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선생을 만나러 봉평으로 떠나는 아침. 가을비가 촉촉이 내렸다. 몇 해 전 겨울, 이효석문학관을 찾은 적이 있다. 그날은 발목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다. 메밀꽃이 없는 봉평, 허생원과 동이가 건너던 냇물이 없는 봉평의 겨울은 한없이 적막했다. 그 겨울바람 속에서 메밀꽃이 필 때쯤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선생은 소금을 뿌린 듯 달빛에 빛나는 메밀밭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자연과 융합된 생의 미학
이효석(1907~1942) 선생은 1930년대 한국 근대문학의 정점에서 서정과 관능,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결합시킨 작가로 평가된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감각적 언어와 미학적 탐구로 인간의 존재를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초기에는 카프 계열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공감했으나, 곧 현실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의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서정적 모더니즘의 세계로 나아갔다. 이러한 전환은 한국문학이 ‘현실 고발’에서 ‘내면의 탐미’로 옮겨가는 변곡점과 맞물려 있다.
선생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은 한국 단편소설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정문학으로 꼽힌다. 문장은 투명하고 리듬감 있으며, 자연과 인물이 한 호흡으로 엮인다. 선생의 문학은 자연과 인간의 감각이 융합된 생의 미학을 구현한다.
‘길은 지금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달빛 아래 흐드러진 메밀밭, 고향의 냇물, 짧은 인연과 이별의 장면들이 모두 한 폭의 수묵화처럼 정제되어 있다. 그는 현실의 굴레 속에서도 인간의 순수한 감정과 본능, 그리고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탐구한 작가였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시대를 넘어, 지금도 우리에게 ‘삶을 예술로 바라보는 시선’을 남긴다.
선생은 1907년 2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 196번지에서 아버지 이시후와 어머니 강홍경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네 살 되던 해에 부친을 따라 상경했다가 2년 후에 다시 평창으로 내려와 평창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다시 1920년 상경해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경성제대를 졸업했다. 이후 평양, 경성 등에서 경성농업학교, 숭실전문학교, 대동전문학교 등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평창은 유년 시절의 꿈을 키운 마음의 고향이었다.
그가 생각한 소설가의 임무
선생이 문학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25년 경성고보 시절 매일신보에 시 〈봄〉을 발표하면서부터다. 1930년대 후반은 작품활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작품집 《성화》 《화분》 등이 이 시기에 출간되었고 대표 작품 〈메밀꽃 필 무렵〉도 30세 되는 1936년 《조광》 10월호에 발표되었다. 이러한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조선일보가 선정한 1930년대 5대 작가에 유진오, 방인근, 이기영, 김남천 등과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34세 되는 1940년에 음악을 전공한 부인 이경원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나진고등여학교를 졸업한 착한 아내와 채 10년도 함께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같은 해 차남 영주도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다. 견디기 힘든 아픔으로 선생은 만주, 중국을 떠돌았다. 1942년 와병하여 평양도립병원에 입원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평양 기림리 자택에서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춘추》 1월호에 발표한 단편 〈풀잎〉이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유해는 고향 진부면 하진부리 논골에 묻혔다. 선생은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90여 편의 단편소설과 3편의 장편소설, 16편의 시, 168편의 수필, 그 외 희곡, 시나리오, 콩트, 평론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에는 심미감과 감동, 소설가의 임무가 녹아 있다.
‘아무리 놀라운 사실주의 소설을 읽어도 현실에서 우리가 하는 것같이 눈썹을 찌푸리고 구역질하고 소름이 끼치는 경우는 없다. 소설은 현실의 충동을 알맞게 바쳐서 곱과 찌꺼기는 이를 버린다. 심미감과 쾌의 감동을 떠나서 소설은 없다. 문학의 공은 크고 소설가의 임무는 장하다.’(〈문학 진폭 옹호의 변〉,《조광》제6권 제1호, 1940)
효석문학길을 따라 문학관으로 오르다 보면 왼편 낮은 언덕에 ‘가산 이효석 문학비’가 서 있다. 옥개석은 구름 형태의 자연석을 사용했다. 늘 그리던 고향의 구름 한 점을 올려놓은 듯 자유롭다. 이 문학비는 1980년 강원도, 강원도민회, 평창군의 지원금과 문인들의 성금으로 봉평면 진조리 영동고속도로 변에 세웠던 것을 2002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황금찬이 비문을 짓고 유진오가 글씨를 썼다.
언덕길을 돌아 몇 걸음 발길을 옮기면 문학관 앞에 이른다. 붉은 벽돌로 장식한 벽면과 너와를 얹은 듯한 문학관 건물은 산골의 너와집처럼 편안하고 정감이 간다. 2002년 9월 7일 제4회 효석문화제 기간 중 문을 연 이 문학관은 건축가 황기원 교수가 설계했다. 마당 한편에 놓인 흰색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아홉 개의 책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모양의 조각 작품인데, 책등에 ‘Goethe’, ‘Mann’, ‘Brecht’, ‘Hesse’ 등 문호들 이름들이 보이고, 위에서 세 번째 책등에 ‘HyoSeok’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봉평의 자부심이 빛난다.
맞은편 벽면 중앙에 걸린 초상화가 눈길을 멈추게 한다. 둥근 안경 너머로 또렷한 눈매, 약간 굳게 다문 입술, 정제된 셔츠와 단정한 넥타이. 청년 문인의 초상은 세월을 넘어 여전히 고요한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 아래 유리 진열장 속에는 〈화분〉 〈황제〉 〈노령근해〉 〈돈(豚)〉 등 그의 주요 작품들이 원본 그대로 놓여 있었다. 세상과 이별하기까지의 시간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은 언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짧게 살았지만, 문장은 길게 남았다.
이어 이효석 문학전시실로 들어서면 집필실을 만나게 된다. 이 집필실은 선생의 대동공업전문학교 제자 이재현의 증언을 참고하여 재현한 것이다. ‘나는 가끔 선생의 서재를 찾아가기도 했다. …… 서재는 서창을 향하여 테이블이 놓여 있고 남쪽과 북쪽에는 서책이 놓이고 북쪽 한구석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다. 선생은 가끔 쇼팽의 곡을 즐겨 치시었다.’(‘이효석전집’ 8, 〈이효석 선생 간호기〉) 뒤 벽면에는 ‘Merry (X)-mas’라고 영문으로 쓴 장식판과 ‘단엘 다듀’라는 프랑스 여배우의 미소 짓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 있다. 다른 작가들의 서재와는 달리 모던한 분위기다.
진열대 위에는 〈메밀꽃 필 무렵〉이 실린 잡지와 함께, 이효석의 다른 작품들이 차곡히 놓여 있었다. 〈화분〉 〈산〉 〈돈(豚)〉…… 짙게 변색된 종이 위의 활자들은 세월을 견딘 생명체처럼 고요히 숨을 쉬고 있었다. 종이의 결을 따라 손끝이 닿을 듯 바라보다 보면 그 글자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하나의 장면으로 되살아난다.
전시실 한쪽, 유리 진열장 안에 영화 〈메밀꽃 필 무렵〉의 색 바랜 광고가 놓여 있다. ‘문예영화의 혁신작, 〈메밀꽃 필 무렵〉.’ 활자 아래로 두 남녀의 얼굴이 흐릿하게 인쇄되어 있다. 활자의 색은 이미 빛을 잃었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한 시대의 설렘과 숨결이 남아 있다. 문학이란 결국 세월의 먼지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인간의 숨결임을 이 공간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주민들이 이어 쓰는 〈메밀꽃 필 무렵〉
전시실 건물 밖으로 나온다. 푸른 잔디 위에 한 남자가 조용히 책상에 앉아 문학관 건물을 응시하고 있다. 선생의 청동상이다. 그의 시선은 문학관을 향하고 있지만, 눈빛은 먼 곳을 향해 머물러 있는 듯했다. 펜촉 끝에 맺힌 빗물이 마치 아직 쓰이지 못한 문장의 잔향처럼 반짝인다. 탁자 위엔 두툼한 원고지와 잉크병, 찻잔이 놓여 있다. 막 글을 쓰다 잠시 생각에 잠긴 한 작가의 생생한 모습처럼 느껴졌다. 2007년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평창군과 이효석문학선양회가 건립했다. 조각가 오상욱의 작품이다.
문학관을 뒤로 하고 전망대에 서면 봉평의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비 갠 뒤의 하늘은 아직 흐렸지만, 초록빛과 흰빛이 뒤섞인 들판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수채화였다. 메밀꽃이 바람에 따라 잔물결처럼 흔들리고 있다.
잠시 눈을 감으면 ‘허생원’의 발짝 소리가 그 들판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세월은 흘렀지만, 이야기의 공간은 여전히 이곳에 살아 있었다. 선생이 그려낸 작품 세계는 현실의 풍경과 맞닿아 있었다. 그의 문장은 여전히 살아 있는 자연의 숨결로 되돌아온다. 작품이 발표된 지 80여 년이 지났건만, 봉평의 여름밤을 수놓던 그 메밀꽃 향기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해결해야 할 무거운 짐을 두고도 기꺼이 동행해준 맛 칼럼니스트 경 박사와 함께하는 여행길, 고맙고 든든하다. 그와 함께 막국수집으로 간다.
문학관 주변 맛집 ‘고향막국수’
이효석문학관 아래로 메밀밭 가는 길에 위치한 ‘봉평고향막국수’는 1996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세월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퍼져오는 구수한 메밀 향에 마음이 먼저 눌러앉는다.
이 집의 자랑은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100퍼센트 순메밀이 빚어내는 순수한 맛이다. 투박하면서도 고운 결의 면발은 젓가락에 가볍게 걸리며, 한입 머금는 순간 담백함이 먼저 퍼진다. 메밀 특유의 향긋한 끝맛이 맴돈다. 비빔막국수는 진한 양념장이 면발에 스며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여운을 남기고, 물막국수는 시원한 육수가 목을 타고 흘러들며 오래된 여름 산사의 그늘 같은 청량함을 안겨준다. 오래 묵은 전통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정직한 손맛, 봉평의 들판과 바람이 그대로 담겨 있다.
막국수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따끈한 메밀전병이 상 위에 올랐다. 순메밀 반죽을 얇게 부쳐 김치와 채소 소를 돌돌 만 전병은 겉은 고소하고 속은 알차다. 젓가락으로 한 조각 집어 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니, 부드럽게 풀리는 메밀 피와 아삭한 김치소가 어우러져 입안 가득 산뜻한 풍미를 채워준다. 씹을수록 은근히 퍼지는 메밀 향이 앞서 맛본 막국수와 닮아, 이곳의 음식이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나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집은 나무로 된 구조물 덕분에 한옥의 전통미가 가득 느껴지고, 입구 옆 테라스에서는 탁 트인 논과 메밀밭 뷰가 펼쳐져 여유로움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창문 너머 펼쳐진 메밀밭을 보며 탱글탱글한 메밀 면발의 식감을 느끼면서, 고명으로 감미된 메밀싹, 무절임, 김가루의 감칠맛도 느끼면서 육수의 시원 깔끔한 풍미도 맛보았다. 바로 뽑은, 신선하다는 의미의 ‘막’ 자답게 방금 뽑은 막국수의 진수를 느낀 한 끼였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흰 메밀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식탁 위에서는 봉평이 지닌 가장 순박한 맛이 되살아난다. 막국수의 청량함, 전병의 구수함, 그리고 들판의 풍경까지, 이 한 끼는 배부름을 넘어 문학과 자연, 전통과 맛이 겹겹이 포개진 작은 메밀 향 축제였다. 봉평을 떠나며, 돌아올 이 계절에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이 은근히 피어올랐다.
이창경_신구도서관재단 이사, 수필가
신구도서관재단 이사, 한국출판학회 고문, 수필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에서 수학했다. 1991년 《추강 남효온 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04년 《문예운동》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고전 편찬 일을 도왔고 1989년부터 신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출판 교육, 출판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 연구에 힘써왔다. (사)출판문화학회 회장, (사)한국출판학회 회장, (사)아시아민족조형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쓴 책으로 《함께 걷는 책의 숲》과 《세계의 식물원 산책 1》(공저)이 있다.
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배경으로 하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지역을 둘러싼 문학적·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문학관 기행 연재를 맡은 신구도서관재단 이창경 이사가 부산에 소재한 추리문학관을 기행한 내용을 6월 호에 게재한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6월 바닷바람은
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배경으로 하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마을을 둘러싼 문학적 · 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문학관 기행 연재를 맡은 신구도서관재단 이창경 이사가 노작홍사용문학관을 방문하고 쓴 에세이를 5월호(첫 회)에 싣는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동탄, 해
성남에서 남한산성 남문 방향으로 오르는 산길은 낭만적이다. 봄이면 좌우로 길가에 벚꽃이 만발해 터널을 이룬다. 5월, 눈부신 녹음인가 하면 어느새 단풍이 온 산을 곱게 물들인다. 한겨울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찬바람은 오히려 상쾌하다. 산성의 오랜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절은 무심하게 오고 간다. 역사와 문화, 자연과 생태, 건강과 힐링의 복합문화공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