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호(김):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학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그리고 대학 바깥에서 여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저술을 통해서도 여러 가지 주제를 다뤄왔고요.
더: 사회학을 전공하셨고 ‘거리의 인문학자’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고 그에 관한 책을 쓰셨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탐색할 수 있었던 학문적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김: 한마디로 말하자면 답답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나이가 들수록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고, 뭔가를 새로 알았을 때 왜 이걸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개탄스럽기도 합니다. 정말 솔직히 얘기해서 ‘이 정도는 중학교 때 배워야 하는 거 아니야?’ 할 만한 것을 나이 60을 넘어서야 알게 되는 경우도 너무 많은 거예요. 하지만 그것을 뒤늦게라도 알아가는 게 굉장히 재미가 있고, 그렇게 알게 된 것을 정리해서 내 나름의 지식 체계를 만들어가는 성취감, 완성의 기쁨이라고 할 만한 게 있습니다. 창조라는 건 항상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즐거울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즐거움이 한 축이고 다른 한 축은 그렇게 알게 되고 정리한 지식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뭔가를 나누고자 하는 충동이 많은 것 같아요. 내게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다른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즐거움을 배가시키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제가 쓰는 글은 제가 배우고 깨달은 것을 조금 쉽게 전하고 나누는 수단인 거죠. 제가 오래 걸려서 힘들게 공부한 것을 다른 분들은 편하고 빠르게 공부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배움과 그 배움을 통해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그런 기쁨이 창조의 기쁨과 함께 제 저술의 원동력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더: 최근 출간하신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의 화두는 제목처럼 ‘민주주의’입니다. 어쩌면 중요한 만큼이나 많이 다루어졌던 주제이기도 한데, 지금 다시 한 번 민주주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죠.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가 1968년인데 그때 국민교육헌장을 외웠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국민교육헌장은 우선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내용이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다 외웠어요. 그로부터 이 사회에 대한 교육이 시작됐겠죠. 그렇게 ‘한국적 민주주의’ 같은 말들과 더불어 많은 교육을 받았지만 정작 우리 현실은 교육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어요. 민주주의라는 게 이념으로 받아들여진 시기부터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도 컸던 거죠. 북한마저도 자신들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민주주의를 내세우지 않는 나라는 별로 없을 정도인데, 그럼에도 여전히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이고,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분명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있죠. 그 고통의 상당 부분이 정치적으로 무엇인가가 해결되지 않아서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민주주의가 나아갈 길이 아직도 멀다고 해야겠죠.
다만 제가 민주주의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그 뿌리에 우리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제 책의 착안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보통 거대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다루곤 하는데, 사실 그 제도를 만들어가는 건 사람이고 관계입니다. 어떤 제도가 있든 사회의 변화는 결국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참여함으로써 서서히 이루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의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따라서 민주주의가 잘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그래서 어떤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잘 구현되고 있다가도 후퇴하기도 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겠죠.
단지 제도의 문제라면 그런 식의 변화가 생길 이유가 없잖아요. 제도라고 하는 모든 것들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과 결부되어 있다 보니 별것 아닌 일로 인해서 한순간에 어이없는 폭력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마음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우리 사회, 특히 최근의 내란 사태 이후에 벌어진 여러 사회 심리적 현상들을 보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들이 어디서 왔고, 또 그 뿌리는 얼마나 깊을까를 탐구해보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더: 요즘에는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대화가 무척 어렵고, 그래서 다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걸 꺼리는 것 같습니다. 대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대화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두려운 경우도 있고, 시작하더라도 끝내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건강한 정치적 토론이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김:방금 주신 질문 중에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저는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두려운 걸까요? 대화할 때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닌데요. 그러니까 우리의 두려움은 내가 부정당할 것 같다는 두려움, 또는 저 사람과의 관계가 어그러질 것 같다는 두려움에 가까울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전보다 그 두려움은 더 커진 것 같아요. 세상에 정보는 점점 많아지는데 그것을 공유하는 통로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저마다 각자의 알고리즘을 따라서 보는 것만 반복해 보게 되잖아요. 예전에는 뉴스라도 함께 보고, 드라마도 함께 보고 하면서 공통의 경험을 쌓게 되고 언어도 공유가 되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정치적인 쪽으로 가면 더 날카롭게 대립각이 세워질 수밖에 없고요.
어떻게 이 고립을 넘어설까 생각해봤을 때, 저는 처음부터 정치적인 생각을 드러내놓고 부딪쳐서는 대부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이 아니라 먼저 경험을 나누고, 자신의 힘든 것을 나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다른 사람 얘기를 많이 하고, 또 자신의 신념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나의 경험, 또 그중에서 나의 아픔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는 거죠. 제가 이번 책의 제목을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라고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고통을 다스린다는 것은 그 고통을 내가 받아들이고 말로 꺼내놓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이 힘든 것을 이야기할 때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아무리 나랑 사이가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요. 그건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보다도 정서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충분하게 공유하고, 서로의 삶에 대한 질문을 하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점점 더 공유하는 게 많아지겠죠. 그러고 나면 정치적 이슈에 대한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 처음부터 어떤 정당의 주장이라든지 정책적인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 수준에서 맴돌게 될 뿐이에요. 사실 우리 삶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얘기하면 합의할 수 있는 지점들이 충분히 있어요. 대부분의 경우 어떤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정당이나 이념을 두고 그렇게 첨예하게 대립할 필요는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정파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하고 편을 가르는 문화에 있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에 휩쓸려서 스스로 과도한 정체성을 만들게 돼요. 사람들이 불안하기 때문에 그런 거죠. 누군가를 숭배하고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고 또 누구를 지지하면 내가 강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런 느낌이나 그로부터 오는 분노, 공격성 같은 건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런 허상에서 빠져나와 우리 삶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저는 그게 대화의 첫 실마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에서 인용하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의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관대하다 해도 우리 소득의 5분의 1 정도만이 노력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라 주장할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요. 개인주의와 능력주의가 친숙한 우리 사회에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성공에서 개인의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적은 것인가요?
김: 경제학자들이 재미있는 질문을 던져봤어요. 전 세계에 살고 있는 80억 가까운 인구들 사이에 소득의 차이를 빚어내는 가장 큰 변수가 뭘까. 흔히 부모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보다 더 큰 요인이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겁니다. 책에도 쓴 내용이지만 제가 오래전에 아프리카에 있는 어떤 나라의 청년을 만나서 대화한 적이 있어요. 그 친구는 저보다 훨씬 똑똑하고, 모국어가 영어인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영어도 저보다 훨씬 잘하고, 저랑 비슷한 또래인데 제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지성을 갖고 있더라고요.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그가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 정말 답답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 지역의 대부분이 그런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정치적으로는 굉장히 심한 독재, 그리고 끝없는 가난. 아무리 똑똑해도 그런 나라에 태어나면 삶의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조건들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는 거죠.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당연히 부모의 영향도 큽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도 생각해요. 소위 재능이나 소질이라고 하는 것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타고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건데, 그건 좀 너무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제가 이때까지 살며 봐온 주변의 사례들을 생각해보면 개인의 성공이라는 것은 상당 부분 운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운의 덕분이라고 말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겸손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나는 그냥 운명에 맡기련다’, ‘나는 노력해도 소용없어’처럼 생각해서는 안 되고요.
어쨌든 실제로 미국의 하버드대학 같은 곳에서도 신입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해요. 이곳에 입학하게 된 건 단지 너희들이 잘나서가 아니다, 네가 어쩌다 그런 자리에 있었고 그 자리의 특혜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가진 것들을 네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사회의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는 얘기죠. 그러니 자신의 소득에서 스스로의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5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건 통계적으로 정확하게 나누기야 어렵겠지만 상징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더: 교수님은 개인의 고립과 정서적 고통에 대한 대안으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해오셨는데요, 공적 공간의 치유 가능성에 대해 체감하셨던 사례나 일화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지금도 우리가 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옛날엔 더 힘들었죠. 너무 가난했고, 전염병도 흔했고, 신분적인 차별도 있었고, 특히 여성들은 더욱 힘들었고요. 그런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했던 것이 마을의 공동체적인 힘이었고, 그 핵심에는 ‘굿’이 있어요. 사실 굿에서 중요한 건 무속이나 주술이라기보다 함께 지지하고 울면서 치유하는 힘 자체였어요. 굿이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왜곡됐거나 너무 주변화되어 있지만, 그 안에 있던 공동체적 치유의 힘이 지금 우리에게는 굿의 형식이 아닌 문화적 형태로 남아 있죠.
예를 들어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오랫동안 함께 합창단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이 과정이 아주 소중해요.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자녀를 잃고 아무 소망 없이 비통한 마음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모여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몇 년이 지나면서 그 합창단에는 세월호 유가족이 아닌 분들도 같이 섞이게 되었다고 해요. 그분들도 합창단 활동을 아주 열심히 하고, 그렇게 함께 시간을 오래 보내고 나면 얼핏 봐서는 누가 유가족인지도 잘 모른다고 해요. 그 안에서 어떤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이 된 거죠.
그런 예는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공동체라는 게 거창한 건 아닙니다. 그냥 가까운 친구, 가족 정도에서라도 충분히 가능한데 우리가 그렇게 서로 돌보는 힘을 잘 키우지 못하고 있는 거죠. 전문 지식이 없어도,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나는 기댈 언덕이 될 수 있다, 그런 믿음을 가지면 그 누군가를 치유하면서 나 또한 치유받거든요.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처럼 고통을 받은 사람이 오히려 더 훌륭한 치유자가 될 수 있고,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 고통이 많은 곳일수록 더 공동체적인 유대의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우리가 더 건강한 시민사회, 그리고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공적 행동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김: 너무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층위에서 접근하면 동기 부여가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당위적인 것, 그러니까 의무감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때는 그게 중요해요. 하지만 그런 동기로는 오래 갈 수 없다든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없다든가 하는 한계에 마주치는 경우가 많아요. 중요한 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즐거움을 키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만나고 모여서 무엇인가를 더불어 하다 보니 그게 재미있다는 감각이요. 지금 우리의 욕망은 대부분 자기 소유, 소비, 과시와 관련되어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행복이라는 것은 대단히 제한되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제가 자주 쓰는 말 중 하나로 ‘공적 행복감’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제 삶의 아주 중요한 지향점이기도 하거든요. 사적인 행복도 물론 중요하죠. 저도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매우 소중한데 그런 행복만으로는 저의 삶이 온전해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 행복만큼 중요한 것이 가족을 넘어서서 잘 모르는 사람끼리 어울리고, 거기서 삶을 나누고, 이야기를 듣고, 또 문화 예술이 같이 결부가 되어서 즐거운 시간을 창조하는 거죠. 그런 시간을 함께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거기서부터 아이디어가 생기고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앉아서 할 일을 찾는 것도 한편으로는 필요하지만, 사회 조사를 하고 설문을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죠. 오히려 여러 활동을 함께 하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정보가 공유되고 각자가 마주친 삶의 문제들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보이고 함께 풀어갈 방법들이 찾아지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면 사는 보람이 생기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의 존재 가치를 다른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는 어떤 공간들, 관계들을 우리가 좀 다양하게 실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더: 대학에서 교육학을 가르치셨던 만큼 교수님의 저서 곳곳에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기는 하지만 단순한 지식 전달만으로 성숙한 시민이 길러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민주주의를 교육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김:제가 생각하는 교육의 핵심은 학생들이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에요. 우열 경쟁이 아닌 걸로 자신의 행복감과 효능감을 찾을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만드는 거죠. 인천 서흥초등학교에 그런 사례가 있었어요. 학교 앞에 재개발 지구가 있는데, 초등학생 아이들이 그곳에 사는 길고양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사하기 시작했고, 동물권 차원에서 복지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시의원을 만나서 보호 방안을 제안하는 데까지 나아갔어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이런 활동들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학교 안에서 돼지를 키우는 거였어요. 특이하죠? 어느 선생님이 그런 동아리를 만든 거예요.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돼지를 매일 돌보는 게 굉장히 힘들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던 거죠. 아이들이 돼지를 통해서 자기 역할을 만들고 서로 새로운 우정을 키우고 동물에 대한 관심도 생겼던 거예요. 그 관심이 돼지에서 고양이까지 이어졌던 거죠.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기여할 수 있다는 감각입니다. 지금 청소년들에게 가장 힘든 것이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끼는 거예요. 공부를 못 하면 그냥 버려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환경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공부를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 속에서 내 역할을 찾고, 또 그에 대한 감사의 피드백을 받으면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을 수 있는 일거리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지역사회 안에서, 그리고 학교 안에서 아이들의 존재감이 드러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그런 요소가 있으면 내가 이 공간의 주인이고, 함께 참여하고 책임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그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열어두면 마음의 힘이 다르게 자라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The Liverary는 도서관과 도서관 이용자를 주요한 독자로 둔 매체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도서관이 할 수 있는 역할,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가지고 계신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저는 도서관을 이 세상에서 죽은 사람들을 가장 많이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의 저자들 중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밖에 되지 않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만남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거기서 끝나지 않고 지성의 네트워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고 생각해요. 지금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처럼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계정이 한두 개가 아니죠. 그런 방식의 연결망은 무한으로 증식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 빠진 것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서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입니다. 간혹 직접 만나는 일이 있더라도 너무 피상적인 만남으로 끝날 때가 많고요.
그런데 도서관은 사람들의 깊은 생각들, 자기 안에 꿈틀거리는 지적 호기심을 꺼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라고 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예전에 제안했던 것은 같은 책을 대출한 사람들끼리의 만남을 도서관이 주최하는 것입니다. 도서관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정보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도서관 이용객들의 도서 대출 목록이에요. 내가 어떤 책에 빠져서 탐닉할 정도로 읽었는데, 이 동네에 그 책을 나처럼 열정적으로 읽은 사람이 열 명이 있다고 하면 만나고 싶지 않을까요? 이런 정보는 도서관이 아니면 알 길이 없어요. 물론 이런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용자들에게 사전 동의를 받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겠죠. 다만 도서관이 그냥 물리적 공간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지적인 흔적을 잘 연계하면 굉장히 의미 있고 재미있는 만남들을 풍요롭게 매개할 수 있지 않나 하는 맥락에서 이런 생각을 해봤던 거죠.
더: 인간의 삶의 가치를 어떻게 세워나가야 한다고 보시나요.
김:저는 인간은 인간에 대해서 되게 무지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인문학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그만큼 복잡하고 자기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돈과 명예를 간절히 원해서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는데, 그 결과로 파멸에 이르고 돌이킬 수 없는 몰락으로 치닫는 경우도 많죠. 아무리 지식이 많고 학력이 높아도요.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그 처참한 말로를 우리가 계속 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중요한 건 인간은 어리석은 동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가치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버느라고 전력투구한 결과 병을 얻어서 번 돈을 병원비로 다 쓰고 일찍 죽는 사람들도 참 많아요. 왜 그런 걸까요? 우선순위를 헷갈렸기 때문이거든요.
좋아 보이는 것들은 많죠. 남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도 좋고, 돈이 좋을 수도 있고. 그런데 가치관이란 가치를 보는 눈이잖아요. 그 수많은 가치들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무엇이 조금 덜 중요한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사실 사람들이 무엇이 중요한지는 다 알고 있어요. 건강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물어보면 누구도 그렇게 대답하지 않아요. 그런데 정작 사는 걸 보면 돈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참 많거든요. 지구 환경 문제부터 양극화에 대한 얘기까지, 내가 지속 가능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뭐가 필요한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자신 안에 답이 있는데 그 답을 우리는 다 눌러놓고 사는 거죠. 그렇기에 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투명하게 응시하고 정직하게 성찰하는 그런 안목과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안목과 언어를 나눌 수 있는 세상, 관계를 좀 더 탄탄하고 다양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것이라 생각해요.
김찬호_성공회대학교 교수
사회학자. 일본의 마을 만들기를 현장 연구하여 박사논문을 썼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교육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교육센터 마음의씨앗 부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부센터장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모멸감》 《눌변》 《생애의 발견》 《사회를 보는 논리》 《도시는 미디어다》 《문화의 발견》 《휴대폰이 말하다》 《교육의 상상력》 《돈의 인문학》 《인류학자가 자동차를 만든다고?》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작은 인간》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공역), 《학교와 계급 재생산》(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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