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특집칼럼] 문학평론가 이병국이 MZ에게 추천하는 한국소설 10권 <2>: 여성의 삶을 통해 본 새로운 관계의 모색
이병국_시인, 문학평론가
2025-03-0410:00
2024년 10월 1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호명했다. 더 라이브러리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맞이해 다양한 관점에서 한국 문학이 가진 힘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노벨문학상 특집 칼럼]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병국이 MZ가 읽을 만한 한국 소설 10권을 추천한다.
2010년대 중반의 한국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각종 사건과 사고로 인해 사회적 논란이 심각했다. 그중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 혐오 범죄의 양상을 띠며 페미니즘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연장선에서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와 미투운동 등을 통해 사회에 만연한 남녀 간 위계와 성적 착취의 문제를 폭로하였다. 또한 2016년 말부터 이듬해까지 이어진 광화문 촛불집회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이후 발표된 소설들의 많은 수가 여성들의 일상에 내재한 폭력을 가시화하는 데 이바지하였으며 다양성에 기반한 새로운 가족공동체를 모색하는 데 집중했다. 이번 회에서는 그와 관련된 장편소설 네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여성이 겪는 차별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주도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영화화되기도 했던 이 소설은 “1982년 4월 1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키 50센티미터, 몸무게 2.9킬로그램으로 태어”(23쪽)난 김지영의 삶의 궤적을 각종 통계자료와 인용을 통해 기록하며 그 과정에서 가부장적인 한국사회 여성들의 보편적 삶에 내면화된 여성차별의 구조를 폭로하는 데 기여한다. 이러한 시도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의 객관적 현실을 총체적인 상(像)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이 겪는 차별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지영의 삶에서 그녀가 관계 맺는 남성들은 여성을 자신들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타자의 자리에 놓인 여성은 사회 구조의 외부자이면서 미숙한 존재이자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교화의 대상일 뿐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왜 아무하고나 말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68쪽) 말하는 것처럼 소설의 많은 부분이 여성을 타자화한 언어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 언어는 여성을 어린 시절부터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는 모든 과정에서 수동적이며 불합리한 관계와 의무를 묵묵히 수용해야만 하는 존재로 만든다.
물론 여성의 지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향상됐다. 투표권을 획득하고 호주제를 폐지하였으며 집안일이라고 치부되어왔던 것을 노동으로 인정받았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어느 정도) 부여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외적으로 드러나는 여성의 지위는 사실상 사회 내의 차별적 구조를 깨뜨리지 못하도록 억압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82년생 김지영》에서 드러나듯 ‘유리천장’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지위 상승의 불가능성, 남녀의 임금 격차,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폭력적 위계 관계 등은 2025년 현재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으며, 가사노동과 육아 역시 여전히 여성이 많은 부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왜곡된 용어로 차용되는 ‘OO녀’, ‘일베’의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나 ‘교제 폭력’ 등의 혐오 범죄는 여전히 여성의 지위가 과거와 그리 달라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그런 점에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이 경험하는 삶의 취약성을 재현함으로써 소설이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유의미한 작품이다.
경제적 약자의 돌봄 노동이란
이듬해 출간한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민음사, 2017)는 《82년생 김지영》이 불러온 사회적 반향에 응답하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2024년에 역시 영화화된 이 소설은 김혜진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출판사의 책 소개에서도 언급하듯이 혐오와 배제의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인 ‘나’와 딸, 그리고 딸의 동성 연인이 경제적 이유로 동거를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폭로한다. 인물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주된 갈등의 양상이 엄마와 동성애자인 딸의 반목처럼 보이지만 기실 소설은 동성애라는 섹슈얼리티의 문제보다는 엄마가 요양 병원에서 담당하고 있는 환자 ‘젠’을 돌보며 겪는, 그리고 이전부터 엄마의 삶에 각인된 희생적 돌봄 노동의 문제에 천착한다.
김혜진은 소설을 통해 가부장제 사회에서 행해졌던 가족 중심의 돌봄 노동이 오늘날 외주화되면서 돌봄의 가치가 경제적인 거래로 치환되어 벌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의 경제적 소외 문제를 응시한다. 이는 비정규직 강사를 전전하고 있는 딸의 모습과 결부되어 “월세, 생활비, 권리, 돈과 맞바꾼 나의 권위, 부모로서의 자격, 심장을 떨리게 하는 수치심과 모멸감”(47쪽)이라는, 중장년 여성이 느끼는 현실적 문제에 주목하게 한다.
경제적 약자로 자신을 인식하는 ‘나’는 요양원에서 자신이 돌보는 ‘젠’이 겪는 부당함이나 동성애자인 딸이 겪는 불평등을 자신의 일로 간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손발이 묶인 채 어디로 보내질지도 모르고 누워 있는” 젠의 모습을 “저 여자의 탓”으로 여길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딸애도 저 여자처럼 길고 긴 삶의 끝에 처박히다시피 하며 죽음을 기다”(129쪽)릴 것만 같은 일은 자신의 잘못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 불안을 쉽게 떨쳐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는 여성이 경험하는 삶의 취약성이 가부장제하에서 수행된 돌봄 노동에 담긴 억압적이고 강요된 희생에 있었음을, 그로 인해 경제적 안정을 구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되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소설은 단지 경제적인 측면에서 ‘나’의 돌봄 노동을 이야기하지만은 않는다. 소설의 결말에서 돌봄을 자본적 거래가 아닌 선물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모습은 자본화에 저항함으로써 새로운 자기 서사를 만들어나가려는 삶의 윤리를 드러낸다. 제목은 ‘딸에 대하여’이지만 사실 이 소설은 자기를 돌보는 방식을 찾는 ‘엄마에 대한’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돌봄과 관련된 또 다른 소설로 김유담의 《돌보는 마음》(민음사, 2022)도 읽어볼 만하다.)
여성작가가 쓰는 여성가족사소설
정세랑은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제작된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 2015)과 몇몇 작품들로 인해 판타지 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피프티 피플》(창비, 2016)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일상적 인물들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세상에 대한 낙관과 긍정을 놓지 않는 작가이기도 하다. 정세랑이 2020년에 발표한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 2020)는 20세기 한국 신여성의 삶과 삼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폭력성을 되짚어보는 장편소설이다. 중의적인 제목인 ‘시선’은 시선(視線)으로 짐작하기 쉽지만, ‘심시선’이라는 인명(人名)에서 비롯된다. ‘시선으로부터’라는 제목처럼 모든 이야기와 인물들은 시선으로부터 시작되고 시선으로부터 파생된다. 시선의 캐릭터가 이 소설의 구심점인 셈이다.
심시선은 신여성이자 모던걸이었고,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렸던 여성 예술가이자 누군가에게는 하와이안 걸, 아시안 마녀로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심시선의 삶도 흥미롭지만, 이 소설의 백미는 심시선의 10주기 제사를 하와이에서 열겠다고 그녀의 딸 명혜가 선언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시선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가부장적인 제사 문화를 다른 방식으로 변용함으로써 가족들은 각자가 처한 삶의 고통을 치유하는 데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특별함이 발휘된다.
물론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가족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일화는 오히려 판타지에 가까울 수도 있다. 전통적인 가족관계라기보다는 합리적인 개인들 간의 연대와 결합에 가까운 가족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시선이 이주한 하와이가 파라다이스가 아닌 착취의 땅이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당연시되는 것들이 기실 환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다른 의미를 생각할 여지가 있다.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다르게 보는 ‘시선’이 필요할 것이다. 시선이 하와이에서 만난 화가 마티아스에게 당했던 폭력이 시선의 손녀 화수가 겪어야만 했던 지금의 폭력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정세랑은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334쪽)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작가 스스로 자기 소설의 계보가 김동인이나 이상에게 있지 않고 김명순이나 나혜석에게 있다고 고백한 것과 같다. 여성작가가 쓰는 여성가족사소설은 자신의 계보를 찾고 배제된 이들을 되살려내어 이를 기록함으로써 또 다른 의미를 구축하는 작업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구할 수 있는 것
김금희의 두 번째 장편소설인 《복자에게》(문학동네, 2020)는 작가가 2018년 제주의 한 섬에서 머물렀을 때 받았던 깊은 위안과 포용을 전하고 있다. 이 소설은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일어난 산재 사건과 그 소송을 모티프로 하고 있지만, 그 쟁의가 주요 사건으로 흐르진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인 이영초롱이 제주 고고리섬에서 만난 복자와 고오세의 에피소드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닿아 있는 어떤 활력에 집중하는 편이다.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라도 냉동고에 넣으면 얼마든지 다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된다.”(237쪽) 열세 살의 복자는 IMF로 인해 집안이 파산하여 제주 고고리섬으로 와야 했던 영초롱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언가에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이 한 사람의 삶을 실패로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힘들었던 영초롱의 유년 시절이 그래도 실패로 점철되지 않았던 것은 복자의 저 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영초롱에게 제주는 누구의 말마따나 소설 속 인물들이 실패한 시간을 매만지고 회복하는 공간이자, 스스로 생활을 책임지고 그것을 일구어나가는 활기차고 강인한 복자가 있는 곳이다. 비록 사소한 악의 때문에 복자와의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지만, 냉동고에 넣으면 오랜 시간 뒤에 다시 누릴 수 있는 관계가 친구일 테니 심각한 갈등으로 풀어내진 않는다. 영초롱은 훗날 판사가 되어 제주로 다시 돌아와 복자와 재회한다. 그리고 유년 시절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복자에게 이번엔 영초롱 자신이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이 마음은 사실 “너가 나중에 얼마나 고고리를 기억하겠니? 거의 잊힐 거야. 하지만 만약 마음에 미안함이 인다면 그것만은 간직하고 살아가렴. 미안함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니까.”(66쪽)라고 한 고모의 말처럼, 영초롱이 복자에게 보였던 악의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갖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주된 공간인 고고리섬이 ‘이삭’이란 뜻의 제주어를 붙여 만든 가상의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마음은 하나의 ‘이삭’이 되어 영초롱으로 하여금 삶의 본질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지속되어야 할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구할 수 있는 성숙일 것이다.
전작 《경애의 마음》(창비, 2018)에서 주인공 공상수가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라고 한 것처럼 김금희는 한 인터뷰에서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했다. 그처럼 우리의 삶이 예정한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좌절하거나 쓰러질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것. 농담을 잘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하루가 활기차다”(81쪽)고 말하는 복자를 만나는 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이병국_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다. 한국문학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쓴 책으로 시집 《이곳의 안녕》 《내일은 어디쯤인가요》와 평론집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2024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호명했다. 마침 그날 한강 공원에 텐트를 치고 책을 읽고 왔던 나는 아무런 뜻 없는 우연을 언어적 유사성에 기반하여 뭔가 필연인 것처럼 여기곤 감동에 빠졌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의 질적 성장과 ‘K-OO’로 높아진 한국문화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우승은 못 했지만 우승자 이상의 인기를 얻은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리사로서 맛이 가장 중요하지만 음식에 스토리를 입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기에 셰프나 아티스트는 음식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느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야 하지요.”“누구나 맛있는
물리적 공간에 디지털 감각이 융합한 피지털‘피지털(Phygital)’은 물리적 오프라인 공간을 의미하는 ‘피지컬(Physical)’과 ‘디지털(Digital)’의 합성어다. 오프라인의 단점과 온라인의 단점을 서로 간에 유기적으로 보완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만족도를 높이고, 상품 구매에 대해 좀 더 편하고 직관적인 정보 제공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