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들에게 본인이 알고 있는 유명 캐나다인을 물어보면 대부분 저스틴 비버와 레이첼 맥아담스, 한 발 더 나아가 짐 캐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면 한 명의 캐나다인을 더 알게 될 것이다. 바로 토론토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다.
레코딩 스튜디오 안의 글렌 굴드(출처: The Cross-Eyed Pianist)
피아노와 의자
굴드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다. 학교에서 구토를 자주 했으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친구가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치커링 피아노다. 친구 대신 피아노를 만나서였을까. 굴드는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는 지경에 이르렀고, 어머니는 굴드를 벌주는 대신 피아노를 못 치게 했다. 부모님은 그가 연주자의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굴드가 피아노 대회에서 재능을 드러내자 부모님은 그에게 ‘맞춤형 접이식 의자’를 선물하게 된다. 단순한 선물처럼 보이지만 이 의자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굴드는 고전음악을 즐겨 쳤기 때문에 양팔을 벌릴 일이 거의 없었다. 고전·바로크 시대의 건반악기는 현대의 피아노보다 건반 수가 적었고 작곡 자체도 저음과 고음이 크게 벌어지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높은 위치에서 힘 있게 피아노 건반을 치는 것보다 피아노 가까이 붙어 손을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했다. 그 결과 굴드는 매번 손을 가슴 가까이 붙여 다소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피아노를 높이거나 의자를 매번 낮추려고 시도했다. 그런 와중에 바닥으로부터 정확히 14인치라는 완벽한 높이에 앉을 수 있는 맞춤형 의자를 선물로 받았으니 얼마나 그에게 필요한 선물이었던가. 촬영 중 진행자가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의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 우스꽝스러운 악기는 뭐죠?” 굴드가 대답한다. “나는 이 의자 없이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의자를 챙겼고, 그 의자 없이는 연주하지 않았다.
의자의 높이를 조정하고 있는 글렌 굴드(출처: glenngould.com)
굴드의 동물 친구들
글렌 굴드의 다큐에는 언제나 동물들이 등장한다. 굴드는 돈을 버는 족족 동물 보호소에 기부했는데, 그의 어릴 적 꿈이 동물 보호소를 만들어 유기된 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모피상 집안에서 자란 굴드는 어릴 때부터 동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굴드는 니컬슨, 바흐, 베토벤이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었고, 모차르트라는 앵무새, 그리고 쇼팽이라는 금붕어가 있었다. 작곡가들을 향한 개인적인 견해를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데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굴드는 낭만주의 곡을 거의 연주하지 않았다. 그는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자 쇼팽, 슈베르트를 일 년에 두 번 정도 친다고 말했고, 그마저도 삶을 너무 흔들어놓는다고 했다. 이는 후기에 낭만주의 색채를 띤 베토벤과 모차르트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굴드는 베토벤의 몇몇 곡들을 쓰레기라고 말했고, 모차르트를 두고 ‘너무 오래 산 사람’이라 말했다. 이런 굴드에게 위안이 되는 건 바흐와 헨델을 비롯한 고전음악과 그의 곁을 지키는 반려동물들이었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낚시를 혐오했고, 채식주의자로 살았으며, 여행을 가게 되면 동물들에게 편지를 썼다.
동물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글렌 굴드
화려한 데뷔
글렌 굴드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음반이 있다. 바로 1956년 발표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이 음악을 듣고 졸음이 쏟아진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바흐가 한 백작의 불면증 치료를 위해 작곡했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평화로운 아리아로 시작해 30개의 다채로운 여정을 지나 처음과 같은 아리아로 끝이 난다. 마치 처음과 끝이 동일한 인간의 삶을 보는 것과 같다. 굴드가 그의 데뷔 앨범으로 골드베르크를 고르자 음반사 관계자들은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단일 건반 곡으로 규모가 너무 컸고, 피아노보다는 하프시코드로 연주되는 작품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며, 바흐의 권위자 ‘로잘린 투랙’이 바흐의 권위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굴드의 앨범은 대성공을 거뒀다. 피아노로 바흐를 연주하는 건 작곡가의 의도를 훼손하는 행위라 주장하던 평론가들도 굴드의 연주에 감탄했다. 당시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듀발은 “기존에 바흐가 피아노로 연주한 것은 따분한 패턴 만들기였지만 굴드의 연주가 그 모든 것을 바꾸었다”라고 말했다. 기존 피아니스트들과 다르게 휘몰아치는 그의 데뷔 앨범은 고전음악을 신비롭고 고혹적인 예술 작품으로 끌어올렸고, 굴드는 자신이 세상에 그 누구와도 다르게 연주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완벽주의자의 기행
굴드는 병약한 신체 조건 때문에 생긴 온갖 기행들이 많았다. 항생제, 우울증 처방 약, 영양제들을 들고 다녔으며 한여름에도 코트와 장갑을 끼고 다녔다. 병균이 전염되는 것을 두려워해 사람들과 악수하는 것을 꺼렸고, 손을 내미는 이들에게 자신이 악수할 수 없는 이유가 적힌 쪽지를 건네주었다. 굴드의 예민한 기질은 그가 음악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굴드는 뜨거운 물에 손을 20분간 담가야 연주를 시작할 수 있었고, 콘서트홀의 관객들을 장애물로 여겼다. 굴드는 결국 전성기를 누리던 30대에 돌연 은퇴 선언을 하게 되는데, 이 결정을 납득하게 하는 앨범이 하나 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브람스 협주곡 1번 D단조〉이다. 번스타인과 굴드의 해석적 충돌로 인해 번스타인의 긴 해명으로 시작하는 이 역사적인 앨범은 굴드의 신경증적인 고집과 함께 그가 청중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곡을 듣고 있으면 내가 감기에 옮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기침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굴드는 극도의 황홀경 상태를 방해하는 청중을 멀리하며 녹음 스튜디오로 피신했고, 녹음 기술과 편집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몰입 상태를 이어 나갔다. 굴드는 그가 바라던 모든 것들을 스튜디오에 채워 넣었다. 선물 받은 접이식 의자와 수많은 알약들, 토론토에서 가져온 생수와 손을 적실 수 있는 뜨거운 물,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완벽한 피아노 스타인웨이 CD 318과 맹인 조율사 베른 에드퀴스트까지. 그는 밤새 피아노를 치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옆방에서 자고 있는 베른을 깨웠으며, 그는 굴드의 까다로운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주었다. 굴드의 스튜디오 음반들을 유심히 듣다 보면 삐걱거리는 의자 소리와 함께 또 다른 무언가를 들을 수 있다. 그의 허밍 소리다. 굴드는 그 콧노래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소망적 사고의 표현이라고 말했고, 녹음 테크니션들은 그에게 방독면까지 씌웠으나 그의 노랫소리를 통제할 수는 없었다.
글렌 굴드의 연습 영상
다시 녹음하는 골드베르크
49세의 굴드는 데뷔 음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새로 녹음하기로 한다. 25년 전 연주가 낭만적으로 들리고, 지나치게 산만하다는 이유였다. 그가 녹음을 다시 하기까지엔 여러 난관이 있었다. 굴드의 완벽한 피아노 스타인웨이 CD 318이 사고로 부서졌고, 맹인 조율사 베른 에드퀴스트와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굴드는 새로운 피아노를 찾아야 했고, 녹음 과정에서는 피아노 연주보다 새로운 조율사와 소통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하지만 음반이 출시되자 비평가들은 두 번째 레코딩에 찬사를 보냈고 25년이 지나도 남아 있는 굴드 특유의 과시와 세월의 성숙이 담긴 연주라고 평했다. 그러나 앨범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굴드는 뇌사 상태에 빠졌고,인공호흡기에 의지하던 그는 1982년 10월 4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굴드의 묘비에는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데뷔와 마지막 앨범이 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 악보가 새겨져 있다.
굴드의 아리아 다 카포 연주 영상
1977년, 나사(NASA)는 목성과 토성 탐사를 위한 무인 탐사선 보이저호를 발사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외계 생명체에게 인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보이저 골든 레코드’를 기획했고, 그 안에는 굴드가 연주한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도 실려 있었다. 굴드가 할머니 무릎에 앉아 피아노 건반을 처음 누르게 되었을 때, 그는 건반을 하나씩 누르며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굴드는 사라지는 것들에 집중하게 된 게 아니었을까. 사라지는 선율, 파동, 언제나 그의 곁을 지킨 동물들과 그의 체온까지. 나중에는 일관성마저 사라지며 그의 우스꽝스럽기만 했던 기행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천억 개가 넘는 은하 사이로, 굴드의 피아노 선율은 지금도 우주를 떠돌고 있다.
안은혁_작가, 영화 감독
서울과 취리히를 기반으로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든다. 클래식과 영화를 둘러싼 인간의 태도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가려진 정서가 기억될 수 있는 방식을 살피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일년에 한 번은 경주에 가는 편인데, 그 이유는 모두 능 때문이다. 능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무덤이라면 어쩐지 무서운데 능이라고 말하면 평온하고 부드럽다. 말을 닮아 능은 둥글고 초록이어서, 또 제각각 따로지만 함께 모여 ‘능들’이어서 좋다.매번 같은 능을 볼 때도 있지만, 예전에 미처 몰랐던 능
얼마 전 큰아이가 디즈니플러스라는 OTT로 어릴 때 보던 애니메이션 백설공주를 보기에 나도 슬그머니 옆에 앉았다. 예전에 재미있게 봤고 음악도 기억에 남는 만큼 지금 봐도 감명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하지만 잠깐 보는 동안 진행이 어찌나 더디던지 지루하고 답답해서 계속 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갖가지 ‘숏폼’ 콘텐츠와 스피디한 스
1995년 늦가을, 나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있었다. 계절의 영향도 있겠지만 당시 바르샤바의 색채는 온통 회색빛이었다. 오랜 동안 소련의 영향 하에서 서구와 교류가 없던 공산권 국가의 수도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스산함, 경직된 분위기를 강하게 느꼈다. 아니, 처음 디뎌보는 (구)공산권 땅이었기에 내가 경직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머릿수건을 쓴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