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1학년이던 제니퍼 가너는 수업 시간에 쓴 짧은 이야기 한 편을 맥캔 사서에게 보여주었다. 아이의 눈에는 그저 숙제였고, 어른의 눈에는 작가의 첫 원고였다.
맥캔 사서는 그 이야기를 그냥 돌려주지 않았다. A4 몇 장짜리 원고를 직접 손으로 제본하고 표지를 만들어 도서관 책처럼 꾸민 뒤, 실제 도서관 카드 목록에 정식으로 등록했다. 당시는 아직 컴퓨터 시스템이 보편화되기 전이었다. 사서는 직접 카드를 작성하고, 분류 번호를 붙이고, 대출 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책을 도서관 책장 한쪽에 다른 책들과 나란히 꽂아 두었다.
책의 저자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Jennifer Garner'
어느 날 도서관에 갔을 때, 가너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을 발견했다. 책장에 꽂힌 '진짜 책'으로. 그 순간을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 처음으로 '아, 내가 뭔가를 만들어냈구나'라고 느꼈어요. 그냥 아이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그 책은 실제로 대출이 되었다. 다른 아이들이 제니퍼 가너가 쓴 책을 빌려 읽었다. 1학년 아이가 쓴 서툰 이야기였지만, 도서관 시스템 안에서는 로알드 달이나 주디 블룸의 책과 똑같은 자격을 가진 '한 권의 책'이었다.
"그 사람은 나를 작가로 대해줬다"
가너는 성인이 된 뒤에도 이 경험을 잊지 않았다. People.com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맥캔 선생님은 제가 단지 아이가 아니라 이야기를 가진 사람으로 대해줬어요. 그게 제 인생을 바꿨어요."
이 사건이 곧바로 배우의 길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말한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진짜로 받아들여준 그 경험이, 평생 저에게 표현하는 용기를 줬어요."
오늘날 제니퍼 가너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수많은 캐릭터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배우가 되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화려한 무대도, 오디션도 아니었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위대한 멘토는 이렇게 정의된다.
"저를 스타로 만든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저를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어른은 있었죠."
아이를 '가능성의 주체'로 대하는 어른의 힘
이 이야기는 단순한 미담이 아니다. 한 명의 어른이 아이를 '가능성의 주체'로 대했을 때 그 아이의 자아 인식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맥캔 사서가 한 일은 거창하지 않았다. 특별한 재능을 발굴한 것도, 집중 교육을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가 쓴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 진지함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었을 때—제본, 목록 등록, 서가 배치—아이는 자신이 ‘창작자’라는 정체성을 내면화할 수 있었다.
교육학에서는 이를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은 누군가의 격려나 칭찬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로 자신의 결과물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맥캔 사서는 그 경험을 1학년 아이에게 선물했다. 사서 선생님이 선물한 '존중받는 경험'은 아이를 평생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제니퍼 가너가 책과 도서관을 옹호하는 이유
가너는 성인이 된 후에도 도서관과 책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해왔다. 그는 여러 차례 전국 도서관 주간(National Library Week)에 참여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도서관 예산 삭감 반대 캠페인에도 목소리를 냈다.
2019년, 가너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에요. 아이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는 곳이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는 자신의 세 자녀에게도 도서관을 자주 데려간다고 밝혔다. 집에 책이 충분히 있어도 공공도서관에 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책은 모두의 것'이라는 걸 가르쳐줘요. 부자든 가난하든, 누구나 이야기를 읽고 쓸 권리가 있다는 것을요."
제니퍼 가너의 라이브러리 (출처 : Architecture Digest Jennifer Garner Open Door 유튜브, https://youtu.be/_AovxHP8vV8?si=ulHdZ6Yxvbuz6moQ )
미국 매거진 《Architectural Digest》의 집들이에 나온 가너의 집에는 ‘라이브러리’가 있었다. 집을 설계할 때 제일 먼저 구상했다는 방이다. 가족 모두가 함께 TV도 보고 책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처럼 아늑한 방에서는 가너의 삶에 깊숙이 자리한 도서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유튜브 Architecture Digest Jennifer Garner Open Door)
할리우드 스타에서 아동 교육 옹호자로
제니퍼 가너는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제작자, 그리고 아동·교육 분야의 사회공헌 활동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72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나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성장했으며, 대학에서는 연극과 영어문학을 전공했다. 배우로서의 성공 이전부터 그는 이야기와 표현의 힘을 중시해온 인물이다.
가너는 2001년 TV 시리즈 〈앨리어스(Alias)〉에서 CIA 요원 시드니 브리스토 역을 맡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강인함과 감정 연기를 동시에 소화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13 Going on 30〉 〈Juno〉 〈Dallas Buyers Club〉 등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은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액션, 드라마, 코미디를 넘나드는 연기 스펙트럼은 그를 '신뢰할 수 있는 배우'라는 평가로 이끌었다.
배우를 넘어,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제니퍼 가너의 진짜 위상은 스크린 밖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그는 오랫동안 아동복지와 조기교육 문제에 헌신해왔다.
Save the Children에서의 활동
가너는 2009년부터 국제 NGO 'Save the Children'의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농촌 지역과 저소득층 아동의 조기교육 접근성 문제에 집중해왔다. 그는 웨스트버지니아, 캔터키, 미시시피 등 교육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을 직접 방문해 부모 교육 프로그램과 문해력 향상 캠페인을 이끌었다.
그는 여러 연설과 인터뷰에서 반복해서 말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경쟁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입니다."
Save the Children에서 책 읽어주는 제니퍼 가너 (출처 : Save the children 유튜브, https://youtu.be/zintME0VEKE?si=XVhlhuTXdtMGOYZ8)
Once Upon a Farm - 유기농 이유식 브랜드
2017년, 가너는 유기농 이유식 브랜드 'Once Upon a Farm'을 공동 창업했다. 이 회사는 단순한 상업 브랜드가 아니라, 아동 영양과 건강한 식습관 교육을 결합한 사회적 기업으로 출발했다. 회사 수익의 일부는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영양 프로그램에 기부된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6일 주당 18달러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 2월 19일 현재 24.3달러로 거래, 기업가치가 약 10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가너는 이를 두고 "수익과 사회적 가치를 결합한 모델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브랜드 이름에 담긴 'Once Upon a Farm(옛날 옛적 농장에서)'이라는 표현은 그가 어린 시절 도서관에서 듣고 읽었던 동화책의 시작 문구 'Once Upon a Time(옛날 옛적에)'을 연상시킨다. 이야기와 건강한 성장, 두 가지 모두 아이에게 필수적이라는 그의 신념이 담겨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어른, 아이들을 이해하는 어른
할리우드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가너는 과장되지 않은 삶의 태도로도 존경을 받는다. 화려함보다 일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유명인의 자녀 교육에 대한 과도한 노출을 경계한다. 또 실패와 불안을 숨기지 않는 인터뷰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완벽한 엄마가 아니에요. 아이들한테 소리 지를 때도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죠. 그런데 그게 정상이에요. 중요한 건 아이들이 실수해도 괜찮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거예요."
이런 태도는 그가 어린 시절 맥캔 사서에게 받은 경험과 연결된다. 1학년 아이가 쓴 서툰 이야기도 '한 권의 책'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던 그 경험. 완벽하지 않아도 존중받는 경험이 아이를 성장시킨다는 믿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1학년 소녀가 쓴 짧은 이야기, 저자 이름 'Jennifer Garner'의 책 제목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가너 본인도 여러 인터뷰에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마도 학교 과제로 쓴 간단한 창작 동화였을 것이다. 개나 고양이가 나오는 이야기, 혹은 가족에 관한 짧은 에세이였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었다.
그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꿨다.
제니퍼 가너는 단순한 할리우드 스타가 아니라, 이야기의 힘을 믿고 그 힘을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배우다.
그는 오늘도 책을 읽어주고, 도서관을 옹호하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희 이야기는 중요해. 누군가 들어줄 거야."
그 말은, 70년대 웨스트버지니아의 작은 도서관에서 한 어른이 어린 제니퍼에게 해준 말이기도 하다.
이 일화는 ‘감동’이 아니라 ‘근거 있는 교육’이다
사서 한 명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감성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연구·데이터가 뒷받침한다.
2023년 연구(초등학생 표본을 매칭해 비교)에서는 전일제·자격을 갖춘 학교 사서가 있는 학교 학생들이, 사서가 없는 학교 학생보다 읽기·수학 성취도가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고 보고한다.
미국 학교도서관협회 자료는 여러 주(州) 단위 연구들이 학교도서관/사서가 학업 성취와 읽기 능력에 긍정적 상관을 보인다는 결과를 반복적으로 제시해왔다고 정리한다.
또한 Scholastic의 리서치 컴필레이션 School Libraries Work! 역시, 잘 지원되는 학교도서관이 읽기·쓰기 성취와 연결된다는 주(州) 단위 영향 연구들을 모아 제시한다.
즉, 맥캔 선생님의 행동은 ‘우연한 감동’이 아니라, 학교도서관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가장 압축된 사례다.
신구문화상(新丘文化賞)은 신구문화사의 창립자 故우촌 이종익 선생(1923-1990)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한 우촌 정신을 미래 세대로 잇기 위해 올해 처음 제정한 상이다. 상은 ‘올해의사서상’, ‘올해의책’ 총 두 부문으로 나누어 수상하며 이번 제1회 시상식은 2023년 10월 19일 제주컨벤션센터 전시실에서 열린다. ‘올해
게스트 소개 김보미 기자2006년부터 신문사 기자로 일하고 있다. 사회부, 교육팀, 시청팀, 국제부, 산업부 등을 담당했고, 얼마 전까지 뉴콘텐츠팀에서 근무하며 기성 언론과 SNS를 비롯한 뉴미디어의 관계를 연구했다. 다양한 세상을 보고 기록하고 싶어서 20여 개국을 여행했고, 1년간 일본에서 연수하며 와세다대학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PC통신에서 시작해
게스트 소개 오세연 감독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 데뷔작인 〈성덕〉은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서 첫 선을 보인 후 광주여성영화제, 부산독립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인천인권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우디네극동영화제, 런던아시아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를 거치며 매진 행렬과 함께 큰 화제가 되었다. 글 쓰고 말하고 촬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