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메신저는 책과 언어 그리고 독서를 매개로 다양한 실험과 변화를 모색하는 크리에이터를 만나는 인터뷰 코너이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 그리고 번역가로 활동하는 김목인을 만나 노래하고, 읽고, 쓰는 일상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책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해석을 통해 책과 독서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Q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싱어송라이터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목인입니다. 음반을 만들고 공연을 하는 게 주된 일이고요. 책을 좋아하다 보니 글쓰기와 번역에도 점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작가 김목인 ⓒ홍철기
Q 그동안 정규앨범을 4집을 내고,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에세이도 쓰고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첫 번역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2015년에 미국 소설가 잭 케루악(Jack Kerouac)의 《다르마 행려》를 옮기며 다른 책들도 맡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 책을 옮기게 된 배경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직 음악을 하기 전인 2002년부터 케루악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다는 팬심으로 출판사들에 제안서를 보냈거든요.
당시에는 모두 반려되었지만, 외서 검토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역의 세계를 조금 경험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며 번역 일은 하지 않았는데, 2014년에 무슨 운명처럼 케루악을 옮겨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오래 전의 꿈이 뒤늦게 이루어진 셈이죠. 이 과정에서 워낙 우여곡절이 많아 조금 과장을 섞은 아마추어 케루악 번역가에 대한 팩션 《오리지널 스크롤》을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Q 셸 실버스타인의 시그림책 《폴링 업》, 앨런 긴즈버그의 시집 《울부짖음Howl》, 오션 브엉의 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등 문학서 위주로 번역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요, 번역서를 고르는 김목인만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직접 기획하지는 않고 대부분 출판사의 제안으로 하다 보니 작품을 고를 일은 많지 않았어요. 문학서 위주로 한 것은 처음 옮긴 책들이 미국 현대문학이라 자연히 그쪽으로 제안이 이어졌죠. 앨런 긴즈버그의 경우만 작품을 고를 기회가 있었네요. 친구들과 독립출판으로 내려던 책이었거든요. 저작권자가 보내준 목록을 보고 두 권만 골라야 해 한숨이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아쉽지만 가장 유명하고, 다른 작품으로의 입구가 될 작품을 골랐죠.
여전히 많은 작가들이 한 시기의 작품을 통해서만 알려진 경우가 많아요. 많이 언급되지만 번역 안 된 책도 많고요. 고를 일이 있을 때는 되도록 그런 빈틈을 채우는 마음으로 고릅니다.
번역의 출발점이 되었던 비트 세대 작가들의 책과 번역에 대한 자전적 픽션 <오리지널 스크롤> ⓒ김목인
Q 직접 번역한 문장 중에서 깊은 인상이 남았던 구절이 있다면?
A 시 <울부짖음>의 도입부요. 워낙 유명한 문장이라 원문과 비슷한 호흡으로 옮겨보려고 꽤 애를 썼던 것 같아요. 김미라 님과 함께 옮겼던 문장입니다. ‘나는 내 세대 최고의 영혼들이 광기로 파괴되는 것을 보았다. 허기와 신경증으로 헐벗은 채,’
Q 정규 3집 ‘콜라보 씨의 일일’의 제목은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빌려왔죠. 배회하는 주인공이 등장했던 소설처럼, 3집에는 〈걷다 보니〉 〈지하보도〉 등 산책하는 가사가 담긴 음악이 많이 수록되었는데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A 같은 음악이지만 조금 다른 분야의 책에서 자극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을유출판사에서 나온 《피아졸라》나 《스트라빈스키》 같은 평전들에 묘사된 창작 방식을 유심히 보곤 했어요.
1집의 곡들을 쓸 무렵에는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가 쓴 ‘카이에 소바주 총서’를 탐독한 적도 있어요. <음악가의 밭>이라는 노래가 그때 알게 된 내용을 나름대로 소화해본 결과입니다.
그러나 보통 책은 즐거움을 위해 읽고,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좋아하는 문장에 노래를 붙인다기보다는, 오히려 좋은 책들의 만듦새, 구성 등에서 영감을 받죠.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도 다시 읽어보며 작업한 건 아니에요. 한숨을 쉬며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콘셉트에 스스로 의문이 들 때 구보를 떠올렸죠. 오래 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는 것, 시대마다 여러 번 패러디되었다는 것에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싱어송라이터로서 만든 4장의 앨범들 ⓒ김목인
Q 첫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음악가》에서는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도 하고 가계부를 쓰기도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김목인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A 보통 아침을 먹고 10시 반쯤부터 식탁에 노트북을 놓고 일해요. 가족들이 돌아오는 3시까지 집중이 필요한 일을 먼저 하려고 하고요. 정오쯤 악기 연습을 합니다. 오전 작업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가까운 거리에 아내와 같이 쓰는 집필실이 있어 늦은 오후에 그쪽으로 옮겨 조금 더 합니다. 밤에 작업하는 편은 아니어서 깨어 있어도 주로 다른 음악을 듣거나 책을 봐요.
물론 이건 공연 같은 외부 일이 없을 때고, 마감이 몰리거나 공연이 많은 시기에는 어수선하게 보냅니다. 가계부는 여전히 쓰고 있고요.(웃음) 《직업으로서의 음악가》를 쓸 때보다는 아이가 컸기 때문에 낮에 작업할 여유가 더 생겼죠.
여러 분야의 일을 하루에 동시에 하는 것은 아니고요. 번역에 집중하는 시기, 앨범에 집중하는 시기처럼 시즌이 있어요. 물론 요즘은 서로 기간이 겹쳐 난감할 때도 많습니다.
에세이, 단편소설, 악보가 있는 산문 등 김목인이 쓴 다양한 형식의 책들 ⓒ김목인
Q 김목인의 음악에서는 〈한결 같은 사람〉과 〈지망생〉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소설 《마르셀 아코디언 클럽》에서도 프로 연주자라기보다는 아코디언에 빠진 동호회 사람의 소소한 이야기가 등장하죠. 김목인이 특히 평범한 사람과 일상적인 풍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주로 자전적인 것과 주변에서 본 것들을 소재로 삼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나 평범해서 선택하는 것은 아니고, 저 나름대로는 특별히 여겨서 선택하는 거예요.(웃음)
동시대의 흐름을 벗어나려고 그랬던 것도 있습니다. 제가 창작을 시작하던 무렵에는 많은 작품들이 격렬한 감정이나 시적인 표현, 조금 억지스런 서사를 다루었거든요. 저는 소소해도 실제적인 이야기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저는 친구들에게 들려주려고 첫 노래들을 썼었는데, 서로 아는 사람에 대한 노래일 때 생기는 소통의 느낌이 좋았죠. 그때의 기억이 좋게 남아 있는 것도 한 가지 이유인 것 같네요.
악기와 책들이 섞여 있는 김목인의 서재 ⓒ김목인
Q 박현성 사진작가와 함께 공원 일몰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공원을 찾아가 사진과 글로 기록한 《서울의 공원》을 출간했습니다. 4집 앨범 ‘저장된 풍경’에는 팬데믹으로 도시가 멈춘 시기, 도심을 산책하며 목격한 장면들을 곡으로 표현했고요. 김목인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가장 좋아하는 도시의 풍경’ 하나를 말해준다면 어떤 것일까요?
A 언덕 위의 집들이요. ‘언덕 위의 집’ 하면 무슨 초원의 풍경 같지만, 산 중턱까지 집이 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도시의 풍경이죠. 저는 경사면에 짓느라 기이한 구조를 갖게 된 집들을 좋아해요. 어딘가 신비한 느낌도 들고요. 또 그 집들 중에는 제가 어릴 적 보았던 건물들과 비슷한 벽돌, 창틀을 지닌 집들도 있죠. 도심의 변화에는 이제 꽤 무뎌졌지만 변두리의 풍경마저 빠르게 사라질 때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언덕 위 동네를 산책하며 찍은 사진 ⓒ김목인
Q 싱어송라이터를 하기 전에는 원래 영화를 하려고 했다, 우연히 영화제의 기념품이었던 빨간 수첩에 메모를 하다가 가사를 썼다, 우연히 인디 레이블의 음악 공모에 피아노 연주곡을 녹음해 보낸 것이 선정되면서 데뷔하게 되었다고 했죠. 이후로 책을 내고 번역가로 활동하게 되었는데요, 아직 온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한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자신이 꾸준히 좋아해온 것들을 작은 단위로 정리해두는 건 어떨까 싶어요. 일이라는 게 늘 좋아하지 않는 면이 섞여 있어서, 일 단위로 생각하면 만족스럽지 않은 것들이 많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음악이나 번역 일의 실무는 겉보기보다 지루하고 불안정한 면도 많아요. 그래서 저는 일을 종착지라기보다 가끔 바뀌기도 하는 환경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는 씨앗만 꾸준히 유지하자 생각합니다. 그러면 불안감도 줄고 조금이나마 선명해지는 게 있어요. 그 정도가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 같습니다.
Q 최근에 작업 중이거나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일이 있는지요?
A 노래가 아닌 연주곡들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피아노나 아코디언 같은 건반 악기들로 된 연주곡들이에요. 책은 오랫동안 쓰고 있는 ‘낙원상가’에 대한 글이 있고요. 낙원상가의 현대사를 에세이와 섞은 책인데 자료 조사할 게 많아 진행이 너무 느리네요. 번역은 미국 시인 로스 게이(Ross Gay)의 에세이 《기쁨의 책》이 거의 마무리되어 곧 선보일 것 같습니다.
Q 김목인에게 책이란?
A 언제나 반가운 손님. 집에 책이 많은데도 책이라면 늘 환영이니까요. 또 책이란 영원한 꿈 같아요. 창작자의 마음속에 있는 이상적인 작품은 늘 완벽한 책 한 권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목인_싱어송라이터
싱어송라이터, 작가, 번역가. 노래와 책을 짓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음악가 자신의 노래’부터 ‘저장된 풍경’까지 넉 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직업으로서의 음악가》 《음악가 김목인의 걸어 다니는 수첩》 《영감의 말들》 등의 책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다르마 행려》 《울부짖음Howl》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시시한 말·끝나지 않는 혁명의 스케치》 등이 있다.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챗GPT에게 홍기훈 교수를 소개한 뒤 어떤 질문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여섯 개의 심도 있는 질문을 남겨주었다. 그중 하나는 ‘경제적
도서관과 연애하며 아이들에게 읽어준 책이 하루 30권, 딸 셋 모두 책을 즐기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가 첫 돌을 맞고 난 후 ‘엄마’나 ‘아빠’, ‘맘마’ 같은 의미 있는 단어를 내뱉기 시작하면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이와 같은 고민으로 첫 아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부터 문턱이 닳도록 도서관을 드나들었던 안병화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