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사회학 중에서도 농촌사회학을 공부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A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정의 내리기도 어려운데 ‘농촌사회학’이 무엇인지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농업 관계자, 예를 들어 직접 농사를 짓는지, 아니면 농산물 유통을 하는지, 하다못해 농업 담당 공무원인지 질문을 받을 때도 많다. 사회학에는 다양한 분과가 있지만 농촌사회학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농촌에서 도시로 떠나온 부모님은 결국 다시 농사를 짓게 되셨는데, 한참 예민한 청소년 시절 농업으로 집의 생계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많이 느꼈다. 부모님은 그 누구보다 근면성실하고 아버지는 술 담배도 하지 않는 분이었다. 두 분이 여행도 한 번 가지 못하고 일만 하는데도 늘 형편이 좀 밭았다. 그러다 엄마가 덜컥 병을 얻어 몇 달 앓고는 돌아가셨는데 그때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안 그래도 방황할 나이에, 여러 모로 상실감도 크고 엄마가 왜 떠났을지 끊임없이 되물었다. 그리고 여성 농민의 곤곤한 삶에 닿더라. 게다가 연달아 몇 년 안에 농사짓고 제대로 검진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채로 외삼촌, 이모들도 돌아가셨다. 충격도 슬픔도 분노도 커지더라.
농촌으로 가서 농민운동을 할까 어쩔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공부의 길로 들어섰다. 도시의 소비자(문화)가 농민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군다는 것, 싸고 예쁘고 친환경적이기까지 하라는 그 요구의 부당함을 알리고도 싶었다. 그래서 농촌사회학을 공부하고 여기저기 대중매체에 농촌과 농업, 농민의 속사정을 조금이라도 알리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지만 많이 모자란다.
Q 농촌사회학자가 주로 연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분야나 주제를 소개해 달라.
A 산업으로서의 농업, 즉 먹거리를 생산하는 산업인 농업의 측면과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으로서의 농촌을 좀 분리해서 보는 편이다. 물론 두 요소가 밀착되어 있지만. 일단 도시 소비자들을 만날 때는 왜 한국의 농업이 이렇게 척박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치킨, 라면, 과자, 빵, 아이스크림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음식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6.25 한국전쟁 전후에 이미 밀가루, 설탕, 콩, 옥수수 등 초국적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한 산업 원료를 받아들여 이를 가공해서 우리가 먹고살았던 역사를 들여다본다. 이를 ‘글로벌푸드시스템’ 혹은 ‘기업식량체제’라고 하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구상의 가장 가난하고 작은 나라였던 한국이 이런 거대한 체제의 흐름에서 어떤 위치를 갖게 되었겠느냐는 거다. 한국 농업이 갖고 있는 역사적, 제도적 취약성을 설명하려 애쓴다. 농민들에게는 최소한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무능해서가 아니다’라는 것 정도는 알려드리려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도 맛있는 농산물만 먹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심지어 그 농산물이 오기까지의 복잡다단한 과정도), 농업과 농민들의 삶이 왜 처음부터 많이 꼬일 수밖에 없었는지 해명하면서 적어도 불한당 같은 소비자는 되지 말자 정도의 의미를 알리고 싶었다.
내가 선호하는 말은 아니지만 나를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는 저자로 부르더라. 그래서 지금 가장 심각하게 기후위기를 정통으로 때려맞고(이 표현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있는 농업의 사정을 많이 들여다보고 있다. 데이터도 많이 들여다보지만 그 추세가 맞는지 직접 농민들과 농촌 주민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글로 정리해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근래엔 농촌의 초고령화 문제와 지역의 과소화 문제(제발 인구소멸이란 말은 안 썼으면 좋겠다. 삶이 그리 쉽게 소멸되던가), 농업 이주노동 문제와 청년 귀농귀촌 문제, 여성농민 정책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아주 깊은 연구를 한다기보다는 추이를 보는 정도로 여겨주면 될 것 같다.
Q 다양한 곳에서 강연 요청이 많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강연 일화를 들려준다면?
A 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꽤 긴 시간 지냈다. 이제 학교 강의는 하고 있지 않고 주로 농촌 지역의 학교, 주민들(면자치위원회), 도시 소비자들(생협 조합원이나 먹거리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 학교급식 당사자들(학부모, 영양(교)사, 조리노동자), 외식자영업자들을 만나고 있다.
아무래도 현장이 이렇다 보니 농산물을 참 많이 받아온다. 사과, 무, 쌀, 밤, 장아찌, 된장, 간장 등등. 자동차가 없어 대중교통으로만 다니는데 이런 귀한 먹거리들을 이고 지고 가져올 때 그 무게가 물리적인 무게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음의 무게 같다. 화폐 거래가 아닌 마음의 거래. 이런 마음에 매혹되어 여태껏 돌아다니고 있지 싶다. 잘 받아서 잘 해먹고 있다는 증거를 SNS에 남기다 보니(이걸 요즘은 인증샷이라고 하던가) 재미가 있는지 더 퍼주시는 느낌이다. 들고 오면서 뭉클하고 속상하고 그런 복잡한 마음들이 늘 있다.
얼마 전에는 산청 간디고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농사지은 거라며 무를 세 개 주었다. 몇 년 전에는 홍천농업고등학교 양계반 학생들에게 계란을 얻어오면서 많이 울었다. 나는 말만 팔고 다니는데 청소년들이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무게와 물성에 많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Q 다들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땅은 괜찮은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농촌문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문제가 앞으로 미래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귀농귀촌 관련한 강의도 종종 맡아서 하는데, 구체적인 실무교육은 내 담당이 아니고 농촌사회에 대한 사전 교양교육이라고 보면 된다. 농촌으로 간다는 것은 ‘이사’가 아닌 ‘이민’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연구자들이 많이 이야기한다. 나도 귀농귀촌을 하기 전에 정말 심사숙고를 많이 해야 한다고, ‘자나깨나 귀농조심 고민하자 나의귀촌’ 이런 구호를 외치자고도 한다.
농촌으로 가는 귀촌도, 가서 농업을 주업으로 삼는 귀농도 지금의 농촌 상황에서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가 아니라 ‘기후재난’이란 말을 쓸 정도로 기후의 급격한 변덕과 변화에 베테랑 농민들도 제대로 농사짓기가 어렵다고 하니 말이다. 기후위기와 농업의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시급하다고 할까. 기후위기 문제는 당장은 농민들의 소득 저하(수확량도 줄고 상품성 있는 수확물도 건지기 어려운)지만 이미 먹거리 위기가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과 농촌 문제를 공통의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해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또 시급한 농촌의 문제는 고령화에 따른 탈농 문제로, 평균 70세의 농민들이 10년 내에 은퇴를 준비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위기감을 공유해야 한다. 올해 사과 값 참 비싸다고들 아우성이다. 그런데 이는 사과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삶이 더욱 꼬였다는 뜻이다. 농촌과 농업의 위기는 곧 도시에서의 더욱 혹독한 위기가 될 것이다. 하다못해 자기 텃밭도 한 뙈기 없는 도시 소비자들이야말로 위기의 정점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해 보인다. 나는 강의 말미에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꼭 받곤 한다. 그럼 친한 농민을 각 가정당 다섯 명에서 열 명은 사귀자, 라고 한다. 지금부터 아양도 떨고 얼굴도 익혀놓고, 또 생산한 농산물을 주변에 소개도 하고 팔아보기도 하자. 사람 마음 다 거기에서 거긴데, 그러면 훗날 나와 내 가족들 먼저 떠올려주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Q 논문을 쓰는 연구자로서, 책을 쓰는 저자로서 취재가 중요할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취재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취재할 때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지도 궁금하다. 덧붙여 취재를 잘 하는 나만의 팁은?
A 취재를 좀 많이 하는 편에 속한다고(편집자들 평가에 따르면) 하던데, 아무래도 논문이나 기초 자료를 숙독하고 의문이 드는 것들은 적어둔다. 그리고 현장에 가서 정말 이 논의가 맞는지를 질문한다. 공부는 결국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질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그 질문의 여정을 따라 여행을 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종착점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농촌문제의 끝을 내가 알 수도 없고. 다만 그 여정에 농촌 주민들, 농민들(이들은 내 이모, 삼촌, 엄마, 큰엄마이기도 하다)과 손잡고 나아가고 싶다는 기분으로 취재를 한다.
자영업자를 뵐 때도 한참 좀 사귄 다음에(일종의 단골 만들기다), 주머니에 현금 넣고(카드 안 쓰고) 안주도 많이 시키고 술도 많이 시켜 먹고 몇 번 방문한다. 그럼 얼굴을 알아봐준다. 그리고 슬슬 말을 건다. 얼마 전에는 ‘공주집’이라고 내가 학생 때 살던 동네의 오래된 포장마차엘 갔었다. 고등학생 때는 감히 가볼 수 없던 곳이어서 늘 궁금했다. 왜 공주집일까······ 했더니 주인 할머니께서 찐한 충남 사투리를 쓰시더라. 아! 공주분이시구나!! 했다. 그랬더니 간판 이름 정할 때의 에피소드를 줄줄 말씀해주시더라.
취재를 할 때는 사람을 향하고 그 사람의 서사를 상상해보곤 한다. 농촌의 빈집이나 점방 같은 곳을 보면 누가 여기에서 살다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를 그려보는 거다. 그러면 글이나 말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풍부해진다. 내가 착각한 점(막 화려하고 예쁘게 입으시는 걸 보고 혹시 공주 취향이신가 했다거나), 이것조차도 서사가 될 수 있잖나.
본격 인터뷰어로 나서는 경우에는 작은 녹음기를 쓰곤 하지만 대체로 그냥 듣는다. 수첩을 꺼내놓고 키워드 중심의 메모를 한다. 사람 앞에 두고 노트북을 켜지는 못하니까. 그리고 바로 자리를 옮겨서 노트북에 스토리 중심으로 적어둔다. 남들이 내 메모를 보면 못 알아본다. 보안은 아닌데, 어쩌다 보안을 걸어놓은 것처럼 나의 단상 중심으로 기록을 해둔다.
재작년 가축방역사들의 현장 이야기를 취재할 때는 동료들과 협업을 했다. 누구는 집중적으로 묻고 누구는 집중적으로 타이핑하는 방식으로 분업과 협업을 활용하기도 한다. 실수를 줄여나갈 수 있다. 녹음된 파일은 크로바 노트를 풀어서 구멍 난 기억을 메우고 서로 교차해서 확인을 하는데 든든하더라.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
Q 치킨을 통해서 양계산업 문제뿐만 아니라 청년고용 문제 등 대한민국 사회 전반을 들여다본 《대한민국 치킨전》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인의 다양한 현실 문제를 대변하고 있는 음식산업으로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A 2014년에 《대한민국 치킨전》을 냈으니 벌써 10년이 되어가는데, 책도 꽤 팔린 편이고 아직도 꾸준히 나가기는 하더라. 중간에 증보판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 개정판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씀들을 주변에서 해주시지만 아마 식품산업과 한국 요식업의 기본 골조는 쉽사리 변하지 않을 거다. 10년 전에 매출 1위 브랜드가 2위 정도로 바뀌었을 뿐이니까.
대한민국 치킨전은 대한민국 피자전이 되어도 좋고 대한민국 떡볶이전, 삼겹살전이 되어도 맥락은 비슷하게 나올 거다. 먹거리의 산업화, 기업화 차원에서. 그럼 음식을 실제로 다루는 사람들, 자영업자는 그 기업 체제의 가장 작은 나사와 같은 존재로 가치매김 한다. 최근에 유행하는 탕후루와 마라탕 열풍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가 얽혀 있을 것 같다. 반짝 뜨고 지는 음식들의 역사를 보면 음식이 패스트패션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도 볼 수 있겠다.
Q 농촌사회학자로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풍경이 있다면?
A 그렇게 농사가 힘들고 전망이 없다면서도 만나기만 하면 새로운 품종과 작황 이야기, 시세 이야기를 나누는 농민들의 대화가 꿈결같이 들릴 때가 있다. 우리 아버지 연세의(80대) 늙은 농민이 종묘상에 가서 심사숙고하며 과수나무를 고르는 모습을 볼 때 ‘삶은 지속된다’는 말을 떠올리곤 한다. 과수는 심어서 최소 3년, 대개는 5년 뒤에 첫 수확을 얻는데, 저 늙은 농민은 미래를 준비하는구나 싶어서다. 그럴 때 겸손해지자 생각한다. 너무 징징대지 말자, 하면서.
그리고 할머니들이 집에서 정성스럽게 꽃을 가꾸는 것을 볼 때 형언하기 어려운 뭉클함을 느낀다. 하루 종일 밭을 매고 와서도 저렇게 꽃을 돌보는 이유는? 아름다움에 매혹된 존재들이구나, 자신의 삶을 기꺼이 선택한 이들이구나, 싶다. 호호 할머니인 제 큰어머니께 어느 날 물었다. 밭 매는 거 지겨울 텐데 집에 와서 또 꽃을 가꾸고 싶으냐고. 큰어머니는 명쾌하게 답하셨다. “이쁘잖여!” 기주떡(증편) 위에 맨드라미꽃으로 예쁘게 장식하기 위해 외숙모가 마당에 맨드라미를 몇 주 심는 마음. 그 마음을 늘 관통하고 싶다.
Q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즐기는 취미로는 어떤 것이 있나.
A 딱히 취미랄 것은 없다. ‘밀크글라스(유백그릇)’ 들여다보는 일을 좋아한다. 중고거래 사이트 같은 데서 옛날 그릇들을 본다. 옛날 그릇이라고 해봤자 내가 자라던 시절에 엄마가 반찬 담아주던 그릇 같은 거다. 그릇에도 유행이 있다. 주방기물에는 한 시대의 역사가 있고 사연이 깃들어있다.
그래서 좀 친한 여성농민들께는 접시 한 장만 달라고 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싶다고. 근래 여든다섯 잡수신 외숙모 그릇을 가져와서 쓰고 있다. 엄마 그릇도 슬금슬금 가져오는 중이다. 삶은 고달픈데 왜 그리 이쁘장한 꽃그림이 그려진 그릇들을 갖고 싶었던 것일까, 오로지 그것만이 엄마들의 세상이었나 싶어서 뭉클하다. 그래서 혹시 싸게(이건 매우 중요!) 중고거래 사이트에 나오면 밀크글라스나 80년대 그릇들을 몇 장 사기도 하고 세트로 구하면 주변에 선물도 한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좋아한다. 어릴 때 텔레비전 없었으면 너무 외롭고 무섭고 쓸쓸했을 것 같다. 집에 혼자 있을 일이 많아서 내게 텔레비전은 친구이기도 하고 보호자이기도 했다. 나를 두고 일을 가던 엄마에게는 든든한 동료였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집에 있으면 <6시 내고향> <한국인의 밥상> <팔도밥상> <시장 사람들> 이런 프로그램을 보는 걸 좋아한다. 우리 애들이 엄마 너무 할머니 같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생존체력을 기르자는 차원에서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기도 했는데 지금은 따로 운동을 하진 않는다. 그런데 차도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많이 걷게 된다. 출장 가면 워낙 농촌은 권역이 넓고 버스는 드물고 또 간 길에 좀 더 들여다보고 싶기도 해서, 걷다가 집에 돌아오면 가볍게 1만 보 채워지는 날이 많더라.
Q 먹방 같은 현상으로 음식이 미디어에서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가 되었다.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에게 밥상이란?
A 먹는 일은 누구에게나 귀하고 즐거운 일이다. 나도 음식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먹는 걸로 싸우는 일(요리경연을 빙자한 서바이벌 게임), 푸드파이터들의 경쟁 등은 보고 있으면 좀 아득해진다. 아니 즐겁게 식구들, 친구들하고 먹고 즐기는 삶도 있는데 왜 음식 갖고 쟁투를 벌이는 것일까 싶어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게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인 것 같기도 하다. 그 나름 상업적 성공을 목표로 하겠지만.
음식점 컨설팅(코칭) 프로그램도 그렇다. 분명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더 이상 외식자영업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사회학 연구자로서 엄중하게 경고하고 싶다. 그런데 콘텐츠로서 자영업 자극하기 프로그램들을 보면 기성세대의 직무유기 같다. 정말 구조적으로도, 시스템으로도 ‘먹는 장사’가 늘어나는 것이 옳지 않으니까.
나에게 밥상은 ‘혼자 먹지만 함께 차린 밥상’이다. 오늘 내가 차려먹는 ‘혼밥’은 기르는 사람, 만들어서 파는 사람, 배달하는 사람, 먹는 나 자신과 음식물을 깨끗하게 처리하는 미화원까지 수많은 관계가 얽힌 ‘혼밥 아닌 관계의 밥’이라고 말하고 싶다. 외로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한 끼 밥을 위해서 손잡은 관계들이고 우리는 그 관계를 먹고 사는 것이니까.
Q 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주제나 쓰고 싶은 책의 내용이 무엇인가.
A 후배들이나 학생들이 읽을 농촌사회학 개론서가 없다는 자각이 들더라. 나도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교재로 삼을 만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대학생 딸아이에게 안내를 한다는 마음으로 농촌사회학 개론서를 써보고 싶다.
《대한민국 치킨전》을 통해 한국의 축산업 문제를 들여다보았는데, 이 산업 자체가 여성 연구자의 눈으로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은 영역이다. 배제가 있고 뭐랄까, 거칠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여성 연구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계속 접근을 해보려는 중이다. 축산업 문제도 따로 떼어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비거니즘, 채식 열풍인데, 확장시키기 위해 한 산업 분야를 배제의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누군가의 생존이지 않나. 그래서 말은 늘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어린이책 작업에도 관심이 있어서 치킨 이야기를 어린이책으로 작업한 《그렇게 치킨이 된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조만간 ‘떡볶이’를 주제로 한 어린이책이 나올 거다. 떡볶이 집을 차려 자립한 우리 시대의 이모, 엄마, 언니들의 이야기다. 앞으로도 우리가 만나는 음식 이야기로 사람의 이야기, 사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보고 싶다.
A 삶의 연결성을 깨닫는 일. 나의 연구영역에서 보자면, 농촌이 사라지면 도시도 파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타인의 슬픔에 말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잠시 눈을 감고 그 눈물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주는 마음도 필요한 것 같다. 특히 사회적 참사에 보태는 험한 말들이 이 세계가 붕괴하는 징조라 느껴질 때가 있다. 저렇게 악랄한 말을 흩뿌릴 때 분명 자신의 삶도 날카롭게 찌를 텐데. 종교의 차원이 아니라 영성적인 삶의 태도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과 자연 모두에 마음을 조금씩은 내주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정은정이 추천하는 책 다섯 권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김홍표)
약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과학 칼럼니스트인 김홍표 저자의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은 우리의 몸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생물학적 일들을 과학적으로 짚어본다. 소위 ‘과알못’인 내게도 인간의 신체와 먹는 행위에 담긴 위대한 생명 역사를 재밌고도 차분하게 알려준다. 먹는 일부터 배설하는 일, 이를 물질대사라고 한다면, 죽음이란 이 물질대사가 멈추는 일이라는 당연한 과학적 결론이 가족의 죽음을 겪은 내게 큰 위로를 주었다. 이학자이면서 사회문화적 현상을 톺아보는 탁월한 식견, 사람에 대한 연민을 지닌 글쓰기로, 먹는 행위는 당대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밀접하다는 것과 함께 건강과 신체의 위계를 돌아보게 된다. 저자의 정제된 글쓰기가 나와 같은 스토리텔러들에게 좀 차분해지라,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조지 오웰)
‘점심으로는 통조림에 든 3페니짜리 스테이크푸딩(가게의 재고품 중 하나인 것 같았다)과 삶은 감자와 쌀푸딩이 나왔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꼈다. 적는 일이 무엇인지 관찰을 하는 일은 곧 관점을 갖는 일임을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통해 배웠다. 조지 오웰이 영국 북부 탄광지대 위건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적은 르포르타주. 한때 말랑말랑한 글쓰기에 질려서 글이 좀 더 차갑고 건조하길 바랐던 적이 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투쟁을 기록한 파견저자로 2년간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죽음을 다룬다는 것이 스펙터클해지더라. 그러기가 싫었다. 그래서 르포타주 장르에 매료되었고 이 글을 만났다. 날이 벼려진 글이지만 끝내 인류애를 지킨 오웰의 글을 통해 면밀하게 관찰하고 뜨겁게 존재를 사랑하는 일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심야인권식당》(류은숙)
인권운동가 류은숙 저자가 인권연구소 ‘창’의 비좁은 부엌에서 음식과 안주를 만들어 사람을 초대하고 먹이고 마시는 이야기다. 먹고 마시고 치우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멋진 글을 쓰고 발언을 하고 특별한 자리에 나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과 글에서 큰 감화와 충격을 받았다. 언제나 나는 내가 차린 음식으로 공치사를 하고 싶었으니까. 인권은 인간이라면 주어지는 당연한 권리이지만 누군가에겐 끝내 갖기 어려워 ‘특권’과도 같은 것들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인권침해의 현장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지만 함께 밥과 술을 먹으면서 동료로 나아가는 과정도 담겨 있다. 무엇보다 정성스럽게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차리고 대접하는 일이야말로 존중의 궁극임을 알려준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밥도 더 열심히 하고 사회운동을 하는 동료들에게 술이라도 한 번 더 사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위대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김해자)
김해자 시인이 천안 광덕산 자락의 농촌에서 농사도 짓고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이야기다. 하루가 다르게 불도저가 밀고 들어오고 공사 소음에 시달리는 농촌 파괴의 현장을 고발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리 인심 사나워지고 개발의 광풍이 불더라도 여전히 허리 굽은 할머니들과 밥을 나누고 수다도 나누는 환대의 농촌 일상에 저절로 마음이 안온해진다. 한편으로 파괴되어가는 지구의 처지에 함께 울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희망을 피워내는 일에 몰두하자고 하는 시인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열심히 살자”가 아닌 “그러니 우리는 미리 백수를 선언합시다. 손이 백 개나 되니 할 일 참 많다고 즐거워합시다”라는 말에 나만 위로를 받는 것은 아니겠지.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김미월, 김이설, 백은선, 안미옥, 이근화, 조혜은)
시쳇말로 ‘잘 나가는’ 여성 작가들이 쓰지 못한 나날과 몸의 고통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다. 아이를 기르고 살림을 하고 가정의 대소사를 치르며 분투하는 이야기. 나 또한 여성 저자이자 엄마로 살고 있는데, 입시생 아이들의 등짝을 두드려가면서 편집자들에게는 번번이 마감 시간을 각 떨어지게 지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주절주절 할 때의 그 민망함이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구나 싶어 위로가 된 글 모음집이다. 시대의 동년배 여성들에게 보내는 연서 같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씀으로써 존재한다!
정은정_농촌사회학자
농촌사회학 연구자. 1977년 충주에서 김장의 계절에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83년 12월 서울로 올라와 서울의 끄트머리에서 자랐고, 20대 이후에는 여기저기 떠돌며 살아왔다. 지금은 부모님이 토마토 농사를 짓던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살고 있다. 농촌·농업·농민의 일이 집안일이기도 하여, 사회학 중에서도 농촌사회학 공부에 뜻을 두었다. 《대한민국 치킨전》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 치킨집 배달 노동자가 주인공인 어린이책 《그렇게 치킨이 된다》를 썼으며, 공저로 《질적 연구자 좌충우돌기》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등이 있다. 《한국생업기술사전》에 양돈과 양계 편을 집필했다. 농촌과 먹거리에 대해 신문에 쓰고, 라디오와 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말하고 있다.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요즘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무엇인가. A 최근 좋아했던 단어는 ‘질색’이다. 소설을 쓰다가 어떤 장면에서 화자가 느끼는 애증의 감정을 ‘질
Q 스티브 잡스를 동경해 전기공학과에 진학했으나, 2022년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하며 SF 소설가로 데뷔했다. 프로필에는 ‘전깃줄이 하늘을 일곱 조각으로 잘라놓은 걸 보다가 문득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나와 있다. 소설을 쓴 계기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들려줄 수 있나. 그리고 소설 중에서도 SF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하다.A 처음에는
OECD가 실시한 국제성인역량조사에서 한국 성인 문해력이 20점 이상 떨어져,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국가 중 하나로 분류됐다(“한국 성인 문해력 10년 사이 20점 이상 하락···무슨 일이?”, 경향신문, 탁지영 기자, 2025.01.29).교실에서 교과서가 태블릿 PC로 대체되고 생성형 AI로 정보는 물론 위로와 공감까지 얻을 수 있는 요즘, 우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