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2025년 1월 20일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가 당선된 후 지난 3개월 동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 미칠 영향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전망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뉴스에 자주 거론되듯이 경제, 외교, 안보 및 이민 정책이 각 분야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와 기대가 섞인 전망이 공존하고 있다. 미국의 도서관계를 포함한 교육계에서도 지난 11월 선거 직후 트럼프 2기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다. 여러 전망들 가운데 핵심이 되는 것은 교육 관련 예산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분인데, 트럼프 행정부 1기인 2017~2021년 사이에 있었던 일들과 그 후 도서관계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를 살펴보면 트럼프 정부 2기의 도서관계 동향을 전망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은 매년 2월 연방예산안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데, 이 계획안에는 미 전역에 소재한 공공도서관과 박물관에 지원되는 연방정부의 예산이 포함된다. 예산의 책정과 집행은 Institute of Museum and Library Services(IMLS, 박물관 및 도서관 서비스 연구원)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IMLS는 1996년에 설립된 연방정부 산하의 독립 기관으로 미 전역의 공공도서관과 박물관 운영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고, 이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며, 다양한 그랜트(grant, 연구비 및 상금) 지급을 통해 미국의 공공도서관과 박물관 및 관련 조직을 발전시키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 그랜트 프로그램에는 2003년부터 시작된 Laura Bush 21st Century Librarians Program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전직 사서였던 미국의 영부인 로라 부시(조지 부시 대통령의 아내)의 이름을 딴 기금으로 도서관계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사서들의 연구 활동 및 자기계발 활동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IMLS가 2024년에 발표한 연간 보고서에는 각종 그랜트 프로그램으로 전국의 도서관과 박물관 그리고 사서 및 큐레이터에게 지원한 연구비와 상금이 2억 9천 480만 달러(한화로 대략 4천 2백억여 원)로 보고되어 있다. 때문에 IMLS를 통해 집행되는 연방정부의 그랜트는 도서관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인 2017년 2월 2018년도 예산계획안을 제출했는데, 그의 계획안에는 1996년 이후 20년 넘게 지속된 IMLS의 예산이 전액 삭감되어 있었다. 이는 예산 삭감을 통해 IMLS 자체를 폐지하려는 시도로 해석되었다. 트럼프가 왜 IMLS를 폐지하려 했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나, 아마도 그가 공약한 불법 이민자 방지를 위한 국경의 보안 강화 등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트럼프의 예산계획안이 발표되자 도서관계와 각 교육계에서는 많은 성명을 발표하고 IMLS 예산 삭감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가 예산 삭감을 통해 IMLS를 폐지하려는 시도는 2018년 예산계획안이 미 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결국 무산되었으나, IMLS의 예산을 삭감하려는 트럼프의 노력은 그의 행정부 기간 내내 지속되었다. 때문에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시도, 즉 도서관을 위한 예산과 교육계 예산을 전체적으로 삭감하려는 노력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공공도서관에서 실행해오던 가족 프로그램들, 예를 들면 문화의 다양성, 성소수자, 또는 이민자와 난민 지원 관련 프로그램들이 축소되거나 전면 폐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변화
트럼프는 2017년 대통령 후보 시기와 1기 행정부를 거쳐 지금까지 모든 분야에서 미국 우선주의와 전통적 보수주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왔다. 따라서 그가 다시 취임하는 2025년 1월 20일 이후 사회의 전반적인 부분에 보수주의적인 색채가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미국에서 도서관은 공공교육에 있어 중요한 장소로 생각되기 때문에 사회 분위기의 보수화는 교육 정책이나 도서관의 장서를 통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변화들 중 하나의 예로 금서(禁書, book ban) 요청의 증가를 들 수 있다. 금서는 말 그대로 특정 책을 학교나 도서관 서가에서 제외시키는 것인데, 전미도서관협회(American Library Association, ALA)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지난 20년 간 200건에서 300건 사이를 오가던 금서 요청 건수는 2021년부터 1,858건으로 급증하기 시작하더니 2022년에는 2,571건, 2023년에는 4,240건으로 폭증했다. 특히 공공도서관에 접수된 금서 지정 요청 증가율은 2022년 대비 92퍼센트, 학교에 접수된 금서 요청 증가율은 11퍼센트로 나타났다. 또한 금서 지정 요청이 접수된 책들의 47퍼센트는 성소수자(LGBTQ+)에 대한 내용이나 흑인, 미국 내 토착민, 유색인종(BIPOC)의 역사, 문화, 삶에 관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다수의 교육계 전문가들은 금서 지정 요청이 폭증한 이유로 이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꼽는다. 트럼프는 2017년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종차별적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을 공공연하게 쏟아내고 있다. 트럼프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러한 발언들은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것으로 취급되거나, 특히 대중을 향한 연설 등 공공장소에서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트럼프의 등장 이후로 이 금기가 봉인 해제되다시피 해 평소 트럼프를 지지하거나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정치인과 여러 분야의 인사들도 인종차별적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과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가 만들어낸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지난 몇 년 동안 금서 지정 요청이 증가한 주된 이유들 중 하나로 생각된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한강 작가의 책 《채식주의자》가 어느 특정 지역에서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되어 학교에서 폐기된 적이 있다는 기사를 봤다. ‘금서’ 또는 ‘유해도서’라는 단어는 평소 많은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영역에 존재하나, ‘금서’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보통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여겨진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과 그의 작품 중 하나가 유해물로 지정된 적이 있다는 기사를 동시에 접하고 나서야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도 ‘금서’라는 개념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체감할 수 있었다. 우습게도 미국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제까지 미국에서 금서 지정이 요청된 책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J.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인데, 이는 미국 내 다수 주에서 200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금서 지정 요청이 접수되거나 실제로 학교도서관에서 제외된 적이 있다. 《해리포터》가 금서로 요청되거나 지정된 이유는 책에 포함된 주술적 내용이 반기독교적이라는 것이었다.
트럼프 집권 2기 시기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알게 될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이미 예상되었던 일들이 발생하거나 그가 공약한 정책들이 실행될 수 있다. 도서관계에는 앞서 말한 대로 예산을 삭감하려는 노력이 다시 시도될 것이다. 그리고 일부이긴 하겠지만 사회적 분위기 변화로 인해 파생할 수 있는 일들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특별한 대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트럼프 1기 행정부(2017~2021년)와 한국의 암담한 기간(2022년~현재)을 꿋꿋하게 버텨내고 있듯이 다가오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인 2025~2029년도 버텨낼 수 있으리라.
조상훈_UCLA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사서
UCLA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사서(Korean Studies Librarian, East Asian Library, UCLA)로 재직중이다. 한국학 자료를 큐레이팅하면서 한국의 근현대사와 이민사에 관심을 가지고 대통령기록관과 대학 아카이브에서 자료를 발굴하고 이민사 관련 자료를 수집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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