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11월호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김가영 작가를 소개한다.
김가영 작가가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자기 소개 동영상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의 가을을 느낄 수 있다.
Q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현재 우즈베키스탄 기브라이라는 곳에서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시는 부모님과 개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봄에 태어난 중년 고양이 ‘뽀미'와 아직 한 살도 안 된 흰색 어린 고양이 ‘설기’, 래브라도라기에는 귀가 유난히 작고 덩치가 송아지만큼이나 크지만 겁이 많은 ‘시루’, 그리고 마당을 지켜주시는 100살이 넘으신 호두나무 ‘호순할미'와 함께 지내고 있다.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매일 하늘을 보고, 가끔 글을 쓰고, 자주 웃으려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사람이다.
Q 지난해 에세이집 《책장 속 구두는 잘 있는, 가영》을 출간했다. 책이 나왔을 때 기분이 어땠는가. 10년의 습작기를 통과한 글을 담았고, 온몸이 굳어 검지 두 개만으로 글을 썼다는 기사를 보았다. 글 쓰는 과정이 궁금하다.
A 아주 오래 꿈꿔왔던 일이 현실이 되어 한참을 몽롱한 상태로 보냈다. ‘이 꿈에서 깨어나면 어쩌지’ 두려워했다가, 작가라고 불리는 게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어두운 방에 숨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책이 나오기만 하면 세상이 다 내 것처럼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는데, 그 이후에 찾아온 감정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혼란스럽기도 했다. 평소 가까웠던 사람들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책에 다 담아내고 나니 마음 주머니가 텅 비어버린 것처럼 허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책을 잘 읽었다는 감사한 말들과 응원들이 주머니를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내가 글을 쓰는 과정은 다른 작가님들과 많이 다를 거다. 예전에는 키보드로 글을 썼지만, 현재는 핸드폰 터치 자판에 양손 검지만을 이용해 써나간다. 오른손 손가락 다섯 개와 왼손 집게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지만, 글을 쓸 때 가장 움직이기 편한 손가락은 양손 검지다. 그마저도 오타가 자주 나서 쓰는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더 많이 들고 글 한 줄 쓰는 데 10분 넘게 걸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말을 가장 잘 들어주는 고마운 두 손가락이다.
Q 요즘의 하루 일상은 어떤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무엇에 빠져 있는지, 관심사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A 휠체어에 오래 앉아 있으면 몸에 무리가 와 하루를 느지막이 시작한다. 오후 1시에 일어나 천천히 잠에서 깨고, 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을 마시면 오후 3시가 된다. 이때부터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해지는 시간이 되면 마당으로 나가 노을을 바라보며 해님의 퇴근길 배웅을 하기도 한다. 하늘이 붉게 물드는 그 순간을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밤 11시에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새벽까지 시간을 보낸다. 글에 대한 아이디어나 구상은 거의 밤 12시 이후 깊은 밤에 포근한 이불 속에서 떠오른다.
이렇듯 거의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요즘 빠져 있는 건 미니어처 만들기다. 작은 나뭇조각들을 붙이고 끼워 맞추며 벚꽃 피는 거리와 작은 책장 같은 것들을 만들며 즐거움을 느낀다. 아직 손이 움직이고 이렇게 만들고 싶은 걸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키고 행복하게 해준다. 그리고 하루에 30번쯤 “설기 너무 귀엽다”라고 말하기. 역시 귀여운 존재를 바라보는 건 언제나 가장 빠르게 행복을 충전하는 방법 같다.
Q 정규학교를 포기하고 홈스쿨링으로 많은 책을 읽은 김가영 작가에겐 ‘책이야말로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었을 듯하다. 김가영 작가에게 책이란?
A 맞다. 나에게 책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창이었다. 비록 집 안을 벗어날 수 없지만, 책만 있다면 정글 숲도, 유럽의 거리도 간접 경험해볼 수 있었다. 작가님들의 생생한 표현을 읽고 있자면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그 공간들의 냄새가 코끝에서 맴도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 책이라는 건 삶에 있어 정말 큰 의미가 있다. 가족 사이에서 내 별명이 화초다. 제때 물을 주고, 볕을 보여주고, 세상의 풍파로부터 지켜줘야 하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생겼다. 그런 나에게 책은 창으로 들어오는 볕이었다. 문학이라는 창은 해가 지지 않고, 언제나 기분 좋은 바람으로 먼지를 털어내 주고, 세상의 속삭이는 소리를 들려주는 소중한 창이었다. 그래서 마음의 잎사귀들이 시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Q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는데, 문학은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나. 그리고 처음으로 뭔가를 쓰고 싶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나.
A 아버지가 책을 좋아하셔서 집에 책이 많았다. 한국에 가면 늘 책을 사다 주셨는데, 그 선물이 그렇게 좋았다. 만화로 된 톨스토이와 한국 설화들을 읽으며 책에 흥미를 가졌고 그 애정이 차차 커져 문학까지 자연스럽게 닿았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내가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으셨던 어머니가 한인회가 주최한 백일장에 글을 내보라고 권하셨다. 그때 마침 태어나 처음 짧은 여행을 다녀온 참이라 어머니는 그 여행 이야기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어차피 잘 쓰지도 못할 텐데, 다른 한국인 아이들이 비웃을 거야.’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앉아 입이 댓 발 나온 채로 썼던 그 글로 백일장 금상을 받는 순간 알았던 것 같다. 나도 잘하는 게 있구나, 나도 글을 쓸 수 있구나. 만화책 속 주인공이 자신의 신비한 능력을 깨닫게 되는 순간처럼 나에게 특별한 능력이 번쩍하고 생긴 것 같았다. 그때 생각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돼야겠다.
Q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어떤 책인가. 책 선택의 기준이나 책을 읽는 김가영 작가만의 방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A 《파친코》를 읽고 있다. 드라마를 보고 감동을 받아 꼭 책으로도 읽어보고 싶어 한국에서 우즈벡까지 종이책을 실어 왔다. 힘들게 받은 책이라 한 장 한 장 귀하게 읽고 있다. 이주 한국인들의 이야기라 더 감정이 이입되는 것 같다. 책을 고를 때 종이책과 전자책을 고르는 기준에 조금 차이가 있다. 전자책은 상위 랭킹의 작품들 위주로 읽는 편이고, 종이책은 좋아하는 작가들의 신간이나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을 책으로 고르려고 한다. 종이책은 비행기로 실어 와야 해서 몇 번의 고심을 거쳐야 비로소 책장에 입주시킬 수 있다.
책을 읽기 전 특별히 하는 의식은 없지만, 책을 펼치기 전에 손을 조금 주무르며 풀어준다. 내게는 종이책을 펼친 채 잡고 있는 게 힘이 들 때도 있어서, 잡고 있던 책이 몸을 터는 강아지처럼 손에서 달아나지 않게 검지와 중지 사이에 책장을 끼우고 꽉 잡으려 힘을 준다. 종이책은 확실히 전자책보다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역시 책은 종이의 감촉을 느끼며 읽는 걸 가장 좋아한다.
Q 지난해 발간한 책을 소개한 신문 기사에 ‘몸은 비록 휠체어에 속박됐지만, 상상력에는 족쇄가 없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장애의 고통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소개되었다. 김가영 작가에게 상상력이란?
A 문학이 나에게 세상으로 통하는 창이라면 상상력은 그걸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라고 할까. 상상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글을 읽어도 그 장면들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가 없으니까. 나는 워낙 생각이 많고 대개는 허무맹랑한 상상들뿐이라 누군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면 깜짝 놀라겠지만, 나에게 상상도 허락되지 않았다면 매일 같은 일상을 버티기 힘들었을 거다.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없어 공허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다. 상상의 눈으로 보면 우중충한 비구름도 포근한 솜이불로 볼 수 있다. 솜이불이 비를 내린다면 하늘에서 목화꽃이 빗방울처럼 내리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나의 무미건조한 일상을 윤택하게 해준다.
Q “누군가 내게 고향이 어디냐 묻는다면 나는 태어난 곳 ‘광주’가 아닌 우즈벡 ‘기브라이’라고 할 것 같다”고 했다. 지금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는데,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베크인, 러시아인, 카자크인, 고려인, 타타르인, 아제르바이잔인 등 많은 민족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도 했다. 김가영 작가에게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A 내가 자란 작은 마을은 유난히도 많은 민족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인터넷 번역기는 꿈도 못 꾸던 시절, 마을 주민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물건의 어느 나라 글인지도 모를 설명서를 받아 들어도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그곳에서라면 마음만 먹으면 풀어내지 못할 언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어, 영어, 카자크어, 아랍어 등등. 정말 다양한 민족만큼이나 다양한 언어가 존재했다. 나는 그중에 한국어를 담당했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의 생김이 비슷해 구분이 힘들다며 내게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았다. 시장을 다녀온 아주머니들이 한국 물건이라며 두 배의 값을 주고 샀다는 물건들을 마치 보석 감별사에게 보이듯 들이미시고, 나는 또 대단한 일이라도 하듯 미간을 잔뜩 구기고 글자들을 들여다봤다. 물건에는 십중팔구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가 적혀 있었지만, ‘역시 까욘이 보면 한국 물건인지 중국 짝퉁인지 바로 알 수 있다니까!’라며 빠른 걸음으로 물건을 바꾸러 가는 아주머니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렇게 한국어는 나에게 자부심이 되었다. 한국어로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겐 나 자신을 잃지 않게 해준 흙 한 줌과 같다. 아무리 땅이 기름지다고 해도, 어떤 씨앗들은 그것에 잘 맞지 않는 땅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나는 나의 모국어 한글 위에 있어야 꽃을 피워낼 수 있는 사람이다.
Q 주변에 김가영 작가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분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우즈벡의 이웃들이나 자신을 돌봐준 러시아인 ‘발랴 아줌마’, ‘릴리야 아줌마’ 등에 대해서 계속 쓸 생각은 없나.
A 정말 감사하게도 내 곁에는 사랑을 주신 분들이 참 많았다. 그중에도 발랴 아줌마와 릴리야 아줌마는 나의 어린 시절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신 분들이다. 이 두 분이 없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거의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수는 없지만, 자주 연락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내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두 분은 아마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내 글 안에서 함께하실 거다. 감사하게도 아주머니들도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Q 책 소개 사진과 영상 속에서도 핑크색 머리로 등장하는데, 혹시 핑크 머리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A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내 모습이 너무 무채색인 거다. ‘거울 속 내 모습에도 색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는데 매일 색조 화장을 할 수도 없지 않나. 그래서 머리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서른 살 때부터 일곱 가지 무지개 색을 하나씩 머리에 물들이기 시작해서 지금은 그중 나에게 잘 어울리는 핑크색으로 정착했다. 핑크 머리를 하고 있으면 앞머리 탈모도 눈에 덜 띄는 것 같아 그 점도 맘에 든다. 처음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총천연색으로 염색한 내 모습에 경악했던 엄마도 이제는 내 전담 미용사님이자 탈색의 달인이 다 되셨다. 그 어렵다는 ‘한 번의 탈색으로 백발 만들기’도 마스터하셨다(비법은 머리카락은 김장 배추, 탈색 약은 양념이라고 생각하고 듬뿍 바르는 것이라고 한다). 엄마는 이제 내 검정 머리가 어색하다고 하신다.
Q 이 책에 실린 <완벽한 하루 이용권>을 읽으면 정말 큰 감동을 느끼게 된다. 장애가 없는 상태로 온전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하루를 꿈꾸는 작가의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누군가 그런 완벽한 하루 이용 쿠폰을 준다면 더 하고 싶은 활동이 있는지 궁금하다.
A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완벽한 하루 이용권>을 읽고 감동받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하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글을 쓰며 가장 많이 힘들었다. 그 글 속의 순간들은 영원히 오지 않을, 현실이 될 수 없는 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는 자주 상상하던 일들을 글로 새기고 있자니 ‘절대 이룰 수 없는 소망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그래서 세 번이나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쓰길 참 잘 했다고 생각한다. 그 글을 쓰고 나니 이제는 못 쓸 게 없겠다는 자신감도 조금 생겼다.
완벽한 하루 이용권이 주어진다면 난 여전히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지금이라면 바스락거리는 낙엽 위를 아주 오래 걸어보고 싶다. 더 이상 바삭거리는 낙엽이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오래 가을 길을 산책해보고 싶다. 그러다 밤나무를 만나면 밤송이를 두 발로 벌려 밤알을 주워도 재밌을 것 같다. 하지만 우즈벡은 밤나무가 없다는 게 아쉽다고 할까.
Q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인지,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는지 소개해줄 수 있나. 또 드라마 작가가 꿈이라고 했는데, 어떤 드라마를 쓰고 싶은가.
A 아직 소개를 할 만한 단계가 아니라 조금 조심스럽지만, 감사하게도 협업 작업을 제안받아 다음 작품은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서로 조율하며 방향을 맞추는 중이라 아직 첫 줄도 쓰지 못했지만, 재밌는 여정이 될 것 같아 아주 설레며 기대하고 있다.
드라마는 내가 책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이고 그래서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만약 드라마를 쓰게 된다면 장애인, 노인, 어린아이들 같은, 드라마에서는 중앙에서 한 발짝 물러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살아가며 재벌이나 초능력자로 살아볼 기회는 쉽게 얻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누구나 어린아이로 살아보았고, 노인으로 살아갈 것이고, 어느 순간에는 장애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으니까. 모든 이들의 삶에 한순간은 존재할 이야기를 쓰고 싶다.
Q 지금 우리 사회,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어려운 질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 미간을 찡그리고, 타인의 기쁨에 함께 미소 지을 수 있는 ‘공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고통받는 이가 더 생기지 않도록 평화를 바라게 되고, 아이의 미소가 계속될 수 있도록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어지니까. 평화를 향한 의지와 미래를 향한 용기도 결국 ‘공감’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생을 오로지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에 바친 한 남자. 아무런 인연도 없던 이들의 마지막 순간 앞에 몸을 낮추고 애도하며 생전 고인의 사랑과 감사를 묻는다. 이야기는 애도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사랑하고, 사랑하게 될 사람들의 시선으로 쓰였다. 죽음이 머문 자리만을 찾아다니는 애도하는 사람을 좇으며 깨닫게 되는 건 '죽음' 그 자체가 모든 것의 끝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첫 장을 넘길 때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가장 큰 감정의 폭을 느낀 책이었다. 시작은 긴장이었지만 마지막에 남은 것은 위로였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노희경)
얼마나 사랑으로 충만한 책이기에 이토록 자신감 가득한 제목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노희경 작가님의 책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그분의 드라마들이 떠올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숨김없이 드러낸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는 몰래 남의 일기장을 읽어본 기분이 들었다. 어떤 순간에는 책 속에 나를 세워두기도 하며 나는 과연 이토록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본 적이 있는가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 유죄가 되어버리는 순간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을 때라는 것도. 매년 가을마다 읽게 되는 책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
세 명의 청춘이 있다.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최대한 자신의 존재감을 낮추는 ‘그녀’, 냉소적이지만 깊은 생각을 가진 ‘요한’, 그리고 그들에게서 누군가를 혹은 자신을 떠올리는 ‘나’. 그들은 각자 흔들리고 있지만 그 흔들림은 오히려 상대방의 어깨에 기댈 순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희망을 찾아 호프집으로 향하는 그 지친 발걸음에도 낭만이 흐르는 이야기. 두 개의 다른 결말은 책을 덮은 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산이 울렸다》(할레드 호세이니)
아버지가 들려주는 우화로 시작해 자라나는 나무처럼 여러 갈래의 가지로 뻗어나가는 이야기. 부유한 집으로 입양을 가게 되는 여동생 파리, 그리고 그런 동생을 너무나 사랑한 오빠 압둘라. 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한 시점에 머물지 않고 그들과 연결된 인물에서 인물로 넘어가며 전개된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배경과 역사적 사실들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두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기까지 퇴색되지 않은, 가족을 향한 사랑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긴긴밤》(루리)
동화는 아이들이 읽는 글이니 아이들의 화법으로만 쓰여야 하는 줄 알았다. ‘긴긴밤'은 이런 나의 편견을 모두 깨버린 책이다. 인간에게 상처를 입고 지구에 남은 마지막 흰바위코뿔소가 되어버린 노든. 허허벌판에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아기 펭귄. 이 어울리지 않는 둘이 바다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아름답다. 마지막 일러스트를 마주한 순간에는 코뿔소의 마음이 되어 안도의 눈물이 났다. 담백한 문체는 아픈 이야기도 따뜻하게 들려주는 힘을 가졌다. 이런 책이야말로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를 위한 동화가 아닐까.
김가영_작가
1991년 봄 광주광역시 출생으로 세 살 때 근위축증이란 희귀병 진단을 받으며 유년기부터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야 했다. 여덟 살 때 가족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했다. 우즈베키스탄 한인회가 주최한 백일장에서 입상한 경험이 있고, 재외동포문학상에서 장려상과 가작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인근 기브라이 지역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책장 속 그 구두는 잘 있는, 가영》이 있다.
Q 강북문화정보도서관은 언제부터 이용하셨나요?A 강북문화정보도서관을 처음 이용한 것은 중학생 때예요. 사실 그때는 책을 빌려 보려고 간 게 아니라 시험 기간에 공부하기 위해 방문했어요. 친구와 어디에서 공부할지 고민하다가 우리 지역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 가자고 했던 것 같아요. Q 도서관에 담긴 특별한 추억이 있다면요?A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지하 식
신구문화상(新丘文化賞)은 신구문화사의 창립자 故 우촌 이종익 선생(1923~1990)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한 우촌 정신을 미래세대로 잇기 위해 올해 처음 제정한 상이다. ‘올해의사서상’, ‘올해의책’ 총 두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며, 이번 제2회 시상식은 10월 17일 제61회 전국도서관대회가 열리는 정선 하이원리조트 컨벤
다독가들은 책에 영향을 받아 삶의 전환점을 맞은 분을 인터뷰 해서 책의 가치를 꾸준히 알린 더라이브러리의 대표 콘텐츠이다.2025년부터 다독가들의 형식을 특정 분야의 필자를 인터뷰 해서 그 분야의 책을 읽는 N가지 방식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2025년 4월호로 《애도의 미학》의 저자이자 예술철학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한선아 작가를 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