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6일 점심 무렵 도쿄 쿠니타치역 부근에서 서경식 선생을 뵈었다. 아니, 서경식 선생께서 양손에 스틱을 쥐고 다리를 절면서 나를 마중 나오셨다. 몸이 불편하시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지만 그렇게 심한지는 몰랐는데, 그래도 선생의 따스한 목소리와 반겨주시는 몸짓은 여전하셨다. 점심식사 시간 즈음이라 우리는 함께 택시를 타고 자주 가신다는 단골 식당으로 향했다. 스시와 맥주가 선생을 뵌 반가운 마음을 북돋아주었다. 동창 모임을 마친 사모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고 해 식사 후 근처 카페로 갔다. 커피와 케이크의 맛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두 분과 함께 나눈 이야기가 맛나서 그런 모양이다.
나는 가지고 간 포트폴리오 박스를 열어 11x14인치 사이즈로 인화된 ‘파라-다이스’ 작업을 두 분께 보여드렸다. 이미 메일로 말씀드린 대로, 선생께 내 작업에 대한 비평 글을 받고자 했던 터였다. 66매의 흑백 사진을 두 분은 아주 진지하게 찬찬히 보셨다. 두 분과는 2011년 11월 6일부터 사흘간 후쿠시마/미나미소마를 다녀봤기 때문에, 그리고 두 분이 나의 다른 작업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처음 보는 파라-다이스 작업이지만 의아해하시지는 않을 것이라 추측했다. 사진들을 한참 보신 후, 사모님은 쓰신 안경을 추어올리더니 처음부터 다시 보시면서 선생을 향해 어눌한 한국말로 사진에 대해 감탄 섞인 소감을 말씀하셨다. 이때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 싶어 나는 선생께 다시 한 번 비평 글을 부탁드렸다. 그러자 사모님께서 예의 그 상냥한 말투로 지금 서 선생께서는 여러 편의 글을 써야 하는 처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내 사진에 대한 비평 글은 차례가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을 좀 멀리서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던 선생은 갑자기 머리를 만지면서 “아!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아이디어가 막 생겨나네요”라고 하셨다. 방금 사모님이 말씀하신 일정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사진을 읽어가며 상상력이 솟아나는 것을 표현하신 것이다. 자리에 앉은 후 선생은 내게 물었다. “책을 출판하려고 하신다면서요? 혹시 출판사는 정하셨는지요?” 전혀 의외의 질문이었다. 일단 사진을 본 소감을 말씀하시고, 그 후에 천천히 출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에 그랬다. “아니요, 아직입니다.” 그러자 선생께서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한국의 ‘연립서가’ 출판사였다. 전화를 마치고 난 후 선생은 의아해하는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잘 아는 출판사인데요, 젊은 친구 둘이 하고 있어요. 일본에서 유학을 했고, 아마 부부가 함께 유학한 후 돌아가 출판사를 하고 있지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만나보시고, 출판에 대해 의논을 해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글은 제가 쓰겠어요.”
#2
이번에 출판한 《파라-다이스》는 크게 세 개의 과정이 하나로 묶여 있다. 첫 번째는 사진가의 사진과 일기, 두 번째는 이 사진을 보고 받은 감흥을 기반으로 쓴 두 편의 소설, 그리고 도쿄 제1원전 폭발 이후의 주변 모습을 촬영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사진전 때 갤러리 토크를 하면서 서경식 선생과 나눈 이야기(《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 2016, 서경식, 정주하 외, 형진의 옮김, 반비출판사)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 전반적인 아이디어는 연립서가에서 제공한 것이고, 백민석과 황모과 작가에게 동참을 요청한 것도 연립서가다. 우리는 서울과 완주를 오가며 세 번의 만남을 가졌다.
사람들은 사진을 그림 혹은 회화와 유사한 표현 도구로 알고 있다. 이해가 되는 점은, 최종 결과물이 선형의 글씨와는 사뭇 다르게 그림의 형태로 보이기에 인지보다는 시각으로 우선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진에도 여러 종류의 표현 방식이 있다. 그러니까 회화적인 방식으로 한 장의 사진에 본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 있고,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일견 회화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후자의 경우는 문학적이다. 나아가 좀 더 본질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진은 회화처럼 빈 화폭에 덧칠을 해가며 완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세상에 이미 있는 사물들을 일정한 규모로 떼어내 그것을 종합하여 생각을 완성한다. 그러니까 사진과 회화는 전혀 반대의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는 것인데, 회화가 더하는 방식이라면 사진은 빼서 정리하고 편집하는 방식이다. 그러기에 문학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작가에 따라 시적인 작업도, 산문의 작업도, 소설의 방식도 모두 가능한 것이 사진이고, 이 지점이 회화와 결별하는 변곡점일 터이다.
그런데 백민석과 황모과 작가는 이러한 사진의 내적 의미를 이미 파악한 듯 사진과의 접속에 거침이 없는 듯 보였다. 두 작가의 사진적 상상력이 맹렬하게 느껴졌다. 내게는 절묘한 일이었다. 서경식 선생이 사진을 보고 머리에 떠올린 상상의 비평 글은 그해 12월 18일 선생의 죽음으로 내 기억에 상상으로만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만난 두 작가와의 사진을 통한 가교의 가능성은 선생이 자주 말씀하셨던 ‘상상의 가능성’이 연결해준 듯하다.
#4
소설/글을 보고 떠오른 어떤 장면을 사진처럼 상상하고 구성해보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사진을 통해 소설을 생산하는 방식은 아주 최근의 일이며, 내가 알기로 그 첫 번째 작가는 수전 손택이다. 그녀의 소설은 리처드 미즈락(Richard Misrach)의 사진집 《Violent Legacies: Three Cantos(폭력의 유산: 세 편의 서사)》(Aperture Foundation, 1992)―수전 손택의 글이 함께 수록된 작품집―에 실려 있다. 표지에는 ‘Fiction by Susan Sontag’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수전 손택은 미즈락이 작업한 처연하게 아름다운 ’풍경/사진‘이 사실은 미국 유타주 ‘황무지/사막’에 있었던 웬도버 공군기지(Wendover Air Base)에 의해 영원히 방사능 오염이 된 곳이라는 것을 알고 《‘노아의’ 방주에서 바라본 풍경(The View from the Ark)》이라는 짧은 소설을 써 사진집에 수록한 것이다. 그녀는 쉽게 그리고 단박에 사진 속으로 자신의 상상을 겹친 듯하며, 그 중층의 층위 사이에서 언어가 사진과 만나도록 배려했다.
내가 이번 ‘파라-다이스’ 작업을 하면서 가장 심하게 놀라움을 느꼈던 것은, 폭발한 도쿄 제1원전과 그다지 멀지 않은 해안에서, 그러니까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방류하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바로 그 해안에서 젊은이들이 윈드서핑을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다. 그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해괴한 광경이었다. 마침 10월의 소슬한 바람이 바다에서 해안으로 불어오고 그 아래 낮게 부푼 흰 파도가 나의 시선을 유혹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곳은 오염수가 함께 한/하는 곳이다. 방류된 오염물이 중력의 힘으로 바다 깊이 가라앉는다 하더라도, 나아가 바다 전체에서는 오염수가 극소량이라고 주창하더라도, 그곳은 입수를 허락하면 안 되는 곳일 것이다. 하지만 무심한 젊은이들은 상쾌함과 자랑스러움으로 무장하고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어떤 완고한 거짓과 무도한 악은 그 앞에서 우리를 쉽게 절망하게 한다.
이번 2025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에 《파라-다이스》가 선정되어 치른 북토크에서 그 절망의 느낌을 다시 한 번 경험했다. 젊은 독자들이 가득 찬 좌석 왼쪽 끄트머리에 앉은,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북토크 말미에 질문했다. “작가님은 어떻게 스스로의 행동으로부터 얻게 되는 열패감과 절망에서 되돌아 나오시는지요?” 아마도 자신이 이미 그 절망감 앞에 서본 적이 있는 듯했다. 어떤 거대한 재난이나 사고가 주는 고통보다, 그 재난을 은폐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국가나 행정수반이 국민을 향해 행하는 태도와 자세가 더욱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곤 하는데, 그녀의 예민한 지적이 후쿠시마 해안에서 보았던 광경과 겹쳐 엄습했다. 한참을 말 못 하고 격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다가 그녀를 보니 눈가에 손등을 대고 있었다. 그때 하승수 변호사를 떠올렸다. 그가 내게 했던 말 “이번 생은 이렇게 살렵니다.”
사진작가이자 농부로 전북 완주군 경천면 신흥계곡 구재마을에서 살고 있으며,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완주자연지킴이연대’를 결성해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백제예술대학 사진과 교수로 26년간 재직했고, 경천면 구재마을 이장직을 역임했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3학년 중퇴 후 독일로 건너가 쾰른 응용과학대학 아르노 얀센 교수 밑에서 마이스터쉴러(Meisterschüler) 학위를 받았으며, 여러 차례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고 다수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국내외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책의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차례대로 읽는 기존의 독서 경험과 어울리지 않는 MZ세대와무언가를 잘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무해한 마음 나는 오늘도 뭔가를 봅니다젊은 시절 ‘책을 본다’고 말하면 왠지 부끄러웠다. 가령 책을 ‘읽는다’고 할 땐 손에 쥔 단행본 내용을 꼼꼼하게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반면 책을 ‘본다’고 할 땐 성의를 다해
디지털 네이티브3년을 끌던 코로나 비대면 시대가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강의실 밖 캠퍼스는 만개한 겹사과꽃처럼 활기로 가득하다. 대면 강의는 물론 답사, MT 등 미루어놓았던 모임과 만남이 끊임이 없고 일정 너머 일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교수라면 이럴 때 간절한 것이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편안한 의자에 기대 좋아하는 책을 펼치는 시간일 것이다.
딴짓이 가능한 학교이자 딴 생각이 넘치는 놀이터,도서관에서 상상하지 못한 그 어떤 것을 만나다. 나는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간 적은 거의 없다. 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웬만한 공공도서관 지하엔 언제나 식당이 있었고, 돈가스를 5천 원, 가끔은 4천 원에도 먹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밥을 먹고, 주변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