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약 130센티미터, 바퀴 기능을 갖춘 두 다리에 팔 두 개, 가슴팍에는 작은 화면이 달린 로봇이었다.
로봇은 잠시 멈추더니 교통카드 단말기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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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장면은 아직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이족보행 로봇, 바퀴형 서비스 로봇, 자율주행 배송 로봇이 공공 공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그룹x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Atlas), 피규어 AI(Figure AI)의 Figure 01, 그리고 테슬라(Tesla)의 옵티머스(Optimus)는 이미 공장과 창고를 넘어 일상 공간으로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디지털 세계에만 존재하던 인공지능이 몸을 갖고 물리적 공간에서 인간과 함께 움직이는 시대,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가 도래했다.
버스에 탑승한 그 로봇 앞에서, 우리 사회는 준비되어 있을까? 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해 제도적·사회적 준비는 현저히 뒤처져 있다.
첫 번째 난감함: 운전기사 입장
“어…… 요금은?”
기사는 백미러로 로봇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로봇은 화면에 무언가를 표시했지만, 교통카드 단말기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뒤에 선 승객들이 하나둘 시계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버스 요금 체계는 ‘사람’을 전제로 한다. 성인, 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모든 범주는 인간이다. 로봇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로봇은 현재 ‘물건(物件)’이다. 현행 민법상 물건은 권리의 객체이지 주체가 아니며, 따라서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다(민법, 2026). 그렇다면 로봇이 버스에 타는 행위의 법적 성격은 무엇일까? 로봇 소유자가 요금을 내야 할까? 로봇 스스로 결제 시스템에 연동해야 하는가?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자율주행 차량의 경우에도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 문제가 수년째 논쟁 중이다. 로봇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대가 오면 교통카드 시스템, 요금 체계, 탑승 규정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 ‘로봇 탑승 허용 여부’를 명시한 대중교통 운영 규정은 현재 어느 나라에도 없다.
두 번째 난감함: 로봇 입장
로봇은 좌석을 바라봤다. 앉아야 하나, 서야 하나.
좌석에는 ‘임산부·노약자·장애인 우선석’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빈자리가 그곳뿐이었다.
뒤쪽은 만원이었다. 로봇 다리에 붙은 바퀴가 통로를 막을 것 같았다.
공간 규범의 문제다. 현행 대중교통 내 공간 배치는 인간의 신체 크기와 행동 양식이 기준이다. 휠체어 공간이 그나마 예외적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인간 이용자를 위한 것이다. 로봇의 크기, 형태, 이동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인간형(humanoid) 로봇도 있고, 바퀴형 로봇도 있으며, 드론형도 있다. 이들 각각이 버스,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어느 공간을 점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앉아야 하나?’라는 질문 속에는 공간 점유의 우선순위 문제가 숨어 있다. 노약자·임산부 우선석 규범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원칙을 담고 있다. 로봇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허용해야 하는가? 로봇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면, 그 명령은 누가 내리는가? 로봇 자신의 판단인가, 탑승 규정인가, 아니면 원격 운영자인가? 이 질문들은 공공 공간에서의 로봇 행동 준칙(code of conduct)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세 번째 난감함: 로봇이 누군가를 대신하고 있다면
정류장 하나를 지나쳤을 때, 로봇의 가슴 화면에 영상이 떴다.
한 노인이 화면 속에서 말했다. “잘 가고 있지? 약은 잘 갖고 있어?”
로봇의 품에는 작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요양원에 입원 중인 노인의 아들이 직접 갈 수 없어 로봇을 대신 보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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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의 가장 유력한 활용 영역 중 하나는 돌봄이다. 돌봄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령자의 일상과 자립을 지원하는 소셜 로봇의 도입 필요성이 정책적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Sætra, 2020). 또한 장애인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수요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법적·윤리적 문제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로봇이 미성년자를 이송하는 경우, 이것은 법적으로 허용되는가? 보호자 동반 의무 규정은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로봇이 장애인의 이동 보조 기구를 대신 수령하는 경우, 본인 확인 절차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로봇이 운반 중인 의약품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가? 로봇이 대중교통 내에서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발생하는 사고의 책임 소재는 누구에게 있는가?
대리인(agent) 개념이 로봇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이미 법학계의 주요 논쟁이다(이중기, 2016). 민사 대리, 형사 책임, 계약 이행 등 모든 법 체계는 ‘의사 능력을 가진 인간’을 전제로 한다. 로봇이 공공 공간에서 타인을 대리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순간, 이 전제는 무너진다.
네 번째 난감함: 사고가 났다면
급브레이크. 로봇의 몸체가 흔들리며 앞에 서 있던 승객의 팔을 건드렸다.
“아야!” 승객이 소리쳤다. 찰과상이었다.
로봇은 즉시 멈추고 화면에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그러나 기사도, 승객도, 로봇도 아무도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고 책임 문제는 자율주행 자동차 논의에서 이미 한 차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로봇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서비스 로봇은 불특정 다수의 인간과 뒤섞인 공공 공간에서 이동한다. 로봇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책임은 제조사인가, 소유자인가, 운영 서비스 업체인가, 아니면 그 로봇에게 심부름을 시킨 의뢰인인가?
EU는 이 문제를 선제적으로 다루기 위해 2021년 AI 책임 지침(AI Liability Directive) 초안을 발표하고, AI 시스템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인과관계 추정 원칙을 도입하는 방향을 제안했다(European Commission, 2022).
보험 제도도 재설계가 필요하다. 자동차는 책임보험 가입이 의무다. 공공 공간을 이동하는 서비스 로봇에게도 유사한 의무 보험 체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피해자가 구제를 받기 위해 법적 소송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그 시간과 비용은 누가 감당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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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떠나기 전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
버스에 탑승한 로봇 한 대가 이렇게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현실에서 피지컬 AI의 공공 공간 진입은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동시에 터뜨릴 것이다. 기술은 이미 달리고 있는데, 제도는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최소한 다음과 같은 영역에서의 준비가 시급하다.
첫째, 로봇의 법적 지위 정립이다. 물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제3의 존재’로서 로봇에 대한 법적 지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계약·책임·권리의 측면에서 기초 법리를 정비해야 한다. EU의 ‘전자적 인격(electronic personhood)’ 논의는 하나의 참고점이 될 수 있다(Delvaux, 2017).
둘째, 공공 공간 행동 준칙의 제정이다. 로봇이 대중교통, 보도, 공공건물 내에서 따라야 할 행동 기준—이동 속도, 공간 점유 방식, 인간 우선 원칙, 위급 상황 대응 등—을 담은 표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이는 국제표준화기구(ISO)나 국내 국가기술표준원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는 과제다.
셋째, 책임 귀속과 보험 체계의 정비다. 로봇으로 인한 피해 발생 시 신속하고 명확한 피해 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조사·소유자·운영자 간의 책임 분담 체계와 의무 보험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넷째,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 보호 체계다. 공공 공간을 이동하는 로봇은 카메라, 마이크, 센서를 통해 방대한 환경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과정에서 제3자의 얼굴, 대화, 행동을 무단으로 수집할 수 있다. 로봇이 수집하는 데이터의 범위, 저장 기간, 이용 목적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다섯째, 사회적 수용성 논의의 공론화다. 법과 제도 이전에, 우리 사회가 공공 공간에서 로봇과 공존하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특히 노인·장애인·아동 등 취약계층이 피지컬 AI와 어떻게 상호작용하게 될 것인지,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선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Fosch-Villaronga & Draper, 2021).
버스는 이미 출발했다
버스는 결국 출발했다. 로봇은 뒷문 쪽 공간에 멈춰 서 있었다. 기사는 더 묻지 않았고, 승객들은 슬금슬금 시선을 피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창밖을 내다봤다.
그것이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피지컬 AI라는 거대한 변화가 이미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창밖을 보고 있다.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로봇이 버스에 탑승하기 전에, 적어도 그 로봇이 요금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 어디에 서야 하는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는지 정도는 정해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준비하지 않은 미래는, 혼란이다. 준비한 미래는, 기회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다음 버스 정류장이 도서관이라고 상상해보자. 로봇이 내렸다. 자동문이 열렸다. 로봇은 도서관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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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로봇이 서가를 돌아다니며 책을 스캔한다면, 이용자의 얼굴이 카메라에 담긴다면, 로봇이 아이 곁에 앉아 독서를 돕는다면, 도서관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환영할 것인가, 제지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당혹스럽게 바라볼 것인가?
도서관은 늘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이용자를 먼저 맞이해온 공간이다. 인터넷이 처음 들어왔을 때도, 전자책 단말기가 보급되었을 때도, 3D 프린터가 메이커스페이스에 놓였을 때도 그랬다. 피지컬 AI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그 존재가 단순한 기기가 아니라, 공간을 스스로 이동하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데이터를 수집하는 행위자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도서관이 해야 할 일은 거창하지 않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질문을 시작하는 것이다. 로봇 이용자에 대한 정책은 있는가? 로봇이 수집하는 데이터에 대한 기준은 있는가? 로봇과 인간 이용자가 같은 공간에 있을 때 사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을 가진 도서관은 아직 많지 않다. 그러나 질문을 먼저 던지는 도서관이, 피지컬 AI 시대에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박진호_한성대 크리에이티브인문대학 지식정보문화트랙 교수
한성대 크리에이티브인문대학 지식정보문화트랙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다. 주요 연구 관심사는 오픈 데이터와 시맨틱 웹이며, 정보기술 관련 주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두 개의 지능과 언어(문자)인공지능(AI) 기술의 급부상은 현대사회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OpenAI가 대화 형식의 인공지능 챗봇 ChatGPT를 2022년 11월 30일에 공개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활용한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의 개발과 활용이 급속히 확산되었으며,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업무 자동화, 정보 검
보이지 않는 설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무엇을 읽을지, 볼지, 구매할지를 끊임없이 결정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선택이 주로 주변 사람들의 추천이나 대중매체의 광고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인터넷과 디지털 플랫폼 활용이 일상인 오늘날에는 선택의 방식과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온라인 쇼핑, 유튜브 시청,
LLM 시대, 텍스트의 외형적 설득력과 내용의 진실성은 별개대규모 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의 등장은 인간이 언어를 기반으로 지식을 구성해온 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언어는 지식 전달의 매개이자 세계를 이해하는 창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LLM은 언어를 이해하기보다는, 수많은 텍스트에서 추출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