다든가요.
저희 콘텐츠들 중에서 요리에 관련된 것들이 많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레시피에 관련된 게 아니고 그 요리의 역사 같은 것들을 다루는 쉬운 글 콘텐츠 같은 거요. 츄러스 만들기를 할 때 ‘츄러스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고’ ‘왜 이런 모양이 됐는지’ ‘어떤 때 먹기 시작했는지’, 이런 정보들을 읽고 츄러스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난 다음에 만들기를 하니까 츄러스에 대한 상식이 생기는 거예요.
사실은 비장애인도 츄러스를 ‘그냥 사 먹는 것’ 정도밖에 생각을 못 하는데, 저희의 방식으로 접근하면 또 하나의 스토리가 생기게 되는 거죠. 그게 저희가 활동을 하는 방식입니다.
Q 느린 학습자를 위한 문화 확산에 관심을 갖고 일상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행동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저희도 사실 많은 고민을 하는 부분이에요. 결론적으로는 뭘 하려고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하는데 ‘불편한 시선을 두는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저희 라이브러리 피치가 개관을 하고 나서 어떠한 문화가 만들어지게 될지 사실 백지 상태였거든요. 처음에 느린 학습자와 비 느린 학습자가 한 공간에서 같이 어울린다는 이상적인 목표만 두고 개관을 했는데, 실제로 운영을 하다 보니 비장애인과 비 느린 학습자들도 굉장히 많이 오게 됐고 그분들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일들을 하셨어요.
그분들은 컴퓨터로 뭔가를 하거나 책을 보기도 하는데, 같은 공간에 있는 발달장애인들 중 바닥에 막 드러눕고 하는 분들이 계셨어요. 근데 보통 신발을 신고 다니는 공간에 드러눕는 걸 특이하게 보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 모습을 좀 불편하게 바라보기 시작하고 어떤 분들은 저희한테 항의를 하면서 제지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시는 거예요. 그때 저희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계단으로 돼 있는 좌석에 카펫, 심지어 매트리스를 깔고 빈백 같은 소파들을 구비해놓고 다 드러눕게 했어요. 심지어 신발도 벗게 했죠. 그렇게 했더니 비 느린 학습자들도 오자마자 그 공간에서 드러눕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누가 느린 학습자인지 누가 비 느린 학습자인지 알 수도 없고, 드러누워 있는 것을 특이한 행동으로 보지 않게 된 거죠.
저희가 궁극적으로 수면 아래에서 하고자 했던 노력들은 ‘불편한 시선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없앨 것인가’였어요. 마인드를 좀 바꿔 ‘저 사람은 그걸 원하는가 보다’ 정도로만 본다면, 생각의 다양성 혹은 어떤 특성의 다양성에 대해서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 ‘뭘 개선해야겠다’처럼 적극적일 필요도 없이 ‘저 사람은 저렇게 하고 싶은가 보다’ 정도로만 끝내도 불편한 시선들이 꽤 많이 없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Q 함의영 대표님이 피치마켓을 통해서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듣고 싶습니다.
A 거창한 미래를 생각하고 일을 하지는 않는데요, 저희는 그냥 느린 학습자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서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희끼리의 표현으로는 ‘느린 학습자 교육의 실세권화를 만들자’라는 걸 내부적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분들도 어디서나 교육을 쉽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그게 저희가 바라는 부분이고요. 느린 학습자들이 그로 인해서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단계까지 성장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립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꼭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자기가 혼자 하는 게 자립은 아니잖아요. ‘나에게 무언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판단을 하고,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지 혹은 내가 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정도까지 피치마켓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좋은 분들이 함께한다면 좋겠습니다.
Q 함의영 대표님께 책이란?
A 저에게 책은 인사이트를 주는 보물상자 같아요. 어떤 고민이 있을 때 저는 일단 보이는 대로 책을 읽어요. 사실 책의 제목이라든지 작가라든지, 이런 부분은 잘 기억을 못 해요.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지도 않고요. 그냥 문장을 하나하나 읽고 곱씹다 보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 제가 고민하고 있는 것과 맞닿을 때가 있어요. 다른 분야 혹은 다른 고민거리일 수도 있는데 그게 저한테 적용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책은 제게 멘토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함의영_피치마켓 대표
배움의 속도와 이해가 더딘 학습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만들고 교육하는 피치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도서문화재단 씨앗과 함께 공동으로 피치 라이브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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