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다. 당연히 사람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직업도 있다. 물론 도서관 사서는 아니다. 영화에서 사서는 가끔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도서관에 갔을 때 만나는 사람으로 잠깐 등장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물론 도서관에 간 주인공이 사서와 만나지 않고 나오는 경우는 더 많다. 천만 건이 넘는 영화(TV 프로그램 포함) 데이터를 보유한 IMDB에서 ‘도서관’으로 주제어 검색을 하면 2,037편인데 반해 ‘사서’로 검색하면 502편이다. 우리나라 영화 데이터베이스 KMDB에서는 ‘도서관’ 90편, ‘도서관 사서’는 10편밖에 없다.
이렇게 편수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서에 대한 이미지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전형적인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예브게니아 바실라카키와 발렌틴 모니아로-파파콘스탄티누는 매스미디어에서 사서는 ‘중년 아줌마’의 이미지가 있으며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서 이미지의 고정관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¹⁾ 반면 어린이책에서는 긍정적인 고정관념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건 우리나라 어린이책도 다르지 않다. 친절하고 푸근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어린이 책이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서 이미지는 긍정적이라면, 성인 대상 영화는 어떤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줄까.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
사서의 얼굴: 쉿! 엄. 근. 진.
영상물에서 직업의식은 얼굴로 대변된다.²⁾ 얼굴은 인물의 소통과 표현을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사서의 얼굴은 어떤가. 우선 표정이 없거나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다. 〈필라델피아 스토리〉(1940)³⁾에서 사서는 지역 유명 가문의 정보를 찾는 주인공에게 참고 서비스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대화하는 이용자에게 ‘쉿!’ 조용히 하라고 한다. 손가락을 세워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사서의 이미지는 1940년에 나온 영화에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서를 대표하는 얼굴과 동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피의 선택〉⁴⁾에서 사서는 조국에서는 지식인이었던 주인공이 이주민이고 영어 발음이 서툴다는 이유로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무시한다. 감독은 이런 권위적인 사서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데스크를 높게 두어 이용자가 올려다보는 카메라 각도를 사용했다.
1961년 뉴욕공공도서관을 배경으로 한 〈티파니에서 아침을〉⁵⁾에도 엄격하게 원칙을 지키는 사서가 등장한다. 남녀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이 쓴 책에 저자 싸인을 남기자고 한다. 하지만 사서는 도서관 책은 공공 재산이므로 함부로 낙서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원칙이 있지만 젊은 연인들의 추억을 지켜주기 위해 스스로 원칙을 깨는 보석상 티파니 직원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도서관 사서를 두고 여자 주인공은 “여기(도서관)는 티파니 반도 못한 곳”이라며 나가버린다. 하지만 이건 비단 ‘저자 싸인’과 ‘낙서’로 대비되는 원칙을 지키느냐 아니냐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서의 표정과 태도에 존중의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공공장소이면서 책을 읽는 곳이므로 조용히 하는 것은 예절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쉿, 조용히’라는 사서의 이미지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 이름이나 책 제목을 정확하게 말해야 하며, 저자라 하더라도 책에 싸인을 하는 것은 낙서가 된다는 것들은 업무 매뉴얼일 것이다. 이용 예절을 요구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지만 이용자들은 야박한 평가를 하고야 만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그 뜻을 표현했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영화 플랜맨〉(좌),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우) 스틸컷
사서에 대한 오해
사서의 얼굴이 표현의 문제라면 성격은 어떨까.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사서가 주인공인 〈플랜맨〉⁶⁾과 태국 주재 일본문화원 자료실 사서가 주인공인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⁷⁾의 두 주인공은 모두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 사실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사서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강박증, 우울증 등 정신증이 더 중요하다. 오히려 사서라는 직업은 이들의 정신증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주인공 직업으로 사서를 골랐을까. 사서의 이미지 중 어떤 점이 강박증 환자라는 점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을까.
영화가 주인공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보여주는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책 수레에 책을 싣고 밀며 나아간다. 그러다가 책등에 있는 여~러 개의 숫자를 확인한 뒤 정확한 자리에 꽂는다. 혹여 잘못 꽂힌 책을 발견하면 꺼내서 제자리를 찾아 정리한다. 〈플랜맨〉 주인공은 코드 정보를 입력하고 넘버링하는 작업은 손이 좀 많이 가는 작업이고 정교해야 해서 적성에 잘 맞는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깐깐하고 ‘각 맞춰’ 정리해야만 하는 주인공의 성격이나 증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된다. 자료를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리하는 작업이 외부인들에게는 원칙적이고 까다로운 성격으로 보인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성격뿐만이 아니다. 〈플랜맨〉에서 주인공이 일하는 도서관 동료 직원들의 행태는 실제 사서들의 행동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 ’Help Desk’에서 과자를 먹으며 이어폰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서, 소파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는 사서, 태교 음식 관련 책을 읽는 임신 중인 사서. 언젠가 도서관 관련 블로그 글에 ‘사서는 꿀 빠는 직업’이라고 쓴 댓글을 봤다. 도대체 대중은 사서라는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대중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이 가진 과거의 경험에서 온 이미지가 재생산하는 전형일까.
이렇듯 영화에서 보는 사서의 이미지가 대체로 깐깐하고 고지식하여 진취적이거나 동적인 이미지보다는 정적이고 보수적인 모습으로 노출되는 게 사실이다. 사회성 부족으로 대학에서 전공을 바꿔가며 공부만 하다가 쫓겨나와 사서가 되거나⁸⁾, 정부의 비밀 특수부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신분을 숨기고 살기 위해 사서가 되거나⁹⁾, 루마니아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고 “공정하게 살아서 도서관 사서로 주저앉았다”고 남편에게 힐난을 받는다¹⁰⁾. 주로 책을 다루고, 조용한 공간에서 일하며, 공공기관이라 다양한 이용자를 상대해야 하지만 ‘쉿!’ 한마디로 이용자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의 수집, 보존, 제공을 함으로써 이용자 개인과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돕는 도서관과 사서의 이미지는 아직 대중에게 각인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이용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문제 해결을 돕는 정도만이고, 그것도 미국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물론 모든 영화 캐릭터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앞에서 말한 그런 사서지만 “나는 내가 사서라는 게 자랑스럽다”는 주인공¹¹⁾도 있고, 도서관의 지적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군대를 조직해서 도서관과 장서를 지키는 도서대¹²⁾ 사서들도 있다. 또 고지식하고 원리원칙을 고수하며 사회성도 부족하지만 고향 마을 도서관에서 사서가 된 사쿠라가 도서관 이용자의 문제 해결을 도우면서 진짜 사서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천사가 있는 도서관〉¹³⁾ 같은 영화도 있다.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은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시설에 대한 고정관념이 투영되어 굳어버렸다. 송기호(2016)의 사서의 자아상 분석 연구를 보면 공공도서관 사서들은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으며 친절함, 공평함, 상냥함을 지녔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자신의 역할이 영향력 없고 무시당하고 있으며 초라하고 답답하다는 부정적인 자아상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¹⁴⁾ 모든 직업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마냥 좋은 이미지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보다 좀 더 다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기를 바란다. 사회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는 직업인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서가 성장하는 스토리텔링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¹⁾ Vassilakaki, E. and Moniarou-Papaconstantinou, V. 2014. “Identifying the Prevailing Images in Library and Information Science Profession: Is the Landscape Changing?.” New Library World, 115(7/8): 355-375.
²⁾ 김수남(Kim Su Nam), "한국영화에 나타난 직업의식의 고정관념을 왜곡시킨 이미지에 대한 논의", 영화연구 32 (2007): 41-66.
³⁾ 필라델피아 스토리, 원제: The Philadelphia Story, (1940). 감독: 조지 큐커
대구가톨릭대학교 도서관학과 교수. 대표 논문으로 <우리나라 창작동화에 나타난 도서관과 사서>, <대만 공공도서관의 역사와 현황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대중문화에 비친 도서관과 사서의 대중적 이미지에 관심이 많다. 공저로는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으로 책읽어주기 활동 15년을 정리한 《책 읽어주러 가는 길입니다》가 있다.
SF 영화처럼 도서관은 사라지고 인류가 쌓은 문명의 기록들은 재가 될까?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삶을 가꾸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디스토피아는 없을 것이다. Sci-Fi 영화가 그리는 미래 사회는 어떠한가. 경고인가 충고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도서관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영화 속 미래 사회에서 도서관은 어떻게 그려질까. 단순히 공간으로서의 도서관보다
도서관은 알 수 없는 것을 알기 위해 어린이가 갈 수 있는 첫 번째 장소!미래사회를 만들고 가꿀 어린이를 위해서 도서관 서비스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2021년 현재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어린이(0~12세) 등록자 수는 전체 등록자 수 대비 8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대출자 수는 20.6퍼센트를 차지한다. 대출권수는 29퍼센트에 이른다. 우리나라 어린이 인구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인간의 지식 습득과 사고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2022년 11월에 공개된 OpenAI의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단순한 문서 요약이나 프로그래밍 보조를 넘어, 글쓰기부터 박사과정 수준의 연구 지원까지 가능할 정도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AI가 인간의 역할을 점점 대체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