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누구의 손에 의해 쓰이는가?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기록하지 않을 것인가? 어떤 기록을 선택하여 역사를 서술할 것인가? 역사와 기록 사이에 형성되는 이러한 긴장 관계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전통적으로 역사는 ‘살아남은 기록’과 ‘선택된 기록’을 바탕으로 서술되어왔다. 그리고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살아남은 기록들을 통해 현재의 시점에서 재구성되는 서사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 기술의 바탕이 되는 이러한 기록들이 한 데 모여 있는 곳이 아카이브인데, 보통 기록관이나 문서보관소로 통용된다. 미국 UCLA의 문헌정보학과 앤 길리랜드(Anne Gilliland) 교수는 아카이브를 단순히 먼지 쌓인 문서가 보관된 곳이 아닌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곳으로 정의한다. 그녀의 이론에 따르면 기록은 국가의 통치 행위를 증명하는 ‘증거적 가치’를 넘어 개인과 공동체의 감정과 기억이 축적된 사회 기반(infrastructure)의 성격을 포함한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 아카이브(National Archives)와 공동체 아카이브(Community Archives)의 상호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 아카이브는 지배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위로부터의 기록’을 수집하며, 이 과정에서 소수자나 주변부의 목소리는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왜곡되기 쉽다. 반면, 길리랜드가 강조하는 공동체 아카이브는 스스로를 기록할 권리를 찾아올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된다. 미주 한인의 120년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이 두 아카이브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은 ‘누구의 목소리로 역사를 쓸 것인가?’라는 기록의 헤게모니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국가 아카이브의 한계와 역사 쓰기의 오류
국가 아카이브의 기록만을 토대로 역사를 구성할 때 소수계 이민자의 역사는 심각한 왜곡을 경험하게 된다. 국가 기관의 기록은 본질적으로 ‘관리’와 ‘통제’의 관점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예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는 1900년대 초 하와이로 이주한 1세대 한인 이주자들이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 분류된 기록이 남아 있다. 1941년 일본이 미국령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하자 미국은 하와이 전역에 계엄령을 발동하였는데 당시 군 법무관은 하와이의 한인 이주자들을 적국민으로 분류하고 이에 상응하는 대우를 했다. 만약 국가에 의해 선택되어 살아남은 기록인 공문서에만 의존해 역사가 쓰인다면 당시 미주 한인들은 적성국의 국민으로서 잠재적 감시 대상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인들은 자신들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자유 한인 대회’를 열고, 가슴에 ‘I am Korean’ 배지를 착용하고 다니는 운동을 펼쳤다. 국가 아카이브가 포착하지 못한 이 정체성을 향한 투쟁의 역사는 오직 한인 공동체가 스스로 남긴 사진, 일기, 단체 회의록 등을 통해서만 복원될 수 있다. 즉, 국가 아카이브 기록에만 의존할 경우 미주 한인들의 독립운동과 같은 능동적인 역사는 지워지고 미국과 일본의 통제를 받는 피지배자의 역사만 남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UCLA 도서관에 소장된 3.1절 경축식 리본 (하와이 한인 제작)
1904년(광무 8년) 대한제국 외부(오늘날의 외교부)에서 발급한 대한제국 시대의 여권인 ‘집조(執照)’로, 전라도 창평에 거주하던 김만수(당시 23) 씨에게 발급된 집조이다. UCLA 도서관 소장 유물.
미주 한인 아카이브의 형성과 역사적 성과
미주 한인의 아카이브 구축은 1960년대 중반 미국 내 민권운동과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Asian American Studies)의 태동과 궤를 같이한다. 1902년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에 도착하며 시작된 이민 1세대의 삶은 오랫동안 개인과 가족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주요 대학 도서관과 연구센터 등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자료 수집이 시작되었고 이런 아카이브 구축에는 한국과 미국에서 미주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재야 사학자들 및 도서관 사서들에 의한 사료 발굴이 큰 역할을 했다. 1910~40년대 미주 한인들이 사탕수수밭의 고된 노동 속에서도 떠나온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의연금을 모았던 기록, 또한 신한민보와 같은 미국에서 발행된 한글 신문 자료들이 수집되고 아카이브에 정리되면서 미국에서 있었던 독립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사의 지엽적 활동이 아닌 ‘재정과 외교의 중심축’으로 재평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43년 하와이에 만들어졌던 호놀룰리(Honouliuli) 수용소-태평양 전쟁 시기 미군에 의해 포로가 된 한국인들이 하와이로 끌려와 수용된 곳이다. (출처: https://www.nps.gov/hono/learn/historyculture/life-in-honouliuli-internment-camp.htm)
미주 한인 이민사와 관련된 아카이브와 더불어 4.29 LA 폭동에 대한 아카이브는 미주 한인사회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양한 미주 한인사회 단체들과 대학 도서관들에 구축된 4.29 관련 아카이브들은 이 사건의 재해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1992년 4월 LA 폭동 당시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LA의 한인들을 ‘인종 갈등의 원인 제공자’로 프레임 씌웠으며 이 프레임은 일부에서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폭동 현장을 직접 기록한 사진, 라디오 및 TV 방송이 수집되고 피해자들의 구술이 채록되어 아카이브화되면서 이 기록들은 4.29를 단순한 폭동이 아닌, 미국 내 소수 인종 간의 구조적 모순과 한인사회의 정치적 각성을 보여주는 ‘다층적 역사’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결국 역사는 기록된 자들의 것이며 어떤 기록물이 헤게모니를 갖느냐에 따라 공동체에 대한 평가와 역사는 달라진다. 국가 아카이브가 역사의 큰 뼈대를 만든다면, 공동체 아카이브는 그 뼈대 사이에 피를 흐르게 하고 살을 입힌다. 많은 기록학 연구자들이 말하듯, 아카이브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하고 미래의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미주 한인 공동체가 자신들의 기록을 스스로 수집하고, 정리하며, 보존하는 것은 주류 사회에 의해 씌워진 프레임을 깨트리고, ‘코리안 아메리칸(Korean American)’이라는 정체성을 미국과 한국의 역사 속에 새기는 일이다. 한강 작가의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는 말처럼, 우리는 ‘과거의 기록이 현재의 역사와 미래의 기억을 만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무엇을 아카이브로 남기느냐에 따라 우리의 100년 후 후손들은 우리를 잊힌 이방인으로 기억할 수도, 혹은 역사를 개척한 당당한 주역으로 기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록의 주권을 지키는 일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미래 세대가 마주할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조상훈_UCLA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사서
UCLA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사서(Korean Studies Librarian, East Asian Library, UCLA)로 재직중이다. 한국학 자료를 큐레이팅하면서 한국의 근현대사와 이민사에 관심을 가지고 대통령기록관과 대학 아카이브에서 자료를 발굴하고 이민사 관련 자료를 수집해오고 있다.
대규모 연구비 삭감으로 칼바람 부는 미국 대학가미국 대학가에 연구비 예산 삭감의 칼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미국의 대학들은 대부분 6월 30일에 한 해의 회계를 마감하고 7월 1일부터 새 회계연도를 시작한다. 이와 달리 연방정부의 회계연도는 매년 10월 1일에 시작된다. 때문에 지금 미국 대학들은 한 해 살림을 마무리하고 새해 살림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
사람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면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면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의 의미를 종종 되새기게 된다. ‘인사만사’는 누군가에게는 꽤 진부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어색하지만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 있듯이, ‘인사만사’는 진부하면서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이다. 도서관에는 아르바이트 학생
도널드 트럼프가 2025년 1월 20일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가 당선된 후 지난 3개월 동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 미칠 영향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전망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뉴스에 자주 거론되듯이 경제, 외교, 안보 및 이민 정책이 각 분야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와 기대가 섞인 전망이 공존하고 있다. 미국의 도서관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