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자기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냉정하게 돌아서는 경우. 자기가 먼저 적극적으로 대시한 때도 막상 상대가 자기를 좋아하게 되면 헤어진다.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유기불안’과 관련해 심리학 기초에서 많이 다루는 사례다. 유기불안은 불우하게 자랐거나 학대받은 경험이 상처로 남아 커서도 늘 남에게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다. 이들의 상처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는 한 인간관계는 건설적인 관계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파괴적인 관계가 된다. 상대는 어떤가? 아무 잘못 없이 ‘버림받음’이라는 상처를 안게 되고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씻을 수 없는 수치심으로 왜곡된 여인상이나 남성상을 가질 수 있다. 본인 역시 근본적으로는 일점의 욕망도 채우지 못한 채 의미 없는 허탈감을 느끼는 일만 되풀이한다.
서른여섯 살의 K. 그녀는 서른여섯에 벌써 열 번이 넘는 연애를 했다. 단순한 사귐이 아니라 주변에서 모두 연인 사이로 인정할 정도에다 곧 결혼을 할 거라고 말한 연애 횟수가 그만큼이다. 그녀가 공략(?)하는 남자들의 공통점은 이른바 킹카라 불리는 잘생기고 잘 놀고 집안 배경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런 남자들을 어렵게 자기 남자로 만들고도 남자가 자신에게 푹 빠진 정점의 순간에 냉정하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녀는 말 그대로 남자들을 그냥 갖고 놀았던 걸까?
그녀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리 부유하지도 않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조금 무능하고 자식에 대한 책임감도 크지 않았다는 것, 그런 가운데서도 부모의 관심이 두 명의 오빠에게만 집중돼 있었다는 것이 그녀 스스로 말하는 어린 날의 불만이었다.
“딸이 하나면 더 예뻐 보이지 않나요? 다른 아버지들은 그렇다고들 하던데. 근데 우리 아버지는 늘 오빠들한테만 관심을 줬어요. 여자라고 나한테는 아무 기대도 안 했어요. 나중에 누가 더 집안에 큰 도움을 줄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에요?”
기분 좋게 술 한잔 걸치고 들어온 날도 두 오빠에게만 너희가 집안의 기둥이라느니 이다음에 잘 되면 부모님 잘 모셔야 한다느니 다짐을 주었단다. 공부만 해도 자기가 더 잘했는데도 오빠들은 학원에 보내면서 자기는 안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집안에서 억울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늘 속상했다. 오빠들에 대한 부모의 편애를 원망하는 한편 따뜻한 관심을 그리워했다. 특히 드라마에 나오는 능력 있고 자상한 아버지상에 많이 목말라했다. 아버지가 무능력하다 보니 이다음에 자신을 건사해줄 아들에게만 기대를 건다고 보았던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내게 사랑을 주었다는데 왜 난 받은 게 없지요? 내 안에는 받은 사랑이 없어요. 그 사랑이 그리워 항상 전 목 말랐었다고요.”
“그래요? 사랑이 그리운 당신이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 차는 건 아닐까요? 어쩌면 당신은 차는 게 아니라 도망가는 거라 생각하진 않나요?”
어쩌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인식 차이에서 생긴다. 주는 사람이 세상을 다 주었다고 말해도 받은 사람이 안 받았다고 느끼면 안 받은 거고, 상대는 별로 준 게 없다고 생각해도 받은 사람이 큰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큰 것을 받은 것이다. 주고받은 것의 크기는 준 사람이 아니라 받은 사람에게서 결정된다.
그림책 《방긋 아기씨》의 아기가 웃지 않았던 이유
태어나고부터 한 번도 웃지 않은 아기를 웃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왕비님의 이야기를 담은 윤지회 작가의 그림책 《방긋 아기씨》를 보라. 사례의 그녀가 말했던 사랑을 받지 못한 억울함을 볼 수 있는 책이다. 크고 화려한 궁궐에 살지만 마음 둘 곳이 없었던 왕비님에게 예쁜 아기씨가 태어났다. 왕비님은 온종일 아기를 정성껏 돌보지만 이상하게도 아기는 웃지 않는다. 좋은 옷을 입히고 맛있는 요리를 먹이고 재미있는 공연으로 기쁘게 해주려 하지만 아기는 웃지 않는다. 이 대목을 눈여겨보면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왕비는 그녀가 사랑이라고 생각한 모든 것을 아기씨에게 주었다. 그러나 웃지 않는 아기씨! 만일 이 아기씨가 성장하여 내 앞에 앉았다면 성장한 아기씨는 뭐라고 하소연을 했을까 생각해본다.
왕비님이 주었다는 사랑은 왕비님의 것이다. 아기씨에게 전달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기씨가 받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엄마의 웃음이고 엄마의 얼굴이 발그레해질 만큼의 정서적 안정감이라는 것을 왕비님은 몰랐던 것이다. 양육 과정에서 이렇게 되면 아이는 자기 눈에 박힌 엄마의 근심어린 얼굴과 표정을 상으로 찍어두고 표상을 세우게 된다. 이렇게 세운 자기표상을 가지고 대상표상을 만들어버린 아이가 타인을 만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양육 과정에서 양육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심리학 용어로 ‘거울 효과’라는 것이 있다. 누군가 의미 있는 대상의 행동, 표정, 말투를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윤지회 작가는 이를 정확하게 그림으로 표현해놓았다. 그림책 화면 가득 아이의 두 눈을 그리고 그 눈동자에 비친 엄마, 왕비님의 표정을 그려 넣었다. 웃지도 않은 채 파랗게 질린 듯한 은유의 푸른빛 얼굴은 불안과 우울을 그대로 담고 있다. 아이는 두 눈으로 엄마의 불안과 우울을 함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심리적 상을 세운 아기씨는 불안했을 것이고 자기가 엄마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웃어보지 못한 사람은 누구를 향해 웃어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관계가 편할 리가 없다. 어찌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 계속되고, 그러니 단절을 선택한다. 자신을 스스로 가로막고 마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가로막다니, 누가 왜 그런 짓을 하겠는가? 그런데 많이들 그런다. 약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누구나 남의 시선에 의존하고, 자기 잘못이 없는데도 세상 눈치를 본다.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는 게 쉽고 흔히들 그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부분 자기 안에서 잘못을 찾는다. 착해서가 아니라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약함 속에서도 자기를 믿고 자기 안에서 희망을 끌어 올리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자신을 믿는 것의 힘
영국 최초의 흑인 여성 판사 콘스턴스 브리스코. 그녀가 쓴 책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너를 가로막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너는 멀리까지 나아갈 능력을 갖고 있단다. 그냥 가기만 하면 돼.”
자기를 믿는 마음에는 힘찬 생명력이 있다. 그것이 주변 사람들마저 기분 좋게 감염시켜 생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게 한다. 이제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고 계속 푸념하며 반복적으로 지쳐가는 관계맺음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감정을 소모하고, 또 종국에 헤어지는 단절을 선택하며 더러운 기분을 느끼는 그 패턴에서 나와야 한다. 살아가는 일은 단절이 아닌 연속선상에 있으며, 중간 중간 나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초대해 충분히 흡족하다고 할 만한 선물이 마련되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김영아_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 소장
독서치유상담사이자 치유심리학자. 한국그림책심리학회 학회장으로 활동하며 심리학 기반의 치유 강의와 집필,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우는 법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마음을 안아준다는 것》 《내 마음을 읽어주는 그림책》 《그림책으로 아이 마음 읽어주기 엄마 마음 위로하기》 《그만 아프기로 했다》가 있다.
상담 후 종결이 되면 대개는 마음 밖으로 내보낸다. 최대한 역전이를 조심하려 하지만 깊게 내 마음을 쿡쿡 찔러올 때가 있어 되도록 이 작업을 서두른다. 그러나 유독 한 어머니가 자꾸 떠오른다. 힘들게 공부를 강요당했던 아들이 들고 왔던 사례. 미치도록 엄마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몸부림친 아들의 처절한 고백. 자신의 철저한 계획 속에 아들을 묶어놓고 아들이
결혼을 코앞에 둔 여자 분이 찾아왔다. 마음이 설레고 예식 준비만 해도 바쁠 시기에 무슨 이유로 찾아왔을까. 지방 출신인 그녀는 그곳에서 동급생인 한 남자와 동거를 했다. 그러다가 서울의 꽤 괜찮은 대학으로 편입하면서 거주지도 서울로 옮겼다. 그러나 상대 남자는 편입이나 상경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어 지방에 그냥 머물렀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히 둘의
그림책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그래서 그림책을 이용해 심리 상담과 치료를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다. 김영아 그림책 심리성장연구소장이 그림책 치유가 필요한, 오늘도 큰 문과 마주선 부모들에게 그림책으로 읽는 위로를 소개한다. 그림책을 읽다 보면 종종 눈물이 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가 안타까울 때도 있고, 엄마의 마음이 나와 같아서 울컥할 때도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