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급부상은 현대사회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OpenAI가 대화 형식의 인공지능 챗봇 ChatGPT를 2022년 11월 30일에 공개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활용한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의 개발과 활용이 급속히 확산되었으며,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업무 자동화, 정보 검색, 창의적 콘텐츠 생산 등 새로운 활용 사례가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LLM 서비스가 등장한 후 놀라운 점은 이들의 대답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LLM은 반드시 정확한 답변을 내놓는다기보다, 그럴듯하고 일관성 있는 문장을 완성한다. 최근에는 정확한 소스에 기반한 답변을 제공하도록 보완되고 있지만, 여전히 LLM이 때로는 사실과 다른 정보를 그럴듯하게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인간이 사용하는, 문자라는 도구 자체의 한계와도 연결된다. 언어는 우리의 지식을 표현하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사고의 틀을 규정하는 또 다른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LLM의 답변이 그럴듯하게 들리면서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사고와 언어가 가진 본질적 한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컨택트〉 포스터 ⓒhttps://en.wikipedia.org/w/index.php?curid=51343430
2016년 개봉한 SF 영화 〈어라이벌〉(국내 개봉 제목: 컨택트)은 언어학자 루이즈를 주인공으로 하여, 지구에 온 외계 종족과 소통하기 위해 인간의 언어와 개념을 공유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작품의 핵심 이론은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로,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는 논쟁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구조주의의 시초로 불리는 소쉬르가 “언어는 기호의 체계이며 의미는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 내용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루이즈가 집필한 책 서문에 적힌 “언어는 문명의 초석이자 사람을 잇는 끈이며, 모든 분쟁의 첫 번째 무기다”라는 문장은 영화의 주제를 응축한다. 〈어라이벌〉은 언어와 소통의 한계를 생생하게 드러내며,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 안고 있는 문제와 이에 대한 인간의 반응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LLM 기반 AI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놀라운 점은 지능에 대한 논쟁이다. 이선 몰릭(Ethan Mollick, 와튼스쿨 교수)은 2025년 출간한 저서 《듀얼 브레인: AI 시대의 실용적 생존 가이드》(원제 ‘Co-Intelligence: Living and Working with AI’)에서 인간의 자연지능(Natural Intelligence)을 “첫 번째 두뇌”, 생성형 AI를 “두 번째 두뇌”로 정의한다. 그는 두 지능이 각각의 강점을 살리고 보완하며 협력할 때 비로소 ‘공-지능(co-intelligence)’이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몰릭이 제안하는 핵심 전략은 AI와 인간의 업무를 명확히 분할하기보다는 유기적으로 순환-검증(loop-back)하도록 설계하고, AI 결과를 바로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인간의 맥락 판단을 거치며, 학습과 피드백을 양쪽 지능이 공유하는 ‘양방향 증강’ 구조를 구축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언제든 호출할 수 있는 개인 맞춤형 멘토이자 조력자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셈”이라고 표현한다.
이 같은 관점은 최근 학계와 산업계가 쓰는 다양한 용어—‘하이브리드 지능(Hybrid Intelligence)’, ‘공생 지능(Symbiotic Intelligence)’, ‘센타우르 모델(Centaur Intelligence)’—과도 맞닿는다. 모두 인간 고유의 직관·윤리·맥락 이해와 AI의 연산 속도·데이터 분석력을 결합(merge)해 새로운 수준의 문제해결 능력을 창출하자는 제안이다. 특히 하이브리드 지능 연구는 “AI가 인간을 대체하기보다는 확장(extend)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의료·교육·정책 설계 등 고위험·고창의성 영역에서 사람과 알고리즘이 쌍방향으로 위험을 보정하고 상호 신뢰를 강화하는 실험 사례들을 축적 중이다.
결국 《듀얼 브레인》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인간 vs 기계’ 구도가 아니라, 두 형태의 지능을 복합적 자산으로 인정하고 설계·윤리·교육 모든 차원에서 동시 활용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있다. 인공지능을 하나의 독립적 지능 체계로 바라보는 시각은 LLM을 단순한 서비스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새로운 형태의 지능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며, 인간과 기계 지능이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거시적 이해를 뒷받침한다.
도서관의 인공지능 활용과 대응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은 2020년 〈Libraries and Artificial Intelligence〉 성명에서 AI 시대 도서관·사서의 임무를 재정의했다(IFLA, 2020). 도서관은 첫째, 책임감 있는 AI·머신러닝 활용이 가능하도록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편향 점검, 투명성 확보를 도서관 정책에 내재화해야 한다. 둘째, 이용자 대상 AI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시민의 ‘디지털 판단력’을 높여야 한다. 셋째, 윤리적 AI 연구 지원을 통해 공공선에 기여해야 한다. 이 외에도 사서는 기술 운영자에 그치지 않고, 인간 지능(맥락 판단·가치 평가)과 기계 지능(데이터 처리·패턴 학습)을 조화시키는 중재자이자 윤리적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미 다채로운 실험이 진행 중이다. 캐나다 캘거리대학교 도서관은 2021년 다국어 지원 AI 챗봇 ‘T-Rex’를 도입해 안내 웹페이지와 LibGuides를 학습시킨 뒤 레퍼런스 질문에 실시간으로 응답하게 했다(Bryant, 2024). 초기 6개월 동안 T-Rex가 처리한 질의는 월평균 4천 건을 넘어섰고, 담당 사서의 1차 응대 업무량이 약 30퍼센트 감소했다. 챗봇은 가장 보편적인 AI 도입 형태이지만, 그 외에도 딥러닝 기반 분류·주제어 자동 부여,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 대규모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한 학술 동향 분석 등 서비스 스펙트럼이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Tribe, 2025; Cox & De Brasdefer, 2025). 그 결과 사서는 품질 검증, 윤리 점검, 고차원 정보 해석, 이용자 교육 같은 고부가가치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히 처리하고 숨은 패턴을 포착하지만, 사서는 그 결과를 맥락 속에서 해석하고 이용자와 공감한다. 두 역량이 교차할 때 도서관은 지식 창출과 시민 역량 강화를 동시에 이끄는 하이브리드 지능 생태계로 거듭날 수 있다.
두 지능을 연결하는 플랫폼 도서관, 중재자 사서
도서관은 더 이상 지식을 저장·전달하는 수동적 공간이 아니다. 오늘날의 도서관은 정보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지식을 빚어내는 창조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학습·연구 지원 기능이 강조되는 반면, 해외 도서관은 지역사회 소통의 허브로 기능한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정보를 통해 인간이 성장하고 공동체가 발전한다”는 본질적 가치는 같다. 메이커스페이스 같은 창작 공간이 빠르게 확산된 것도 지식이 ‘머릿속 개념’에서 ‘손으로 만드는 결과물’로 구체화되는 과정에 도서관이 적극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AI 시대가 열리면서 도서관은 자연지능(인간)과 인공지능(LLM)을 매개하는 하이브리드 플랫폼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핵심은 선택이 아니라 통합이다. 사서는 단순 기술 운영자를 넘어 두 지능의 접점을 설계하고, 윤리·투명성·신뢰성을 확보하는 중재자이자 가이드로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곧 정보의 선별·평가·해석,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그리고 지적 자유 수호라는 전통적 임무를 AI 환경에 맞게 심화하는 작업이다.
결국 도서관은 AI의 연산 능력과 사서의 인간적 통찰이 만나는 융합 지식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분석하고 패턴을 찾아내는 데 탁월하지만, 사서는 맥락을 읽고 가치 판단을 내리며 이용자와 공감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두 역량이 결합할 때 ‟1+1이 2 이상”이 되는 시너지가 실현된다. 사서가 AI 도구를 한 손에, 인간적 통찰을 다른 손에 쥐고 두 지능의 협업을 이끌어갈 때, 도서관은 더욱 풍부한 지식 경험을 제공하고 이용자는 한층 성장할 것이다.
박진호_한성대 크리에이티브인문대학 지식정보문화트랙 교수
한성대 크리에이티브인문대학 지식정보문화트랙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다. 주요 연구 관심사는 오픈 데이터와 시맨틱 웹이며, 정보기술 관련 주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시대스마트폰을 켜는 순간부터 우리는 AI의 눈앞에 선다. 검색어, 시청 기록, 위치 정보, 심지어 감정의 변화까지도 데이터로 남는다. 인공지능은 이 흔적을 학습하며 우리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그 예측은 다시 새로운 행동을 유도한다.이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학자 토마스 마티센(Thomas Mathiesen, 1997)이 제시한
2022년 말 ChatGPT가 세상에 등장한 뒤 3년이 흘렀다. 복잡한 입력 방식을 벗어나 대화(Chat)라는 인터페이스를 도입한 엔진(GPT)의 파급력은 인공지능의 대중화를 열었다. ‘프롬프트’, ‘환각’이라는 낯선 단어들은 일상어로 자리잡았고, 도서관 현장에서도 생성형 AI 도입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제 4년이
오전 8시 22분. 437번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하나둘 올라탔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오른 존재는 사람이 아니었다.키 약 130센티미터, 바퀴 기능을 갖춘 두 다리에 팔 두 개, 가슴팍에는 작은 화면이 달린 로봇이었다.로봇은 잠시 멈추더니 교통카드 단말기 앞에 섰다. 위의 장면은 아직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