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처음 보면, 무엇을 먼저 봐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인지, 그 뒤로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인지, 화면 한쪽을 가린 붉은 우산인지 쉽게 분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망설임이 사울 레이터 사진의 시작점이다. 그는 세상을 선명하게 설명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나 끝내 확신할 수 없는 순간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뉴욕에서 그는 사람을 정면으로 붙잡기보다, 늘 무언가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았다. 안개 낀 유리창, 빗물 어린 차창, 화면을 가로막는 기둥과 그림자.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대상을 보여주면서도 끝내 다 보여주지 않는다.
신학도에서 화가의 시선을 가진 사진가로
사울이 처음부터 사진가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저명한 랍비를 아버지로 둔 유대교 집안에서 자랐고, 자연스럽게 그 역시 종교자의 길을 가리라 예상되었다. 어린 시절의 사울은 종교 교육을 엄격하게 받으며 자랐지만, 한편으로는 또래보다 일찍 문학과 그림에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열두 살 무렵 어머니에게서 처음 카메라를 선물로 받았고, 10대에는 몰래 스케치와 그림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가 끝내 택한 것은 신학이 아니라 이미지의 세계였다. 1946년, 스물셋의 사울은 신학 공부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건너갔고, 화가로 살기를 꿈꾸며 수채 추상화와 드로잉을 이어갔다. 그래서 그런지 사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자꾸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이 든다. 사람보다 먼저 색의 덩어리가 보이고, 사건보다 먼저 표면 위에 맺힌 빛이 보인다. 사울 레이터는 사진가이면서 동시에 끝까지 화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 사람이었다.
포토저널리즘의 시대에 자신만의 길을 걷다
그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 도시에는 뛰어난 사진가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거리를 정면으로 밀어붙이는 이들도 있었고, 시대의 얼굴을 또렷하게 붙잡으려는 사진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울 레이터는 그들과 조금 달랐다. 그는 사람을 클로즈업하기보다 유리와 안개, 날씨와 그림자 뒤에 놓아두기를 더 좋아했다. 그가 사랑한 것은 대상 그 자체라기보다, 대상을 둘러싼 표면과 가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빛이었다. 마치 세상을 정면으로 이해하기보다 비껴 보이는 순간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는 사람처럼. 포토저널리즘의 힘을 알게 해준 유진 스미스를 만났지만, 레이터가 끝내 그 길로 가지 않고 화가 같은 사진가로 남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20세기에는 오랫동안 흑백사진을 예술사진의 중심으로 여겼다. 컬러는 광고나 가족사진, 아마추어의 취미에 가깝다고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사울 레이터는 이미 1940년대 후반부터 컬러 필름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롤랑 바르트 같은 평론가들이 컬러가 흑백사진의 진실을 왜곡한다고 말해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팔리지 않아도 사진을 찍었고, 인정받지 못해도 계속 필름들을 쌓아두었다. 나중에 독일의 유명 출판사 슈타이들에서 출간된 사진집 《Early Color》(2006)는 반세기 가까이 상자 속에 잠들어 있던 초기 컬러 작업을 세상에 다시 꺼내놓았다. 그보다 훨씬 이전 전설적인 기획자 에드워드 스타이컨 등 일부는 이미 그의 눈을 알아보았지만 시대가 그의 색을 따라오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소유하지 않고 멀리서 오래 바라보는 방식
사울 레이터가 사랑한 것은 정면으로 바라보는 세계가 아니었다. 그는 피사체 가까이 다가가 사물울움켜쥐기보다, 늘 한 걸음 비켜서서 보았다. 그의 사진 속 거리 풍경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가까이에서 소유하려 하지 않고 멀리서 오래 바라보는 방식. 그래서 레이터의 사진 속 인물들은 또렷한 주인공이라기보다 스쳐 가는 존재로 남는다. 누군가의 얼굴은 차창에 반쯤 가려지고, 누군가의 몸은 눈 내리는 거리 한 귀퉁이에서 색의 얼룩처럼 보인다. 그는 사람을 찍으면서도 사람보다 먼저 그 사람 앞에 놓인 사물과 반사, 분위기와 날씨를 함께 담았다.
흥미로운 건 이런 모호함이 패션사진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하퍼스 바자》와 《에스콰이어》에서 일하던 헨리 울프는 종래의 패션사진 문법과는 완전히 다른 레이터의 즉흥성과 모호함을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덕분에 사울 레이터의 패션사진은 모델과 옷을 또렷하게 설명하기보다, 우연히 끼어든 기둥과 창문, 잘린 프레임과 엇갈린 시선 속에서 더 살아났다. 그는 상업사진을 찍으면서도 자신의 시선을 버리지 않았다. 스튜디오 촬영보다 통제할 수 없는 우연성이 가득한 야외촬영을 선호했고, 무엇이든 선명하게 보여주려는 압박에서도 끝내 조금 흐린 채로 남겨두는 감각을 놓지 않았다.
가장 오래 머문 얼굴, 뮤즈이자 동반자 솜스 밴트리
화가이자 모델이었던 솜스 밴트리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과 삶에 가장 길게 남은 얼굴이었다. 둘은 1960년대부터 오랫동안 가까이 지냈고, 함께 살고 여행하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솜스는 단순히 카메라 앞에 서는 모델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그림을 그렸고, 한때는 사울의 일과 생활을 가까이에서 돌보는 동반자이기도 했다. 거리에서는 늘 스쳐 가는 사람들을 비껴 바라보던 그가 솜스 앞에서는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다. 실제로 사울은 솜스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표정 덕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 몇 장을 찍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사후에 발견된 작품들 가운데 솜스의 누드 사진 위에 붓질을 더한 〈페인티드 누드〉는, 그가 한 사람을 오랜 시간 바라보며 축적한 시선의 결과처럼 보인다. 세상 밖으로 크게 발표되지 않았던 그 이미지들 속에는, 모델과 사진가를 넘어선 두 사람만의 친밀함과 시간이 스며 있다.
사울 레이터는 자신의 사진에 대해 요란하게 떠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큐에서 “내가 잘하는 게 있다면 미루기”라고 말했고, 무언가 지나치게 진지해지는 것을 늘 피하려 했다고도 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그 말은 그의 사진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인지도 모른다. 서두르지 않는 삶,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는 태도, 선명한 결론보다 흐린 장면 앞에 오래 머무는 감각. 그는 세상을 재빨리 해석하고 붙잡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충분히 모른 채로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대상을 또렷하게 설명하기보다, 설명되기 직전의 상태로 남겨둔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겠는데,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는 끝내 확신할 수 없게 만드는 사진. 세상을 완전히 붙잡은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하게 더 오래 마음에 남는 사진. 사울 레이터는 선명한 답을 주는 대신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안은혁_작가, 영화 감독
리스토마니아, 방구석 클래식 애호가. 클래식과 영화를 둘러싼 인간의 태도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가려진 정서가 오래 기억될 수 있는 방식을 살피며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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