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에서 11대 회장을 역임한
오명숙 전 홍익대 신소재화공시스템공학부 교수를 이번 호 석학 인터뷰에서 만났다.
오명숙 명예회장은 국내 최초로 여학생 공학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공학 분야 여성의 진출 확대를 위한 연구와 다양한 활동을 해온 과학기술계 리더다.
'여성의 이공계 진입을 확대하고, 모든 이공계 여성 인재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당당히 활동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현실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
여성과총의 활동과 비전, 과학 하는 여자들이 많아지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또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본다.
“‘공학은 여성을 필요로 한다’는 호주 여성공학인 날의 구호예요.
여학생 공학 교육은 교육 환경에서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거기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또 시정하려는 의도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교수 워크숍이나 학생들 워크숍을 통해서 전파하는 게 저의 목표였어요.
여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동기 부여가 되고, 또 여학생들의 열정을 충족시킬 수 있는
리더가 있다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 개요]
00:56 : 여성과총의 소개와 활동, 앞으로의 목표
02:34 :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시작한 출판과 강연, 북 콘서트
04:39 : 대형 과제 책임자의 여성 비율이 낮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06:20 : 여학생의 전공에 대한 열망을 떨어뜨리는 과학 교육 환경
10:16 : 무의식적 편향과 차별에 맞서며 과학 하는 환경 만들기
13:02 :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 성별 고정관념을 깨야
14:58 : 과학기술계의 여성 인재가 많아질수록 문화가 바뀔 것
15:41 : 과학자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친 ‘마리 퀴리’의 위인전
17:32 :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18:31 : 공학은 여성을 필요로 한다, 공학은 여성에게 좋은 분야다
[인터뷰 내용]
여성과학기술인의 성장, 참여 확대, 포용의 문화 확산을 목표로 활동
더라이브러리(이하 ‘더’):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는 자연과학, 공학, 환경, 에너지, 의학 등 과학기술계를 총망라한 여성과학기술단체 80여 개와 약 8만 명의 회원을 가진 국내 최대 여성과학기술단체 연합회인데요, 2003년에 창립한 후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오명숙(이하 ‘오’): 2003년에 네 개 단체로 시작해 제가 11대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총 80개 단체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크게 여성 전문 단체 혹은 여성이 많은 단체들과 여성위원회가 주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두 부분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그래도 거기에 리더들을 훈련시키고 단체를 지원하고 단체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여성들이 더 전문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희 단체의 목표입니다. 저희가 과학기술소통포럼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국민의 과학기술 인식을 높여주는 노력도 하고 있고 청소년들한테 과학기술 커리어를 소개하는 의미로 출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더: 그동안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전망이 궁금합니다.
오: 작년에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20주년을 맞이해서 저희가 2030 비전도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성장이 목표였고요. 성장은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역량 강화, 단체 성장을 통해서 국가과학기술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참여 확대입니다. 여성과학기술인의 비율이 늘어야지 결국은 여성 과학자가 사회에 기여를 더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과학기술인 참여 확대를 목표로 했고요. 그다음 세 번째가 포용입니다. 그렇게 사회 전반의 포용적 문화 확산에 여성과학기술인이 앞서자는 세 개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대중에게 여성과학기술인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출판과 강연, 북콘서트
더: 한국여성과총 교육홍보출판위원회에서 ‘거침없이 도전한 여성과학자 시리즈’를 기획하고, 《과학 하는 여자들》 《벤처 하는 여자들》 《내가 만난 여성 과학자들》 《세상을 연결한 여성들》 《평행 우주 속의 소녀》 등 좋은 책을 출판하셨습니다. 책의 기획과 출판의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오: 결국 대중에게 가까이 가고 여성과학기술인의 업적을 알리는 데는 책만 한 게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처음에 《과학 하는 여자들》 《공학 하는 여자들》 《벤처 하는 여자들》로 세계적인 여성 과학자도 소개하고 또 우리의 과학자도 소개하고, 이렇게 가다가 최근에 《수학하는 여자들》도 나왔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수학을 이용해 업적을 이룬 분들도 저희가 하이라이트를 했고요.
그러다가 역서를 내기 시작했죠. 1년에 한 권 정도, 역서 같은 경우는 일이 되게 많습니다. 번역도 하고 감수도 하고 출판사도 또 한 번 검토를 해줘야 하고. 좋은 책들을 추천받고 위원회가 치열하게 토론을 해서 선정한 후 출판 작업을 합니다. 20년이 넘은 단체다 보니까 좋은 책들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더: 출판 외에 그동안 했던 강연이나 교육 등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요?
오: 강연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고요, 출판 관련해서는 저희가 북 콘서트를 합니다. 저자 참여가 가능한 경우는 저자가 직접 가서 학생들을 만나고 북 콘서트를 합니다. 중고등학생들한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책으로 읽었는데 또 그 저자가 눈앞에 와서 자기가 하는 일과 연구를 소개해준다는 게 굉장히 의미가 있어서, 사실 강의하는 게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중고등학생들의 관심을 끌면서 호응이 굉장히 좋다고 합니다. 남학생들도 열심히 참여를 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저희가 독후감 공모전을 합니다. 꼭 그 해에 나온 책에 한정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발표된 어떤 책이라도 읽고 독후감을 내면 저희가 치열하게 심사를 해서 상품도 주는데,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응모를 합니다. 각 학교의 과학 교사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어느 학교에서는 더 많이 들어오기도 하고요. 그래서 선생님들께 항상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대형 과제 책임자의 여성 비율이 낮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더: 보니 가머스의 소설이자 애플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된 <레슨 인 케미스트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는 연구소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밝혀내지 못한 ‘진화 이전’ 분자의 비밀을 연구하는 화학자로 나옵니다. 1955년이 배경인데 “시스템대로 움직이지 마요. 시스템을 뛰어넘어버려요”라는 대사가 있죠. 지금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또는 전 세계적으로도 여성 과학자한테 여전히 어떤 한계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오: 저는 있다고 봅니다. 미국 같은 경우에 ‘타이틀 나인(Title IX)’이 통과되기 전에는 같은 대학에서 부부가 교수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같이 박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교수를 하고 여성은 실험실에서 랩 테크니션이라고 실험보조 비슷하게 직책을 갖는 시절도 미국에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그거를 읽으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었는데요, 제가 1973년 미국에 갔을 때는 못 느꼈어요. 저희 과에는 공대니까 여교수님이 없었지만 화학과에는 이미 여자 교수님이 여러 분 계셨어요.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다는 것이 굉장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보면 벤처캐피탈에서 지원을 할 때 여성이 리드하는 회사나 또 발표자가 여성이면 점수를 좀 덜 받고 또 여성이 펀딩 받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런 것들이 아직까지도 차별이 존재한다,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굉장히 통계가 많습니다. 대형 과제 책임자의 여성 비율, 10억 원 이상 과제에서 여성의 비율이 남성 평균보다 굉장히 낮고요. 보직자 중에 여성의 비율도 낮고 관리자 중에 여성의 비율도 낮습니다.산업체의 경우를 보면 그냥 일반적인 여성 임원의 비율도 굉장히 낮은데, 임원이 되는 여성과학기술인의 비율은 그것보다도 많이 낮습니다. 그래서 과학기술계의 유리 천장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여학생의 전공에 대한 열망을 떨어뜨리는 과학 교육 환경
더: 《과학 하는 여자들》의 저자인 미생물학자 이홍금 연구자의 글에 보면 이공계 여학생이 늘기는 했지만 일차적으로 여성의 의지가 좀 부족하다는 코멘트가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과학을 공부하고 직업으로 가지는 여성들이 적은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오: 저는 여학생 공학 교육 쪽에도 오래 일을 했던 사람이에요.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왜 이 똑똑하던 여학생들이 졸업할 때는 자신감이 없을까라는 데서 시작을 했고, 또 거기서 제 모습을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학부 때 공부를 굉장히 잘했고 상도 받고 졸업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감이 없었을까? 제가 대학원에 가는 것은 부모님들의 평생소원이어서 두 말 않고 대학원을 갔지만, 또 내면을 살펴보면 내가 산업체에 나가서 어떤 일을 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은 교육 환경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연구를 했을 때 나타난 결과는, 여학생들이 성적은 높지만 전공에 대한 애착이 남학생들보다 낮게 나오고 또 성공 의지도 남학생들보다 낮게 나옵니다. 이것이 여학생 탓인가를 보려면 교육 환경을 돌아봐야죠. 공과대학은 아시다시피 지금 신입생 중 여학생 비율이 약 25퍼센트 대입니다. 제가 처음에 공대 교수를 시작했을 때는 훨씬 낮았고요. 2000년대에 들어와서 10퍼센트 넘고 그게 20퍼센트로 올라가고 또 정부의 꾸준한 지원과 위셋(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WISET)을 통한 지원 등을 통해서 지금은 25퍼센트까지 올라간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을 봐도 아직도 20퍼센트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25퍼센트에는 근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학 교육 환경을 본 굉장히 많은 연구들이 미국에는 있어요. 우리도 정부에서 지원을 해줘서 한동안 그런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걸 보면, 팀워크만 살펴봐도 남학생들이 주로 테크니컬한 부분과 설계 같은 부분을 맡고 여학생들은 미팅을 조절한다거나 문헌 조사를 해준다거나 보고서를 쓴다거나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리더는 대부분 남학생, 저는 거기에는 에이지 하이어라키가 있다고 생각해요. 군대 갔다 와서 전공에서 설계를 할 때는 남학생들이 요즘은 두 살 많지만 옛날에는 세 살 정도 많았고, 항상 ‘누가 제일 나이가 많나, 그러면 선배가 해’라는 문화가 분명히 있었어요.
그리고 맡는 역할도, 여학생들은 남학생이 PPT를 만들면 참 촌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거는 본인들이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설계나 코딩 같은 거는 남학생들이 더 잘한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어요. 그렇지도 않은데. 제가 사실은 이에 대해서 세미나도 하고 다녔는데 이런 데서 뭔가 젖어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미국에서 나온 논문에도 성 역할 분담이 분명히 관찰됐고요. 여학생들이 이게 문제인지 알면서 시정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왔고, 또 평가 부분에서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때 발표하신 교수님 말씀이 굉장히 와 닿는데요. 설계를 하고 계산을 하는 일도 어려운 일일 수 있지만 보고서를 쓰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제에서 기여도 평가를 할 때 남학생의 기여도가 보고서를 쓰는 여학생의 기여도보다 훨씬 높게 평가된다. 그래서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면 당연히 뭔가 자존감도 떨어지고 전공에 대한 열망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여학생 공학 교육에 있어 이러한 작은 문제들, 교육 환경에서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거기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또 시정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교수 워크숍이나 학생들 워크숍을 통해서 전파하는 게 저의 목표였어요.
무의식적 편향과 차별에 맞서며 과학 하는 환경 만들기
더: 《세상을 연결한 여성들》(클레어 L. 에반스, 해나무, 2020)이라는 책이 아니었다면 1800년대의 여성 수학자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는 사실을 몰랐을 거예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컴퓨터는 남자들이 우세한 분야라는 편견이 있는데, 실제로 과학기술이나 공학, 수학 분야에서 여성의 존재가 지워지는 일이 있나요?
오: 많은 부분에서 저는 무의식적인 편향이 제일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MIT 여교수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떤 여교수가 과제를 굉장히 크게 받아서 실험실 공간이 더 필요하기에 실험실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더 많은 공간을 얻을 수 있을까. 자기 실험실이 제일 작은 거예요. 다른 여교수한테 그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그분 말씀도 “나도 내 실험실이 좀 작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분들이 자를 꺼내서 연구실을 측정하고 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여성들이 많은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여러 가지 팩터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이게 1990년대 세계적인 대학 MIT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분들이 그때 프레지던트였던 찰스 베스트한테 가서 이 데이터를 보여주고 시정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그분 말씀이 여성 한 명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그거는 개인의 문제지만 모든 여성 교수가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면 이거는 시스템의 문제다, 따라서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라는 이야기를 하셨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Picture a Scientist>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도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가 나오고 있고, 그 다큐멘터리에서도 무의식적 편향(Unconscious Bias)이 굉장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밖으로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그 밑에 숨은 무의식적인 편향에 의한 차별은 굉장히 많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환경의 문제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여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뭔가 (애스퍼레이션aspiration이라고 그러죠) 동기부여가 되고 또 그 열정을 충족시킬 수 있게 하는 리더가 있다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여성과총에서는 과학 연구 환경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오: 해외에서는 이런 노력이 체계적으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논문에도 나오고 책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사실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을 나타내는 카드뉴스도 만들어서 매해 숫자를 늘려가는 노력도 해왔고요. 위셋에서는 또 <She Did It>이라는 영상을 만들어서 여성 과학자들, 과학기술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홍보도 하고 이렇게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 성별 고정관념을 깨야
더: ‘무의식적인 편향’이라는 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인데, 편향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 편견은 그냥 생각일 수가 있어서 저희 여성과총에서는 ‘편향’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게 행동으로도 나올 수 있고 문화 안에도 존재를 하는데 ‘한쪽으로 치우침’입니다. 그런데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라는 게 있잖아요. 4년제 대학에서 공학 분야 여학생 비율은 24.5퍼센트입니다. 생각보다는 높죠. 그리고 산업기술 인력 중에서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여성은 10.3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제가 썼습니다. 또 통계에서 과학고와 영재고 신입생 중에 여학생 비율은 과학고가 20.2퍼센트인데 국제고와 외국어고는 73.6퍼센트입니다. 이게 굉장한 성별 고정관념이고, 무의식적으로 여성은 문과, 남성은 이과를 강조하는 사회가 돼버린 거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지금 과학기술을 여성이 못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성이 수학을 못 한다? 중학교 때까지는 수학 굉장히 좋아하고 과학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입시 들어가면서 성별 고정관념이 굉장히 많이 끼어드는데, 이건 우리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부모님들의 탓이 아닌가, 또 우리 사회 전체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들이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은 과학기술 사회입니다. 그리고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고요. 또 인구 절벽 얘기도 많이 나옵니다. 더 많은 여성이 과학기술 쪽으로 진출하지 않고는 과학기술 경쟁력에 타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여성은 문과, 남성은 이과라는 개념을 깰 때입니다. 이걸 누가 해주셔야 하느냐,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계의 여성 인재가 많아질수록 문화가 바뀔 것
더: 더라이브러리 독자 중 과학기술계 인재가 되려는 학생들, 학부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오: 저는 일단 도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많은 기회가 있고요, 정말 재미있는 학문이고, 할 일도 굉장히 많고, 또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하고도 직접적으로 연결된 학문이고 커리어 갖기도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이공계는 취업이 잘 되는 편이고요. 물론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보다 조금 어렵긴 하지만 앞으로 이것도 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기회가 많은 분야여서 무엇보다도 좀 더 많은 여성들이 도전하고 그 수가 늘어갈수록 문화도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자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친 ‘마리 퀴리’의 위인전
더: 과학자가 되는 데 영향을 받은 책이 있다면요? 또 독자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오: 어려서 위인전을 굉장히 많이 읽었어요. 저희 부모님이 거대한 세트를 사주셨는데 그거를 통독한 건 저희 형제 중에 저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만날 그 책을 읽고 자랑을 하고 그랬어요. 이 사람은 뭘 하던 사람이고 하면서. 그중에 여성이 얼마나 있었는가를 제가 곰곰이 생각을 했는데, 그 방대한 위인전에 당연히 마리 퀴리가 있었죠. 그다음에 나이팅게일이 있었고 헬렌 켈러가 있었던 것까지 생각납니다. 위인전을 읽고 처음으로 과학기술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결국은 그 많은 위인들, 여성 위인이 셋이라면 그중에서 가장 돋보였던 게 마리 퀴리 아니었나, 그런 영향이 있지 않았나 생각을 했어요. 고등학교 가서는 의대를 갈까 생각도 했지만 결국 전공을 과학기술계로 찾은 것은 그 위인전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는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의 의장까지 지내셨던 리타 콜웰이라는 분이 쓰신 《인생, 자기만의 실험실》이라는 책이 굉장히 와닿습니다. 그분이 미국의 여성 과학자들이 겪었던 차별을 굉장히 상세하게 나열을 하면서, 70년대 이후에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굉장히 많다는 걸 예를 들어서 설명하시고 아예 차별한 남성들 실명까지 거론한 책입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감명 깊게 읽고 어느 신문에 제가 서평을 쓴 적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더: 최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오: 여성과총에서 2년 동안 DEI를 핵심 가치로 삼고 워크숍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2년 동안 꾸준히 워크숍을 해서 그 경험을 공유한다 생각하고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에 대해서요. DEI, 우리말로 한다면 다양성 증진과 포용적 문화 확산으로 저는 정의를 하고 싶습니다.우리도 지금 시작하고 있다고 보고 있고요.
공공기관도 DEI 한다고 지난번에 신문에 났는데, 또 이 단체들하고 위셋의 문애리 이사장님이 맡기로 했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그래서 DEI가 지금 막 살아나고 있는 사회적 가치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또 반 DEI(anti-DEI)도 나오고 있고요. 저는 굉장히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우리 사회가 이 DEI를 증진하는 데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학은 여성을 필요로 한다, 공학은 여성에게 좋은 분야다
더: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또 여성 공학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오: 다시 태어나 똑같은 거를 밟는다면 저는 기계과나 컴퓨터공학을 할 것 같아요. 조금 다른 부분, 모든 산업의 기본이 되는 게 기계더라고요. 그래서 기계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컴퓨터에 대해서도 가끔 제 친구랑 이야기를 합니다. 훨씬 더 각광을 받고 있으니까. 여전히 과학이나 공학을 하겠습니다. 저는 공학을 할 것 같습니다. 공학 정말 좋습니다. 저는 공학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 실생활에 다 적용이 되는 부분이어서 공학이 훨씬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여성이 공학으로 진출해야 되는 이유는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호주가 굉장히 이런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여학생 공학 교육이라는 사업을 시작했을 때가 2004년, 2005년인데 2007년쯤 호주에서 나온 겁니다. 2007년에 ‘여성공학인의 날’이라고 호주에서 제정했는데 거기서 만든 구호가 굉장히 좋습니다. 공학은 여성을 필요로 한다. 공학은 여성에게 좋은 분야다. 더 많은 여성이 공학으로 진출해야 한다.
(글로 정리한 인터뷰 내용에는 더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정리: THE LIVERARY 에디터팀
오명숙_여성과총 명예회장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C Berkeley)의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핵무기 개발 연구소인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awrence Livermore National Laboratory)의 Task Leader, 석유화학 회사인 텍사코(Texaco Inc.)의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했다. 1994년부터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신소재화공시스템공학부 교수로 후학을 키우며, 화학공학·에너지·여학생 교육·공학 교육 분야에서 활동했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 이사장,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Q 이진아기념도서관을 어떻게 처음 찾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A 이진아기념도서관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2005년 10월 산책길로 거슬러 올라가요. 산책을 하다 우연히 도서관을 발견하고 입구 현판에 붙은 이진아 양의 사연을 알게 되었죠. 순간적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한동안 서 있었던 기억에 지금도 코끝이 찡하네요. 진아 양의 생일과 나의 큰딸
신구문화상(新丘文化賞)은 신구문화사의 창립자 故 우촌 이종익 선생(1923~1990)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한 우촌 정신을 미래세대로 잇기 위해 올해 처음 제정한 상이다. ‘올해의사서상’, ‘올해의책’ 총 두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며, 이번 제2회 시상식은 10월 17일 제61회 전국도서관대회가 열리는 정선 하이원리조트 컨벤
다독가들은 책에 영향을 받아 삶의 전환점을 맞은 분을 인터뷰 해서 책의 가치를 꾸준히 알린 더라이브러리의 대표 콘텐츠이다.2025년 부터 다독가들의 형식을 특정 분야의 필자를 인터뷰 해서 그 분야의 책을 읽는 N가지 방식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2025년 첫 호로 《가장 젊은 날의 철학》의 저자이자 유튜버로 이 시대에 철학의 중요성을 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