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메신저는 책과 언어 그리고 독서를 매개로 다양한 실험과 변화를 모색하는 크리에이터를 만나는 인터뷰 코너이다.
2025년을 마무리하는 12월호에서는 김지운·봉준호 감독이 추천한 책 《극장에는 항상 상훈이 형이 있다》의 작가 한상훈을 만나,
‘영화를 짝사랑하는 마음을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진정한 시네필의 책 안과 책 바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더라이브러리(이하 '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한상훈(이하 '한'): 안녕하세요! 최근에 영화를 짝사랑한 지 대략 30년 만에 산문집 《극장에는 항상 상훈이 형이 있다》를 쓴 한상훈입니다. 제 책에도 썼지만 저는 스스로를 극장의 유령이자 몽상가라고 생각해요. 올해 개봉한 장정혜 감독님의 장편 〈몽유도원〉을 비롯해 다수의 독립영화에서 스태프와 단역으로 참여해왔고, 매체에 가끔 영화 글을 쓰고 있으며, 2023년부터 필름포럼에서 제 책과 동일한 제목의 영화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외계로부터의 10호 계획〉 〈흐르다〉 〈동재기나루터의 여름〉 등의 단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했어요.
더: 《극장에는 항상 상훈이형이 있다》에서 영화를 짝사랑했지만 영화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고 쓰셨습니다. 영화에 대한 짝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럼에도 영화로부터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한 순간들이 있었다면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한: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TV에서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을 즐겨 보고 극장에서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 등을 보고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맛보았죠. 이렇게 영화를 좋아했지만 영화에 대한 짝사랑이 시작된 건 1997년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그 해에 동시다발적으로 저에게 영화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계기들이 만들어졌어요. 그중에 결정적인 계기를 말씀드릴게요.
제가 점심을 먹다가 우연히 신문에서 1997년 칸국제영화제 수상 소식을 보게 됐어요. 그 기사에는 이마무라 쇼헤이(일본)의 〈우나기〉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이란)의 〈체리 향기〉가 공동으로 황금종려상을, 왕가위(홍콩)의 〈해피 투게더〉가 감독상을 받았다고 적혀 있었어요. 이 기사를 읽다가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질문을 던지게 돼요. ‘아시아영화들이 수상을 휩쓸었는데 한국영화는 왜 이 명단에 없는 거지?’였어요. 제가 그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만한 논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미스터리라고 한 거예요.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자 저는 도대체 일본 영화가 얼마나 훌륭한지 궁금해졌고 스스로 그 궁금증을 풀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1998년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 이름만 알고 있었던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2분의 1〉,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 윌리엄 와일러의 〈우리 생애 최고의 해〉를 비디오로 구입한 뒤 돌아와 대학교 시청각실에서 이 영화들을 보았어요. 그런 가운데 〈8과 2분의 1〉의 엔딩, 〈7인의 사무라이〉의 마지막 전투 장면 등을 보고 큰 감동을 받으면서 영화에 점점 매혹되기 시작했어요. 그때 이후로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지내왔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동안 영화를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많은 것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로부터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한 순간들은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짝사랑한 결과로 책을 한 권 내고 보니 이러한 일이 생긴 게 영화로부터 받은 응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더: 영화 속에서 동화된 인물로 〈택시 드라이버〉(1976)의 트래비스 비클, 〈분노의 주먹〉(1980)의 제이크 라모타, 〈드라이브 마이 카〉(2021)의 가후쿠 등을 얘기하셨어요. 모두 고독한 인물인데요, 되고 싶었던 영화 속 등장인물로는 누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한: 지금 떠오르는 인물들을 열거해보자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서의 스코티,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에서의 미셸, 김보라의 〈벌새〉에서의 은희, 봉준호의 〈기생충〉에서의 기우,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의 샤오쓰,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에서의 제프 코스텔로,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에서의 케인,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에서의 윌로 씨, 나루세 미키오의 〈흐트러진 구름〉에서의 미시마,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서의 미셸, 존 포드의 〈수색자〉에서의 이산 에드워즈.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에서의 새미,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2분의 1〉에서의 귀도, 짐 자무쉬의 〈패터슨〉에서의 패터슨 정도입니다. 극중 행복한 인물보다 비극의 주인공이거나 독특한 캐릭터일지라도 제가 애착이 가는 인물일 경우에 떠오르는 대로 나열했어요.
더: 1997년부터 지금까지 대략 8천 편이 넘는 영화를 보았다고 하셨어요. 독자들에게 소개할 작가님만의 영화 보는 방식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 저는 현재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보지만 상대적으로 고전 영화들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리고 감독을 한 명의 작가로 생각할 때가 많기 때문에 감독 위주로 영화를 찾아보는 경우가 많아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영화를 보는 편이에요. 그런 제약을 두지 않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어느 시간에라도 찾아가서 영화를 봐요. 극장에 가면 지인들과 만날 때가 많기도 하고 영화 관람 스케쥴을 짜는 데 방해를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주로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해요. 그리고 백지 상태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선호해요. 가급적 예고편도 안 보고 영화를 보려는 쪽이에요. 그런 상태로 영화를 봤을 때 가장 만족스럽더라구요. 영화를 보고 나면 왓챠피디아, 키노라이츠에 별점을 매기고 간단한 평을 적는 편이에요. (한상훈 작가의 왓챠피디아 아이디 : Ordet, 키노라이츠 아이디 : 시네바람)
더: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가 작가님 삶의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하셨어요. 책에도 쓰셨지만 어떤 장면에 가장 큰 동요를 느끼셨는지, 마음에 남는 대사는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한: 영화 속 은희가 혹을 떼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녀가 영지 선생님과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이 장면에서 영지 선생님은 은희에게 누가 그녀를 때리면 맞서 싸우라고 말하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은희와 거의 물아일체 수준으로 동화되어 있던 저는 영지 선생님이 그 말을 은희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하는 것처럼 들렸고 그 순간 기적과도 같이 저에게 치유가 찾아왔어요. 놀랍게도 은희가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는 동시에 저도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리고 역시 가장 마음에 남는 대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지 선생님의 내레이션을 통해 들을 수 있는 부분인데요,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에요.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학원을 그만둬서 미안해. 방학 끝나면 연락할게. 그때 만나면,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 살다가 문득 이 대사가 떠오르면서 위로를 받을 때가 있어요. 특히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라는 부분이 저에게 많이 와닿는 것 같아요.
한: 영화는 영화관 안에서 만들어지는 몰입감을 통해 최고의 오락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와서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분 전환을 통해 일상에서의 일들에 다시 매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봐요. 영화는 또한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은 거대한 스크린을 마주하면서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동화되거나, 그 인물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각자의 삶을 반추하게 되고 그로부터 삶에 대한 위로를 얻게 되거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죠. 그 밖에도 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이 두 가지만으로도 영화의 존재 이유는 충분한 것 같아요.
더: 작가님 소개를 보면 처음에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었지만 단역 배우와 스태프, 연출로도 활동을 하시고 또 영화에 대한 글을 매체에 쓰고 계시기도 해요. 영화를 감상하는 일과 영화에 대해서 연출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일은 어떻게 다르나요.
한: 저는 영화를 감상하는 일과 영화를 연출하거나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영화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던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줄곧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을 저의 이상적인 롤 모델로 생각해왔어요.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은 장-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클로드 샤브롤을 말하는데요. 이분들은 현재까지 발간되고 있는 프랑스의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평론가로 출발해 감독으로 데뷔했고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는 인물들이 됐어요. 제가 이 감독들을 동경해왔기에 저도 늘 평론가나 감독이 되기를 꿈꿨죠. 그러다 보니 저에게 영화를 보는 것은 평론가나 감독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도 했던 거예요. 그렇게 되니까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영화를 연출하거나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이어져왔던 거고, 감상과 창작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네요.
더: 시네필이 되고자 하는 독자에게 영화와 관련한 책 중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세 권을 추천해주신다면?
한: 먼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스티븐 제이 슈나이더, 이언 헤이든 스미스 공저)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이 책에는 무성영화 시대부터 21세기까지 만들어진 영화들이 연대순으로 나열되어 있는데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영화들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어서 이 책에 나와 있는 영화들을 도장 깨기를 하듯이 찾아보신다면 자연스럽게 영화의 역사, 장르, 세계 영화사에서 중요한 대표 감독 등을 이해하시게 될 거예요. 각 영화에 대한 훌륭한 필자들의 글도 큰 도움이 되실 거구요. 그리고 하스미 시게히코가 쓴 <감독 오즈 야스지로> <존 포드론>을 읽으시면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오즈 야스지로와 존 포드를 이전과는 다르게, 보다 새롭게 바라보게 되시고 ‘영화’ 자체를 더 넓은 시각으로 보실 수 있는 눈이 생기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질베르토 페레스의 《영화, 물질적 유령》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저는 이 책을 통해 우아한 글쓰기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영화에 접근하는 태도에 대해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었어요.
더: 어디를 가면 한상훈을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 제가 가장 자주 가는 곳은 고전 영화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정동길의 서울아트시네마와 상암동에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이에요. 그밖에는 제가 토크 행사를 진행하는 필름포럼, 씨네큐브, 에무시네마, 아트나인, 아트하우스 모모, KU시네마테크, 상상마당, 더숲아트시네마, 라이카 시네마, 인디스페이스, 아리랑시네센터 등이 있을 것 같네요. 《극장에는 항상 상훈이 형이 있다》라는 제 책의 제목처럼, 앞에 열거한 극장들이나 각종 영화제에 가시면 아마도 저를 만나게 되시지 않을까 싶어요.
한: 특별히 작업 중인 일은 아직 없어요. 책과 관련된 행사를 계속하고 있고, 언제 출간될지 모르지만 두 번째 책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키고 있어요. 2년 전에 쓴 단편 시나리오를 다듬을 계획이고, 작년에 만든 단편 〈동재기나루터의 여름〉을 영화제에 좀 더 출품해볼 생각이에요. 단역을 하면서 연기에 대한 재미를 느낀 만큼 생계형 단역 활동도 이어가고 싶구요. 그리고 몇 년 전부터 고민 중인데, 유튜브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을 여전히 갖고 있고 편집 프로그램을 공부해서 영상물을 편집하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더: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한: 크리스천으로서 성경 구절을 인용해보고 싶어요. 서로 사랑하라.
한상훈_작가
극장의 유령. 몽상가.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삶이었고 여전히 영화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안다.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화이론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속초국제장애인영화제에서 프로그램팀장으로 일했다. 2025년에 개봉한 장정혜 감독의 장편 <몽유도원>을 비롯해서 다수의 독립영화에서 단역이나 스태프로 참여했다. <로맨틱 코미디>, <외계로부터의 10호 계획>, <흐르다>, <동재기나루터의 여름> 등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영화 매체에 영화 글을 쓰고 있으며 현재 ‘오신호’라는 닉네임으로 SNS 웹진인 시네마토그래프의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2023년부터 필름포럼에서 ‘극장에는 항상 상훈이 형이 있다’라는 영화 토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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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새로운 한류 ‘한국문학’2016년 일본 문학계를 들썩이게 한 뉴스가 있었다. 번역가 현재훈과 사이토 마리코가 공역한 박민규의 《카스테라》(도서출판 크레인)가 제1회 일본번역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일본번역대상은 12월부터 이듬해 12월 말까지 13개월 간 일본어로 번역된 책 중에 뛰어난 번역서에 주어지는 상이다. 후보 선정 과정에서 독자 추천을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