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서 칼럼] 인공지능은 인간의 학습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_② 인공지능과 인간의 학습: 생각의 외주화, 약화되는 사고력
최유진_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정보학 박사과정
2025-05-1914:11
최근 교육 현장과 일상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활용되는 방식을 살펴보면, 배움의 방식이 조용히 재편되는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고 느낀다. 생성형 인공지능, 대표적으로 챗지피티(ChatGPT)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학습의 본질을 다시 묻게 만든다. 당초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계산 업무, 자료 입력, 일정 관리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가 자동화될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로 이러한 영역에서의 자동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예상을 뛰어넘어 인간의 고차원적 사고를 보조하는 ‘증강된 추론(augmented reasoning)’의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복잡한 아이디어를 종합해 주거나, 창의적인 글쓰기의 초안을 제공하거나, 다양한 관점을 비교해주는 작업들이 이에 해당한다.
과제를 대신하는 AI, 학습하지 않는 학생
특히 학습에서의 변화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Pew Research Center(2024)를 비롯한 여러 신뢰할 만한 미국 주요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인공지능의 도입이 학생들의 사고력과 학습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Pew Research Center의 2024년 5월 보고에 따르면, 미국 공립 K-12(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과정을 포괄하는 용어) 교사 2,53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5퍼센트는 인공지능 도구의 사용이 교육에 해롭다고 응답했다. 특히 고등학교 교사 중 35퍼센트가 학생들의 학습에 인공지능 도구가 해롭다고 평가했다. 올해 1월 한 매거진(Big Think, 2025년 1월)의 조사에서도 인공지능 도구의 사용 빈도와 비판적 사고 능력 사이에 강한 음의 상관관계가 발견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인공지능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는 결국 사고 능력의 저하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필자가 미국 대학의 한 수업에서 학생들의 글쓰기 과제를 채점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더라도, 학생들이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과제를 쉽고 빠르게 해치워버리고 싶어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그것이 얼마나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인지, 인공지능이 가져다주는 정보를 이용하기에 앞서 왜 비판적으로 먼저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번 가이드를 주는 일이 필요했다. 인공지능은 학습자가 복잡한 문제를 더 빠르고 쉽게 해결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효율성은 분명 이점이 있지만 동시에 우려를 낳는다.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간소화되면, 학생들이 충분한 흥미나 내재적 동기 없이 인공지능의 ‘프롬프트(prompt,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에 입력하는 질문이나 지시사항)’만을 이용해 학습을 마무리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효과적인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사고력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학습자가 문제를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깊이 있는 사고력을 기르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학습의 단계를 건너뛰어 쉽게 얻어지는 ‘창조’
학습의 단계적 과정을 보편적으로 잘 설명한 이론적 기반 중 하나인 블룸의 교육목표 분류체계(Bloom’s Taxonomy)를 떠올려보고 싶다. 블룸은 학습의 단계를 기억(remember), 이해(understand), 적용(apply), 분석(analyze), 평가(evaluate), 창조(create)로 구분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도구를 사용하는 학습 과정에서는 이제 어쩌면 인공지능 도구에 프롬프트를 작성할 수 있는 정도의 파편적 이해만 가지고도 바로 마지막 단계인 ‘창조(create)’의 결과물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충분한 탐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쉽게 얻은 창조는 즉각적이고 피상적인 결과물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전 단계인 분석과 평가, 심지어는 기본적인 이해와 기억까지도 건너뛰고, 바로 결과물 생성(create)으로 넘어가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중간 단계의 공백이 생겨버린다면, 학습자는 자신의 인지 능력과 사고력을 충분히 발달시키지 못한 채 인공지능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매체의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인적 차원에서 학생들의 장기적인 학습 능력과 지적 성장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
[그림 1] 블룸의 교육목표 분류체계(Bloom’s Taxonomy)
인공지능 답변 너머의 사고력과 탐구 능력을 길러주는 책, 그리고 도서관
이러한 우려 속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학습과 지식 창출을 지원하는 도서관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도서관은 전통적으로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무엇보다도 학습자의 자기 주도적 탐구를 돕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도서관이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지속 가능한 자기 주도 학습 환경’의 제공일 것이다. 학습자들이 다양한 관점과 문제해결 방식을 깊이 있게 탐색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도서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나 워크숍은 단순히 도구를 사용하는 기술적인 측면을 가르쳐주는 것보다도,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물이 왜 그렇게 도출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적 사고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수 있다. 또는 꼭 인공지능 도구를 기반으로 하지 않더라도, 어떠한 과제가 주어졌을 때 단기적인 과제 수행보다 지속적인 호기심과 탐구 능력을 길러주는 프로그램, 혹은 책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 사고 리터러시(critical thinking literacy)’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책은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도서관으로 하여금 더 이상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구식의 매체를 다룬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필자는 책이 도서관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책장을 넘기며 문장을 짚어 읽고, 그 과정에서 머릿속에 다양한 상상과 질문을 떠올리는 경험은, 빠른 결론 도달 지향의 인공지능 도구를 사용하는 학습 방식으로는 얻기 어려운 사고력을 기를 수 있게 해준다. 이를 통해 학습자는 빠르고 간편한 인공지능의 답변 너머에 존재하는 복잡한 사고 과정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깊이 탐구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의미 있는 지식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인공지능의 도입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학습 능력을 저하시킬지, 아니면 더 높은 수준의 사고와 탐구를 촉진할 것인지는 인간의 학습에 관여된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학습자들이 인공지능과 공존하면서도 인간의 고유한 지적 능력과 호기심, 끈기를 잃지 않도록 돕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빠르고 편리한 지식 습득을 넘어, 깊이 있는 학습과 사고가 지속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는 환경에 대한 논의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참고자료〉
1. Anderson, L. W., &Krathwohl, D. R. (Eds.). (2001). A taxonomy for learning, teaching, and assessing: A revision of Bloom’s taxonomy of educational objectives. New York: Longman.
2. Armstrong, P. (2010). Bloom’s taxonomy. Vanderbilt University Center for Teaching, 1-3.
3. Big Think. (2025). Artificial intelligence is negatively correlated with critical thinking. [온라인 자료].
텍사스대학교 오스틴(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UT Austin) 정보학 박사과정 4년 차에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사람들의 학습 과정(특히 흥미 개발과 창의성 지원)을 돕는 AI 기반 정보 시스템이다. 인공지능과 도서관의 역할을 다루는 미국 박물관·도서관 서비스 연구소(The Institute of Museum and Library Services, IMLS) 지원 프로젝트에 펠로우로 참여 중이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인간의 지식 습득과 사고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2022년 11월에 공개된 OpenAI의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단순한 문서 요약이나 프로그래밍 보조를 넘어, 글쓰기부터 박사과정 수준의 연구 지원까지 가능할 정도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AI가 인간의 역할을 점점 대체할 것
‘캘리포니아의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동안 나는 다양한 이용자들의 삶을 읽었다. 영아, 유아, 어린이, 청소년, 성인, 노인, 이민자, 장애인, 노숙인, 마약중독자, 정신질환자······. 그러면서 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이해와 공감을 키워나갔다. 책으로 배웠던 것을 넘어선 소중한 경험이었다.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나와 다른 타인을 읽는 곳
“책방이 이럴 수도 있구나!”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산타페1860 거리의 엘 아테네오 그란드 스플렌디드(El Ateneo Grand Splendid)에 들어서면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게 된다. 1919년 문을 연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이 책방에서 책은 한 권 한 권이 주연배우가 된다. 귀족들이 도도한 표정으로 오페라를 관람하던 2층 좌우의 귀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