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는 꽤 다양한 일들을 했다. 대학에서의 연구자 생활을 접고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오래 있지는 못했다. 그 이후에는 개인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과학기술 정책 담당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얼떨결에 공무원이 되어버렸다. ‘과학기술 정책이 뭐 다른 게 있겠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현업에 들어가자 정말 다른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과학 연구와 그것을 뒷받침하고 이끌어주는 정책은 큰 차이가 있었다. 과학 정책도 과학의 일부라 한다면 과학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 범위가 훨씬 더 넓었다.
그런데 나에게 또 한 번의 변화가 있었다. 국내 최대 규모로 새롭게 지어지는 과학관에서 근무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제 다시 과학자로 돌아가 내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과학관에서의 일은 또다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과학을 대중화한다는 과학관의 미션을 너무 가볍게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의 시행착오와 반성의 시간을 거치면서 과학과 대중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흔히들 과학은 대중의 관심과 지지가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고 한다. 과학관은 바로 그 관심과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관심과 지지를 어떻게 호소할 것인가? 과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과학이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과학의 진심어린 지지자가 되기는 힘들다. 그래서 과학 대중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과학을 알리는 일이 아니라, 과학을 대중의 생활과 밀착시키는 일, 바로 그것이 대중화다.
과학은 과학자들만 하는 게 아니다. 기업에서도 정부에서도 많은 이들이 과학과 관련된 일들을 한다. 게다가 이제는 일반 대중까지도 과학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있다.
과학이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으려면
과학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 나의 임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사람들이 과학과 친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쉽게 과학의 원리와 법칙을 설명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또는 육체적인 체험 형태로 구현하는 전시물을 만들기도 한다. 가끔은 재미있는 과학문화행사도 개최한다. 그러면 나름의 성과가 있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과학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즐긴다고 해서 내 생활의 일부가 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잠시 즐기는 문화를 넘어 과학이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고민은 또 그렇게 이어진다.
과학은 보통 이렇게 정의된다.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과학의 중심을 지식에 두는 경향이 있다. 물론 지식이 중요하기는 하다. 지식이 체계적으로 쌓여야 비로소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접근법은 과학을 업으로 삼는 과학자에게나 유효하다. 아무리 쉽게 지식을 가공해 전달한다 한들 대중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지식에 대한 부담감이 과학이 생활의 일부가 되는 데 방해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과학이 그저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신기한 지식 정도로만 치부될 수도 있다.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과학의 정의에 있어서 그 앞부분, 그러니까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이해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과학의 본질에 더 가까운 목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식의 체계를 쌓는 일도 이 보편적 진리나 법칙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더 궁금증이 생긴다.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은 왜 찾는 것일까?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과학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사실 과학은 가장 오래된 학문이며, 그래서 초기에는 과학이라는 용어가 학문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과학이 처음 등장한 때는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그리스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신화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자연 현상 앞에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이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려 했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덜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신들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자연의 모든 현상이 이 신들의 의지 때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세계관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연 현상은 마치 우리처럼 변덕스러운 신들 때문이 아니라 그 내면에 숨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에 의해 발생한다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었다. 바로 최초의 과학자들이다. 이들이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을 찾은 것은 그것을 통해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의 정의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과학의 진짜 모습은 그러했다.
그렇다면 과학을 이렇게 정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세상을 바라보기 위한 올바른 창.’
예전 이탈리아의 한 작은 도시에서 이런 조례를 통과시킨 적이 있다. ‘둥근 어항에서 금붕어를 기르면 안 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 재미있다. 둥근 어항을 통해 세상을 둥글게 휘어진 것으로 보는 금붕어가 너무 불쌍하기 때문이란다. 금붕어마저도 소중히 여기는 그들이 참 대단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또한 둥근 어항 속 금붕어와 같지 않을까?’
금붕어와 세상 사이에 둥근 어항이 놓여 있는 것처럼, 우리와 세상 사이에도 ‘창’이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금붕어나 우리나 세상이 무척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세상의 일들은 어떤 원리나 법칙에 따라 진행될까?
사실 창의 종류는 매우 많다. 각자 나름의 창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기 때문인데, 나는 과학 또한 그 창들 가운데 하나라고 정의한다. 그러고 보면 오래전 과학과 경쟁했던 신화적 세계관 또한 또 다른 창이다. 그것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많은 창들 가운데 그래도 과학의 창만 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창만큼이나 왜곡이 적고 투명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기
나와 과학관이 하고자 하는 일은 바로 이 창을 제공하는 일이다.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과학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해야 한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이에게 창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만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과학의 모든 주제를 세상의 일들과 어떻게든 연관 짓도록 노력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중은 과학과 세상에 호기심을 갖는다.
호기심을 갖췄다면 과학을 할 준비는 다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과학의 창을 만들 차례다. 과학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훈련을 하는 단계인 것이다. 이 과정은 스스로 참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학자나 교사가 전달하는 지식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식은 그야말로 기본 재료가 될 뿐이다. 물론 그 재료가 많으면 더 좋겠지만 과학의 창은 그리 많은 재료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과학적으로 생각하느냐이다.
최초의 과학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져보자. 질문의 종류는 크게 상관없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질문은 어떻게든 다 과학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질문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훈련이 필요한데, 과학 교양서, 과학 강연, 그리고 과학관은 이런 훈련을 위한 도구이자 훌륭한 모범이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모방하다 보면 금세 그런 생각 방식에 익숙해진다. 그러면 어느새 과학이 생활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특히 우리 청소년들의 과학교육에서도 이점이 강조되었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호기심 그리고 생각의 틀이기 때문이다.
임두원_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서울대학교에서 고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기업에서 연구개발 부문에 종사하다가 정부 기관으로 자리를 옮겨 과학기술 정책 기획을 담당했다. 현재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연구관으로 근무하며 과학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쓴 책으로 《과학으로 생각하기》 《튀김의 발견》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읽기》가 있다.
책의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차례대로 읽는 기존의 독서 경험과 어울리지 않는 MZ세대와무언가를 잘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무해한 마음 나는 오늘도 뭔가를 봅니다젊은 시절 ‘책을 본다’고 말하면 왠지 부끄러웠다. 가령 책을 ‘읽는다’고 할 땐 손에 쥔 단행본 내용을 꼼꼼하게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반면 책을 ‘본다’고 할 땐 성의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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