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특집칼럼] 문학평론가 이병국이 MZ에게 추천하는 한국소설 10권 <1>: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음
이병국_시인, 문학평론가
2025-02-0600:01
2024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호명했다. 마침 그날 한강 공원에 텐트를 치고 책을 읽고 왔던 나는 아무런 뜻 없는 우연을 언어적 유사성에 기반하여 뭔가 필연인 것처럼 여기곤 감동에 빠졌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의 질적 성장과 ‘K-OO’로 높아진 한국문화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게다가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연말 연초로 이어진 한국 사회의 혼란에 대한 가장 극적인 문제 제기이자 그에 대한 응답처럼 느껴졌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는 긴 시간 문학에서 제기됐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 잠시 머무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인간으로 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가장 어두운 밤에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는 언어가 있다”라고 하였다. 그 언어가 한강의 소설 작품에, 그리고 한국문학 안에 흐르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2010년 이후 출간된 한국소설 작품 중 몇 권을 선정하여 3회에 걸쳐 작품 안에 쓰인 언어의 의미와 가치를 톺아 소개하고자 한다.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가장 먼저 소개할 소설은 김애란의 세 번째 소설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 2012)이다. 2002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애란은 2005년 첫 단편집 《달려라 아비》(창비)를 출간하며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2000년대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김애란이 구축한 소설적 세계는 IMF 사태 이후 2000년대의 궁핍과 결여를 내면화한 고독한 개인들의 공간이었다. 그 안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부재한 아버지를 상상하며 삶의 고단함을 명랑함으로 위장하며 살아갔다. 이는 여덟 편의 단편이 실린 《비행운》에서 반복, 변주된다.
이전의 작품들이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지닌 상처와 고독을 가벼운 농담으로 감추고 위장했다면, 《비행운》에서는 더는 농담조차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 속에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위기를 증폭시킨다. 재개발로 인한 그로테스크한 곳이나 50년 만의 홍수로 전기와 물이 끊기고 짐승의 사체와 사람 송장이 뒤섞여 흐를 것만 같은 불길함으로 잠긴 도시에 고립된 이들을 다룬 〈벌레들〉과 〈물속 골리앗〉은 그 설정부터 생존의 참혹함을 여실히 재현하며 벗어날 수 없는 어떤 불안을 그려낸다.
표제인 ‘비행운’이 담긴 단편 〈하루의 축〉을 보면, 주인공 기옥 씨는 비행운을 보며 공항에 일하러 간다.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는 기옥 씨는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증을 앓지만, 일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안절부절못한다. 간절함을 감추기 위해 가짜 구찌 가방을 멘 기옥 씨의 모습에서 욕망은 그저 가짜를 통해 위안을 얻을 뿐 채워지지 않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겉으로는 침착하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그 침착과 여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형탈모증’이라는 얼룩을 소환해야만 하는 기옥 씨. 공항 건물 전면에 있는 유리창은 하늘과 가깝고 또 하늘과 통하게끔 지어진 듯 보이지만 그것은 하늘에 닿을 수 있다는 환상을 제공할 뿐이다. 그리하여 거짓 욕망은 희망을 가장할 뿐 어떠한 공감도 불러오지 못한다. ‘비행운’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질 흔적일 뿐이라서 존재는 그로부터 아무런 위안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서른〉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단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가난은 가난을 반복하고 빚은 빚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옛 남자친구에 의해 다단계에 발을 들여놓고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학원 제자였던 혜미를 자기 대신 그 자리에 채워 넣어야 하는 ‘나’는 IMF와 세계 금융위기를 겪어야만 했던 시대, 그 어떤 미래도 꿈꿀 수 없었던 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그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겠지만, 이를 위해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나’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
김애란은 《비행운》을 통해 욕망이 거부되고 불안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위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거짓과 환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서 우리의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들지만, 그것만이 지금의 세대가 품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자 향유라고 불편하지만 진실하게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타인의 마음에 우리의 마음이 가닿도록 하는,
그러한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시대를 지나오면서 붕괴하는 이들의 삶을 그 곁에 나란히 자리하면서 위로하는 소설들이 있다. 그중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2016)와 조해진의 《빛의 호위》(창비, 2017)는 주목할 만하다. 최은영은 등단작인 〈쇼코의 미소〉로 제5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발표하는 소설마다 두루 주목을 받으며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조명받았다. 그것은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최은영의 소설이 공동체적 공감의 윤리를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고통받는 개인의 모습을 그려내는 한편에서 그 아픔의 곁에 나란히 서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소설들이 최은영의 문학적 세계라 할 수 있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는 총 7편의 중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고통받는 개인을 통해 삶의 흔적을 톺아보고 마음을 보듬는 소설들이 눈에 띈다. 인혁당 사건을 배경으로 엄마와 순애 이모의 삶의 흔적을 보듬는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나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하여 가까운 사람이 죽는 것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응웬 아줌마와 나의 엄마가 나누었던 따뜻한 한때, 그리고 그 관계가 무너진 시간을 담은 〈씬짜오, 씬짜오〉,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배경으로 다루면서 한국을 찾은 교황의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엄마와 그 딸 미카엘라의 이야기를 다룬 〈미카엘라〉, 같은 소재를 다룬 〈비밀〉은 세계의 폭력으로부터 상처 입은 개인에게 공감하고 이를 보듬으려는 마음이 여실하게 느껴지는 단편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을 상상하는 최은영의 태도이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중심에서 멀어진 사람들의 처지와 마음을 상상하는 태도. 이를테면, 쇼코와 소유의 정서적 공감의 과정(〈쇼코의 미소〉)이나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부딪치는 소은과 미진의 정신적 연대(〈먼 곳에서 온 노래〉)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지게 될지 상상함으로써 그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내곤 그 곁을 지켜내고자 하는 태도처럼. 이는 타인의 마음에 우리의 마음이 가닿도록 하는 힘이 된다. 이는 너와 내가 이어지는 공감의 윤리를 통해 ‘우리’라는 작은 공동체를 굳건하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찰나를 포착하여 빛으로 공명하는,
탈북자 L의 여정을 좇으며 그의 불안과 두려움에 공감하는 여정에서 방송작가인 ‘나’의 내면을 치유하는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창비, 2011)를 통해 개인과 역사, 시대의 관계를 성찰했던 조해진은 2004년 등단한 이후 지속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아홉 편의 단편이 실린 《빛의 호위》에서도 그와 같은 노력은 이어진다. 조해진은 구체적 삶의 자리를 빼앗긴 채 부유해야 하는 존재들의 곁을 지켜내는 것(〈시간의 거절〉 〈작은 사람들의 노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한편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과 동백림 사건을 다루고 있는 〈사물과의 작별〉과 〈동쪽 伯의 숲〉 등을 통해 역사적 지속과 세대 간 단절의 변증법적 작용 속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더 나아가 그로 인해 사람을 살게 하는 위대한 힘의 생성을 재현하기도 한다.
특히 표제작인 〈빛의 호위〉에서는 ‘사람을 살리는 일’에 대해 전한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거창하고 숭고한 행위로 인해 비롯되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방안에 웅크려 있던 학급 친구에게 그저 ‘카메라’ 하나를 선물로 주는 일, 아니 어쩌면 선생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친구를 찾아가야만 했던 그 걸음에서부터 ‘위대한’ 일은 시작될 수도 있다(소설의 중심인물인 권은은 ‘나’가 카메라를 준 일을 계기로 훗날 분쟁 지역을 찾아 참상을 기록하는 사진작가가 된다). 조해진은 이를 통해 사소한 관심이 연민을 거쳐 공감으로 나아가며, 그것이야말로 소외된 존재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고 하는 듯하다.
조해진의 소설에는 디아스포라적인, 부유하듯 떠돌아다니는 존재들이 자주 등장한다. ‘로기완’이 그랬듯이, 《빛의 호위》에서도 한 곳에 정주하여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권은처럼 분쟁 지역 보도사진 작가가 되거나, 어린 시절 해외로 입양되어(<문주>) 혹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꾸며 외국에 체류하지만, 고단한 삶의 하루하루를 살아(<번역의 시작>, <산책자의 행복>, <잘 가, 언니>)갈 따름이다. 권은이 사진을 찍는 것처럼 조해진은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빛으로 그들을 포착하여 결핍과 상처라는 단절된 단독성의 세계를 현실의 시공간에 위치시킴으로써 공동체적 지평 위로 올려놓는다.
그렇게 소설이 존재를 기록하는 일은 찰나를 담아 이 세계 너머를 엿볼 수 있는 ‘빛’의 마법으로 존재의 결핍과 상처를 치유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기록은 고유한 시간을 지닌 여러 존재들의 관계 맺음으로, 존재와 존재 사이의 사건으로 개입해 들어옴으로써 사람을 살리는 ‘빛의 호위’라는 공명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조해진은 2024년, 〈빛의 호위〉를 개작한 장편 《빛과 멜로디》(문학동네, 2024)를 출간했다.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등 분쟁과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 곁에서 어떤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일독을 권한다.
이병국_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다. 한국문학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쓴 책으로 시집 《이곳의 안녕》 《내일은 어디쯤인가요》와 평론집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2024년 10월 1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호명했다. 더 라이브러리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맞이해 다양한 관점에서 한국 문학이 가진 힘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노벨문학상 특집 칼럼]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병국이 MZ가 읽을 만한 한국 소설 10권을 추천한다. 우리나라 코로나19 첫 확진자는 2020년 1월 2
2024년 10월 1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호명했다. 더 라이브러리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맞이해 다양한 관점에서 한국 문학이 가진 힘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노벨문학상 특집 칼럼]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병국이 MZ가 읽을 만한 한국 소설 10권을 추천한다. 2010년대 중반의 한국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프랑스 파리 동쪽 교외에 위치한 몽트뢰이(Montreuil)의 로베르 데스노스 시립도서관에 다녀왔다. 나는 파리 서쪽 교외에 위치한 낭테르(Nanterre)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이 더욱 특별했다. 프랑스어로 ‘방리유(Banlieu)’는 파리 도심 바깥의 교외 지역을 뜻한다. 이 단어는 중세시대에 성벽이 있는 주요 도시 주변의 마을을 가리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