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의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동안 나는 다양한 이용자들의 삶을 읽었다. 영아, 유아, 어린이, 청소년, 성인, 노인, 이민자, 장애인, 노숙인, 마약중독자, 정신질환자······. 그러면서 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이해와 공감을 키워나갔다. 책으로 배웠던 것을 넘어선 소중한 경험이었다.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나와 다른 타인을 읽는 곳이기도 하다. 모든 세대와 계층이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은 다채로운 활동이 펼쳐지는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다. 공동체가 서로 소통하며 공감을 키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 도서관여행자, 《도서관은 살아 있다》, 마티, 2022, 6쪽 서문에서 발췌
2018년 7월 21일,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자사 웹사이트에 뉴욕 롱아일랜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파노스 무두쿠타스가 기고한 글을 실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납세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아마존이 지역 도서관을 대체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무두쿠타스 교수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실은 ‘아마존의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라는 말이었으리라. 아마존이 도서관보다 더 나은 것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한마디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에 사서들을 비롯한 수많은 네티즌들이 SNS에서 비판과 반론을 제기하자 포브스는 문제의 칼럼을 삭제했다.
얼마 전, 서울 마포구의 작은도서관 폐지 추진에 구민들이 반발해 항의 시위를 벌였다. 도서관을 스터디카페로 대체하겠다는 구의 정책에 여기저기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관련 기사들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탄식했다. ‘도서관의 존재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구나······.’ 김겨울 작가의 《책의 말들》에서 읽었던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도서관이 특별한 줄은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아는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책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무렵, 나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도서관의 존재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사서들이 도서관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유도······.’ 트윗에 많은 인용 리트윗이 남겨졌고 많은 댓글이 달렸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도서관이 얼마나 특별한 공간인지,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도서관이 없었다면 산후우울증이 왔을지도 모르며 작은도서관에서 또래 엄마들을 만나고 자원활동을 시작하면서 활력을 되찾았다, 혼자라고 느껴지던 아득한 순간에 도서관이 유일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학교폭력을 피해 숨을 수 있는 피신처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은 학창시절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번아웃이 와서 퇴직하고 찾아갔던 곳이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제2의 놀이터다, 학교다, 아지트다 등등.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공도서관의 예시인 핀란드 헬싱키의 오디 도서관 ⓒ도서관여행자
나는 《도서관은 살아 있다》에 나를 포함한 많은 이용자들의 도서관 이야기를 담았다. 사람들에게 도서관이 어떤 곳인지 말해주는 문장 몇 개를 여기에 적어본다.
‘다큐멘터리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에 한 80대 자원봉사자가 “도서관에만 있으면 살아갈 힘이 생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도서관에만 있으면 나도 힘이 난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어떤 위로가 있다. 애서가 아버지와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던 시간이 유년기의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한 이용자의 사연이 생각난다. 그는 매달 도서관을 방문해 고인이 된 아버지를 추모하고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고 했다. 도서관은 누군가에게 위로의 공간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공간이 된다.’(63쪽)
‘스위스 장크트 갈렌 수도원 도서관 입구에 걸린 현판에는 “도서관은 영혼의 약국”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내 영혼의 피난처다. 그리고 이 지역의 지진 대피소이기도 하다. 마음에 지진이 일어날 때 나는 도서관에 간다. 정돈된 서가를 산책하고 잠깐의 독서를 하다 보면 엉킨 마음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든다.’(63~64쪽)
‘렘 콜하스의 건축을 다룬 다큐멘터리 <렘>에서 시애틀 중앙도서관의 한 노숙인 이용자가 이런 말을 했다. 마약 대신 선택한 음악과 문학은 인생의 탈출구이며, 도서관은 다시 자립할 수 있다는 긍정과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라고.’(72쪽)
‘어린 시절 누구보다 도서관이 절실했다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당시 나는 도서관을 사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처럼 비교적 가난한 집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모두 읽을 수 있는 곳은 도서관밖에 없었다.” 이 작가는 바로 도서관 경찰을 무서워했던 스티븐 킹이다.’(135쪽)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가 성장할 수는 있다. 성공한 사람은 못 돼도 성숙한 사람은 될 수 있고,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 간다.’(152쪽)
문득 궁금했다. 인공지능에게 도서관은 어떤 곳일까? 요즘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챗GPT에게 (질문하는 재미를 붙인 나는) 챗봇창을 열고 물어봤다. ‘도서관은 너에게 어떤 곳이니?’
‘저는 인공지능 챗봇이므로, 실제로 존재하는 도서관을 방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한 장소입니다. 도서관은 책과 다른 자료들을 제공하는 공공장소이며, 학습과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또한 도서관은 독서문화를 조성하고, 저소득층이나 교육적으로 불이익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지원 시스템 역할을 합니다. 또한 도서관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장소이기 때문에, 사회적 평등성을 높이는 역할도 합니다. 도서관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으며, 지식과 문화의 공유를 촉진하여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갑니다.’
또 다른 질문을 해봤다. ‘도서관을 아마존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아마존은 대형 온라인 서점으로서 매우 큰 수의 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사용자들은 아마존이 도서관을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은 아마존으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도서관은 많은 도서와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커뮤니티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 도서관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를 제공하며, 연구, 학습, 문화 활동,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활동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됩니다. 도서관은 또한 정보의 보호 및 무료 액세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도서관은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중요한 자원이며, 특히 저소득층이나 학생들,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아마존은 매우 훌륭한 도서 구매 및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도서관의 여러 기능을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우문현답이다. (인간으로부터 배운 인공지능이 몇몇 어리석은 인간보다는 똑똑하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이 칼럼 원고 내용을 채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마이클 샌델 또한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도서관은 각자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를 알아가는 공공장소라고 말한다.
시민에게 열려 있는 오디 도서관의 풍경 ⓒ도서관여행자
2023년 2월 14일, 뉴욕 타임스는 ‘많이 늦은, 도서관에 보내는 사랑 편지’란 제목의 특집 기사를 싣고 사진기자들이 담은 미국 일곱 개 주의 공공도서관 풍경을 독자들과 공유했다.
서가 벤치에 앉아 그림책을 읽고 있는 아동, 아이와 아이 친구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는 아빠, 열람실 소파 의자에 누운 책벌레 어린이와 그 옆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들, 방과 후 숙제 도우미 프로그램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여자 어린이, (팟캐스트 제작, 비디오 게임 디자인, 첨단기술 사용이 가능한) 미디어 랩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청소년 이용자들, 도서관 야외 정원에서 어린이 이용자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사서, (도서관 방문이 어려운) 주민들에게 보내줄 책과 영화 자료를 차에 싣고 있는 사서, 도서관 책 배달 방문에 반가워하는 주민, 어르신 사교 모임에서 기타를 연주하시는 할아버지, 이동도서관 안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사서, 이동도서관 안에서 책을 읽는 어린이들, 서가를 정리하는 사서 보조, 도서관에서 대여 가능한 생활 공구들, 도서관 무료 정비 수업에 참가해 자전거를 수리하는 어린이, 도서관 점자책, 시각장애인 이용자를 위해 오디오북을 녹음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시각장애인 청소년(의 아버지가 시애틀 출장 중 도서관 장애인 이용자 서비스를 보고 나서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했다고 한다).
모든 세대와 계층이 이용하는, 다채로운 활동이 펼쳐지는 공간. 공동체가 서로 소통하며 공감을 키우는 공간. 아마존과 스터디카페가 대체할 수 없는, 도서관의 살아 있는 풍경이었다.
핀란드 헬싱키의 오디 도서관 ⓒ도서관여행자
공공도서관이 섬겨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 우선되어야 할까? 도서관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해주는 도서관이 있다.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오디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시민이 생각하는 ‘도서관이 섬기는 대상들’을 중앙 계단에 새겨 넣었다. ‘헌정’이라는 미술 작품에 적힌 이용자들은 다음과 같다.
모두, 낯선 사람, 게으름뱅이, 내향인, 시설 보호 아동, 스포츠 팬, 우리, 당신, 영웅, 유대인, 가족, 비혼인, 외국인, 타인, 학교 집단 따돌림 피해자, 무슬림, 여성, 남성, 사람들, 좋은 사람들, 난민, 노인, 유아, 북클럽, 성인, 학생, 노숙인, 작가, 엉뚱한 사람들, 예술가, 이민자, 엔지니어, 어머니, 아버지, 군인, 할머니, 할아버지, 수집가, 애견인, 관광객, 올빼미족, 페미니스트, 기독교인, 비평가, 빈곤층, 어린이, 자원봉사자, 성소수자, 차별 희생자, 미취업자, LGBTQ 청소년, 자연 애호가, 아마추어, 아웃사이더, 무(無)서류자, 슈퍼히어로, 시각장애인, 농부, 소외계층, 진보주의자, 힌두교인, 장애인, 전쟁 희생자, 공상가······.
이 모든 이가 자유롭게 드나들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환대의 공간이 도서관이어야 한다. 규모가 작든지 크든지 간에 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내가 사는 동네에서 주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기존의 도서관을 허물고 규모를 줄여 쇼핑센터로 이전하겠다는 시 계획에 도서관을 죽이는 정책이라며 반발한 것이다. 주민들은 ‘우리 도시의 심장이다’, ‘우리의 도서관을 구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도서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돌렸다. 주민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시는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물러났다. 나는 이 일화를 책에 소개하며 이 말을 덧붙였다. 정책 결정자의 의식 부족은 필연적으로 도서관의 쇠퇴를 가져오지만 공동체의 무관심과 무지원은 도서관의 소멸을 불러온다고······.
3회의 ‘도서관은 살아 있다’ 연재 칼럼을 《도서관은 살아 있다》 서문에 실은 글로 마친다. 이 글을 읽어주신 구독자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도서관을 지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칼럼에 소개된 책들
김겨울, 《책의 말들》, 유유, 2021.
도서관여행자, 《도서관은 살아 있다》, 마티, 2022.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와이즈베리, 2020.
도서관여행자_작가
작가. 도서관에서 삶을 읽고 삶에서 도서관을 읽는 여행자. 도서관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 도서관 활동가. 카드목록함이 있던 아날로그 시대 도서관을 경험한 운 좋은 세대다. 숙명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대 정보대학원에서 문헌정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여러 기업에서 IT 개발자로 일했고,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다. 현재는 사서가 부러워하는 도서관 이용자다. 친환경 북 아티스트를 목표로 인생 삼모작을 준비 중이다. 트위터 @kpark_librarian 인스타그램@library_traveller
“다음 인물들의 공통점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데이비드 흄, 마르셀 프루스트, 비벌리 클리어리, 로라 부시, 노자, 카사노바. 정답은······ 이들은 사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한때 사서였던 유명인이다. 처음 듣는 소리인 게 당연하다. 인간 사서는 명성을 떨치기가 어렵다. 부를 얻기도 힘들다. 도서관이 생긴 이래 사서여서 유명해진 인간은 없을 것이
‘구글 창을 열 수 없던 시절, 사람들은 도서관 문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사서에게 찾아가 말 그대로 “뭐든지” 물어봤다. 쓸데없다거나 얼토당토않은 질문이라며 혼내는 사서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용자의 질문과 요청에 응답하는 업무를 미국 도서관에서는 참고 서비스(reference service)라 한다. 1883년 보스턴 공공도서관에서 시작되어 보편화
계층간 세대간 디지털 격차 심화디지털화는 현대인의 삶에 점점 더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육과 정보 습득, 쇼핑, 의사소통, 공공 서비스, 문화생활 등 일상의 모든 영역이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디지털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각종 디지털 기기나 미디어를 활용하는 사람들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간의 차이로 인해 디지털 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