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글쓰기는 바쁜 일상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글쓰기가 가장 필요한 때는 언제일까요.
A 저한테도 필요하지만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글쓰기는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말고 일반 시민들, 특히 사회생활을 접고 은퇴 전후에 있는 분들한테 필요한 글쓰기입니다. 그런 글쓰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자기 삶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게 왜 중요하냐 하면 대중 소비사회, 과도한 정보화 사회에서는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시간, 기회, 계기가 거의 없습니다. 산책이나 명상, 여행, 종교생활 같은 것도 자기를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요. 제가 한 10여 년 넘게 일반 시민들하고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느낀 거는 글쓰기야말로 가장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또 주체적인 자기와의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소비적인 삶, 도시적인 삶, SNS를 비롯해 인터넷에 기반한 정보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저는 글쓰기가 절실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특히 은퇴하신 시니어 분들의 글쓰기에 주목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진행하다 보면 8:2 또는 9:1 정도로 남성 수강생이 적습니다. 여성분들은 설령 글을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른바 친밀성의 범위나 그 강도가 남성들에 비해서 강해요. 자주 모이고 자주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남성들은 특히 은퇴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를 차단당합니다. 제가 60대가 되었기 때문에 주위에서 그런 장면들을 많이 목격을 하는데, 일단 건강해야죠. 그다음에 재력이 또 있어야 돼요. 또 사회적 관계망이 있어야 합니다.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면 남자 은퇴자들은 스스로 고립됩니다. 특히나 건강이 따라오지 못하거나 연금이나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경우, 60대 이후에도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경우 등 사회적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이들을 사회관계망 안으로 초청할 수 있는 계기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이 국가 차원이든, 사회적 차원이든, 소규모 모임의 차원이든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고립되어가는 은퇴자 개인에게도 엄청난 문제지만,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도 대단히 위험하고 또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글쓰기를 통해서 지금까지의 삶이 변화된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A 그런 사례는 대단히 많은데요. 제가 하는 글쓰기 프로그램 이름이 ‘나를 위한 글쓰기’이고 부제가 ‘자기 성찰과 재탄생’입니다. 글쓰기라는 방식을 통해서 자기 삶을 깊이 또 여러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거기서 관계를 재발견하고 어제와 다른, 그러니까 글쓰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다 이런 거예요. 그래서 삶이 달라지는 경우를 매번 목격하죠.
2010년쯤 초창기 때였는데 이분은 30대 편집자였습니다. 아주 잘 나가는 출판사 편집자였는데 글쓰기를 하고 나서 직장을 그만뒀어요. 자기 친구하고 같이 전통 병과, 전통 떡 만드는 일로 전환을 했습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까 망했어요. 그러고 다시 1인 출판, 1인 편집자로 돌아가긴 했는데, 저는 글쓰기가 갖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지 않았다면, 자기 자신과 만나지 않았다면 그런 모험을 감행하지 못했겠죠.
또 하나는 작은 사례인데, 이분은 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오랫동안 학원 선생님을 하던 중년 남성분입니다. 이분은 친구들하고 식당을 가거나 술자리에 가면 매번 어떤 메뉴를 정할 때마다 “아무거나” 그랬대요. 그런데 글쓰기를 하고 나서 뒤풀이를 하는데 “오늘은 내가 메뉴를 정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죠. 이분은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 기업에서 이사를 하다가 은퇴했는데, 은퇴를 하니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죠. 어느 날 이른 저녁에 이분이 거실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었대요. 그때 마침 고등학교 3학년인 자기 아들이 들어왔는데 거실을 한 바퀴 휙 둘러보더니 “어, 아무도 없네” 그러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래요. 자기하고 눈이 마주쳤는데도요. 한국사회에서 아버지, 가장, 남성의 위치가 어디 있느냐를 아주 여실하게 보여주는 건데, 이분이 글쓰기를 하고 나서 많이 달라졌어요. 그전에는 시간이 나면 TV를 보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가거나 했어요. 그런데 글쓰기를 하고 나서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겁니다.
글쓰기를 통해서 사람이 변하는 경우는 대단히 많이 있어요. 지역사회에서 지역 언론의 기자가 되는 경우도 있고, 조그마한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이런 걸 만드는 경우도 있고요. 어쨌든 그 변화의 방향이나 차이는 있지만 분명히 변화는 있습니다.
Q 선생님의 수업은 글을 쓰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는 방식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한 글쓰기’ 수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A ’나를 위한 글쓰기’의 구조나 진행 방식은 아주 단순합니다. 학교에서는 스무 명에서 서른 명이 한 반이고,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보통 열 명에서 열다섯 명이 한 반이에요. 8주에서 10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을 하는데 주제별 글쓰기를 합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첫 번째 글쓰기 주제는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에요. 스무 살 이전의 성장기에서 그런 순간을 골라 자유롭게 쓰시라고 그래요. 그다음에는 ‘다시 가보고 싶은 그곳’이에요. 어린 시절 나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장소들이 있죠. 다락방이나 학교 도서관 같은 곳이요. 세 번째 주제는 ‘나를 움직인 말 한마디’입니다. 그것도 역시 성장기에서 고르라고 하는데, 누군가로부터 들은 그 한마디, 또는 책, 영화, 노래 등에서 들은 어떤 한마디 때문에 우리는 변화합니다. 8주차나 10주차의 하이라이트는 ‘잊을 수 없는 음식’, ‘잊을 수 없는 밥상’입니다. 자기 성찰, 또 자기 자신에 대한 재발견, 이런 것들이 상당 수준 이루어집니다. 전반부를 자기 성찰 글쓰기로 묶을 수 있다면 후반부는 사회적 글쓰기로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사회적인 것과 시대적인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보자고 하면서요. 지금 나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글을 한 편 쓰게 하고, 그다음에는 ‘한국사회 이것이 문제다’, ‘한국사회 이것이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 거기에 대해서 설득하는 글쓰기를 시도해보라고 합니다. 그때는 약간 힘들어하시죠.
마지막으로는 미래에 관한 건데 ‘내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해서 쓰라고 합니다. 내가 앞으로 어떤 환경 안에서 누구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면서 여생을 살아갈 것이냐, 그런 걸로 마무리가 됩니다. 사전에 읽고 참석할 사항, 코멘트 할 사항을 다 준비하고 모여야 하기 때문에 강도가 아주 높은 프로그램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글을 잘 쓰려고 하지 말자 말아라, 그런 주문을 합니다. 글을 잘 쓰는 것, 그것이 문장 단위든 구성단위든 주제 의식이든 그건 2차적인 문제다. 첫 번째 1차적인 목표는 내 안에 이렇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많구나, 서툴고 완전하지 않지만 이야기로 풀어내면 공감을 받을 수 있구나, 지지를 받을 수 있구나, 이게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글쓰기 수준이 조금씩 높아지는 건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따라오죠.
Q ‘텍스트힙’이나 ‘라이팅힙’이 확산되면서 요즘 필사가 유행인데요, 글쓰기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새롭게 시도하시는 방식이 있나요.
A 얼마 전까지는 필사해라, 암송을 해라, 그렇게 주문을 했었는데 요즘 조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시를 이어 써보자. 시를 이어 쓰려면 한두 번 읽어 가지고는 안 되거든요. 여러 번 읽어야 돼요. 이를테면 김종삼 시인의 〈장편〉이라는 시가 있어요. 아주 짧은 시인데요. 조선총독부가 있던 시절 청계천변 10전 균일상(均一床) 밥집 앞에 거지 소녀와 앞을 못 보는 어버이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나와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소녀 아이가 태연했다. 오늘 어버이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여주었다. 이게 전부예요. 김종삼 시인의 시 상당 부분은 어떤 장면을 딱 제시하고 시치미를 뚝 떼죠. 나머지는 당신들이 상상하시라. 우리는 머릿속으로 상상하잖아요. 저는 학생들한테 그 뒤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이어 써보라고 그래요. 한 단락 정도로 왜 그렇게 이어 쓰게 됐는지를 시작 노트 형식으로 쓰라고 합니다. 이 방식이 시를 가장 깊이 있게 읽는 방법이라고 저는 매번 확인하고 있고요.
더 나아가면 이게 괜찮은 시 창작법이에요. 주제별로 시를 선택해서 줘요. 그러니까 관계를 재정립하는 건데,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섯 가지 관계가 온전해야 합니다. ‘나와 내면의 또 다른 나’, ‘나와 타인’, ‘나와 자연’, 마지막으로 ‘나와 사물’, ‘과학기술’. 네 가지 관계가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우리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어요. 내가 자존감이 높고 타인하고 잘 지내고 낯선 사람을 환대한다 하더라도, 자연하고의 관계가 잘못되거나 이른바 과학기술이든 AI든 무엇이든 그 관계가 어긋나면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죠. 반대로 과학기술에 대해서 비판적 거리를 갖고 생태적 감수성이 대단히 높아서 비인간 존재하고도 잘 지내는 사람도 낯선 사람, 이주 노동자나 여행자들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하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죠.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에 독일의 유스투스 폰 리비히라는 농화학자가 있었어요. 비료를 만들게 한 분이죠. 질소, 인산, 칼리, 그러니까 식물의 생장, 즉 식물이 제대로 자라나기 위해서 필요한 필수 영양소가 무엇이냐, 이걸 발견한 사람이고요.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요. 어떤 한 식물이 자라는데 다른 영양소가 아무리 충분해도 어느 한 영양소가 부족하면 이 식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이거예요. 리비히의 법칙은 한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한 사회, 국가, 시대, 문명에도 적용이 됩니다. 지금 우리 문명, 산업 자본주의 문명을 우리는 자연처럼 익숙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무엇이 넘쳐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우리는 금방 알 수 있어요. 그 부족한 것 때문에 이 문명은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이 문명에서 가장 부족한 게 뭐예요?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지 않잖아요. 생명을, 또 자연 자원을 함부로 대하잖아요. 이 다섯 가지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을 우리 개인의 삶 그리고 이 시대 전체에 적용시켜 보는 것, 이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Q 흔히 이문재 시인은 생태시를 쓴다고 말합니다. 생태학적 상상력이 시작된 시기는 언제부터였나요.
A 20대 초반 대학교 들어가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제 주위에 같이 시를 쓰는 친구나 선배들이 모더니즘 계열이었죠. ‘상상력주의자’들이었습니다. 현실하고는 거리를 둔, 그래서 리얼리즘 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았죠. 그러다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 시 세계가 변합니다. 인간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거죠. 그런 결정적인 전환점은 에콜로지 생태론인데요, 그것을 만나게 된 매체는 《녹색평론》이라는 당시 격월간지였습니다. 《녹색평론》을 발행하고 편집하시던 김종철 선생님의 저서들과 《녹색평론》이라는 격월간지에 실리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 이걸 통해서 제가 전환을 이루었던 것이죠.
Q 생태학적 시를 쓸 무렵 읽었던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A 자크 러끌레르끄의 《게으름의 찬양》이라는 아주 얇은 책이 있습니다. 자크 러끌레르끄 신부가 벨기에 사람인데, 벨기에 학술원에 들어갈 때 인사말 겸 한 연설문을 텍스트로 만든 거예요. 당시 20세기 초반에 유럽의 젊은이들이 너무 빠르게 살아가고 기차를 타고 여행한다고, 그런 속도주의를 아주 일찌감치 비판한 거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니라는 메시지를 담은 아주 얇은 소책자인데요, 그 책에도 큰 영향을 받았어요. 또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스콧 니어링하고 헬렌 니어링이 쓴 책이 있죠. 스콧 니어링은 남편이고 헬렌 니어링이 부인인데 헬렌 니어링이 말하는 부부의 삶, 그리고 스콧 니어링의 마지막 삶을 기록한 거예요. 그것도 저에게는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때가 1991년 전후인데 《녹색평론》이 창간된 시기하고도 겹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시집부터는 ‘산책’, ‘느림’, ‘부사(副詞)’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Q 선생님 시집 중에 《산책시편》이라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느림’과 ‘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데요, 산책과 글쓰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A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한 걸음 벗어나는 거죠. 한 걸음 옆으로 비켜 나가는 거고요. 속도지상주의 삶에서, 물질지상주의 삶에서 벗어나 그걸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거겠죠. 산책과 글쓰기 또는 시 쓰기의 공통점은, 우리가 산책을 하거나 글을 읽거나 글을 쓸 때는 소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가 산책을 얼마큼 하느냐, 어떤 글을 읽느냐, 어떤 시를 쓰느냐, 이건 2차적인 문제고 걷는 동안, 읽고 쓰는 동안 대중 소비사회에서 벗어나 있다는 거죠. 저는 이 자체가 과장되게 말씀드리면 작은 1인 혁명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걷지 않고 타거나, 읽거나 쓰지 않을 때는 무언가를 소비하고 있는 거예요. 인터넷에 접속해 있거나, 이동을 하거나, 소비 컨베이어 벨트에 완전히 편입되어 있는 거잖아요. 먹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입을 때도 그렇고요. 지금 기후 문제부터 시작해서 불평등, AI, 핵 문제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지금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안에도 들어와 있죠. 의식 안에, 또 이 육체 안에 다 들어와 있습니다. 이걸 객관화시켜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은 거리를 두는 것밖에 없어요. 걷거나 읽거나 쓰거나, 이거 말고는 저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선생님만의 산책법이 있나요? 그리고 주로 어디서 산책을 하시는지요.
A 최근에는 제가 일산 행신동에 살다가 파주 쪽으로 이사를 가서 아직 산책할 만한 코스를 못 찾았어요. 행신동에 살 때는 성사천이라고 조그마한 하천이 있는데, 그곳을 걷기 좋은 길로 만들어 놔서 거기를 자주 다녔고요. 오늘 올 때도 그랬지만 웬만하면 걸어 다니려고 합니다. 웬만하면 한 정거장 먼저 내리든지 해서라도 걸어 다니려고 해요. 산책 말고 또 중요한 게, 제가 우리 학생들한테도 매번 학기 초에 강조하는 건데 머리맡을 비우라고 합니다. 산책을 할 때도 사람들은 이어폰을 꽂는 경우가 열 명 중 아홉 명이에요. 그건 저는 산책이 아니라고 봐요. 산책을 할 때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야 돼요. 일상적 시간, 일상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산책인데,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벗어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두 발만 걷는 거죠. 머리맡을 비우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면, 잠들기 직전 5분 또는 잠 깬 직후 5분 인터넷에 접속하지 말라는 거예요. 스마트폰을 멀리하라는 겁니다.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이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건데요, 우리 정신이 의식 상태가 약간 몽롱할 때―그러니까 뇌파가 느려질 때 알파파라고 하죠―이때 오랜 문제와 절실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떠오른다는 거예요. 저도 돌아보면 좋은 글은 많이 쓰지 못했지만 많은 글을 많이 썼어요. 글의 아이디어가 언제 떠올랐느냐. 아침에 일어나서 저는 바로 밖으로 나옵니다.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데 그때 시의 첫 문장이랄지 기사의 첫 단락, 다른 문제들의 해결책 같은 것들이 그때 떠올라요. 저는 이게 인류가 멸망하느냐, 아니면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새롭게 시작하느냐의 문제하고 직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잠들 때도 눈이 뻑뻑할 때까지 뭔가 보잖아요. 아침에 누가 깨워요? 스마트폰이 깨우죠. 저는 잠들기 직전, 잠 깬 직후, 어떤 문제의 해결책을 떠올리는 그 시간을 신이 누구에게나 선물을 주는 시간이다, 그렇게 표현을 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포기했어요. 그 시간을 빼앗겼어요.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걸 우리는 도둑맞았어요. 그런데 도둑맞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거예요. 그런 개인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사회는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다 인터넷에 포획된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머리맡 비우기는 ‘걷기’, ‘읽기’, ‘쓰기’ 운동 못지않게 인류의 미래하고 직결되는 캠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맡 비우기 국민운동, 시민운동을 제가 출범시켜야 되겠네요. 제가 학기 초에 약속을 해요. 내가 여러분들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고 사회, 나아가 문명과 직결된 문제다. 내가 학기말에 반드시 확인을 하겠다. 머리맡을 비웠는지 안 비웠는지 중간고사 즈음에 한번 물어봐요. 그럼 30명 중에 한 두세 학생이 손을 들어요. 머리맡을 비웠다고요. 학기말쯤 되면 두 명이나 한 명이에요. 그럼 제가 그 학생들한테 얘기합니다. 너희들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글 쓰는 사람들, 예술 하는 사람들이 머리맡 비우기 캠페인에 맨 앞장을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지금과 좀 다르게 변화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머리맡을 비우지 않으면 이른바 창의성이 나올 동력이 없어요. 발원지가 없습니다. 처음에 이런 얘기 하면 사람들이 많이 웃어요. 이건 웃을 일이 아닙니다.
Q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 ‘60+기후행동’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기후위기 앞에서 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A 어렵기도 하고 제가 늘 들고 있는 화두이기도 한데요, 쉽게 답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놓칠 수가 없잖아요. 이런 기후위기와 문학 맥락에서 저는 시가 아니라 시의 마음이라는 표현을 즐겨 씁니다. 시를 읽거나 또는 시를 쓰자, 이러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우리나라 문학 교육이 잘못돼서 그렇죠. 시가 어려운 거 아니잖아요. 시의 마음은 누구나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다. 생태 영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탈 비종교 영성이라고도 말합니다. 심리학적 근거, 과학적 근거도 있는데,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시의 마음이 동심이라고 하잖아요. 어린아이들은 모든 걸 새롭게 보고 질문하고 또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표현을 하니까요. 미국에서 1968년에 조사한 창의성 테스트가 있어요. 그걸 보면 태어나서 다섯 살 때까지는 창의성 지수가 100점 만점에 98점이라는 거예요. 이게 계속 떨어져서 스무 살이 되면 2점으로 떨어진다고 해요. 저는 이 창의성 지수를 시의 마음이라고 이야기해요. 이 시의 마음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우리 안에 있다. 그런데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억눌린 거다. 이걸 찾아야 한다. 시적 감수성이라고 말할 수 있죠. 시의 마음이 뭐냐, 시의 마음은 다른 게 아니다. 황금률이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마음, 이게 황금률 아니에요. 예수, 공자, 맹자, 다 얘기를 한 거예요.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라. 우리 안에 억눌려 있던 이걸 우리가 되찾을 수 있으면 저는 기후 문제, 불평등, 과학기술의 급속한 진전, 인구 폭발, 핵 문제, 이런 걸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찾아질 거라고 봐요. 1만 2천 년 전 신석기 농업 혁명으로부터 시작해서 종교 혁명, 과학 혁명, 정치 혁명, 경제 혁명까지 여러 단계의 혁명을 거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마지막 남은 게 뭐냐, 의식 혁명이잖아요.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의식 혁명의 수준이 뭐냐, 저는 시의 마음이라고 봐요.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우리가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그런 능력, 태도, 마음가짐이 일반화된다면 저는 여기가 바로 천국이 되리라고 봅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 이게 예수의 선상 수훈 아니에요. 공자는 네가 하기 싫은 걸 남한테 하라고 하지 마라, 이런 거잖아요. 역지사지도 똑같을 거고요. 지금 우리 인류가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마음,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시는 내가 나무가 되어보고, 별이 되어보고, 그 사람이 되어보고, 미래가 되어보기도 하는 거죠. 시가 많이 읽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시의 마음을 건드려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시민들에게 꼭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A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이 한두 권 있는데요. 하나는 최근에 읽은 건데 《리추얼의 힘》이라는 책입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일상의 루틴에 어떤 좋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그게 리추얼이 된다는 거예요. 시의 마음으로 가는 길이겠죠. 리추얼은 혼자 하는 수도 있지만 소모임 단위로 모여서 같이 책을 읽거나, 음식을 나누거나, 서클 댄스를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시를 쓸 수도 있고요. 이 루틴은 제가 보기에는 도시적 삶, 자본주의, 대중 소비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봅니다. 리추얼은 그걸 단순한 습관으로 하는 것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행위로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리추얼의 힘》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고요. 《식물의 은밀한 감정》이라는 책이 있어요. 프랑스의 저명한 소설가가 쓴 책인데, 식물이 우리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감정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책을 읽으면 인간중심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고 깊어지지 않을까.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Q 선생님이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요.
A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이런 질문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 개인적 차원의 좋은 삶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이웃 또는 인류, 나아가서는 지구, 우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삶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게 하는 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시와 글쓰기 또는 시민운동에 담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재작년인가 콜롬비아 도서전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런 말을 했어요. ‘좋은 시의 주어는 이제 인간이 아니고 인류여야 한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시 쓰기가 이제 인간이 아니라 자연인을 포함해 인류 차원에서 우리가 닥친 문제를 바라보는 고민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문재_시인
이문재_시인
1982년 《시운동》 4집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학동네》 편집주간, 《시사저널》 기자,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직을 역임했으며,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혼자의 넓이》 《지금 여기가 맨 앞》 등과 산문집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등이 있다.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박재삼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있다.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3월호에서는 변호사이자 저자인 신주영 변호사를 소개한다. Q 변호사로서 다른 사람을 변호하는 일이 그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한 적 있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게임 상에서 겪었던 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A 내가 처음 접한 MMORPG가 〈아이온〉이었다. 기존에는 혼자 플
Book메신저는 책과 언어 그리고 독서를 매개로 다양한 실험과 변화를 모색하는 분들을 만나는 인터뷰 코너이다. 2월호에서는 금융업에서 일하며 번역을 하는 서지은 님을 만났다. 언어와 책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해석을 통해 책과 독서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Q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동하는 분을 만나면 질문이 장황해지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