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팀별로 모여 한 해 활동 계획을 짜던 날이었습니다. 오전에 한 차례 회의를 마치고 선배와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 선배가 물었습니다. “해민은 생태도시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선배가 6년째, 제가 4년째 몸담고 있는 팀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질문이 새삼스러웠지만, 그날 오전 내내 비슷한 질문들이 오갔기 때문에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생태도시라고 부를 만한 곳들은 어떤 곳일까. 교육방송 다큐멘터리에서 종종 소개하는 유럽 등지의 도시들이 떠올랐습니다. 도시에 나무가 있는 건지 숲속에 도시가 앉은 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푸르고 울창한 도시들 말입니다. 그런 도시에는 도심 곳곳에 커다란 공원이 있고 보도도 널찍해서 걷거나 자전거 타기 좋죠. 선배는 제 말을 듣더니 심드렁히 대답했습니다. “신도시가 그렇죠.”
최근 짓는 신도시들은 도시를 설계할 때부터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거주지 사이에 공원이나 하천을 배치하거나 보도도 넓게 계획한다는 겁니다. “신도시까지 가지 않아도 돼요. 강남구만 해도 그러니까요.” 강남구는 공원을 관리하는 예산이 서울에서 가장 많습니다. 일찍이 전선을 지중화했기 때문에 가로수들은 전깃줄 방해 없이 큼직하게 자랍니다. 게다가 강남을 관통하는 양재천은 1990년대에 복원을 마친 우리나라 1호 ‘생태하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울을 요즘의 신도시처럼, 강남처럼 만들자고 말하고 있었던 걸까요?”
선배가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 계기는 이랬습니다. 최근 선배는 마포구청과 마포구에 건물을 짓던 시공사가 마포대로와 삼개로 가로수 177그루를 베어버린 사건에 대응하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벌목에 대한 구청의 입장은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외래종’인 양버즘나무를 제거하고 토종 소나무를 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왜 멀쩡한 나무를 베었는지 이유를 밝히기 위해 ‘마포가로수시민연대’를 조직하고, 500명이 넘는 주민 서명을 모아 서울시 옴부즈만위원회가 구청을 감사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마포구는 신도시나 강남구에 비해 생태도시라고 부르기엔 부족합니다. 오래된 길이 많아서 보도폭은 비좁고, 전깃줄에 안 걸리게 매년 가지치기를 하느라 나무가 수십 년 돼도 키가 크지 못합니다. 이번 벌목 사건뿐만 아니라 구청에서 갑자기 나무를 베어내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선배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포구에는 주민들이 있어요. 나무가 잘리면 자기 일처럼 화를 내고, 나무 대신 서명을 모아 감사까지 청구하는 주민들이 있단 말이죠.” 선배는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어느 쪽이 우리가 바라는 생태도시에 가까울까요?”
생태도시는 서울환경연합뿐만 아니라 서울시에서 지향하는 도시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서울시가 2019년부터 매년 관련 전문가를 초청해 개최하는 포럼의 이름도 ‘생태도시포럼’입니다. 그러나 상상하는 세계를 부르는 이름이 같다고 해서 그 세계의 모습까지 같은 것은 아닐 겁니다. 서울시 같은 행정기관은 자연을 시민에게 제공하는 복지나 서비스로 바라보고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환경정책을 펼칩니다. 만약 야생동물이나 식물이 예상보다 번성해서 전체 생태계나 시민의 편의를 해칠 정도가 되면 ‘관리’에 들어갑니다. 서울시는 하천을 뒤덮으며 자라는 단풍잎돼지풀이나 가시박 같은 생태계 교란 식물을 제거하고, 외래종 거북 등 몇몇 동물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이쯤 되니 도대체 생태적이라는 건 무엇인가, 혼란스럽습니다. 유럽의 도시와 우리나라의 신도시, 강남구의 생태하천, 마포구의 생태시민들, 서울시의 생태도시와 관리 정책 모두 ‘생태’라고 묶어 부르기엔 그 차이가 무시할 수 없이 큽니다. 그래서 생태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저는 생태라는 단어가 인간이 덜 교란해서 비교적 야생에 가까운 상태라거나 생명을 소중히 여겨 존중하는 마음을 뜻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가치 개입적인 단어라는 통념과 다르게 그 뜻이 건조하고 중립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상태’. 그게 전부였습니다.
사전적 의미를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가 목을 따갑게 만드는 것도 생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겁니다. 바이러스도 엄연한 생물이고, 그것이 바이러스가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은 곤충이나 심지어 대기 중에 탄소를 펑펑 뿜는 인간을 생태적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곤충과 인간이 그러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개 바이러스는 생태적이다, 곤충은 생태적이다, 인간은 생태적이다, 라고는 잘 말하지 않습니다.
생태라는 단어는 거울과 같아서, 이 말을 쓰는 이가 ‘살아감’을 무어라 생각하는지 비추어 보여줍니다. 특정 종의 특정 행동만을, 아름답고 조화롭고 선한 관계만을 생태적이라고 여긴다면, 반대로 문제를 일으키는 면들을 살아감에서 배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생태도시라고 하는 곳들에서는 외래종 식물을 제거하거나 살충제를 뿌리는 일도 가능합니다. 쾌적하고 평화롭지만 트러블은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도시 전체가 커다란 노키즈존이 되는 겁니다.
《생태적 삶》을 쓴 철학자 티머시 모튼은 이를 두고 “어떤 생태정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전혀 깜빡거리지 않는 방식으로 밝히려 한다”라며, 이를 ‘생태적 통제 사회’라고 이름 붙입니다.
만약 살아감에 걸어둔 개념적 빗장을 풀고 선함과 조화로움뿐만 아니라 추함과 갈등까지 포함한다면 생태라는 말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지금보다 끈적하고 물렁거리고 부드러워질 겁니다. 그러면 트러블들이 얼마간 움직일 여지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둘 이상의 생물이 한 공간에 같이 살아 있어서 일어나는 트러블들 말입니다(모든 트러블은 홀로 있을 때는 트러블이 아닙니다). 저는 생태도시팀 활동가지만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부엌을 가로지르면 무섭습니다. 그러나 바퀴벌레는 생태적입니다. 무서워하는 저도 생태적입니다.
티머시 모튼은 앞선 논의에 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도래할 생태사회는 약간은 무계획적이고 망가지고 절뚝거리고 뒤틀리고 아이러니하고 어리석고 슬퍼야 할 것이다.” 왜 무계획적이고 절뚝거릴까요? 그곳은 ‘권위가 아니라 꾀어냄과 밀어냄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쪽의 트러블을 일방적으로 삭제하는 대신, 트러블들이 정치하고 경합하며 매번 대결해나가는 세계인 것입니다. 저는 바퀴벌레를 죽이는 대신 모르는 척하기를 선택할지도 모릅니다.
왜 계획이 아니라 무계획이, 권위가 아니라 매번의 대결이 필요할까요? 단지 도시에서 같이 사는 다양한 종들에게 정의롭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후가 급변하며 도시의 트러블이 점점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도시에서 벌어지는 생태 문제는 행정기관과 같은 중앙정부에서 일관되고 계획적으로 대응하기에는 빠르고 갑작스럽고 방대하게 일어납니다.
2022년에 서울시 은평구에서 대발생해 논란이 됐던 러브버그도 그러했습니다. 이 낯선 곤충이 어떤 종이고 어디로부터 왜 왔는지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러브버그는 골목과 상가를 뒤덮었습니다. 그러고는 2주 안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 곤충은 법적으로 지정된 해충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시는 방제할 수 있는 근거가 될 만한 조례부터 만들어야 했습니다. 서울연구원의 연구부터 시작해서 ‘대발생 곤충 방제 관리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제정된 것은 러브버그가 발생한 후 3년이 지난 2025년 봄입니다. 그때 이미 러브버그는 서울 전역으로 퍼지고, 한 곳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던 개체수는 분산돼 안정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곳인 인천 계양산 정상에 뜬금없이 떼로 나타났죠.
과거에 했던 방식처럼 러브버그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온갖 방법으로 인간의 권위를 보여주겠다고 하더라도,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처럼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 사회에 돌아옵니다. 그래서 더더욱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는 꾀어냄과 밀어냄의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러브버그 대발생 시 시민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적응했는지 연구한 인류학 연구자 임채연에 따르면 시민들은 ‘곤충을 피하기도 죽이기도 하면서 임기응변으로 불편을 헤쳐’ 나갔습니다. 분무기로 물을 뿌리거나, 대발생 시기에만 흰옷을 입지 않고 부채를 챙겨 다녔습니다. 임채연은 ‘사실상 박멸과 인내 사이에 두터운 중간지대가 존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선배가 제게 던진 ‘생태도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도시 자연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사건들이 나날이 첨예하고 복잡해지는 이때, 시민단체 활동가인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임기응변과 어색한 실천을 발굴하는 것, 통제하기 위한 지식보다는 함께 살기 위한 지혜를 익히는 것, 그리고 숨 막히게 무해한 생태도시 너머 꾀어내고 밀어내는 소란스러운 트러블들의 세계를 부를 이름을 찾는 것이 앞으로 제가 해나갈 과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해민_서울환경연합 활동가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 활동가이자 생태적지혜연구소 출판위원입니다. 종이로 터널북과 팝업북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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