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무려 20년 만에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새로운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헬싱키의 38번째 도서관이기도 하다. 그 주인공이 바로 깔라사따마도서관으로, 그냥 새로운 도서관인 것 말고도 재미있는 특징이 몇 가지 더 있다. 우선은,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의 도서관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도시 한가운데 있는 대형 쇼핑몰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800여 명 되는 주민들이 개관 전에 도서관 디자인에 직접 참여했다.
모든 것이 바쁘게 움직이는 쇼핑몰 2층. 그 한켠에 자리한 깔라사따마도서관은 동화 속 작은 마을 같은 첫인상을 지녔다. 포근한 분위기만큼 정겹고 따뜻한 곳일까? 가족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핀란드 사람들의 어린이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들어갔다.
쇼핑몰 2층에 위치한 깔라사따마도서관 전경 ⓒ최해랑
“왜 20년 만에 만든 도서관이 어린이 도서관이었나요?”
깔라사따마도서관 관장인 에르나를 만나서 처음 던진 질문이었다. 대답에 앞서 에르나 관장이 나에게 물었다.
“깔라사따마 지역에 대해 어느 정도 아세요?”
사실 나도 깔라사따마 주민이라고 하니, 무척 반가워하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깔라사따마는 헬싱키 동쪽 해변가에 위치한 지역으로, ‘헬싱키의 맨해튼’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녹지대 비율이 낮고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많은 곳이다. 대부분 낮은 건물과 자연이 가까이 있는 핀란드와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 또 굉장히 빠르게 개발 중인 지역이기도 해서 2030년까지 약 3만 명의 주민들이 이곳에 살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과 비교하면 적은 숫자지만 약 67만 명이 사는 헬싱키에서는 주민 수가 꽤 많은 편이다. 주민들의 평균 연령도 약 35세로 비교적 낮은 편으로,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런 인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시는 깔라사따마에 어린이 도서관을 열기로 결정했다. 깔라사따마 도서관을 개관하기 전에 인근 지역 도서관에서 대여하는 책의 종류, 이용자들의 주요 연령대 같은 데이터도 자세히 분석했다고 한다. 헬싱키에 있는 38개의 도서관들은 꽤나 촘촘하고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데, 다른 지역의 도서관들은 성인 이용자들을 위한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 깔라사따마에는 어린이 도서관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까 깔라사따마도서관은 녹지대가 부족한 도심에서 자라게 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게 배려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이 직접 디자인한 도서관이에요”
깔라사따마도서관은 올해 1월에 문을 열기 전부터 깔라사따마 주민들과 함께 열한 번의 워크숍을 가졌다. 다섯 번은 프라이빗한 워크숍으로 각기 다른 연령대의 주민들을 초대해서 진행했다. 나머지 한 번은 현재 도서관이 있는 자리를 개방해두고 쇼핑몰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어와서 도서관에 대한 희망 사항이나 의견을 적어두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오픈 워크숍에서 물어본 질문 ‘나는 도서관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면 좋을까?’ ⓒ최해랑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도서관인 만큼 해당 지역 학교의 어린이들과도 따로 다섯 번의 워크숍을 가졌다고 한다. 이때 아이들과 함께한 활동이 참 재미있었다. 어린이들은 직접 깔라사따마도서관의 도면 위에 어떤 장소나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으면 좋겠는지를 그려보고, 도서관에 있었으면 하는 가구들을 찰흙을 이용해서 만들기도 했다. 이런 아이디어들은 그저 활동에서 멈춘 게 아니라, 현재 도서관에 실제로 꽤나 비슷하게 적용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워크숍에서 찰흙으로 만든 낮은 소파는 깔라사따마도서관 안쪽에 배치된 소파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워크숍에서 그린 도서관 배치도와 질문지(좌), 찰흙으로 만든 도서관 가구(우) ⓒ최해랑아이들이 찰흙으로 만든 의자와 거의 비슷하게 생긴 의자들이 놓여 있다. ⓒ최해랑
또 ‘도서관에서 직원들과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도서관에서 꼭 하고 싶은 세 가지 활동’, ‘도서관이 어떤 공간이면 좋겠는지’ 등도 워크숍을 통해 물어보았다고 한다. 이 질문에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 도서관이 각자 또는 함께 조용함과 평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답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일상, 그리고 깔라사따마의 도시적 환경과 대비되는 평온한 오아시스 같은 장소를 도서관이 제공해주길 원했던 것이다. 아이들도 도서관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적 공간을 원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이 부분 역시 도서관 곳곳에 개방형 곡선 디자인으로 잘 반영되어 있다.
도서관 자체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여러 공간이 원형의 원목 파티션으로 절묘하게 나누어져 자신만의 평화를 찾고 싶다는 아이들의 소망이 잘 구현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북적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반쯤은 자신을 숨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책도 읽고 친구들과 놀 수도 있는 도서관이 탄생한 것이다.
개방형 곡선 디자인으로 절묘하게 공간 분할이 되어 있는 도서관 내부 ⓒ최해랑
또한 깔라사따마도서관의 모든 가구는 어린이들 키에 맞추어 만들어졌다. 평일 오후 4시경에 취재를 갔는데 퇴근이 빠른 핀란드인 만큼 아빠들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마침 한 아이가 아빠와 책을 대출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제야 대출대가 아이들 키에 맞추어 굉장히 낮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출대 아래 놓인 받침대 덕분에 아이는 서툴기는 해도 자기 손으로 직접 책을 빌릴 수가 있었다. 작은 부분이지만 섬세한 배려가 아이들이 도서관을 더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험들이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쌓이다 보면 도서관을 더욱 친근하고 안전한 장소로 여기며 자랄 수 있지 않을까.
도서관 대출대에서 아빠와 함께 책을 빌리는 아이 ⓒ최해랑
“무엇이든 한계를 정하지 않는 도서관이에요”
어린이 도서관이라고 하면 갖가지 동물이나 식물 또는 캐릭터 그림들이 잔뜩 그려진 공간이 떠오른다. 그런데 깔라사따마도서관에는 이런 캐릭터나 동식물 자체를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워낙 색채가 다양하고 밝게 꾸며진 공간이라 처음에는 그 점이 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에르나 관장은 여기에도 도서관의 의도가 숨어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책을 읽는 것, 특히 동화나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을 읽는 건 아이들을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데려다 주잖아요. 그러니 그 책을 읽는 공간 또한 아이들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발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우리가 앉아 있는 뒤쪽을 장식한 벽지를 가리켰다.
“여기 있는 것들은 그래도 우리가 아는 바닷속 동물과 가장 가까운 모양이죠. 하지만 이것도 되도록 추상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에르나의 설명을 듣고 난 뒤 다시 도서관을 둘러보니 과연 추상적인 형태의 장식물이 많았다.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생각하고 도서관을 디자인한 배려가 참 다정하게 느껴졌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깔라사따마도서관의 각 공간에는 어떠한 이름도 붙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여기는 미팅룸이고 저기는 독서실이라는 식으로 공간의 목적에 대한 정의가 없다. 조금 생소하게 들리긴 했지만 이 또한 도서관의 모든 공간을 자신들이 스스로 정의하면서 자유롭게 이용하라는 배려가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이 제일 먼저 인사받는 도서관이에요”
깔라사따마도서관 스태프 미꼬ⓒ최해랑
깔라사따마도서관의 스태프인 미꼬를 만났다. 미꼬는 지역 초등학교와의 협업 업무를 맡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4학년, 7학년 때 한 번씩 지역 도서관에 반드시 들러야 한다고 한다. 학년별로 각기 다른 활동을 하는데 주로 1학년 아이들에게는 지역 도서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도서관에서 어떻게 책을 빌리는지 등에 대해 알려준다. 4학년과 7학년 아이들에게는 흥미를 느끼는 책을 빌려갈 수 있도록 하는데, 아이들이 올 때마다 북토크를 열어준다고 했다. 북토크에서 미꼬는 학급별 테마에 맞추어 다양한 장르의 책을 소개하고 가끔씩은 북트레일러도 함께 시청한다. 예를 들어 학급에서 어떤 자연 현상이나 과학 개념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면 그와 관련된 책을 북토크에서 소개하는 방식이다. 또한 학급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 개별적으로 도서관에 연락해 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도서관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공예 프로그램이나 방과후 활동을 진행하기도 한다. 핀란드 학교는 교내에 도서관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이처럼 지역 도서관과의 연계 프로그램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어린 학생들을 많이 만나는 미꼬에게 핀란드 어린이들도 한국 어린이들처럼 독서율이나 독서량이 감소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미꼬는 핀란드 역시 최근 들어 어린이들의 독서율이 점점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핀란드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어떻게 논의하고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미꼬는 책 읽는 즐거움에 대해 더 많이 논의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어떻게 하면 독서의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깔라사따마도서관에서는 매달 한 번씩 핀란드의 국민 만화책인 도널드덕 만화책을 함께 보고 토론하는 북클럽 활동이 열린다. 만화책을 함께 본다는 게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미꼬는 오히려 만화책을 읽음으로써 책을 잘 읽지 않는 아이들도 좀 더 쉽게 북클럽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만화책에서도 아이들은 새로운 어휘를 찾을 수 있고, 이러한 어휘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미꼬가 아이들에게 만화책을 권하면 학교 선생님들이 가끔씩 질문을 던진단다.
“왜 진짜 책을 보여주지 않고 만화책을 권하는 거죠?”
그럴 때면 미꼬는 이렇게 답한다고 했다.
“어른들 시선에서 진짜 책과 가짜 책을 나누는 게 아이들의 독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보니 나도 어렸을 때 《먼 나라 이웃 나라》 《그리스 로마 신화》같은 만화책을 열심히 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미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깔라사따마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느냐에 집중하기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 긍정적인 기억을 연결시키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미꼬에게 어린이도서관에서 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미꼬는 잠시 생각하더니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인사하는 거예요.”
유모차를 탄 아이가 아빠, 엄마와 도서관에 들어오면 유모차를 탄 아이에게 제일 먼저 인사를 건넨다고 했다. 아기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수 있지만 꼭 그렇게 하는 것이 도서관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미꼬는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가장 존중받는다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깔라사따마 도서관 내부 서가 풍경 ⓒ최해랑
깔라사따마도서관을 취재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7년 연속 뽑히는 나라의 어린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 조금은 더 깊게 알 수 있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그저 책을 읽고 빌리는 장소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책과 함께하는 공간으로서 아이들이 얼마나 큰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지에 더 집중을 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 의견이 하나하나 반영되어 만들어진 도서관이 방치되는 구석 하나 없이 사랑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깔라사따마도서관은 동화 속 작은 마을 같은 첫인상만큼이나 포근하고 정겨운 공간이었다.
정서원_디지털 마케터
20대의 끝자락에 핀란드로 넘어와 4년째 거주하고 있다.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에서 마케팅 석사를 전공하고 핀테크 업계에서 디지털 마케터로 근무 중이다. 쉬는 시간에는 핀란드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산책하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얕게 공부하는 것을 즐긴다.
4년 전,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알토대학으로 유학을 왔다. 연고 없는 이국땅에서 생활한다는 게 녹록지 않은 일임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런데 수시로 불쑥불쑥 밀려드는 외로움과 헛헛함은 짐작했던 것 이상이었다. 사회적인 활동 공간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외딴 섬에 갇힌 듯한 소외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나는 마치 한국에서 28년 동안 살면서 하나하나 획득했던 생
“핀란드의 도서관법에 대해 알고 있나요?”‘시민의 거실’로 불리는 오디. 그곳의 사서 하르 아날라(Harri Annala)가 내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또 핀란드에 살면서도 도서관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내가 도서관법, 그것도 핀란드의 도서관법에 대해 알 리 없었다. 당황해하는 나에게 하르가 친절하게 설명했다.“핀란드의 모든 공공도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한라도서관 진입로, 방선문계곡 숲길 ⓒ강영아 도서관과 자연의 조화《나니아 연대기》에서 수잔이 옷장 문을 열고 신비한 세계로 진입하는 경험을 하듯 이곳, 제주에도 비밀의 문을 가진 도서관이 있다. 한라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바깥 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