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장석주 시인이다. 책 읽기가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바꾸는지, 장석주 시인을 모시고 글 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독서가 만들어주는 행복한 삶에 대해 들어본다.
“책이라는 것은 뭘까요?
책을 이렇게 펼쳐서 보면 그게 양 날개를 펼친 새 같아요. 그 새들이 날아가죠. 독자를 향해서. 그 독자의 살과 피를 쪼아 먹어요. 흡혈하죠.
그리고 또 다른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시켜서 더 많은 책을 세상에 퍼뜨리죠.
근데 그 흡혈 행위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미 있는 존재로 빚어내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거죠.”
[영상 개요]
00:38 : 책 읽는 뇌와 인류 문명의 발달
05:49 : 최고의 삶의 경지는 어린아이의 삶
07:29 : 쓸모없는 짓을 하는 호모 사피엔스
09:54 : 책 쓰기는 존재를 증명하는 길
11:40 : 맥락의 독서법
13:06 : 독서할 때 기억에 대한 강박증을 버려라
15:18 : 책을 쓸 때 질문해야 할 것들
17:31 :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인터뷰 내용]
책 읽는 뇌를 개발하지 않는 시대
더라이브러리(이하 ‘더’): 1993년부터 30년을 ‘문장 노동자’ ‘인문학 저술가’로 살았고 “죽기 살기로, 생존을 위해서 했다”고 하셨어요. 책을 읽는 것이 밥 먹는 것보다 좋다고 하셨는데요, 어릴 때부터 인문학에 재능이 있으셨나요?
장석주(이하 ‘장’): 저는 어렸을 때 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걸 재능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 그 책을 차마 손에서 놓기가 싫을 정도로 좋아했죠. 너무 재미있었으니까. 그래서 제가 도서관에서 어머니들을 상대로 강연을 할 때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우리 아이가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 그 아이가 밥 먹는 것보다 책 읽는 걸 더 좋아하면 그건 재능이 있는 것이다, 그 분야를 키워줘야 한다, 그렇게 말해요.
어떤 분들은 우리 아이는 컴퓨터 게임을 할 때 불러도 대답도 안 해요, 라고 하죠. 그거는 몰입과는 조금 다른 거예요. 그건 중독이에요.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된 것같이 뇌가 좀 다른 뇌예요. 그러니까 몰입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 분야에 특화된 뇌로 바뀌어가는 과정이에요. 실제 우리 뇌는 어떤 분야를 좋아해서 그것에 몰입하고 그 시간이 누적될 때 그 분야에 최적화된 뇌로 바뀌어요. 이전에 없던 배선과 회로가 새로 생기는 거예요. 근데 그것에 흥미가 떨어지고 그걸 외면하면 그 배선과 회로가 서서히 사라져버려요.
장: 그러니까 원시인의 뇌와 현대 우리의 뇌는 다르다는 거죠. 원시인의 뇌에는 책 읽는 뇌가 없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출연한 게 기원전 20만 년경이라고 하는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사람들이 점토판에 뭔가를 기록하고 자기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상형문자를 만든 게 6천 년밖에 안 돼요. 그리고 비로소 책이 나오기 시작한 건 르네상스 시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나온 뒤였죠. 그때까지는 사람들이 성서를 대부분 읽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그 성서 한 권이 유럽에서 성 다섯 채 가격과 맞먹었거든요. 그러니까 귀족이나 성직자, 특수 계층만 성서를 소유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근데 금속활자가 발명되고 책들을 활판으로 인쇄하기 시작하면서 책이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거죠. 그러니까 오늘날처럼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자기도 모르게 뇌가 책 읽는 뇌로 진화한 것은 불과 몇 백 년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인류가 책 읽는 뇌를 갖게 되었을 때 인류 문명의 발달은 거의 90도 수직 상승합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거죠.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어요. 젊은이들이 디지털 뇌로 진화하고 있는 거예요. 과거에는 활자, 책을 통해서 외부의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영상 미디어를 통해서 받아들이고 있죠. 휴대폰이라든지 퍼스널 컴퓨터 같은 걸 이용해서요. 그러니까 활자로 인쇄된 매체를 읽을 때 뇌에서 활성화된 부분과는 다른 부분이 활성화돼요. 그건 곧 책 읽는 뇌를 만들지 못한다는 뜻이죠.
얼핏 보면 굉장히 재능이 있어 보여요. 왜냐하면 디지털 뇌를 가진 사람은 멀티태스킹, 동시에 몇 가지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걸 다른 쪽에서 바라보면 정보 과포화 상태예요. 끊임없이 자극을 원하는 뇌인 거죠. 디지털 뇌를 가진 젊은이들은 단 한 순간도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요. 무한 반복해서 자기 뇌에 정보를 투입하고 자극을 주고 거기서 즐거움을 얻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어렸을 때 제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심심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심심하고 무료하고 친구도 없고. 그럴 때 책을 보니까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게 있네? 그래서 책 읽기에 매료되고 즐거움을 느꼈거든요. 지금 디지털 뇌를 가진 사람들은 어쩌면 활자 문맹이 될 수도 있어요.
우리를 글쓰기의 세계로 이끄는 책 읽기
더: 책 읽기와 책 쓰기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궁금합니다.
장: 30년 동안 무려 100권 정도 책을 썼어요. 어떤 해에는 여덟 권, 아홉 권 쓴 적도 있고요. 그래서 누군가는 월간지 내냐고 빈정거린 적도 있어요. 사실 저도 놀랐죠. 어떻게 이렇게 많이 썼지? 돌아보니 제 뇌가 바뀐 걸 알게 됐어요. 집중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제가 안성으로 내려가면서 책이 만 권 정도였는데 곧 3만 권이 넘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제 뇌가 책 읽는 뇌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겁니다.
책 읽는 뇌는 책 쓰는 뇌로 필연적으로 진화하게 되어 있어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외부에 있는 지식과 정보를 인풋 하는 거죠. 책을 쓰는 것,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을 아웃풋 하는 거예요. 인풋의 양과 질이 아웃풋의 양과 질을 결정해요. 제가 하루에 여덟아홉 시간씩 읽고 썼으니까 엄청난 거였죠. 그러다 보니까 제 뇌에서 어떤 마술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거예요. 저는 그걸 의식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그때만큼 읽지를 못합니다. 읽고 쓰는 일을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로 줄이고 있고, 그러다 보니까 쓰는 것도 조금 줄어들어요. 어쨌든 제가 전업작가였기 때문에 전적으로 제 생계를 해결하는 방책이 책을 써서 원고료를 받고 인세를 받는 거였어요. 그걸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세금 내고 쌀도 사고 부식도 사야 했으니까. 일종의 생계형 글쓰기를 했던 거죠. 그리고 사실 기본적으로는 제가 그 일을 좋아했다는 거예요.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그만큼의 결과도 나오고 오늘날에 이르지 않았는가.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쓸모없는 것이 결국은 가장 쓸모 있는 것
더:선생님은 출판사도 운영하셨지만 결국은 다 정리하고 예술가로, 저술가로 살겠다고 결심하셨죠. 혹시 그런 결단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장: 남이 요구하는 대로, 혹은 남이 명령하는 대로 No를 하지 못하고 항상 예스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거였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예스만 하는 사람을 낙타라고 하거든요. 낙타는 항상 “예”라고 해요. 남이 뭘 요구할 때 “No”라고 하는 법이 없이 그걸 받아들이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숭고하고 성스러워 보여요. 근데 사실은 노예의 삶이거든요. 낙타의 삶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니체는 사자라고 얘기해요. 사자는 No를 해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오!” 하는 하죠.
그 다음으로 니체는 최고의 삶의 경지를 어린아이의 삶이라고 얘기합니다. 어린아이의 삶은 완전하다는 거죠. 항상 새로 시작하고 또 즐거워하고 불안과 두려움이 없다는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그런 순진무구함 속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낍니다. 근데 노자 《도덕경》에도 비슷한 말이 나와요. 어린아이는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 그러니까 뭘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이미 우리 인간이 알아야 할 것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거죠. 천진무구한 존재로 원과 같이 흠집이 없는 완전한 존재를 어린아이라고 찬양하거든요.
제 주변 사람들, 제 가족이나 부모님이나 친인척들은 저보고 늘 철이 없다고 얘기했어요. 사람들이 가장 우선순위로 하는 게 물질적인 것에 대한 추구거든요. 돈을 버는 것, 집을 사고 차를 사고 더 좋은 집과 차를 사는 것, 눈에 보이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쌓고 만드는 것. 그런데 저는 그보다는 제게 의미와 가치를 주는 일, 저한테 즐거움을 주는 일을 먼저 선택했어요. 저희 어머니는 평생 그런 저를 이해 못 하셨어요. 집을 먼저 사야 한다고 얘기하셨거든요. 그리고 저는 어렸을 때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썼는데,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니까 굶어죽는다고 반대하셨어요. 근데 저는 결국 그림은 포기했지만 글 쓰는 일을 하게 됐죠. 《장자》에 나오는 얘기인데, 2,400년 전 철학자인 장자의 놀라움은 ‘무용지유용(無用之有用)’에 있었어요. 쓸모없음의 큰 쓸모! 쓸모없음이야말로 가장 큰 쓸모죠. 인류가 엄청난 문명을 만든 원동력이 거기에 있다는 거예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체들은 다 쓸모 있는 것에 집중을 해요. 오로지 호모 사피엔스만 예외죠.
쓸모 있다는 것은 두 가지예요. 생물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그다음에는 자기 DNA와 똑같은 DNA를 가진 후손을 만들기 위해서 목숨도 버릴 정도로 몰입을 하죠. 쓸모없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인간들만 유일하게 쓸모없는 짓을 해요.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죠. 예술이라는 게 다 쓸모없는 짓이에요. 근데 이 쓸모없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인류 문명을 만들어냈어요. 그런데 그걸 유지하는 사람들이 드문 거예요. 그 드문 존재들이 대체적으로 예술가들이죠.
쓰는 행위로 진화하는 읽는 행위
더: 선생님은 “인생의 위기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도 책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글 읽기와 글쓰기가 어떻게 선생님을 생존시켰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장: 책을 읽는 건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죠. 많은 것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우리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죽음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세계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하게 되거든요. 그 물음들을 풀기 위해서 책을 읽는 거예요. 소설이나 시집만 읽는 게 아니고 자연과학, 우주과학, 뇌과학, 물리학, 양자역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아무 구애 없이 다 읽어요. 그러면서 제 사유의 폭을 넓혀가는 거죠. 그런 탐구 정신과 즐거움이 동력이고, 책 쓰기는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하나의 수단이 책이 아닌가.
책을 통해서 미지의 많은 독자들과 교감을 하고 그들이 제 책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위안을 얻고 작은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보람을 느껴요. 무위도식하거나 무의미한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자 한 시민으로서 그렇게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자긍심 같은 것을 얻는 방법이 책을 쓰는 것이기도 하고요. 책이 나올 때 정말 기뻐요. 제가 그것을 위해서 투자했던 열정과 에너지, 집중, 이런 것들이 하나의 결과물로 나오니까요. 책이라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이거든요. 그에 대해 어떤 보람도 느끼고, 그게 저를 계속 그런 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동기가 되죠.
더: 선생님처럼 저술가로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은 하루에 얼마나 쓰시나요? 그리고 연재는 몇 개 정도 하시는지요? 장: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 쓰고 읽어요. 지금 연재를 세 군데 정도 하는데요, 많이 줄였어요. 2년 전에는 5~6군데였는데 지금은 신문 두 곳에 매주 칼럼을 쓰고 있고, 한 곳은 격주로 쓰고 있어요. 월간지에 칼럼을 쓰고 있고요. 비정기적으로 청탁이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런 원고를 쓰기도 하죠. 출판사와 계약한 책들을 쓰는 일은 또 별도로 하고 있는데 일 년에 두세 권 정도 책이 나옵니다. 얼마 전에 《꿈속에서 우는 사람》이라고 열여덟 번째 창작 시집이 나왔어요. 그 책 때문에 인터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있죠. 제 시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시집을 매개로 미지의 누군가와 교감하고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저한테는 보람된 일이에요.
더: 선생님께서 출간하신 책 중 가장 마음이 가는 책, 혹은 아픈 손가락이라거나 마음 쓰이는 자식 같은 책이 있다면요? 장: 항상 가장 최근에 쓴 책에 가장 마음이 가요. 지금은 《꿈속에서 우는 사람》 그 시집이 정말 사랑스러워 보여요. 5년 동안 쓴 시를 모았는데 제가 시집 열여덦 권을 내는 동안 교정을 네 번 본 건 처음이에요. 교정을 보면서 이걸 엎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지루했고, 시를 50년 동안이나 붙들고 썼는데 왜 나는 이 정도밖에 못 썼나 하는 불만과 회의감이 가득했어요. 굉장히 많이 고쳤죠. 책이 나왔을 때는 많이 간결해졌더라고요. 요즘은 이렇게 품에 안고 잠자리에 들 정도로 그 책을 아끼고 있습니다.
한 분야의 책을 한 권만 읽으면 안 되는 이유
더: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 ‘맥락의 독서법’을 강조하셨죠. 이것은 사실 저술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실천하기 어려운 방법일 수도 있어요. 자신만의 독서 목록을 짜고 주체적인 독서를 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데요, 일반인들에게는 큰 격려가 될 것 같습니다. 장: 첫 단계는 자기 수준에 맞는 책, 읽으면서 즐겁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읽는 게 중요해요. 맥락의 독서법은 이런 거예요.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에서 다음에 읽을 책이 무엇인지를 알려줘요. 그런 정보가 숨어 있어요. 그걸 찾아내서 따라가면 되죠. 그리고 어떤 분야가 있으면 그 분야의 책을 한 권만 읽으면 안 돼요. 크로스 체크, 팩트 체크를 해야죠. 책들도 굉장히 많은 오류들을 품고 있어요. 그래서 항상 크로스 체크를 해야 해요. 하나의 책에서 알려주는 지식과 정보를 절대시하면 안 된다, 항상 의심하고 확인해야 한다는 거죠.
맥락의 독서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런 건데, 그래야만 심도 있고 계통 있는 의미 체계를 자기 안에 구축할 수가 있어요. 전문적이고 지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죠. 그런데 일반 독자들은 그것보다 조금 더 가볍게 어떤 즐거움을 누리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책 읽기를 해도 좋아요. 절대로 의무적으로 읽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재미없으면 중간에 내던져도 되고요.
한 가지 팁을 알려드릴까요? 독서의 가장 큰 적은 기억에 대한 강박증이에요. 그것을 내려놓으라는 거예요. 기억하려는 강박증을 내려놓으면 책 읽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기억할 필요가 없어요. 책이라는 텍스트 자체가 인간 뇌가 가지고 있는 기억 용량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것, 일종의 외장 하드 같은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수십 권의 백과사전을 자기 머리로 옮겨놓으려고 책을 읽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죠.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기억이 나한테 오는 회로, 그런 방식을 알면 되고 그걸 파악하고 있으면 돼요.
최고의 앎은 무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게 굉장한 힘이고 그걸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근데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렇게 일종의 확증 편향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가장 겉핥기식으로 아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잘못된 판단을 하기가 쉽죠.
도서관은 나에게 천국이었다
더: 20대 가난했던 시절에 선생님의 의지처는 시립도서관 그리고 음악감상실이라고 하셨는데요, 요즘도 도서관에 가시는지요? 또 전문 저술가에게도 도서관이라는 환경이 필요할까요? 장: 제가 이십대 때 남산도서관이나 다른 시립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읽었는데, 가스통 바슐라르라는 프랑스 철학자를 참 좋아했어요. 그분의 문장들 중에 ‘내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문구가 있어요. 그 일용할 양식이 책이에요. 그분도 독학자였거든요. 우체국 직원을 하다가 나중에 독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프랑스 최고 소르본느대학에서 강의를 한 분이죠. 그분 책을 읽을 때 참 행복했어요. 시립도서관 열람실에서 제 어깨 너머로 햇빛이 비쳐 들어오고 펼쳐진 책에 그 빛이 떨어질 때, 그 환한 빛 속의 활자들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어요. 그때 저한테 책은 밥만큼이나 중요한, 제 정신에 일용할 양식이었던 거죠. 책을 살 돈이 없기 때문에 도서관 책들을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저에게 도서관은 천국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날마다 그 천국을 향해서 걸을 때 굉장히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상당히 많아요. 그리고 제가 보고 싶은 책, 필요한 책을 다 사 볼 수도 있죠. 그래선지 도서관이 스무 살 때만큼 행복한 공간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도서관을 좋아하죠. 집 근처 파주 교하도서관에 가끔 가서 출판된 지 오래된 책들을 빌려다 읽어요. 거기서 글을 쓰기도 하고요. 옛날에 비하면 도서관 환경이 너무나 좋아졌어요. 전부 다 개가식이고, 자기가 필요한 책을 얼마든지 빌려다 볼 수 있죠. 그런데도 옛날만큼 자주 도서관에 가지는 않는 것 같아요.
나만의 도서관을 가지면 행복하다
더: 파스캴 키냐르를 인용하시면서 “책 읽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속하는, 짧지만 수많은 삶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도서관을 설립하는 것이다”라고 표현하셨는데, 책 읽기도 돈으로 환산하는 세태에서 대단히 혁명적인 발상이라고 생각됩니다. 돈이 없어도 나만의 도서관을 가지면 그것이 행복과 직결이 되나요?
장: 그렇죠. 지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는 꿈과 열망을 품을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만의 도서관, 어떤 천국과 같은 곳을 만들고 싶죠. 책이라는 게 뭘까요? 책을 펼쳐서 보면 양 날개를 펼친 새 같아요. 그 새들이 날아가죠. 독자를 향해서. 그리고 그 독자의 살과 피를 쪼아 먹어요. 흡혈하죠. 그리고 또 다른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시켜서 더 많은 책을 세상에 퍼뜨리죠. 근데 그 흡혈 행위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미 있는 존재로 빚어내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책들로 이루어진 도서관 속에 살면서 또 다른 책을 만들어 써내는 거죠. 또 다른 책을 써낼 때 그 새들이 어디로 날아가서 어떤 독자들의 피를, 그 의미와 혹은 가치를 어떻게 가져올지는 예측하기 어려워요. 그런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조금 더 재미있고 신나는 모험이기도 한 거죠. 그러니까 책이라는, 어디선가 날아온 그 흡혈조가 내 피를 쪼아댈 때 저도 거기에 감염돼요. 독서 행위는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가능성에 자기 몸을 투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더: 시, 평론, 에세이 등 여러 장르를 오가며 집필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혹시 나중에 도전해보고 싶은 새로운 장르가 있나요? 장: 지금까지 없었던 장르의 책을 한번 써보고 싶어요. 그런 책에 대한 암시를 받은 게, 제가 열아홉 살 때 읽었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예요. 그 책은 시와 서사와 철학이 결합된 책이거든요. 철학 책이지만 그 이전의 어떤 철학 책과도 다른 책이었어요. 그런 책을 한번 쓰고 싶어요. 시와 철학이 결합된 책, 언제 쓸지는 잘 모르지만 제목은 ‘피안의 노래’라고 10년 전부터 지어놨어요. 피아는 삶의 저편이라는 뜻이죠. 죽음조차도 삶의 일부거든요. 삶이 없다면 죽음도 없는 거니까. 그것을 하나로 꿰뚫어서 관조하고 그 의미를 좇는 책, 그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하나 쓰고 싶다는 게 마지막 꿈이죠. 누적된 제 삶과 경험과 시간들 속에서 뽑아낸 어떤 정수를 담은 책, 피 같은 책, 피로 쓴 책이요.
더: 뭔가를 할 의욕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 때, 책을 읽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있거든요. 선생님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나요? 장: 있죠. 인생을 살면서 좌절하고 낙담하고 모든 걸 놓아버리는 순간이 왜 없겠어요. 이를테면 뭔가 조작을 잘못 해서 몇 백 장의 원고를 날려버리는 바람에 완성돼 나오지 못한 책이 있어요. 그럴 때는 맥이 탁 풀리죠. 더군다나 굉장히 힘들게 썼던 원고를 거의 통째로 날려버린 거라 더 그랬어요. 그래서 사실은 몇 년 전에 완성했어야 할 책을 아직 손도 못 대고 있어요. 트라우마 같은 게 있어가지고. 그건 운명이죠. 놔버려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오히려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요. 한 번 썼던 것이기 때문에, 그 기억을 되살리면서 쓰다 보면 더 풍요롭고 더 좋은 글이 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너무나 큰 데미지가 돼서 감히 다시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모든 독자는 잠재적 저자
더: 요즘에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선생님은 책 쓰기를 권하시는 쪽인가요, 아니면 비판적으로 보시는 쪽인가요? 혹시 일반 대중 저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장: 저는 중립적인 입장이에요. 지금 모든 독자들은 잠재적 저자들이에요. 책을 써서 출판하기가 예전보다 백배는 더 쉬워졌어요. 엄청난 양의 책이 쏟아지죠. 우리나라만 해도 한 해에 8만 종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거든요. 그만큼 책과 책 사이에 경쟁이 심해지고, 출간된 지 얼마 안 돼 사장되는 책들이 엄청나요. 수많은 책 중에서 뭔가 저만의 빛깔을 가지고 저만의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준비와 내공, 그리고 뭔가를 갖고 있어야 해요. 항상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하죠. 그만 한 밀도와 가치가 충만한가, 그걸 써낼 수 있는 역량이 있는가, 그런 질문들요. 문제는 그런 역량이 안 돼 허술한 책이 나온다는 거예요. 많은 부분 남의 것을 슬쩍 갖다 쓰는 경우도 많죠. 독창성이라는 면에서 굉장히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책들, 쓰레기로 버려지는 책들이 너무나 많아요. 그것은 지구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책을 만드는 일이 지구의 유한 자원을 갖다 쓰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나무를 베어서 펄프로 만든 종이를 불필요한 데 쓰는 거고, 노동력을 굉장히 낭비하는 경우가 되거든요.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해요. 단지 새로운 책을 하나 더한다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세상이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죠. 내 책이 꼭 이 세상에 나와야 할 가치와 필연성을 증명해야 해요. 자기 자신한테 그걸 물어봐야 해요. 그럴 만한 확신이 없을 때 책을 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죠. 저도 책을 낼 때마다 그런 두려움을 갖고 쓰게 돼요. 책 내는 걸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책을 내는 일이 진입 장벽이 낮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너도 나도 책을 내는 건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게 제 생각이에요.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
더: 사람들에게 독서를 권하는 차원에서, 독서와 인생을 주제로 멋진 말 부탁드립니다. 시도 좋고 선생님의 한 말씀도 좋고요. 장: 제가 10여 년 전에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책 읽기는 내가 숨 쉬고 활동할 수 있는 우주를 만드는 일, 그 우주에서 살 수 있는 자유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노예의 삶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길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서 자기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고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 수가 있죠. 자기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그냥 되는 대로 사는 사람의 모습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좋아하는데, 지금도 갖고 있는 제 확신은 그겁니다.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책을 조금 읽은 사람의 우주는 작을 수밖에 없어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우주가 더 커집니다.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커진다는 뜻이겠죠.
(글로 정리한 인터뷰 내용에는 더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정리: THE LIVERARY 에디터팀
장석주
스무 살이던 1975년 《월간 문학》 신인상에 시 <심야>로 등단했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날아라, 시간의 포충망에 붙잡힌 우울한 몽상이여>가 당선되었고, 동아일보에 문학평론 <존재와 초월-정현종론>이 동시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 청하출판사를 설립해 15년 간 운영했다. 15년 간 편집자로, 40년 간 독자인 동시에 저자로 살았으며 지금까지 100권 정도의 저서를 출간했다. 최근의 저서로 《글쓰기는 스타일이다》(2015), 《나를 살리는 글쓰기-전업 작가는 왜 쉼 없이 글을 쓰는가》(2018), 《마흔의 서재》(2020),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2024), 《어둠 속 촛불이면 좋으련만》(2024)이 있고, 지난 3월에 발간한 시집 《꿈속에서 우는 사람》(2024)이 있다.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행복을 만드는 환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A 적극적으로 행복만을 쫓아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역설적이다. 만약 TV 광고에서 보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우주를 설명한 가장 완벽한 책은? A 프린스턴대학의 천체물리학과 교수 조 던클리가 지은 《우리 우주》를 추천한다. 빅뱅이론, 암흑물질, 초
정선희(어머니), 김승민(자녀) X 이은미(어머니), 배은빈 배유빈(자녀) 중랑구에서는 ‘취학 전 천 권 읽기’를 통해서 아이를 책과 함께 성장하는 한 명의 독자로 키우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잠자기 전 부모가 아이에게 한 권의 책을 읽어준다면 1년에 365권, 2년에 700권, 3년이면 천 권을 읽어주게 된다. 취학 전 천 권 읽기를 성공적으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