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책으로부터 얻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책은 도대체 무엇일까.
《책그림책》이 주는 것은 어쩌면 도피고, 또 달리 말하면 위안이다.
《책그림책》은 1997년에 스위스에서 출간되었고, 2001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밀란 쿤데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작가 46명이 참여했는데, 참여한 작가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책 소개가 충분할 정도다. 요슈타인 가아더, 헤르타 뮐러, W. G. 제발트, 아모스 오즈, 존 버거, 오르한 파묵, 안토니오 타부키, 미셸 투르니에, 수잔 손탁, 마르틴 발저 등등.
이 책은 기본적으로 책을 소재로 한 그림에 해석과 감상을 덧붙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국적과 작품 세계가 다른 46명을 한 책에 모이게 한 사람은 독일 뮌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1957년생 크빈트 부흐홀츠(Quint Buchholz)다. 크빈트의 책그림들은 각 작가들에게 하나씩 보내졌고, 작가들은 그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해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일에 동참했다.
몇 년 전 독일 뮌헨에 간 적이 있는데, 흰 눈이 내리는 고요한 12월의 뮌헨 풍경이 그의 그림을 닮았다고 느꼈다. 그의 두 작품 중에서 《순간 수집가》는 대체로 고요하고 정적인 상태의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책그림책》은 그 자연의 풍경 위에 툭 던져놓은 책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책그림책》(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밀란 쿤데라 · 미셸 투르니에 외 글, 민음사, 2001)(좌)
《순간 수집가》(크빈트 부흐홀츠 글 그림, 이옥용 옮김, 보물창고, 2021)(우)
‘무엇 때문에 나는 책과 함께 멀리 대기 속을 날아왔는가?’(《책그림책》, 12쪽)
사람들이 책으로부터 얻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책은 도대체 무엇일까. 요즘처럼 책의 가치를 성공이나 부의 창출, 정보나 지식의 획득을 위한 도구적 기능으로만 축소해버리는 상황에서는 사실 《책그림책》 같은 책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어떤 정보도, 지식도 주지 않는다.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책은 감기에 걸려 의욕이 없고 나른하지만 뭔가 생각하고 싶을 때 집어 들게 된다. 따뜻한 차라도 마시고 상태가 좀 좋아지면 신고 있던 수면양말을 벗고 《호수와 바다 이야기》(마르틴 발저 · 요한나 발저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도 내처 읽는다. 《책그림책》이 주는 것은 어쩌면 도피고, 또 달리 말하면 위안이다.
가끔 도서관에 가면 책이 너무 커서(A4 용지보다 크다) 선물 포장도 쉽지 않은 《순간 수집가》를 찾는다. 이 책은 뭔가에 실망했을 때, 나 자신이 싫고 불안할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면 좋다. 자신을 ‘순간 수집가’라고 규정하는 막스라는 화가와 바이올린 켜는 걸 좋아하는 어린 친구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다. 막스는 평소에는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화실을 공개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휴가를 떠나면서 어린 친구에게 화실을 공개한다. 어린 친구는 화실로 들어가 평소에 궁금해하던 막스의 그림을 감상한다. 그 그림들은 ‘순간 수집가’라는 막스의 정체성에 걸맞게 어느 도시의, 한 사람의, 어떤 풍경의 사소한 순간을 그린 것들이다.
‘어떤 그림이든지 그 그림에 다가갈 수 있게 해 주는 길이 하나씩 있는 법’(《순간 수집가》, 9쪽)
시간이 좀 지나 막스는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하고 어린 친구는 우표가 덕지덕지 붙은 우편물을 받는다. 그것은 ‘구닥다리 철테 안경을 쓰고 조금 뚱뚱한 편이어서 학교 애들로부터 곧잘 놀림을 받는’ 어린 친구를 위해 막스가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에서 어린 예술가 지망생은 방파제에 놓인 빨간 소파 위에 서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이토록 따뜻한 마음을 지닌 막스 씨는 왜 진작 이 친구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직접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막스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귀찮았던 걸까.
그는 어린 친구 스스로가 그림을 직접 보고 이해하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이 화실을 비우는 동안 어린 친구가 혼자서 화실에 들어가 직접 보게 했을 것이다. 어린 친구는 화실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막스의 그림에서 그 친구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독자는 잘 알 수 없다.
《책그림책》은 사실 조금 더 무용하고 거의 아무것도 지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를 담고 있다. 이 그림책 안에 있는 조금은 육중한 체구의 한 남성은 책을 밟고 선 채 공중을 날기도 하고, 예쁜 눈을 지닌 까마귀는 막 펜을 들고 글을 쓸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 누군가의 집 테이블 위에 있는 책은 긴 혓바닥을 내밀고 있고, 단정한 옷을 입은 한 남자는 자루에 든 무거운 물건을 질질 끌고 가듯 무거운 책을 들고 길을 걷는다. 한 시인은 책 속에서 단어 ‘schwirrten’를 꺼내 입 속에 넣어버리고, 또 중절모자를 쓴 한 남자는 책의 정중앙에 가위를 꽂아 책을 훼손하기에 이른다. 책을 이불처럼 덮고 땅에 뺨을 댄 채 잠이 든 청년, 다 읽은 책을 배에 싣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도 있다. 책과 더불어 무엇을 하든 문제될 것은 없다. 아, 빼먹을 뻔했는데 책을 먹는 커다란 고양이도 나온다.
그 무엇도 미리 규정하지 않는 세계
46명의 작가는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에서 비롯되었으나 그 그림 세계에 갇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크빈트 부흐홀츠가 그린 책그림도 사실은 책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작가 자신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뭔가 말해주는 것이 있다면 책이라는 사물과, 사물이 놓이는 장소, 그리고 인간과 시간이 머리를 맞대고 기대어 있는 듯한 감각뿐이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다 아는 정보와 지식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독서를 한다면, 그런 독서가 필요할까. 모든 것이 너무나 확실함에도 자신의 굳은 신념을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라면 그것은 책이라 할 수 있을까. 《책그림책》의 세계처럼 나는 네가 아는 그런 책이 아니라며 고요히 존재하는 책도 재미있다. ‘의미의 저주로부터 해방시켜’(46쪽) 달라고 말하는 듯한 《책그림책》의 점묘의 세계를 더듬더듬 밟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자, 그럼 이 책에서 찾아낸 멋진 말을 하나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하자. 그런데 인용할 부분이 너무 많기도 하고, 또 별로 없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언젠가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을 쓴 독일 작가 마르틴 모제바흐(《달과 소녀》의 저자)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
‘책을 읽기에는 곧 날이 너무 어두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계속해서 읽어야 해! (······) 네가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추락해!’
- 《책그림책》, 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