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의 화실에 밀레의 <만종> 실물 액자가 걸려 있었다면, 이제 우리 시대의 한국 작가 원종국의 서재에는 디지털 액자가 있고, 거기엔 언제나 달리의 그림들이 흐른다. 특히 대단히 인상적인 원종국의 ‘믹스언매치Mix-and-Match’ 연작 안에 삽입된 살바도로 달리의 디지털 액자 그림들은 소설의 기본적 모티프나 이미지 혹은 구조적 핵자로 기능한다. “비합리주의적 니체 되기”(살바도르 달리, 최지영 옮김, 《달리, 나는 천재다》, 다빈치, 2004, 17쪽)를 꿈꾸며, “순도 백 퍼센트의 초현실주의자”(같은 책, 18쪽)를 지향했던 살바로드 달리는 밀레를 달리 그렸고, 원종국은 달리를 달리 이야기했다. 밀레의 현실성과 달리의 초현실성이 복합적으로 스미고 짜이면서 원종국 소설의 독창적 상상력과 스타일의 비범함을 알게 한다. 비빔밥 나라의 작가다운 비범한 비빔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그러니까, 원종국의 소설은 독특한 상상력의 복합적 만화경이다. 그는 현실과 가상현실, 생시와 꿈,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가로지르며 현묘한 연금술의 줄타기를 한다. 그의 소설에서 복합적 서사소들은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어울리고, 어울리는 듯 어긋난다. 이렇다 할 접점이나 교점을 마련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슬며시 어울려 새로운 서사의 육체를 형성하는 상상의 콜라주가 참으로 어지간하다. 그렇게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어울리는 풍경은 이제껏 작가 원종국이 탐사한 서사의 핵심 원형질에 속한다. 아마도 21세기 초반의 한국 서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작으로 기록될 ‘믹스언매치’ 연작은 그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원종국 소설의 구근구조를 짐작하게 한다.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겹쳐지고 호응하는 교란의 풍경, 혹은 관계없는 것끼리의 짝짓기는 아마도 작가가 새로운 소설의 섬으로 나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상상적 책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결국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어긋나면 어긋날수록 비극의 심연은 깊어지기 마련이다. 희망이 소진되고, 생명이 마모되고, 기억은 단절되고, 몸은 피로해진 군상들이, 원종국의 영혼의 콜라주를 통해 우리 앞에서 현현될 때, 우리는 종종 아득한 느낌에 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삶은 지속되어야 하고, 희망의 불씨는 새롭게 탐문되어야 하며, 기억의 소생을 위해서, 다시 말해,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당분간 모종의 상상적, 의지적 노력을 포기할 수 없음을 작가는 곡진한 언어로 환기한다.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은 실바도르 달리
원종국의 ‘믹스언매치’ 연작은 첫 소설집 《용꿈》에 수록된 <믹스언매치> <욕망의 수수께끼>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슬픈 아열대>에 이어 두 번째 소설집 《그래도》에 실린 <두 사람이 보이는 자화상> <나는 달리다> <다시, 살아가는 일> 등 여섯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작의 기본 구도는 이미 <믹스언매치>에 상당 부분 형성되어 있다. 그 단초는 살바도르 달리의 운명에서 비롯된다. 살바도르는 너무나도 서둘러 지상에서 육신을 거두어 간 형의 이름이었다. 그는 1904년 5월 11일 오전 8시 45분 스페인 카탈루냐의 프랑스 국경에 가까운 엠포르다 지역의 피게레스 마을 20번지 카레 몬트리올 1층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살바도르 달리 이 쿠시(Salvador Dalí i Cusí, 1872~1950)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카탈루냐계 변호사이자 공증인이었다. 달리의 형은 그의 탄생 이전인 1903년 8월 1일 뇌수막염으로 사망했고, 달리의 부모는 달리가 형의 환생이라고 믿으며 같은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예전에는 유아 사망이 흔했기에 사망신고와 출생신고의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그런 경우도 없지 않았다. 어쨌거나 달리의 아버지는 자기 이름이기도 한 ‘살바도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짐작할 수 있는 그 어떤 경우든 이름을 재활용한 것, 살바도르라는 이름을 지속시킨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가족 사건은 달리 개인에게도 커다란 심리적 사건이었으리라. 나 고유의 삶이라는 기원의 해체, 그 주체의 뿌리가 뽑히는 그런 사건이 아니었을까. <여섯 개의 거울에서 일시적으로 포착된 여섯 개의 허상 속에서 영원화되고 있는 갈라를 뒤에서 그리고 있는 달리>(1972~73)나 <나르시스의 변모>(1936~37) 등에서 보이는 실험적 자아 해체 양상은 그런 심리적 사건의 예술적 표현과 관련되는 것이 아닐까.
작가 원종국 역시 달리처럼, 달리를 닮은 운명적 인물을 형상화한다. 원종국의 이야기에서 달리의 부모는 사이좋은 잉꼬부부였지만 10년이 넘도록 자식을 얻지 못한다. 그러다가 체외수정으로 아이큐 200이 넘는 천재 아들 명주를 얻는다. 고전적 영웅소설의 이야기 패턴과 왠지 닮아 있다. 그러나 그 닮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급전직하 위반을 경험한다. 월반을 거듭하던 천재는 불세출의 물리학자를 꿈꾸며 일찌감치 미국 유학을 갔지만, 얼마 안 되어 총기 사고로 사망한다. 그의 부모는 이 엄혹한 참척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하다가, 복잡한 절차와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복제 인간을 만들어 그대로 명주라고 부르며 천재 물리학자의 재현을 기원한다. 영웅소설의 플롯이 이어지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복제된 명주는 천재가 아니었다. 물리학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살바도르 달리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부터 ‘나는 달리다’는 강력한 자의식 속에서 달리처럼 그림 그리기를 욕망한다. 즉, 부모로부터 각인처럼 호명되는 이름은 명주이고, 스스로 환기하는 이름은 달리다. 명주와 달리가 호환될 수 없는 이름이듯이, 부모와 복제 아들 달리 사이의 욕망은 소통되기 어렵다. 부모는 천재적 물리학도였던 원본-아들 명주처럼 복제-아들도 천재 물리학자가 되기를 욕망한다. 그러나 복제-아들 달리는 살바도르 달리를 모방하여 화가로 살기를 욕망한다. 이렇듯 욕망들이 상충하는 가운데 그의 현실 직업은 복제사이다. 그것도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평범한 인물일 따름이다. 자신을 일컬어 스스로 천재라 불렀던 살바도르 달리와 달리 원종국의 달리는 천재성과는 거리가 멀다.
원본-아들과 멀어진 복제-아들로 인해 부모는 매우 불안하다. 처음엔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당황해하고 이내 불안에 빠져 더 이상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들은 새로운 복제를 욕망한다. 1차 복제의 실패를 수긍하고, 자식을 결혼시켜 손자 대에서 다시 영광을 재현하려는 부모에게 달리는 결혼을 안 할 것이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 체세포를 떼어내 복제를 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아버지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달리는 파렴치한 패륜 범죄자가 된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자놀이: 보는 자이면서 보이는 자
원종국의 ‘달리’는 복제 인간으로서 불우하게 산다. 차라리 자기 정체를 몰랐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네 번째 연작 〈두 사람이 보이는 자화상〉에서 달리는 자신의 현존에서 탈주하고자 하염없이 달리기만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데 달리가 팔짱을 끼고 그림이라도 감상하듯 창밖을 보고 있는 장면이 이채롭다. “그림 속에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달리가 앉아 있고, 또 달리 뒤에는 내가 어렴풋하게 서 있었다”라는 대목,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이 유리창에 비쳤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 아버지의 사망 사건 이후 경찰서와 구치소, 정신병원 등지를 떠돌던 달리는 또 다른 자아인 ‘검은 그림자’에 시달리는 망상증 혹은 분열증 양상을 보인다. 그렇게 본다면 이 부분에서 ‘나’는 일단 ‘검은 그림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시선 또한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여섯 개의 거울에서 일시적으로 포착된 여섯 개의 허상 속에서 영원화되고 있는 갈라를 뒤에서 그리고 있는 달리>와 상호텍스트성을 보인다. 피게레스 달리 극장-미술관에서 다시 볼 수 있었는데, 이 그림에서 달리는 거울을 앞에 두고 거울을 보는 갈라의 뒤태를 그린다.
그림 속의 그림은 그리는 달리의 머리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거울에는 그림의 대상인 갈라와 그리는 주체인 달리가 동시에 비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달리의 뒤에서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는 점이다. 그림 속의 그림, 혹은 거울 속의 거울을 통해 심연으로 내려가는 미장아빔의 실험을 하는 동시에 그림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원심력 또한 만만치 않다. 화가는 무엇보다 보는 자, 즉 시선의 주체이다. 그런데 살바도르 달리는 보는 자이면서 스스로 보이는 자를 자처한다. 이 시선과 응시의 역동이 그의 초현실주의 효과를 강화하는 주요 인자의 하나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서는 감추면서 암시한 시선을 원종국은 ‘나’를 통해 극화하면서 겹의 그림자놀이를 한다. 네 번째 연작의 표제에서도 분명히 하고 있듯이 원종국의 자화상에는 ‘두 사람’이 보인다. 앞에서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달리’와 그 위에 어렴풋하게 서 있는 ‘내’가 그렇고 또 미술치료 과정에서 달리가 그린 자화상에도 ‘두 사람’이 그려져 있고, 또 그 그림을 놓고 치료사와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두 사람’이 있다. 살바도르 달리에게 갈라가 있었다면 원종국의 연작에서 달리에게는 유리가 있다. 연작은 유리를 통해 재생의 가능성을 탐문한다.
원주를 본관으로 하는 원종국의 가정환경은 좀 독특한 데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후사 없이 전사한 백부의 뒤를 이어 원주 원씨 가문의 대통을 세우기 위해, 조부는 원종국의 형을 적장손으로 하여 백부의 아들로 입적시킨다. 한국적 가문주의 분위기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분가한 것은 아니고 한 집에서 할아버지, 큰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입적한 형과 원종국 등이 함께 사는 형태였다. 그러니까 원종국의 형은 한 집에 두 어머니를 둔 셈이었다. 백모의 조카이자 아들이며, 생모의 아들이자 조카라는 이중 위상 속에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 사정은 동생인 원종국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기 부모의 차남이면서도 장남이 되는 운명, 친형의 친동생이자 사촌동생이 되는 운명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원종국의 유년 시절의 마음 풍경 그 심연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작가 원종국은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달리 죽음의 응시를 넘어서 죽음을 통한 재생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사려 깊은 모습을 보인다. 몸/기억의 지속과 단절 문제를 통해 인간 존재론의 심연을 탐사하면서도 동시대의 산문적 현실을 두루 탐문하는 원종국의 소설에는, 오래전 밀레를 거친 살바도르 달리의 고뇌가 새로운 방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형상이 역력하다. 그 몸살의 흔적을 해체적으로 가로지르며 원종국은 그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남겼다.
문학평론가, 대학교수.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카오스모스 수사학》(2023), 《책의 질문》(2023), 《애도의 심연》(2018), 《나무의 수사학》(2018), 《불안의 수사학》(2012), 《프로테우스의 탈주-접속시대의 상상력》(2010), 《고독한 공생》(2003), 《타자의 목소리》(1996), 《상처와 상징》(1994), 《욕망의 시학》(1993) 등을 썼고, 대산문학상, 팔봉비평상, 김환태평론문학상, 소천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엔 기후 침묵을 넘어 기후 행동을 위한 생태학적 지혜와 상상력을 탐문하는 환경인문학을 모색하면서, 문학과 문화 교류 양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4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다음으로 한국의 두 번째 노벨상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이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역사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쓴 《작별하지 않는다》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인간의
2024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다음으로 한국의 두 번째 노벨상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이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역사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쓴 《작별하지 않는다》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인간의 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올해의 작가상 2023’(2023.10.20.~2024.3.31.) 전시는 최근 예술의 동향과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권병준, 갈라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 등 네 예술가의 작품은 인류학적 투시주의와 문명사적 성찰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인간과 자연, 존재와 타자 등 여러 다발의 관계론적 사고를 통해 존재론적 탐문의 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