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후 종결이 되면 대개는 마음 밖으로 내보낸다. 최대한 역전이를 조심하려 하지만 깊게 내 마음을 쿡쿡 찔러올 때가 있어 되도록 이 작업을 서두른다. 그러나 유독 한 어머니가 자꾸 떠오른다. 힘들게 공부를 강요당했던 아들이 들고 왔던 사례. 미치도록 엄마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몸부림친 아들의 처절한 고백. 자신의 철저한 계획 속에 아들을 묶어놓고 아들이 일구어놓은 결과가 마치 자신의 노력에 대한 포상이었던 것마냥 살며 아들에게 목을 매었던 엄마의 사례였다. 그녀는 아들을 위해 결심을 했고 툭 내려놓았는데 그 이후 거의 폐인의 모습으로 지내는 것을 알았다.
자기를 상실한 사람은 무의식적 방어기제인 ‘거짓 자아’를 만들고 그곳으로 숨는다.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마침내 참된 자기를 잃어버린다. 이런 경우가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온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사례의 기본 패턴인데, ‘빈둥지증후군’을 앓고 거의 무기력에 빠져 사는 엄마들이 바로 이 케이스의 모델이다.
이쯤 되면 자식과 부모 중에 누가 더 아프고 누가 더 세상의 피해자인지 말하는 것이 부질없다. 너나없이 이 속물화된 경쟁사회의 피해자들이다. 서로 힘들어하고 안쓰럽게 바라보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깊은 무기력에 빠져 있는 이들 부모 자식 간에 누구의 잘못이 더 크고 누가 문제의 시작이었는지를 따지는 것도 부질없다.
누군가에 기대어 생각하기도 그만두자. 나는 관객이다. 객석에 편안히 앉아 지금부터는 내 주변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그들은 배우다. 무대에 올라와 어머니 역할을 하고, 교수 역할을 하고, 친구 역할을 하고, 선임자 역할을 하는 저 배우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들의 말을 대본처럼 듣는다.
따지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필요한 대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그들 자신의 욕망과 상처에서 나온다. 아버지라서 아버지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이고자 할 때 아버지 역할을 한다. 선배 입장이 유리할 것 같으면 선배 역할을 하고, 책임을 지고 싶지 않으면 후임자 역할을 한다. 욕망을 이기지 못해, 상처를 이기지 못해, 나름대로 열심히 자기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한다. 남을 억압하는 일, 이간질하는 일, 독설을 퍼붓는 일, 예쁜 선물을 준비하는 일들도 다 그런 일이다.
이런 시선이 깊어지면 비로소 해탈도 하고 도인도 되겠지만, 세상 다 놓고 그런 경지를 추구하자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이 바쁘고 속물스러운 세상에서 살아남는 제법 유익한 방편 하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휘둘리지 말고 딱 한 걸음만 물러서 관객이 되어보는 일.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거짓자아’로 살아온 내 모습도 관객이 되어 바라보는 일. 그것을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소영 작가의 《적당한 거리》라는 그림책을 읽어보면 몇 문구들이 가슴에 임팩트 있게 꽂힌다.
“네 화분들은 어쩜 그리 싱그러워?”
“적당해서 그래. 뭐든 적당한 건 어렵지만 말이야. 적당한 햇빛, 적당한 흙, 적당한 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 우리네 사이처럼!”
"그렇게 모두 다름을 알아가고 그에 맞는 손길을 주는 것. 그렇듯 너와 내가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사랑의 시작일지도.”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돌봐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조금은 알게 될 거야.”
정말 구구절절 공감이 된다. 무엇인가를 얻고 싶고 관계에서도 편안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 발짝 물러서면’이라는 전제조건을 잘 익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거짓 자아’를 내려놓고 ‘참 자기’를 찾아 한 발짝 물러서서 조용히 내면의 여행을 하며 자신을 찾아오는 여정을 관객으로 바라보는 주인공 얀을 만나보기를 권한다.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글과 연필 드로잉을 통해 표현되는 부드러운 흑연 질감의 그림이 인상적인 요안나 콘세이요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연필 선 밑으로 고요하며 쓸쓸하고, 동시에 온기 어린 아름다움이 담긴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에 나오는 주인공 얀. 틀에 박힌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던, 사실은 평범한 그가 어느 날 출장길 호텔방에서 숨이 막힐 듯한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순간, 그 어떤 것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에 무슨 일로 와 있는지, 그리고 자기 이름마저도. 다음 날, 그는 의사에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다. 실은 지금 그의 안에는 영혼이 없다는 것.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것. 미처 주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어디선가 떠돌고 있을 그의 영혼. 그날부터 남자는 도시 변두리의 작은 집에서 천천히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얀은 영혼 없이 살았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영혼을 상실한 채,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남편이고 누구의 아빠이고 누구의 무엇으로 살았던 얀은 ‘참 자기’를 잃어버린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참 자기’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의사가 권한 처방법은 영혼이 제 주인을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림은 글이 서술하지 않고 열어놓은 이야기의 여백을 차근차근 채워간다. 어린 영혼이 들러 오는 과거의 공간들. 어떤 날의 파티장과 낡은 레스토랑, 겨울의 빈 공원과 스치듯 흘러가는 기차의 풍경들. 쓸쓸한 그 공간을 지나오는 여정에 지치고 찢기고 상처 입은 영혼의 남루한 외현은 관객으로 바라보는 모두의 눈에 아련함과 측은함과 그럼에도 대견함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책의 왼쪽은 오고 있는 영혼의 공간이고, 오른쪽은 머물러 관객으로 바라보며 기다리는 남자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두 공간은 낡고 빛바랜 바탕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참 자기’를 만나는 그 지점에서의 색감은 빛바랜 칙칙함을 거두어내는 희망을 선사한다. 뭔가 가슴이 차오르는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픔이란 결국 내 아픔이기 때문에 아프다. 그렇다면 내 아픔에조차 한번 관객이 돼보자. 남의 아픔처럼 바라보자. 그러면서 주변 사람의 일상을 무대에 선 배우들의 충실한 역할처럼 바라보자. 그렇게 관객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다가 누구나 다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될 때쯤, 문득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거다.
거기에는 어떤 사람이 서 있을까?
김영아_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 소장
독서치유상담사이자 치유심리학자. 한국그림책심리학회 학회장으로 활동하며 심리학 기반의 치유 강의와 집필,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우는 법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마음을 안아준다는 것》 《내 마음을 읽어주는 그림책》 《그림책으로 아이 마음 읽어주기 엄마 마음 위로하기》 《그만 아프기로 했다》가 있다.
부모가 우울감을 극복하는 건 자신을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엄마의 우울감은 아이에게 어떻게 전해질까? 우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김영아 그림책 심리성장연구소장이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그림책 2권을 추천한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의 감정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는 아이의
이런 심리는 뭘까?누군가 자기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냉정하게 돌아서는 경우. 자기가 먼저 적극적으로 대시한 때도 막상 상대가 자기를 좋아하게 되면 헤어진다.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유기불안’과 관련해 심리학 기초에서 많이 다루는 사례다. 유기불안은 불우하게 자랐거나 학대받은 경험이 상처로 남아 커서도 늘 남에게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다. 이들의 상
이 그림책을 처음 보면 웃음이 나온다. 주인공인 거북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바삐 걸어가다가 언덕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데, 그 바람에 몸이 뒤집히고 만다. 혼자서 몸을 다시 뒤집어보려고 버둥거리는 거북. 마침 지나가던 참새가 “거북아, 뭐 해?” 하고 묻는다. 이어지는 거북의 대답이 걸작이다.“보면 모르니? 수영 연습하고 있잖아.” 뒤집어진 몸으로 팔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