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내가 번역한 책 《크루얼티 프리》가 출간되었다. ‘크루얼티 프리’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는 ‘비인간 동물과 지구에 대한 착취를 피하는 생활방식’으로 정의된다. 책이 출간된 후 출판사에서 홍보를 위한 북토크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해왔다. 수락은 했지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나는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개나 고양이도 키우지 않는데,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채식주의자도, 개나 고양이 집사도 아니면서 지금까지 동물권이나 육식 반대에 관한 책을 번역했고, 환경에 관한 주제로 책과 논문을 썼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로 그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을까?’, ‘행동은 따르지 못하면서 책임질 수 없는 공허한 말만 늘어놓고 있는 건 아닐까?’ 같은 고민이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처음 번역한 동물 관련 주제의 책은 미국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였다. 사실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그 전에 포어의 소설을 몇 권 번역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생 도시에서 살아온 데다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 나에게 동물은 낯설고도 먼 존재였다. 게다가 인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널린 세상에서 동물의 권리라니, 서구의 배부른 백인 중산층들이나 할 법한 한가롭고 사치스러운 얘기 아닌가 하는 삐딱한 마음까지 있었다.
그런데 꽤 두꺼운 책을 몇 달간 번역하면서, 나는 서서히 저자에게 설득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삐딱한 내 마음을 돌려놓은 것은 포어가 몇 년간 발품을 팔아 미국 전역의 수많은 농장들을 직접 방문하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하고, 수많은 자료를 조사해 발견한 공장식 축산의 실태였다.
현재 우리가 먹는 닭의 99퍼센트, 돼지의 95퍼센트, 소의 78퍼센트는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된다. 공장식 축산은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적은 자원을 투입해 가장 많은 고기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야말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 이윤을 뽑아내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자본주의적 생산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 동물은 단백질을 생산하는 기계고 상품일 뿐이다. 상품으로 취급받는다 해도 이와 같은 동물이 삶을 향유할 능력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양의 고기를 먹고 있다
우리가 먹는 닭과 돼지는 유전자 조작과 품종 개량을 너무나 많이 거쳐서, 원래 종에서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닭의 경우,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가슴살을 많이 얻기 위해 최대한 가슴살만 커지도록 개량했기 때문에 뼈가 살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부러지곤 한다. 공장식 축산의 닭 네 마리 중 한 마리는 걷지 못한다고 하지만, 어차피 육계는 짧은 생을 내내 비좁은 축사에 갇혀서 보낸다.
이렇게 인간에 의해 변형된 닭과 돼지들은 짝짓기를 해서 새끼를 낳는다거나, 마당을 돌아다니면서 모이를 주워 먹는다거나, 주둥이로 땅을 판다거나, 서로 싸움을 해서 서열을 정한다거나 하는, 동물로서의 본능을 따르는 행동을 할 수가 없다. 닭과 돼지는 태어나면서부터 오로지 빨리 키워서 고기를 얻겠다는 인간의 목적 하나로 철저히 통제된 환경에서 살아간다. 닭은 자연환경에서는 10년 이상 살 수 있지만, 공장식 축산에서는 8~10주 사이에 도축된다.
공장식 축산의 잔인하고 음울한 실상은 무지했던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의 포어도, 《크루얼티 프리》의 저자 린다 뉴베리도 이렇게 단언한다. 지금 당신의 식탁 위에 오른 닭이나 돼지는 죽기 전까지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고.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존재에게 그런 고통을 가할 권리가 있을까? 단지 내 입에 맞는 음식을 더 많이 먹고 싶다는 이유 때문에?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고, 앞으로도 채식주의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책을 번역하면서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고기를 먹고 있고, 고기를 먹기 위해서 동물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많은 고통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인간이 채식만으로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어쨌든 인간이 잡식동물이고 살기 위해 고기를 먹을 필요가 있다 해도 공장식 축산을 정당화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양의 고기를 먹고 있으며, 고기 가격이 이렇게까지 저렴했던 시대는 없었다. 포어는 지난 60년간 새 집 한 채의 평균 가격은 거의 열다섯 배 올랐고 새 차 가격은 열네 배가량 올랐지만, 달걀과 닭고기 가격은 채 두 배도 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조너선 사프란 모어 저, 송은주 옮김, 민음사)(좌)
《크루얼티 프리-동물과 지구를 위한 새로운 생활》(린다 뉴베리 저, 송은주 옮김, 사계절)(우)
환경과 건강,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육식
우리가 탐욕을 자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부정적인 결과는 동물의 고통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자신도 우리의 탐욕에 대해 언젠가는—아마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업에서는 고기의 생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배설물 처리 시설에 대한 투자를 줄여 환경을 오염시킨다. 부자연스럽고 불결한 환경에서 동물들이 살아남도록 엄청난 양의 항생제와 약을 투여함으로써 결국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 이런 것들은 고기 가격에는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경제학적 외부효과이기 때문에 우리는 싸게 고기를 사고 있다고 좋아하지만, 실은 오염된 환경과 망가진 건강이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고기를 즐긴 대가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 세계 곡물량의 50퍼센트가 가축을 먹이기 위해 재배된다. 여기에서 두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하나는 사람들이 먹어야 할 곡물이 가축의 몫이 됨으로써 가난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축을 먹일 엄청난 양의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 전 세계의 많은 숲이 개간되면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가 심화되고 있다.
육식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이 최근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2006년 유엔이 발표한 보고서 〈가축의 오랜 영향〉에서는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18퍼센트가 가축들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동차나 항공기 등 운송 분야 배출량이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1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포어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는 윤리적인 차원에서 육식 문제를 다루었지만, 두 번째 책인 《우리가 날씨다》에서는 기후변화 문제해결을 위한 작은 실천으로 우리의 식단에 변화를 줄 것을 호소한다. 두 번째 책의 부제는 ‘아침식사로 지구 구하기’다.
힘없는 존재들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우리 자신을 대하는 태도
내가 이런 책들을 번역하며 알게 된 ‘동물권’의 의미는 동물에게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거나 주인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동물이 동물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물을 비롯한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인간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보는 관점은 결국 우리 삶의 기반을 파괴한다. 동물이 동물답게 살도록 허락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본주의적 가치의 잣대로 환산하고 평가하는 세계에서 그 파국은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공장식 축산은 노동자들을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며, 인간이 먹어도 괜찮을지 불확실한 고기조차 시장에 내놓고, 가공할 양의 오염물질과 탄소를 배출한다. 공장식 축산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오직 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와 닭, 돼지를 슈퍼마켓의 부위별 정육으로만 접하면서 그들의 고통, 삶과 죽음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영원히 상실해버린다. 그런 점에서, 동물권을 존중하고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우한다는 것은 동물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힘없는 존재들, 목소리 없는 존재들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 태도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결정한다.
북토크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고민하면서 갔던 그날의 북토크는 기대했던 것보다 즐거웠다. 북토크에서 대담 상대로 나와주신 작가님은 내가 고통을 겪고 싶지 않으므로 다른 존재에게도 고통을 주지 않겠다는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된 분이었다. 우리는 채식주의자이자 잡식주의자로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크루얼티 프리’한 삶, 동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와 환경에게 조금은 더 친절한 삶의 방식을 실천할 수 있을까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어떤 사람들은 동물을 키우면서 나와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깨닫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꾼다. 나 같은 책벌레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지식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세상을 보는 눈과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는 체험으로 얻는 지식보다는 생생함이 덜하고 변화가 느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번 알게 되면 자신이 알고 있던 좁은 세계의 경계를 깨고 자신을 바꾸어나간다. 나는 내가 번역한 책의 작가들과 만나면서 나를 변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이유를 얻었다.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해도, 책을 읽고 고민하는 한 느리게, 한 걸음씩이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 추천하고 싶은 책 =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민음사, 2011.
《우리가 날씨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민음사, 2020.
《크루얼티 프리》, 린다 뉴베리, 사계절, 2022.
《안녕하세요, 비인간동물님들!》, 남종영, 북트리거, 2022.
송은주_번역가, 작가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위키드》 《모든 것이 밝혀졌다》 《광대 샬리마르》 《클라우드 아틀라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시대의 소음》 등이 있다. 《선셋 파크》로 제8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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