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특집칼럼] 문학평론가 이병국이 MZ에게 추천하는 한국소설 10권 <3>: 부조리한 세계를 향한 젊은 세대의 응전
이병국_시인, 문학평론가
2025-04-0813:13
2024년 10월 1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호명했다. 더 라이브러리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맞이해 다양한 관점에서 한국 문학이 가진 힘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노벨문학상 특집 칼럼]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병국이 MZ가 읽을 만한 한국 소설 10권을 추천한다.
우리나라 코로나19 첫 확진자는 2020년 1월 20일에 나왔다. 약 한 달 뒤인 2월 18일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코로나19 감염 확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K-방역이라는 일련의 방역 시스템과 국민의 자발적 방역 동참으로 확진자 수는 들쑥날쑥하면서 조금씩 안정화되었지만, 경험하였다시피 세계적 제약회사들의 백신이 유통되기까지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원인이 무엇이든 그 기저에 ‘인류세(Anthropocene)’의 인간 중심적 사고가 있음은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코로나19는 생물학적으로 취약한 존재뿐만 아니라 주거, 노동 조건이 열악한 경제적 약자의 불평등 문제를 가시화하였으며 사회 심층 구조의 모순을 드러내는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그 시기를 관통해온 작가들은 친밀한 존재인 이웃이 나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불안을 형상화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이 자기 삶의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경험하는 상대적 박탈감과 그로 인한 계급적 갈등의 양상을 고발하고자 했다. 물론 여전히 삶에 대한 긍정과 위안을 담지한 채로 말이다. 이 무렵 발표된 소설책 세 권을 마지막으로 추천하며 석 달에 걸친 칼럼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고독의 연대를 포기하지 않는 일
“우리는 예전에도 틀린 적이 있고 여러분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뭘 기다리고 있나요?”(《고독사 워크숍》, 7쪽)는 웨이비 그레이비(Wavy Gravy)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 묘비명 속 문장이다.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 회사 웹사이트에는 단종된 맛 아이스크림의 묘비들이 있고 거기에는 각각 특정한 의미를 지닌 묘비명이 적혀 있다. 웨이비 그레이비는 1993년에서 2001년까지 판매된 아이스크림으로 이제는 만날 수 없다. 그러나 이 묘비명은 단종이, 죽음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며 그것은 ‘여러분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부활하고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지영의 《고독사 워크숍》(민음사, 2022)은 웨이비 그레이비의 묘비명으로 시작한다. 이는 이 소설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제시하며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분명한 위안의 메시지로 기능한다.
소설에서 언급되는 ‘고독사 워크숍’은 조 부장과 서 대리가 운영하는 업체인 심야코인세탁소에서 고독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한 채널 공유 사이트이다. 고독사 프로젝트는 “개인의 고독사가 돌연한 사고사가 아닌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의 자연사가 될 때까지 다양한 방식의 실패를 경험하도록”(28쪽, 이하 인용은 같은 쪽) 돕는 12주 프로그램일 뿐, “안락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는 다르다. 세계로부터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개인에게 고독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매일 더 시시한 인간이 되는 명랑을 누”리고 “가족과 소속된 세계 안에서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증발할 수 있다는 다행을 발견”하게 한다.
고독사 워크숍은 참여한 사람들이 자기만의 고독 채널을 만들어 시시한 일상을 업로드함으로써 자신의 고독과 마주하게 하는 한편 타인의 고독을 지켜보며 관계를 맺어 서로의 고독에 관여하게 한다. 책에 실린 열세 명의 사연은 개별적인 고독이자 관여된 실천으로 연결된다. 작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지점이 여기에 있다고 전한다. 재난에 가까운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느끼게 되는 피폐한 존재성이 개인의 고립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것, 포기하지 않는 삶으로 잇는 고독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 사건과 사고, 더 나아가 참사를 접하면서 타인의 불행에 “다행이야, 내가 아니라서”(223쪽)라고 안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재난 속에서도 ‘나’와 ‘너’를 ‘우리’라는 울타리로 엮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열세 명의 인물들이 어떻게 자신의 채널을 운영하고 소통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로부터 삶을 포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살아 있는 거 자체가 죽여주게 근사한”(376쪽) 것임을 깨달으며 서로에게 다가가는지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사소한 ‘나’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이서수의 《젊은 근희의 행진》(은행나무, 2023)은 동시대 청년 세대가 경험하고 있는 박탈의 상황을 처연하게 그려내고 있는 소설집이다. 특히 2021년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미조의 시대〉와 수상작품집에 실린 자전소설 〈나의 방광 나의 지구〉는 주거 불안과 고용 방식의 문제를 심도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서울에서 우리가 함께 살 집을 구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5천만 원은 아버지가 평생 동안 모은 재산”(31쪽)이지만, 그 돈은 “6평 남짓한 반지하방의 전세금”(같은 쪽)에 불과하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노력으로 얻은 큰 액수일 테지만 인간다운 주거 환경을 확보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저 “돈을 모은다고 집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집을 사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투자 정보를 모으고, 대출 상품을 알아보고, 은행원과 마치 알몸으로 앉아 있는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을 억누르며 상담하고, 집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임장을 나가고, 매도인과 가격을 협상하고, 마침내 매수하여 그때부터 빚을 갚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204쪽) 과정 역시 필요하다. 그만큼 내 한 몸, 마음 편히 누울 공간을 구하는 일은 어렵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한편, 집을 사기 위해 필요한 대출을 받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정규직’임을 우리는 안다.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그저 빛도 들지 않는 반지하방이 아닌 곳을, 그것도 매매가 아닌 전세라도 선택하여 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대출을 받아야 하지만, 비정규직이거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하는 이들에게 은행 문턱은 높기만 하다. 그러니 꿈이 무엇이든 “회사가 요구하는”(9쪽) 조건에 맞춰야 이른바 ‘정상적 삶’의 궤도에 자신을 겨우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한 이에게는 자신이 지닌 “금전적 가치로 환산한 만큼의 공간”(29쪽)에 자신을 욱여넣는 것만이 주어질 따름이다. “꿈과 돈이 연결되어 있다”(〈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 98쪽)는 것은 안타깝지만 오늘날엔 분명한 사실로 인식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꿈을 이루거나 완전히 버려야”(같은 쪽) 한다는 자학적 진술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적 배분으로 말미암아 옆집 “냄새의 침입이 공간의 섞임으로 연결되는 상황”(28쪽)이 아닌 그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당연함은 상실하고 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소설에서 재현하는 모든 인물이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표제작인 〈젊은 근희의 행진〉은 오근희를 통해서 세계가 강제하는 바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수용, 변주하여 삶을 재편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작가는 근희를 통해 묻는다.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삶을 살아왔어도 인간의 기본 조건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청년 세대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라고. 그에 응답하는 듯이 근희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오프숄더 클리비지룩’을 고수하며 자신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일지언정, 그리고 사기를 당하고 재산을 날리는 상황에 놓일지언정 상실과 박탈을 강요하는 세계로부터 ‘사소한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수행함으로써 스스로의 역량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부조리한 세계에서 실패를 수용하며 좌절하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재구축하여 나아가려는 근희의 행진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청년 세대의 분투이자 불확실한 세계에서 자기 본위의 삶이 지닌 가치를 창출해내는 능동적 수행으로 볼 수 있다. 그 여정을 따라가보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도 없을 듯하다.
보편의 공동체가 만드는 다채로움
김기태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문학동네, 2024)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체계가 구성한 보편의 허위를 폭로하며 다른 삶의 방식을 긍정한다. 작가는 이를 서로가 서로를 이끄는 형태로 가능하다고 분명한 어조로 재현하고 있다.
먼저 가장 주목하게 되는 소설은 2024년 젊은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한 〈보편 교양〉이다. 이희우가 해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보편적이지 못한, 보편적일 수 없는 교육의 딜레마를 다룬다”(310쪽). ‘보편’이란 모든 것에 두루 미치거나 공통되는 것이지만 어떤 것을 보편으로 명명하는 일은 기실 권력을 쥔 자들의 툴에 기인한다. 주인공인 ‘곽’이 가르치고자 한 보편 교양은 “일하고 사랑하고 꿈꾸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보편적 교양”(157쪽)이지만 그 자신도 인정하다시피 그것은 대학이 요구하는, 더 나아가 사회가 요구하는 인적 자본을 길러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평범한 존재들을 통해 ‘보편’을 강요하는 부정적 세계를 가로지르며 긍정적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한다.
〈로나, 우리의 별〉은 MKTV 채널의 대국민 오디션 <모두의 스타>를 통해 스타가 된 ‘오로나’가 여러 이미지 전환을 거쳐 전 세계적으로 성공 신화를 이루어내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로나의 성공은 대국민 오디션이 그러하듯 소비자가 요구하는 어떤 양식을 답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로나는 자신의 ‘선한 영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사회적 활동을 하며 종국에는 현실 정치의 영역에까지 발을 디딘다. 로나의 서사는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기록하는 화자의 존재는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외다리비둘기, 아로미, 제플린88, 똑딱이단추, 배부른소크라테스, 목련러너, 까망쥐, 잉맨, 사축A, 빵또아, 붕어싸만코, 당근도기립하시오 등 닉네임으로만 호명되는 익명의 존재들이 로나의 삶을 응시하고 기록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로나를 스타로 만든 존재이자 로나로 인해 삶의 방향이 바뀐 이들이다. 평범하다고 하면 평범한 저 존재들이 로나라는 한 개인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한편 세상을 바꿀 어떤 가능성의 계기가 된다.
세계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타자를 향한 그들의 관심과 ‘무색무취’에 덧입혀지는 다채로움의 가능성이다. 그들의 시작은 자신과 다를 바 없이 별 볼 일 없는 어느 개인에 투사된 소망의 경제이자 신자유주의적 체제의 소비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그 어떤 교환을 요구하지 않는 순수한 형태의 증여로 전치되어 체제 너머를 사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 어떤 노력에도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고 느낀 로나가 빵또아의 할머니에게 붉은 도브 기타를 선물로 내어준 것과 그것을 “천 명이 만 원씩 모아”(201쪽) 구입하여 로나에게 다시 선물한 이들의 마음이 서로 교차하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기대를 갖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204쪽)라는 물음이 “우리는 가능하다”(205쪽)는 확신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마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연장에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있다. 이 소설은 중학교 동창생인 진주와 니콜라이가 성인이 된 후 만나 둘만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업계열 특성화고를 거쳐 이런저런 공장에 취업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니콜라이와 일반고를 나와 서울 변경의 4년제 대학 행정학과를 나와 지방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마트에서 일하는 진주는 경기도 동남부의 한 도시에서 마주친다. 이들의 삶은 동시대 청년 세대의 ‘보편’이라 할 만하다. “열두 시간 동안 반경 일 미터 공간 내에서 같은 일을 반복”(122쪽)하는 니콜라이는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만 갖고 있고 귀화를 하고 싶어도 연봉 삼천팔백만 원을 벌어야 귀화 신청 자격인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 그것은 “수당 없는 초과근무와 급여 지연, 갑질과 성희롱”을 일삼는 일에서 벗어나 “최저임금보다 천 원 많은 시급”(123쪽)을 받는 마트에서 일하는 진주가 공무원 시험에 붙더라도 마련하기 어려운 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134쪽)는 자학적 질문 너머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에서 유래한 밈인 “기립하시오 당신도!”(137쪽)를 유희할 따름이다. 그러나 저 문장은 단순한 유희를 넘어 개인적 변화를 불러온다. 니콜라이와 진주는 그들만의 인터내셔널을 형성하기로 한다.
그것은 대단하지도, 혁명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그저 둘만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일 뿐이더라도 이는 그 어떤 강제도 구속도 없이 서로를 온전히 포용하는 숭고함으로 이어진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지만,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143쪽)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둘의 포용으로 말미암는다. 여기까지 도달한 삶의 과정은 고통스러웠으나 그들은 부정적 상황에 머물러 무기력하게 좌절하거나 회피하기보다는 “내 손안에 있는 내 것. 내 몫의 약속”(〈무겁고 높은〉, 262쪽)을 응시하고 수행함으로써 그 안에서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실현해나가고자 한다. 그 곁에서 우리 역시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병국_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다. 한국문학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쓴 책으로 시집 《이곳의 안녕》 《내일은 어디쯤인가요》와 평론집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2024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호명했다. 마침 그날 한강 공원에 텐트를 치고 책을 읽고 왔던 나는 아무런 뜻 없는 우연을 언어적 유사성에 기반하여 뭔가 필연인 것처럼 여기곤 감동에 빠졌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의 질적 성장과 ‘K-OO’로 높아진 한국문화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2024년 10월 1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호명했다. 더 라이브러리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맞이해 다양한 관점에서 한국 문학이 가진 힘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노벨문학상 특집 칼럼]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병국이 MZ가 읽을 만한 한국 소설 10권을 추천한다. 2010년대 중반의 한국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가장 고귀한 예술적 과정, 고통의 향유정연두의 백년 여행기에서 보이는 횡단의 상상력의 기저에는 디아스포라 고통이란 정동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전시를 관람하는 과정에서 고통과 관련한 여러 사유의 거점들을 역동적으로 횡단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고통이 바로 사유의 시작이라고 했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 예술을 ‘고통의 언어’라고 불렀던 테오도르 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