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브러리(이하 ‘더’): 한강 작가는 원래부터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었고, 또 맨부커상 등 여러 국제 문학상 수상에 이어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친숙해지고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다양한 매체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그와는 별개로 한국 문단에서 오래 활동해오신 평론가로서 한강 작가를 바라보는 관점은 또 다를 것 같습니다. 이경재 평론가님께 한강은 어떤 작가였는지, 또 어떤 작가인지 궁금합니다.
이경재 교수(이하 ‘이’): 한강 작가는 여러 가지 키워드로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한강 작가를 떠올릴 때 제 마음속에 가장 먼저 다가오는 이미지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문학 세계를 아주 신중하고 진중하게 지켜나가는 작가예요. 발 빠르게 문학적 변화를 보인다거나 성과를 빨리빨리 낸다거나 그러지 않으면서 믿음이 갈 정도로 꿋꿋하게 천천히 자기 문학 세계를 완성해나가는 작가인 거죠. 한강 작가가 써나가는 소설적 세계는 나무가 자라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변화가 쉽게 보이지는 않지만, 잠깐 다른 곳을 봤다가 다시 보면 아주 우람하고 큰 나무가 되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탄 소식을 들은 건 제가 일본에 1년 동안 연구년을 가 있던 시기였어요. 그때 저도 많이 놀랐지만 제 주위에 있던 일본인 연구자들이나 문인들이 저보다 더 놀라더라고요. 그만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탄 것은 우리 한국문학, 더 크게는 한국에 있어서 그야말로 경사라고 할 수 있겠죠.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한국 문인들, 그리고 한국인들이 뭔가 노벨 문학상에 대한 콤플렉스랄까 열등감 같은 게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한편으로는 좋은 문학을 창작해야겠다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정말 자유로운 문학적 상상력을 펼치는 데 제약이 되는 측면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강 작가가 이렇게 노벨상을 받음으로써 이제는 노벨문학상을 둘러싼 콤플렉스 같은 것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좀 더 자유롭게 세계문학을 향해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한국 문인으로서 너무나 기쁘게 생각합니다.
노벨문학상이 주목하는 주제와 문학적 가치
더: 노벨문학상이 특히 주목해온 주제 의식과 중요시하는 문학의 가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노벨문학상이 대략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백인, 특히 유럽 백인들만의 리그라고 할 정도로 대부분 유럽에서 활동하는 백인 남성 작가들에게 상이 돌아가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수상자들이 문학에서 다루는 주제들도 그 시기 유럽인들에게 아주 절실한 과제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2차 대전 이후부터는 그런 유럽 중심주의에서 탈피해 아시아나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어찌 보면 그 이전에 소외되었던 지역의 작가들을 향해서 노벨문학상의 문호가 대폭 개방되었죠. 이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통해 다루어지는 문학적 주제도 식민주의 문제라든가 인종 간의 갈등처럼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되었어요.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그렇게 주제적인 확장을 넘어서 우리가 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념 자체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그런 경향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 2016년에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됐던 일이었죠. 가수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돼서 세계인들이 정말 깜짝 놀랐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정말 멋진 노랫말은 웬만한 시보다도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주고 깨달음을 주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기존의 경직된 문학 개념을 확장시키고자 했던 것이죠.
그리고 이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한 10여 년 전부터는 한림원 노벨상위원회에서 기억의 문제를 주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시대적인 문제를 다루든 개인의 내밀한 실존적 문제를 다루든 기본적으로 기억이라는 주제를 토대로 한 작품들에 노벨상위원회가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던 것 같거든요. 그런 맥락에서라면 한강 작가야말로 세계 그 어떤 작가보다도 기억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사회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룬 작가가 아니었나 싶고, 그런 맥락도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역사적 사건의 재현
더: 한강 작가의 경우처럼 5.18 민주항쟁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을 통해 재현되었을 때의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이 질문은 우리에게 여러 종류의 담론이 있고 또 인간이 남긴 여러 종류의 지적 산물들이 있는데 과연 문학이 다른 지적 영역이나 담론과는 다른 어떤 고유성이 있느냐는 질문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사실 플라톤 시대부터 이어져온 오래된 질문이기도 하죠. 특히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말하는 문학, 역사, 철학 중 문학에 주어진 역할이나 권능이 다른 두 영역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는데요. 제가 생각할 때 철학은 인간의 문제를 보편적으로 다루고, 그에 반해 역사는 그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다룬다는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그에 비해 문학은, 제가 문학을 하는 사람이어서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철학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보편성과 역사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구체성을 모두 아우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서 보편적인 질문을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특성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철학의 보편성이나 역사의 구체성에 대응하여 총체성이라는 단어로 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강 작가가 소설을 통해 광주 5.18 민주항쟁이나 제주 4.3 사건을 다루면서 보여주는 것은 그 어떤 역사보다도 생생하고 구체적인, 그야말로 피가 흐르고 눈물이 나는 사람들의 삶이죠. 그런데 이 생생한 삶이 담긴 소설이 말하는 바는 80년 광주의 개별적 사건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역사적 트라우마와 폭력의 문제, 애도의 문제를 모두 아우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한강의 소설을 통해 80년 광주를 보면서 2차 대전이라든지 또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처럼, 국가 혹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으깨진 자들이 겪었던 고통의 일반적인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거죠. 제가 볼 때는 그렇게 우리에게 문제의식의 진폭을 어떤 단순한 역사적 서술보다 더 크게 확장시키고 심화시키는 것이 문학의 권능이고 그것을 한강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아주 선명하게 한국인과 전 세계인에게 알려준 것 같습니다.
한강 작품 속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
더: 한강 작가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한국문학의 정통성과 새로움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이 근현대 한국의 정서 그리고 문화와 어떤 연결을 맺고 있고, 또 어떤 새로움으로 확장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고 노벨상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한국문학과 함께 자라왔다는 말을 했어요. 그리고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고 그 다음날 황석영이라는 한국의 대표적인 원로 작가가 신문에 글을 썼죠. 사실 황석영 작가는 한강 이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 예비 후보 1순위로 늘 꼽히던 작가였거든요. 이분이 신문에 썼던 글에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한국인과 한국문학이 그동안 거둬온 빛나는 성과 위에 서 있다는 표현이 있어요. 저는 한강의 그 인터뷰와 황석영 작가의 칼럼을 보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저도 한강 작가의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이 한강 개인의 돌출적인 성과가 아니라 한국문학, 더 넓게 보자면 한국인이 지난 150여 년의 근대라는 시간을 통과하며 거둬온 성과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우리 한국 근대문학을 세계의 문학과 비교해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리얼리즘적인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리얼리즘이란 당대 현실과의 긴밀한 대결적 정신하에 탄생하는 문학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다 겪어왔지만 한국의 근대는 정말 어떻게 보면 고난과 비극의 연속이었죠. 외세 침탈로부터 시작해 급기야 식민지를 겪고, 또 분단이 되고, 또 수백만이 죽고 다치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또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험난한 여정을 겪고, 그런 것들을 모두 겪은 나라나 민족은 아마 우리나라 하나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크게 과장된 말은 아닐 겁니다. 그렇게 고통스럽고 험난한 현실을 겪다 보니 우리 문학은 기본적으로 그 어떤 나라의 문학보다도 현실에 대해 아주 날카로운 정신을 번뜩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리고 90년대 이후에 우리 한국 작가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것 중 하나가 재현의 윤리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사건을 겪지 않은 자가 그 사건에 대해 재현하고 말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그것을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자의식을 기울였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한림원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크게 주목했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작품이 제가 볼 때는 한국문학이 심혈을 기울여서 꽃피워왔던 리얼리즘의 문화, 그리고 90년대 이후 한국 작가들이 예민하게 고민해왔던 재현의 윤리라는 두 축이 절묘하게 결합된 성과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한강 작가가 거둔 빛나는 성과는 한국인과 한국문학이 거둔 빛나는 성과 위에 서 있다는 황석영 작가의 말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지닌 의미를 날카롭게 짚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근현대문학사에서 주목할 작가
더: 역사적으로 근현대문학에서 현재까지 한강뿐만이 아니라 노벨문학상에 근접했던 작가가 있었다면 누구였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저는 조세희 작가를 들고 싶어요. 조세희는 아주 과작의 작가입니다. 그래서 거의 평생 한두 권 정도의 장편소설을 남겼어요. 조세희 작가의 대표작으로는 다 아시겠지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들 수 있겠는데요. 제가 보기에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좀 너무 난해하지 않아서 손해를 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사실 고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읽으면 다 쉽게 이해가 되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이 작품이 노벨상을 받을 만큼 심오한 작품은 아니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데요. 저는 이 작품을 보면 좋은 문학이 갖춰야 할 모든 요건을 갖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은 1970년대 한국 사회가 가졌던 가장 심각한 모순이랄지 사회문제를 아주 리얼하게 드러내고 있어요. 노동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 같은 것들을 정말 실감나고 감동적으로 잘 그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 그 누구도 70년대 한국이 처해 있던 가장 본질적인 노동과 분배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노동과 분배의 문제는 당대 한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급격하게 자본주의화 돼가고 산업화를 겪고 있던 지구 전체의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대단한 인식적 충격을 준 아주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뿐만 아니라 좋은 문학은 독자들에게 윤리적·정치적 고민을 하게 만들어야 해요.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우리가 과연 올바르게 살고 있는 것인지, 이 사회가 정말 인간이 살아갈 만한 제대로 된 사회인지를 고민하고 성찰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그 작품이 발표된 1970년대는 물론이고 2025년 지금의 시점에서도 우리에게 과연 어떤 삶이 올바른 것인지, 어떤 사회가 인간다운 사회인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도 참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학은 예술이잖아요. 예술은 스타일이고 나름의 미적 창조가 있어야 하죠. 방금 말씀드린 인식적 충격이라든가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고민은 다른 멋진 칼럼이라든가 사회학 저서를 통해서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름다운 미적 창조는 문학만이 할 수 있는 것이죠.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도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아주 짧게 끊어지는 스타카토 문체, 그리고 근대소설에서는 잘 볼 수 없던 동화적인 분위기와 알레고리, 상징들. 또 어떤 면에서는 근대소설에서는 많이 채용하지 않는 유럽 중세 문학적 요소 등 근대소설이 잊어버렸던 다양한 장르적 실험들을 포괄하고 있어요.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미학적 창조라는 면에서도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번역의 중요성
더: 최근 한강 작가뿐 아니라 많은 한국 작가의 작품들이 세계에서 환영받고 있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한국문학이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번역의 문제를 많이 들고는 했는데요. 이제는 해외에서도 한강 작가의 문장을 시적이라고 표현하는 등 단순히 내용이 아닌 문장의 차원에서도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경재 평론가님은 번역을 통해서도 한국어의 리듬이나 정서가 보존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 또 앞으로 번역과 관련해 우리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번역 문제와 관련해서 지금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이 대학이나 평단에서 활발하게 논의가 되고 있어요. ‘세계문학’에 대한 저명한 문학 이론가를 한 명만 꼽자면 하버드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댐로쉬라는 사람을 들 수 있는데요. 이분이 세계문학에 대한 여러 글들을 썼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으로 세계문학의 요건에 대한 글이 있어요. 어떤 문학 작품을 번역했을 때 그 작품이 너무 굳어지고, 번역된 한마디로 인해 작품이 지니고 있는 가치가 소실되고 사라져버린다면 그건 세계문학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번역을 했을 때 그 작품이 더 훌륭해지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의미가 활성화되는 것이 세계문학의 증거라는 이야기예요. 처음에는 이게 약간은 궤변처럼 들리기도 했는데 더 생각을 해보니 그럴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문학 작품이 하나의 언어권 안에서만 통용된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 문학은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모자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것이죠. 그래서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번역의 장벽은 사실 그렇게 높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또 한편으로는 저도 직업상 외국의 문학 작품이나 이론서를 읽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때 종종 사용하게 되는 AI의 번역이라는 게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그야말로 의미만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번역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점이 아닌 것 같아요. 이제는 번역도 제2의 창작으로서 창의성이라든지 문학적 감수성 같은 요소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국문학을 비평가 수준으로 깊이 있게 이해하는 번역가의 양성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역량을 지닌 번역가가 나타나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문제이고, 적극적으로 제도적 관심과 지원을 기울여야 하는 거죠. 그리고 문인들 간의 교류도 아주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 같은 것이 활성화돼서 각국의 문인들이 상호 교류를 하며 서로 다른 나라의 문학을 많이 알게 되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번역의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이 되기 위한 노력
더: 번역뿐만이 아니라 한국문학이 향후 세계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 저는 작가들이 이미 이렇게 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모든 사람은 글을 쓸 때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저는 일기도 독자가 있는 글쓰기라고 생각을 해요. 그 독자가 때로 부모님일 수도 있고 10년 후의 나일 수도 있고 20년 후 자신의 자식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작가들이 글을 쓸 때 머릿속에 상정하는 독자가 이제는 한국인이 아니라 그야말로 세계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문학을 세계화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을 창작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하는 거죠. 작품의 주제 의식이나 배경, 등장인물 같은 기본적인 요소들부터 세계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고 관심을 기울일 만한 영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장 한국적인 소재나 한국적인 사건들도 세계 독자를 상정한 바탕 위에서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하나를 더 꼽자면 여러 외국 문인들과의 교류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교류를 하면서 앞서 말씀드린 세계문학으로서의 소설, 세계문학으로서의 시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말하곤 했는데요. 저는 이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봐요. 이제는 이 세계가 하나의 바운더리 안에 놓여 있고 너무 평평해진 측면이 있기 때문에, 가장 한국적인 것조차도 세계적인 흐름과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한국문학이 있고 그 이후에 그 한국문학을 세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출발부터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을 창작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죠. 최근 소설이 외국 배경이거나 외국인을 등장시키는 경우는 너무도 많고, 조금 파격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아예 언어조차도 처음부터 외국어로 쓰이는 시나 소설도 이제는 나올 수 있는 단계가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도 해봅니다.
문학평론가가 되고 싶다면
더:문학평론가가 되고 싶은 후학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이: 문학평론가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성격을 지니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독자, 두 번째는 해석자, 세 번째는 창작자라는 성격이요. 먼저 독자는 누구나 될 수 있고 수없이 많잖아요. 그런데 평론가는 일반적인 독자들보다 많이 읽고, 또 애정이 많은 독자라고 생각해요. 평론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많이 읽어야 하고 또 그러려면 훨씬 더 많은 애정이 있어야 해요. 애정이 있어야 그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기울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대학생들이 찾아와서 어떻게 문학평론가가 될 수 있는지 물어보거나 하면 네가 정말로 한국문학을 사랑하는지부터 물어보곤 합니다.
두 번째는 해석자인데, 일차적으로 평론가는 작가가 작품에서 말하고자 한 바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읽어내는 역량이 필요해요. 가장 기본적으로는 작가와 시인의 의도를 읽어내는 역량이 필요하죠.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어요. 저는 어떤 작품이 위대하다는 건 그 작품에 작가나 시인의 의도를 초과하는, 그래서 그 작품을 쓴 작가나 시인조차 모르는 무엇인가가 그 안에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창작자가 알고 있는 의도만 들어가 있는 작품은 그렇게 위대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위대한 작품 속에는 작가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고, 저는 그게 너무나 신성한 잉여라고 생각합니다. 이 신성한 잉여는 대부분 그 작가가 발 딛고 있는 시대 현실로부터 작품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고 봐요. 존경받을 수 있는 위대한 평론가가 되려면 바로 이 신성한 잉여를 읽어낼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하는 거죠. 또 이를 위해서는 그 시대에 대해서 작가보다도 훨씬 더 깊은 이해와 성찰이 있어야 하고, 문학과 예술 일반에 대한 뛰어난 감성과 지식, 교양이 있어야만 하고요.
그리고 평론가의 세 번째 얼굴은 일종의 표현자, 또 하나의 작가이고 창작자예요. 시인과 작가만 자신만의 고유한 미학적 스타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평론가도 자신만의 스타일과 문체를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평론가도 자신만의 표현을 위한 부단한 수련을 통해 고유한 스타일을 가져야 하고, 그렇게 되면 한 명의 당당한 예술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정리를 하자면 평론가가 되기 위해서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애정,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교양, 또 자신만의 표현 방식과 문체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 우리 사회,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는
더: 지금 우리 사회,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저는 기껏해야 소설 읽고 평론 쓰고 대학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한국 근대문학을 강의하는 일개 서생에 지나지 않는 사람인데, 이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어요. 과연 제가 이런 질문에 답할 역량이나 자격이 되나 해서요. 그런데 그저 저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말씀드린다면, 요즈음은 너무 자기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남자는 여자를 생각하지 않고, 여자는 남자를 생각하지 않고, 101호 사는 사람은 102호 사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식으로요. 개인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국가 차원에서도 예전에는 그게 위선이고 거짓말일지라도 세계의 평화를 생각하고 우리가 선진국으로서 가난한 나라를 돕자는 그런 레토릭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세계 모든 나라들이 대놓고 자국의 이익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자국의 이익을 추진하더라도 뭔가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내걸었다면, 지금은 미국, 중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최강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나라들도 드러내놓고 우리는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리고 더 크게 보면 인간도 인간의 이익만을 너무 추구하는 것 같아요. 자연이라든가 생태라든가 인간이라는 생물종 이외에 다른 생물종에 대한 관심과 염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정말 이렇게까지 대량 소비를 하고 엄청난 에너지 소비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 인류, 우리 문명의 가장 큰 문제는 나, 우리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봐요. 이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우리가 진짜 살아남는 길은 너, 너희, 다른 나라, 다른 생물종, 다른 별과 다른 은하에 대한 공감과 관심, 또 연대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경재_숭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제14회 젊은평론가상, 제29회 김환태평론문학상, 제3회 김윤식학술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단독성의 박물관》(2009), 《끝에서 바라본 문학의 미래》(2012), 《현장에서 바라본 문학의 의미》(2013), 《여시아독》(2014), 《문학과 애도》(2016), 《재현의 현재》(2017), 《명작의 공간을 걷다》(2020), 《한국 베트남 미국의 베트남전 소설 비교》(2022), 《한국 현대문학과 민족의 만화경》(2023), 《요즘 소설이 궁금한 당신에게》(2023) 등이 있다.
정선희(어머니), 김승민(자녀) X 이은미(어머니), 배은빈 배유빈(자녀) 중랑구에서는 ‘취학 전 천 권 읽기’를 통해서 아이를 책과 함께 성장하는 한 명의 독자로 키우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잠자기 전 부모가 아이에게 한 권의 책을 읽어준다면 1년에 365권, 2년에 700권, 3년이면 천 권을 읽어주게 된다. 취학 전 천 권 읽기를 성공적으로 끝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11월호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김가영 작가를 소개한다. 김가영 작가가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자기 소개 동영상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의 가을을 느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 힐다 = Q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식물은?A 한참 밭을 매던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쑥은 뽑아도 뽑아도 다시 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