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의 한때 ⓒ 신수정, 2021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 중 관광과 더위에 지쳐 낮에 숙소에서 쉬고 있을 때 본 창밖 풍경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전염병을 겪으며 오늘은 답답한 현실에 묶여 있지만, 언젠가 자유롭게 창밖으로 나가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Q 내 서가에 단 한 권의 책만 남길 수 있다면 어떤 책을 남기고 싶은가.
A 평소 읽을 책을 여러 권 쌓아놓아야 마음이 편해지는데 딱 한 권만 남길 수 있다니. 꼭 그래야 한다면 읽고 마음이 따뜻해졌던 책을 선택하고 싶다.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이라는 중편소설이다. 나치가 독일을 장악해가던 시대, 두 소년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다. 작은 책을 통해 그 시절 두 소년이 살던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또 그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Q 독서에서 배운 인생의 팁을 전해준다면?
A 소설을 주로 읽는데, 작가가 창조한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서 다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돌아오는 느낌을 좋아한다. 내 주위에는 항상 많은 치과의사, 교수님, 그리고 학생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치과 진료와 연구, 교육으로 일정이 꽉 차 있는 환경에서 일상을 보낸다. 그런데 독서로 여행을 하다보면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갈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으니까. 독서를 통해 현실을 충만하게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Q 치과대학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책 속 한 문장’은?
A 올리버 색스가 죽음을 앞두고 쓴 에세이 <나의 생애>(원제 ‘My Own Life’, 뉴욕타임스 기고) 중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 돌려주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다. 세상과의 교제를 즐겼다’라는 부분을 들려주고 싶다.
Q 주로 언제, 어떤 자세로 독서를 하는 편인가.
A 보통 쉬는 날 침대에서 독서를 한다. 재미있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다 읽을 때까지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할 때도 종종 있다. 볕이 좋은 날에는 남편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챙겨서 동네의 조용한 단골 카페를 찾기도 한다.
Q 힘든 일이 있었을 때 큰 도움을 받은 책이 있는가.
A 2년 전쯤 나를 무척 사랑해주시던 시아버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치셨다. 아직도 거동이 불편하시다. 너무 건강하던 분이 생사의 고비를 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가족 면회도 안 되는 상황이 힘들었다. 그런데 걱정하는 마음만큼이나 힘들었던 것은 ‘아버님은 병원에 계신데 나는 즐겁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죄책감이었다. 그때 강진아 작가의 《오늘의 엄마》라는 소설을 다시 읽어봤다. 주인공은 암 투병하는 엄마 옆에서 걱정하며 오랜 기간 간호를 하다가 우연히 동료 작가들의 모임에 가게 된다. 거기서 이런 생각을 한다. ‘여기에 조금 더 있고 싶다. 죽은 남자친구도 없고 아픈 엄마도 없어 죄책감 없이 웃을 수 있는 곳. 괜한 배려로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곳. 이곳에서,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 없이 현재를 조금 더 즐기고 싶다.’ 이 대목을 읽으며 큰 위로를 받았다.
Q 치과대학 교수와 화가라는 두 직업이 상호 간에 주는 영향이 있는가.
A 내가 치과대학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은 치아에 생기는 질환과 그 치료법이다. 치아의 미세한 변화를 눈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색조나 형태 그리고 시간에 따른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도 비슷할 때가 있다. 그리기 전에는 몰랐던 풍경이나 사물을 자세히 보게 된다. 또 치아가 아파서 온 사람들을 치료하다보면 보람도 있지만 체력이 많이 소모되고 때로는 마음이 지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힘든 나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고 응원할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제주 다랑쉬오름 ⓒ 신수정, 2021
“어느 더운 여름날 제주 다랑쉬오름을 걸으며 만난 풍경을 그려보았습니다. 낙서인간은 세 명이 있습니다.”
Q 인생 중 ‘낙서인간’을 그려 넣고 싶은 한순간을 꼽아달라.
A ‘낙서인간’은 내 그림 속에 살고 있는 꼬마 캐릭터들이다. 여행지에서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개구쟁이들이다. 7년 전 미국의 데스밸리 국립공원 안의 숙소에 묵은 적이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와, 별이 쏟아진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처음 알았다. 자연에 압도되는 체험이었다.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하늘을 보던 그 공간에서 내 낙서인간이 아직도 즐겁게 별과 은하들을 올려다보고 있기를 희망한다.
Q 코로나 팬데믹 기간, 그림 작업에도 달라진 점이 있는가.
A 많은 분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그림도 두 배로 많이 그렸겠구나” 말씀하신다. 분명히 처음에는 시간이 많았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압도되어선지 몇 달 동안은 인터넷 검색에 몰두한 채 시간을 보내버렸다. 그 이후로는 몸이 갇혀 있는 기분이라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을 그리기가 쉽지 않았다. 대신 여행지에서 창문 밖으로 보였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밖으로 나가 마스크를 벗고 즐겁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프랑스 니스의 마티스미술관 ⓒ 신수정, 2019
“이 그림을 그리던 날 존경하는 은사님의 사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0년 전 미국 유학생활 때 저를 자식처럼 챙겨주셨던 분,
제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셨던 분, 그분과의 수많은 추억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분이 가장 좋아하던 작가가 마티스였습니다.”
Q 스스로 그림 그리길 잘 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
A 무엇인가를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을 때. 예를 들면 학생들에게 설명할 강의 자료를 만들 때, 전에는 교과서에 있는 그림이나 사진을 스캔해서 넣었다면 지금은 내가 원하는 모양을 직접 그려서 사용하곤 한다. 학생들도 좀 더 관심을 갖고 즐겁게 수업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림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행운을 누릴 일이 생기기도 한다. 치과의사나 교수로 살면서 할 수 없었던 경험들이다. 이렇게 인터뷰 글을 쓰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도 고마운 일이다.
Q 그림을 그리면서 들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무엇인가.
A 내 그림을 보면 낙서인간이 되어 여행하는 느낌이 든다는 댓글을 남겨주신 분이 있다. 취미로 그리는 그림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았다고 생각되어 즐거웠다.
Q 다시 태어난다면 갖고 싶은 직업은?
A 다른 직업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직업을 가져볼 수 있다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기는 하다.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Q 삶의 의미를 찾고자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앗,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삶의 의미를 잘 모르고 그냥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고 내일도 그러려고 한다. 주위에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 분들이 있다면 익숙해질 때까지 본인을 다독이며 지치지 말라고 응원하고 싶다. 새로운 일은 처음에 다 어렵고 기대한 만큼 이루어지기 힘든데,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한 자기자신을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여기기 바란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만족할 만한 성취를 이루지 않겠는가. 만약 잘 안 되더라도 좋은 경험은 남는 것.
신수정이 추천하는 책 다섯 권
《떠남》(앨리스 먼로)
앨리스 먼로의 작품은 내게 어둡고 쓸쓸한 느낌을 준다. 내가 나고 자란 이곳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일 것 같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살면서 그곳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소설에 공감하고 위안을 받는다. 《떠남》의 마지막 단편 세 편은 연결된 형식인데, 인생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고 상실과 실망을 겪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바깥은 여름》(김애란)
김애란 작가의 작품 중 특히 이 단편집을 좋아한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아픔이나 결핍에 대해서 작가는 생생하게 그 답답하고 힘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한 이야기에서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힘들 정도로 때로는 안타깝고 답답했다. 특히 첫 번째 수록된, <입동>이라는 짧은 소설의 마지막 풍경은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다. 남의 불행을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축복받은 집》(줌파 라히리)
줌파 라히리의 책은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단숨에 다 읽을 정도로 쉽게 읽힌다.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가족이나 친구, 부부 관계에 대해, 작가가 이야기로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 같은 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소설 속 인물을 통해, 전 세계를 관통하는 가족관계에서의 갈등에 공감할 수 있다.
《경애의 마음》(김금희)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들을 응원하며 책장을 넘겼다. 요령도 없고 투박한 상수와 무뚝뚝하고 속마음을 알 수 없는 경애의 주변 이야기를 접하며 한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정말 잘 짜여진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이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 술을 마시는 상황 묘사가 어찌나 재미있고 세세한지 책을 읽다 크게 웃기도 했다.
《클라라와 태양》(가즈오 이시구로)
아름다운 책 표지만큼 환상적이면서 무척 슬픈 이야기다.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의 눈에 비친 인간의 세계는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우리가 힘없고 약한 대상에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부모가 자식에게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럼에도 우정과 희망으로 가득 찬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문구를 좋아한다. ‘희망이란 게, 지겹게도 떨쳐버려지질 않지.’
신수정_연세대 강남세브란스 치과보존과 교수, 화가
현재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 치과보존과에서 진료와 교육, 연구를 하고 있다. 치과 교수 활동 외에 틈틈이 붓을 잡고 추억을 그려나가고 있다. 네이버 그라폴리오에서 ‘2019 올해의 NEW 크리에이터’로 선정되었다. 전공 분야의 저서로는 《진료에 도움이 되는 ENDO 오디오북》 《골치 아픈 Crack Tooth의 해결책》(공저) 등이 있다.
Book 메신저는 책과 언어 그리고 독서를 매개로 다양한 실험과 변화를 모색하는 크리에이터를 만나는 인터뷰 코너이다.7월호에서는 현직 교사로 아이들이 몸으로 체험하며 배우는 금융교육을 고민하는 김지환 선생님을 인터뷰했다.김지환 선생님은 《안 해 보면 진짜 진짜 위험한 열세 살 인생 게임》을 출간했으며 이 책으로 2024년 대한민국 경제교육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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