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서 칼럼] 인공지능은 인간의 학습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_⓸ 말은 하지만, 살아본 적은 없는 존재와 함께 앎을 쌓는다는 것
최유진_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정보학 박사과정
2025-11-1114:26
AI 시대, ‘삶의 맥락’이 사라지고 있다
나는 요즘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때 결과 기간을 ‘2023년 이전’으로 제한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유는 단순하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개성 없는 정보가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영화 콘텐츠, 요리 레시피, 심지어 어두운 곳에서 모기를 잡는 방법과 같은 정보를 찾을 때면, 나는 그 글을 쓴 사람의 경험과 생각이 묻어난 일종의 정보 이상의 지혜를 기대한다. 그러나 요즘은 방문자 수 증가와 같은 모종의 이유로,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문장을 복사한 글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띈다. 이건 단지 정보의 신뢰도 문제가 아니다. 타인의 삶을 통해 배우는 간접 경험의 통로가 납작해지고, 정보 속에 스며 있던 삶의 맥락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지식과 지혜로 올라가기 위한 개성 있는 시각과 경험의 결여
문헌정보학을 배워가던 학부 시절, 한 수업이 떠오른다. 교수님과 우리는 ‘데이터(Data)–정보(Information)–지식(Knowledge)–지혜(Wisdom)’로 이어지는 고전적인 DIKW 피라미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핵심을 다시 짚자면, 데이터는 맥락 없는 사실이고, 정보는 그에 의미가 부여된 것, 지식은 그것이 나의 기존 이해와 상호작용하며 구조화된 것, 지혜는 그 지식이 판단과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을 때 형성된다. 이번 학기에는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입장에서,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내볼 기회가 있었다. 한 세미나 시간에 “인공지능이 생성한 ‘것(things)’ 또는 ‘답’은 이 피라미드의 어디쯤일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생각보다 깊이 있는 토론이 이어졌다. 다양한 의견 속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생각 중 하나는 이렇다. AI는 데이터와 정보의 차원에서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지만, 지식과 지혜의 영역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필요한 어떤 요소, 예를 들어 개성 있는 시각과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이 주는 정보는 종종 언뜻 완결성이 있고 매끄럽지만, 정보 제공자의 시선, 해석, 삶의 배경은 생략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학습은 평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정보는 ‘정답’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나의 질문’에 대한 응답은 아닐 수 있다.
2023년, MIT Initiative on the Digital Economy에서 발표한 연구는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보여준다. 광고 및 공익 캠페인 문구를 생성형 인공지능과 사람이 각각 제작한 후, 참가자 1,201명이 이를 평가했다. 콘텐츠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 채 평가했을 때, 인공지능이 생성한 문구가 가장 높은 품질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 출처를 밝히자,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문장을 이전보다 낮게 평가했고, 인간이 작성한 문장을 더 신뢰했다. 연구진은 이것이 ‘인공지능 혐오’라기보다 ‘인간 편애(human favoritism)’가 작동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누가 말했는가’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정보는 있지만 감정도, 삶도, 해석도 없는
이 대목에서 나는 문득 Human Library(휴먼라이브러리)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2000년 덴마크에서 시작된 이것은 사람을 ‘책’으로 보고, 그 삶의 맥락과 시선을 듣는 대화를 통해 타인의 경험을 직접 배우는 프로젝트였다. 이 휴먼라이브러리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어져 왔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의 핵심이 ‘누가 전하느냐’에 있었다는 점이다. 경험의 밀도와 시선의 각도가 정보를 달리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은 지금 다시 생각해볼 만하다
휴먼라이브러리 (출처 : 게티이미지 코리아)
이 맥락에서, AI가 만들어내는 정보를 다시 생각한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새로운 형태의 정보 또는 더 나아가 지식은, 사실 정확히 말하면 지식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문장은, 본질적으로 무수한 데이터의 총합과 통계의 조합이다. 알고리즘은 과거에 쓰인 수십억 개의 문장 속에서, 가장 그럴듯한 단어의 배열을 예측할 뿐이다. 어떤 문장이 더 자주 쓰였고, 어떤 구조가 더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에 기반해, “이쯤에서 이런 말을 하겠지”라는 확률적 예측이 축적되는 방식이다. 말은 하지만, 살아본 적은 없는 존재가 만든 문장은 종종 너무 매끄럽고 완성되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말하는 이의 감정도, 삶도, 해석도 없다. 정보는 있지만, 그 정보가 왜, 어떤 문제의식에서 나왔는지, 또는 그 말이 누구의 질문에 응답하고 있는지는 부재하다. 인공지능은 인격체가 아니므로 실패하거나, 후회하거나, 다시 배운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런 문장을 지식처럼 소비한다. 그럴 때 학습은 통계적으로 가능성 높은 문장을 받아들이는 평면적인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정보를 누가 어떤 이유로 말했는지, 그 말에 담긴 해석과 시선은 무엇이었는지를 궁금해해야 한다. 그런 감각이 살아 있어야 정보는 단순한 ‘사실’이 아닌 ‘앎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화면 너머의 존재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일 때, 이 감각은 약해지기 쉽다. 정보는 남지만 누구에게서, 어떤 배경에서 형성되어왔는지를 추적하고자 하는 태도는 무뎌질 수 있다.
도서관, 맥락을 되살리는 장소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도서관은 단순히 정보를 모으고 저장하는 공간이 아니다. 도서관은 지식의 출처를 투명하게 하고, 저자의 의도와 배경을 함께 제공하며, 정보를 읽는 사람이 능동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공간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탈맥락적 정보와는 전혀 다른 질감의 정보 환경이다. 도서관은 정보에 맥락을 되살리는 장소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앎을 이어주는 매개다. 그리고 이 특성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쉽게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Ackoff, R. L. (1989). From data to wisdom. Journal of Applied Systems Analysis, 16, 3-9.
Human Library Organization. (n.d.). About the Human Library. Retrieved from https://humanlibrary.org/
MIT Initiative on the Digital Economy. (2023). How do people regard AI-created content? Research Brief, 2. Cambridge, MA: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
최유진_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정보학 박사과정
텍사스대학교 오스틴(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UT Austin) 정보학 박사과정 4년 차에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사람들의 학습 과정(특히 흥미 개발과 창의성 지원)을 돕는 AI 기반 정보 시스템이다. 인공지능과 도서관의 역할을 다루는 미국 박물관·도서관 서비스 연구소(The Institute of Museum and Library Services, IMLS) 지원 프로젝트에 펠로우로 참여 중이다.
최근 교육 현장과 일상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활용되는 방식을 살펴보면, 배움의 방식이 조용히 재편되는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고 느낀다. 생성형 인공지능, 대표적으로 챗지피티(ChatGPT)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학습의 본질을 다시 묻게 만든다. 당초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계산 업무, 자료 입력, 일정 관리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인간의 지식 습득과 사고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2022년 11월에 공개된 OpenAI의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단순한 문서 요약이나 프로그래밍 보조를 넘어, 글쓰기부터 박사과정 수준의 연구 지원까지 가능할 정도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AI가 인간의 역할을 점점 대체할 것
흰 바탕에 흰 글씨, 인공지능의 조작“이러다 연구자도 필요 없겠어.” 인공지능(AI)에게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농담 반, 우려 반의 말들이 종종 들려온다. 그 말들에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고, 생성형 인공지능의 윤리적 활용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짧은 시간 안에 ‘그럴듯한 결과물’을 손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