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이 무대공포증으로 인해 청중 앞에 서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던 반면, 리스트는 이미 파리 사교계의 유명인사였다. 쇼팽은 세련되고 우아한 기질을 음악에도 담아내며 살롱에서 연주되던 음악들과는 다른 결을 만들어냈다. 리스트는 쇼팽 음악에 경외심을 느꼈고, 단순히 기교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선율을 써내는 그의 작곡 실력을 부러워했다. 쇼팽 또한 리스트를 보고 그의 강인한 인상에 감탄했다. 굳건한 체력과 무대 위 자신감, 모두가 쩔쩔매는 악보라도 초견으로 연주하는 리스트를 보고 쇼팽은 그가 연주하는 방식을 훔치고 싶다고까지 말한다. 둘은 달랐다. 그래서 끌렸다. 리스트는 이 내향인 음악가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자신의 인맥들에게 그의 뛰어난 음악성을 알렸고, 쇼팽은 이에 화답하듯 12개의 연습곡집 Op.10에 ‘à mon ami Franz Liszt’라고 적었다, ‘내 친구 프란츠 리스트에게’라는 뜻이었다.
마리다구 백작부인(출처: 위키피디아)
사랑과 도피, 마리 다구
1833년 초, 리스트는 살롱에서 마리 다구(Marie d’Agoult, 1805~1876) 백작부인을 만난다. 리스트보다 여섯 살 연상이었던 다구는 두 명의 자녀를 둔 상태였고 사교계에서 인정하는 미인이었다. 문학적 소양이 깊었던 다구는 리스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둘은 동거를 하기에 이르렀다. 유부녀의 신분으로 동거를 하는 것에 눈치가 보였던 다구는 남편과 딸들을 뒤로한 채 리스트와 스위스로의 도피 여행을 계획한다. 리스트는 연주회 도중에 기절하는 시늉을 하며 무대를 빠져나왔고, 다구도 리스트를 따라 떠났다. 둘은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에 머무르면서 방대한 양의 책과 시를 섭렵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수정과 보완을 거쳐 피아노 독주곡집 ‘순례의 해’ 시리즈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발표된다.
여행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약 10년 동안둘 사이에는 세 명의 아이가 있었고, 마리다구의 신경쇠약 증세와 리스트의 염문설은 서로의 관계를 점점 악화시켰다. 그러던 중 헝가리에 홍수가 일어났다. 리스트는 자선공연을 계기로 바깥 활동을 늘리며 다구와의 긴장 관계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했다. 연주회는 열릴 때마다 대성공이었다. 리스트의 광적인 팬들 리스토마니아는 그가 파워풀한 타건으로 피아노를 부술 때마다 열광했다. 한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연주회가 끝난 뒤 리스트는 전장의 승자처럼 서 있다. 기가 꺾인 피아노들은 항복의 깃발처럼 끊어진 현을 매단 채 그의 둘레에 쓰러져 있다. 겁에 질린 악기들은 먼 구석으로 달아난다.’
그러던 중 리스트에게 롤라 몬테즈라는 무용수가 달라붙는다. 리스트는 광적으로 접근하는 그녀를 가까스로 떼어놓았다지만 이 소식은 혼자서 세 아이들을 돌보고 있던 다구의 귀로 흘러 들어간다. 이후 다구는 소설 《넬리다(Nélida)》를 발표하게 되는데 예술가를 꿈꾸는 주인공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예술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점점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조르주 상드(출처: thoughtco.com)
낭만과 병, 조르주 상드
수동적으로 사교 모임에 참가하던 쇼팽은 다구와 리스트의 소개로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를 만나게 된다. 쇼팽은 남장을 하고 시가를 피워대는 상드를 처음 보고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저 상드라는 여자, 참 재수없어. 정말 여자 맞아?’ 하지만 쇼팽은 자신과 다르게 거침없고 어디에서든 당당했던 상드에게 끌렸다. 리스트와 다구처럼 기이했던 이 조합은 사교계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쇼팽과 상드는 마요르카로 여행을 계획한다. 쇼팽은 나름 사회적 체면을 지키기 위해 상드 일행과 거리를 두고 뒤따라갔다. 상드는 밤새도록 흔들거리는 마차를 타고 마요르카에 도착한 쇼팽을 보고 ’장미처럼 싱싱하고 순무처럼 발그레했다‘고 기록한다.
쇼팽은 해변에서 산책을 즐겼고, 틈틈이 작곡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곧이어 마요르카에 겨울이 찾아왔다. 예상 못 한 겨울바람에 쇼팽은 매일 밤 추위에 떨며 피를 토했다. 쇼팽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세 명의 의사를 만났는데 첫 번째 의사는 내가 이미 죽었다고 말했고, 두 번째 의사는 죽어가고 있다고 했고, 세 번째 의사는 내가 곧 죽을 거라고 말했어.’ 쇼팽은 점점 안절부절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쇼팽의 작품 중에서 비통하다 여겨지는 작품들인 〈E단조 전주곡〉과 〈빗방울 전주곡〉이 이 시기에 작곡된다. 상드는 병든 쇼팽을 돌보는 생활에 점차 지쳐갔고, 여기에 자녀 문제까지 겹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말년의 리스트와 쇼팽(출처: Interlude.hk)
우정에서 경쟁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멀어진 이유를 하나의 사건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아마 일련의 사건들이 쌓이면서 점점 관계가 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일화들은 이렇다. 리스트는 피아노 실력으로 승자를 가리는 연주 배틀을 즐겨 했는데, 쇼팽은 이런 방식을 못마땅해했다. 또한 쇼팽은 리스트가 사람들을 끌어모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는 행위를 싫어했다고도 전해진다. 상드와 다구의 불화로 인해 서로 자신의 연인 편을 들며 멀어졌다는 얘기도 있고, 리스트가 쇼팽의 집을 밀회의 장소로 사용해서쇼팽이 크게 화를 냈다는 일화도 있다.
확실한 건 그 무렵 리스트는 화려한 연주로 청중들을 사로잡은 반면, 쇼팽은 가냘픈 손가락으로 연주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쇼팽은 자신의 재정적 궁핍함을 벗어나기 위해 마지못해 대중 연주회를 열었다. 비록 리스트와 같은 무시무시한 독주회는 아니었지만 쇼팽은 청중들과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객석에 있던 리스트는 연주회 평을 자기가 쓰겠다고 말하며 쇼팽의 연주를 찬양하는 내용을 썼지만, 쇼팽은 이후 리스트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 두 사람은 이후에 다시 가까워지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쇼팽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리스트와 쇼팽의 손(출처: gallica.bnf.fr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서로가 멀어지게 된 계기는 분명하지 않아도, 몇몇 일화들에서는 쇼팽의 경쟁 심리가 느껴진다. 쇼팽은 자신이 리스트의 경쟁자가 되지 못하는 것을 단번에 느꼈을 것이다. 그는 리스트의 피아노 실력은 인정하지만 그의 작곡 실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리스트가 공연으로 흥행을 거둘 때 자신은 연주회 포스터를 만드는 것도 거부하며 리스트와 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쇼팽이 리스트에게서 점진적으로 등을 돌린 반면, 리스트는 사이가 멀어진 이후에도 쇼팽의 음악을 좋아했다. 리스트는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쇼팽의 음악성과 연주를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리스트가 쓴 쇼팽의 전기(출처: Yale University)
쇼팽의 죽음 이후 리스트는 과시적 비르투오소에서 시적이고 종교적인 정서를 가진 음악가로 변모한다. 쇼팽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아서 리스트의 음악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리스트의 음악에서 문득 그리움이 느껴진다면 나도 모르게 쇼팽을 떠올리는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끝까지 함께한 친구가 되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의식하고 동경했던 시간은 두 사람의 음악적 재능을 빛나게 해주었다. 쇼팽은 피아노를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악기로 만들었고, 리스트는 음악적 경험이 얼마나 숨 막히는 경험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달랐기에 끌렸고, 끝내 멀어졌지만, 쇼팽과 리스트는 그렇게 각자의 영역에서 빛을 발하며 낭만주의 클래식 음악사의 두 얼굴로 남게 되었다.
안은혁_작가, 영화 감독
리스토마니아, 방구석 클래식 애호가. 클래식과 영화를 둘러싼 인간의 태도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가려진 정서가 오래 기억될 수 있는 방식을 살피며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주변인들에게 본인이 알고 있는 유명 캐나다인을 물어보면 대부분 저스틴 비버와 레이첼 맥아담스, 한 발 더 나아가 짐 캐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면 한 명의 캐나다인을 더 알게 될 것이다. 바로 토론토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다. 피아노와 의자굴드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다. 학교에서 구토를 자주 했으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
최초의 아이돌 팬클럽은 한 피아니스트에게서 탄생했다. 그 이름은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 클래식계의 아이돌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와 ‘마니아’를 합쳐서 나온 이름이다. 그리고 리스트가 간택한 내향인이 있었으니, 바로 프레드릭 쇼팽(Frédéric Chopin, 1810~1849)이다. 쇼팽은 공식 연주를
풍성한 이야기가 으레 그렇듯 《장송의 프리렌》을 설명하는 방법도 수십 가지는 될 텐데, 다른 무엇보다도 ‘선의의 기원’을 주제로 이 작품을 말하고 싶다.《장송의 프리렌》은 천 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그 이상의 시간을 살아갈 마법사 ‘프리렌’이 함께 모험을 했던 용사 ‘힘멜’을 이해하고 싶어 떠나는 두 번째 모험담이다. 엘프인 자신의 수명에 비해 찰나를 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