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누군가의 모습이며, 특정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대리하는 말[馬]_박예지 작가
박예지_작가
2026-02-1914:37
박예지의 작업은 몰입의 연속에서 출발한다. (……) 여기에 덧대어 타인의 죽음을 접해야만 했던 감정을 새기거나, 불필요하다 여겨 뽑아냈지만 어떻게든 살려고 흙을 찾아 뿌리를 내린 잡초를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과 동화시킨 최근의 작업 〈Comme une fleur〉(2024~) 모두가 몰입의 지속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그만큼 몰입은 언어화의 이면이면서 박예지 작업의 조형적 근간이다. 작가의 작업엔 유독 말[馬]이 많다. 숱한 용접 드로잉에도 말은 곧잘 등장한다. 말[馬]은 말 자체일 수도 있으나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모습이며, 특정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대리한다. 인식의 제한에 의해 동물로서의 말에 국한되기 일쑤지만, 의미는 상당히 비유적이면서 가변적이다. 상상이 개입하면 그 어느 것도 될 수 있다.
박예지 작가 ⒸCARVE STUDIO
박예지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는 또 있다. 바로 공간과 형상의 관계이다. 일단 그의 조각들은 공간 속에서 고립된 듯한 느낌을 심어준다. 나아가 표면의 거친 텍스처를 통한 시각적·촉각적 경험을 동시에 제공한다.
(……)
여기서 공간과 형상은 조각과의 틈을 좁히는 요소였으며, 둘 사이의 행간에 드리운 심리적 효과는 공간과 형상의 관계를 매듭짓는 핵심이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조각을 단순히 물리적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것이 위치하는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확인하게 만든다. 그의 예술이 이미지의 효과를 넘어 미적 성취와 함께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성찰로 이어짐을 엿보게 한다.
(……)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빈번하게 생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상으로서의 말[馬]은 해석의 여지를 제한한다는 점이다.
(……)
이는 말[馬]이 아니어도 말[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면에선(다시 말해 확장성 측면에선)‘나’로부터의 탈출이자 근친했던 ‘예술’과 ‘나’라는 존재 간 경계 지우기와 다름없다. 그렇다고 예술의 주체인 ‘나’가 아예 배척될 수는 없지만 ‘나’를 중심으로 한 ‘우리’로의 전환은 확연한 차이를 발생시킨다.
그것은 작가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음을 뜻하며, 말[馬] 자체로의 귀속을 넘어 현대사회의 불확실성과 인간 존재의 불안정을 반영하는 상태로의 진보다. 명사에서 서사로의 전환이자, 비로소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구축해가는 과정이다. 이는 결국 그의 작품이 단순한 시각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관념적 탐구의 도구로 기능함을 가리킨다.
미술평론가 홍경한의 평론 〈말[馬]하지 않아도 말[言]할 수 있는 말[語]〉에서 발췌
〈작가 노트〉
삶의 어설픔으로 하나둘 쌓아 올린 세월이 조금씩 단단하고 깊어진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무게는 우연의 연속처럼 부서지고 다시 만들어진다. 환한 웃음이 배어나올 때면 말과의 인연에 감사한다. 말엔 내 자신이며, 타인이며, 세상의 모든 것이 녹아 있다. 철이 녹아 굳어지고, 또 녹여 쌓아 올리는 작업의 반복은 진지한 삶 안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내 모습들을 장난스러우며 재미있게 그리고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다.(2018년)
2021 11.16_12.05 내가 선택한 삶 박예지, 북촌전시실, 서울
언어유희로 말[言]과 말[馬]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지점에서 나의 작업은 시작된다. 말은 더 이상 소리로 끝나는 기호가 아니라, 몸과 감각, 행동과 기억까지 이어지는 확장된 언어에 가깝다. 용접의 선과 금속의 물성은 관계와 시간, 감정이 쌓여가는 과정을 드러내는 하나의 문장처럼 작동한다. 용접하는 순간 뜨거운 열에 반응하며 변형되는 금속을 보면 인간관계의 찰나를 떠올리게 된다. 빠르게 굳어버리지만 그 안에는 머뭇거림과 망설임, 겹쳐 쌓인 시간의 흔적이 담긴다. 그래서 용접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말로 다 건네지 못한 내면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겹치는 장이라고 느낀다. 금속 위에 남는 용접 드로잉은 말하지 못한 대화이자, 공기 중에 머물던 감정이 물질로 옮겨진 기록이다.
만 12살 무렵부터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녔다. 한국어도, 프랑스어도 완벽하게 편안하지 않은 사이에서 늘 언어의 틈에 서 있었다. 예전에는 그것을 장벽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각을 더 깊게 여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말로 설명되기 전에 먼저 다가오는 공기의 기운, 표정, 몸짓, 분위기와 온도 같은 그런 것들을 또 다른 언어로 느꼈다.
Suivre le courant흐름따라_2022_사이즈 140_470_340_ 2022년 9회 개인전 채우고 비우고 전 _갤러리담
승마장에서 보조 말 훈련사로 일했던 경험은 이 감각을 더욱 확장시켰다. 말[馬]과 함께 일할 때 목소리는 소통의 전부가 아니다. 호흡, 시선, 근육의 긴장,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가 모두 언어가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말[言]과 말[馬]이 겹치며, 발화되지 않은 감각적 소통이 진짜 언어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내 작업 속 말[馬]의 형태는 점점 더 추상화되었고, 구체적인 동물의 형상을 넘어서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기호이자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개인전 ‘말과 생각’에서 선보인 실리콘 작업은, 언어가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이 뇌에서 작동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어린 시절 ‘젤리는 달콤하다’ 믿었지만 프랑스에서 처음 맛본 검은 감초 젤리(Réglisse)의 낯선 맛은 기억·맛·감정·생각이 한꺼번에 뒤섞이는 경험으로 남았고, 그 충격이 뇌와 기억의 이미지를 다루는 작업의 단서가 되었다. 실리콘의 점성과 반투명한 물성은 이런 뒤얽힌 생각과 흐릿한 기억을 시각화하기에 적합했고, 이후 뇌의 작동과 감각의 잔상을 입체적으로 다루는 조형 언어로 자리 잡았다.
(중략)
2021년 故장일섭 화백과 매칭되어 전시한 요람에서 무덤까지_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 전경
결국 내게 언어는 목소리나 문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금속의 결, 용접으로 쌓인 선, 실리콘의 질감, 공기 중에 스며드는 긴장과 감정까지 모두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말[言]과 말[馬], 기억과 맛, 생각과 뇌, 그리고 갈대처럼 흔들리면서도 버티는 몸의 형상들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연결되며 내 작업 안에 공존한다. 관객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감각과 기억을 떠올리고, 각자의 언어로 다시 해석해준다면, 그때 비로소 이 이야기는 조금 더 완성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2025년)
Line 작업을 다시 시작하며,
2021년 시작한 Line 시리즈의 첫 작업은 내가 한때 좋아했던 사람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데서 출발했다. 그 경험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 전반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 안에 흐르는 ‘선’에 대해 자연스럽게 시선을 두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그 ‘선’의 의미를 더 확장해, 좀 더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혹은 더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는 ‘보이지 않는 선’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스쳐 가는 미묘한 감정,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신뢰의 거리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작업에 임했다.
용접드로잉 작업_ La relation_2020_180_126_철 _ Line in relation 개인전 메인작품 2020
말[馬]은 말하지 못한다. 대신 몸 전체로 감정을 드러내는 존재에 가깝다. 눈과 귀의 방향, 턱의 긴장, 콧김, 꼬리의 움직임까지, 표면에 드러나는 모든 제스처가 하나의 문장처럼 작동한다. 아주 작은 고개 젓기, 미세한 발의 준비 동작, 귀가 뒤로 젖혀지는 찰나에는 불안과 호기심, 거절과 수용 같은 감정의 결이 켜켜이 쌓여 있다. 말은 언어 대신 태도와 리듬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그 몸의 변화를 읽는 순간, 우리는 이미 말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입술로 만든 문장을 넘어선 곳에서 감정과 의도는 이미 새어나오고 있다. 말하지 않은 표정, 호흡의 속도, 시선이 머무는 위치, 몸이 기울어지는 방향은 무심한 듯하지만, 그 사람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드러낸다. 어떤 이는 끝까지 침착한 어조를 유지하지만, 손끝의 떨림이나 목소리의 아주 작은 흔들림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한 진심이 읽히기도 한다. 그 떨림은 문법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듣는 이의 피부와 가슴에 먼저 닿는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흐름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다. 멀리 있는 누군가의 메시지를 읽을 때, 화면에 찍힌 단어보다 먼저 전해지는 것이 있다. 문장 사이의 간격, 평소보다 빠르거나 느린 답장은 그 사람의 컨디션과 마음의 온도를 은근히 드러낸다.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순간이라면, 언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숨을 들이쉬는 길이와 발음을 밀어내는 힘, 불쑥 섞여 나오는 한숨이나 웃음 속에서 그 사람의 하루와 마음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소통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 기운과 리듬, 태도를 서로 감지하는 과정에 가깝다. 말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 시선의 방향, 멈춤과 머뭇거림, 그리고 말을 선택하지 않은 침묵까지도 모두 하나의 커다란 문장을 이룬다. 우리는 자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표현하지만, 그 시간 동안 표정과 몸, 숨, 공간의 공기는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 신호를 포착하는 순간, 서로 다른 언어와 거리를 넘어 이미 충분히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2026년)
박예지는 말[馬]을 주요 모티브로 삼아 아르곤 용접으로 축적된 선과 덩어리를 쌓아 올리며 인간관계와 소통의 본질을 탐구하는 금속 조각가이다. 12세에 스스로 선택해 유학을 떠나 프랑스 에꼴 불(Ecole Boulle)에서 공간·응용미술을 전공한 경험은 그의 작업에 구조적 감각과 일상에 대해 예민한 시선을 더했다. 철이 녹고 굳는 과정을 반복하는 용접 드로잉을 통해 우연과 통제를 교차시키며 현대사회의 불확실성과 인간 존재의 불안정한 정서를 형상화한다. 작가에게 ‘말[馬]’은 동물의 형상이자 말[言]의 은유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감정의 층위를 동시에 드러내는 서사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인사동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TUV Rheinland Korea 아트갤러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며, TV 드라마 협찬과 국내외 아트페어 참여로 조각과 디자인, 일상성을 잇는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내 그림에서 나비는 영혼의 매개체이다. 나비는 히브리어로 ‘예언자’의 뜻을 지닌 영적인 곤충이다. “나비는 먹기 위해서나 늙기 위해서 생존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하고 생존하기 위해 생존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비는 비할 데 없이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절단 선이나 색채, 비닐과 솜털 속에 다채롭고 정제된 언어로 존재의 비밀을 상징하는 자신의 몸체보다 몇
저는 25년이 넘어가는 작품활동 중 회화나 설치미술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해왔습니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꽃무늬 천 위에 꽃 그림을 그리다가 그 이후엔 좀 더 사실적인 표현이 필요해서 사진 촬영한 꽃이나 정물을 캔버스 천에 프린트한 바탕 위에다 유화로 덧그리는 방식으로 변경해 작업을 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으로만 꽃
나는 ‘화조화’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한 ‘현대민화’ 작가 소민 김영희다. ‘질박하고 수수한 가을 하늘’이라는 뜻을 담은 아호 ‘소민(素旼)’에서 알 수 있듯, 그만큼 자연은 나에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자 동경의 대상이다.같은 공간이라도 사시사철 다양한 꽃과 새가 어우러지며 변화하는 풍경들은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행복과 설렘을 안겨준다. 그런 이유로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