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미국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초・중・고 학교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이 대학에서 한국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과 연구자 수의 증가로 이어지길 기대해 볼 수 있는데, 미국 대학의 한국 관련 수업 주제가 기존의 역사, 언어, 문학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종교, 디아스포라 등 다양한 주제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 대학도서관의 한국학 컬렉션은 이러한 한국문화의 확산을 마치 예상하기라도 한 듯 1990년대부터 이미 한국학 제 연구 분야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해오고 있다. 그러면 한국을 연구하는 학문인 ‘한국학’과 관련 연구를 뒷받침하는 ‘한국학 컬렉션’은 미국에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전쟁의 영향으로 생겨난 지역학: 서구 중심의 관점에서 비롯된 초기 오리엔탈리즘
전쟁은 많은 것을 파괴한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적국과의 군사적 대립이 과학기술로 발전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발되었는데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인터넷의 원형은 1969년에 개발된 아파넷(ARPANET)으로 알려져 있다.* 아파넷을 사용한 최초의 통신은 당해 11월 성공했는데, 이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대학인UCLA와 스탠포드가 실험한 것이었다. 이 통신은 UCLA가 메시지를 송신하고 스탠포드가 수신하는 것이었는데 ‘login’이라는 메시지를 전송하는 과정에서 첫 두 글자 ‘lo’만 전송과 수신이 성공된 후 아파넷 시스템이 다운되었다고 한다. 이 인터넷 원형이 개발되던 시기는 미국을 대표로 하는 민주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대표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의 시대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뜬금없이 전쟁과 인터넷 이야기냐?’ 할 수 있지만 한국학과 한국학 컬렉션이 전쟁과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전쟁과 대립은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학문 분야에도 영향을 끼쳐 새로운 학문 분야를 파생시키기도 하는데, ‘지역학(area studies)’이란 이름을 가진 학문 분야는 2차 대전과 그 이후 냉전시대 상황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대응으로 미국 내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지역학이란 학문 분야를 몇 줄의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지역학은 ‘특정 지역의 언어, 문화, 지리 등을 연구하고 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체계화하며 해당 지역의 전문가 그룹을 양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미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역들 중 하나인 동아시아를 미국의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춰 공부하고 연구하여 이 지역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이 같은 지역학은 근본적으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비판적으로 정의한 오리엔탈리즘과 맞닿아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순수한 연구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양을 서구(당시는 서유럽)보다 열등하고 따라서 지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서구 중심의 관점이다. 지역학이 발생한 당시 미국이 동양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 오리엔탈리즘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 국방교육법으로 발전한 도서관의 오리엔탈 컬렉션
2차 대전 발발 이후 미국 육군이 실행한 전문 훈련 프로그램인 ASTP(Army Specialized Training Program)는 미국 정부가 도입한 초기의 지역전문가 육성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미국이 전쟁 기간 중 적국에 대한 기초 지식을 자국의 장교들에게 교육시킨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국의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과 카네기 재단(Carnegie Corporation) 등에서 지역학 연구를 위해 자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1958년 미국에서 국방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 NDEA)이 제정됨에 따라 미국 교육부는 미 전역의 주요 사립 및 주립 대학에 언어 및 지역 센터(Language and Area Centers)를 설립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했다. 교육부는 국방교육법(NDEA)에 의해 설치된 언어 및 지역 센터 프로그램의 성과와 운영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영향을 전망한 보고서를 1964년에 발표했는데, 이 보고서는 냉전시대 미국의 교육정책이 어떻게 지역학 및 언어 연구를 강화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 보고서를 통해 1962년까지 언어 및 지역 센터가 설립된 대학들과 센터에서 진행된 언어 수업 목록들을 확인할 수 있다.**
국방교육법(NDEA)은 또한 대학에서 지역학 수업과 연구에 필요한 도서관 자료를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자료를 관리할 수 있는 사서의 채용과 교육에도 예산을 지원했다. 물론 미국 대학의 동아시아도서관과 컬렉션은 국방교육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존재했으나 동양과 비서구 지역에 대한 연구는 오리엔탈리즘의 전통적인 시각 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동아시아 컬렉션도 이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의 대학들에서 동아시아도서관/컬렉션이 시작되는 시기인 1800년대 후반은 미국이 아시아에 ‘진출’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고 명칭 또한 오리엔탈 컬렉션(Oriental Collection)이란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대부분 컬렉션 단위로 출발한 동아시아도서관이 독립적인 Library 또는 관(館)으로 설치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1940~50년대로 볼 수 있는데, 이는 2차 대전 이후 미국 내에서 지역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미국 국방교육법에 의한 교육부의 예산 지원으로 인해 초기의 산발적인 자료수집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자료수집이 가능하게 되었고, 자료의 다양화와 장서 규모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북미의 동아시아도서관협의회(Council on East Asian Libraries: CEAL)가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도서관에 관한 최초의 통계자료인 미 도서관의 극동 자료 소장 현황(Holdings of Far Eastern Materials in American Libraries)을 보면 1957년 당시 20개 대학에 동아시아도서관/컬렉션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들 20개 대학은 앞서 말한 1964년 교육부 보고서에 나오는 지역학 센터들이 설치된 대학들과 일치한다. 따라서 당시 미국 교육부는 동아시아도서관/컬렉션이 이미 존재하는 대학들을 중심으로 지역학센터 설치를 지원했을 것이라 추론해볼 수 있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동아시아도서관/컬렉션을 설치한 대학은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으로 이 두 대학은 각각 1868년과 1879년부터 동아시아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1957년 당시 하버드대학은 31만여 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었다고 보고되어 있다. 이 중 한국 관련 자료는 2천 500여 점으로 전체 장서의 1퍼센트가 채 안 되는 규모였다.
동아시아 컬렉션 비율 0.3퍼센트에 불과했던 한국학 자료가 10퍼센트를 넘기까지
미국 대학들이 동아시아도서관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1800년대 후반부터 대학 내에 지역학센터가 생기기 시작한 1960년대까지 한국 컬렉션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 컬렉션은 중국과 일본 컬렉션에 비해 규모가 작다. 이 같은 사실은 1957년의 ‘미 도서관 극동 자료 소장 현황’과 1964년 교육부 보고서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극동 자료 소장 현황에 의하면 미의회도서관을 제외한 북미의 18개 대학에 5천여 책의 한국 관련 자료가 소장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당시 18개 대학에 소장되어 있던 동아시아 자료 1,742,553책의 0.3퍼센트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1964년 교육부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어는 미국에 필요한 지역센터 설립 지원 우선순위 목록에서 2순위로 분류되어 있다. 당시 5개 대학에 초급 한국어 수업이 개설되었는데 교육부 지원 첫해인 1958년 26명이었던 한국어 수강생이 1962년에는 190명 정도로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또한 당시 중국어와 일본어 수강생 수의 10퍼센트 정도였다. 이후 미국 대학의 한국 자료는 꾸준히 증가하여 1990년대에는 동아시아 자료 전체의 5.0퍼센트 정도 수준까지 성장했고, 2021년 통계에 따르면 북미 전체 동아시아 컬렉션에서 한국학 자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10퍼센트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미국의 한국학 컬렉션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 등장한 지역학과 1958년 제정된 국방교육법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한국학 컬렉션은 대학 내에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한 컬렉션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한국학 연구 분야가 언어, 문학, 역사와 같은 전통적인 주제를 넘어 K-대중문화, 사회운동, 디아스포라, 여성학 등으로 확장되면서 이에 따른 다양한 1. 2차 자료를 꾸준히 수집하고 있다. 종종 한국에서 도서관을 방문하러 온 연구자들과 만나 그들의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방문연구자들은 “한국에도 없는 자료가 여기에 있네” 하며 놀라곤 한다. 이는 지난 세월 동안 미국 대학에서 한국학 컬렉션을 관장하는 사서들이 한국학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이다. 도서관의 컬렉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양질의 도서관 컬렉션은 장시간에 걸쳐 만들어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아파넷(ARPANET)은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에서 각 단어의 첫 글자 ARPA에 연결망을 뜻하는 NET을 붙인 것이다.
**138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의 제목은 “NDEA Language and Area Centers: A Report on the First 5 Years”이다.
1957년 통계자료 출처는 아래와 같다. Nunn G. Raymond, Tsien, Tsuen-Hsuin, “Far Eastern Resources in American Libraries.” Library Quarterly. V. XXIX No. 1 (1959): 30-31. 1957
조상훈_UCLA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사서
UCLA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사서(Korean Studies Librarian, East Asian Library, UCLA)로 재직중이다. 한국학 자료를 큐레이팅하면서 한국의 근현대사와 이민사에 관심을 가지고 대통령기록관과 대학 아카이브에서 자료를 발굴하고 이민사 관련 자료를 수집해오고 있다.
책을 읽지 않는 MZ세대Millennials와 Generation Z(또는 Gen Z)는 미국에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요사이 한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MZ 세대라는 말과 같은 의미지만, 한국에서처럼 두 세대를 하나로 묶어서 사용하지는 않는 것이 다르다.얼마 전 한국의 MZ세대들 사이에서 책을 읽는 것이 하나의 ‘힙(hip)’한 문화로
2000년대 초, 생애 처음 한국 밖으로 여행 갔을 때를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던 뉴욕의 2월. 여행 중이라 겨울옷이 변변치 않았기에 발을 동동 구르며 눈이 쌓인 인도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고 버스의 앞문이 열렸다. 날이 많이 추워 버스에 얼른 올라타려고 하는 순간 버스 기사님이 잠깐 기다리라는
사람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면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면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의 의미를 종종 되새기게 된다. ‘인사만사’는 누군가에게는 꽤 진부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어색하지만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 있듯이, ‘인사만사’는 진부하면서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이다. 도서관에는 아르바이트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