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방문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도시의 거주자로 방문하는 법, 문헌정보 종사자로 방문하는 법,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으로 방문하는 법. 그간은 문헌정보 종사자로서 필자의 뒷마당 같았던 벨기에의 도서관들을 탐방했으니, 이번에는 너무 무겁지 않게 여행객으로 마주하는 인상들을 그려내는 도서관 탐방기를 쓰기로 하고 네덜란드 헤이그(Hague)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네덜란드의 공식 수도는 암스테르담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에 수도의 기능을 하는 두 개의 도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헌법이 정한 상징적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네덜란드의 정치와 외교의 중심이며 주요 행정기관과 유엔의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는 행정수도는 헤이그이다. 네덜란드어로는 ‘덴하그(Den Haag)’라고 불린다.
헤이그는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고종황제가 한일협약의 부당함과 대한제국이 주권국가임을 알리기 위해 1907년에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으로 이루어진 비밀 특사를 파견한 곳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도시다. 안타깝게도 임무가 실패로 돌아간 뒤, 이준은 머물고 있던 호텔에서 순국을 했고, 한 한인 교포가 이 부지를 매입해 현재는 ‘이준평화박물관’으로 헤이그 시내에 항일 유적지로서 자리하고 있다. 3인의 특사가 비장한 마음으로 참가하려 했으나 일본의 훼방으로 끝내 들어가지 못했던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비넌호프(Binnenhof)는 도서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명동처럼 유동 인구가 많고 쇼핑몰과 각종 상점들이 가득 들어선 도시 중심가에 헤이그중앙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인 건축가 리처드 메이어가 설계한 건물로 구 도서관에서 199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고, 건물의 절반은 시청사로 나머지 절반은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앙도서관 외에도 16개의 분관이 함께 운영 중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목재로 된 편안한 색상의 책장들과 청록-민트색으로 통일한 사인들이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도서관은 총 6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1층과 6층에는 시민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규모가 꽤 커 보이는 공공도서관이었는데 2024년 기준 회원 수가 12만 6천 명, 대출 건수는 1,866,000건에 이른다고 한다.
도서관 연회비가 일 년에 11만 원?
헤이그중앙도서관 인포데스크 ⓒ송영인
도서관 인포데스크 옆으로는 도서관 이용에 관한 각종 소책자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데 가장 중요한 회원비에 관한 책자를 꺼내 살펴보았다. 도서관 이용료가 무료인 한국에서 자라고 연회비가 상징적인 금액인 10유로(1만 6천 원)에 불과한 벨기에에서 살고 있는 필자에게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회원비는 낯설었다. 네덜란드의 공공도서관은 18세 이하는 무료지만, ‘도서관 서비스는 지역자치기관에서 제공하는 엑스트라 서비스’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성인은 회원비를 내고 원하는 종류의 회원권을 구입해야 한다. 미니 패스, 베이직 패스, 플러스 패스, 스타 패스의 네 가지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미니 패스는 1년에 19유로(약 3만 원)로 도서관에서 책과 시청각 자료 등을 대여할 수 있지만 자료마다 대여료를 내야 하며 온라인 대여 기간 연장도 불가하다. 대여할 수 있는 자료의 수, 예약 가능 유무와 대여 기간도 회원 종류에 따라 달랐다. 가장 비싼 회원제인 스타 패스는 70유로인데 한화로는 약 11만 원이다. 물론 스타 패스에 가입하면 도서관의 모든 서비스를 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공공도서관의 회원비가 이렇게나 비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리가 거의 무료로 이용하고 있는 도서관 서비스가 어느 나라에서는 상업적인 서비스로 분류되어 마치 항공사 마일리지 카드처럼 등급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도서관 이용자의 필요에 맞추어 각기 다른 금액을 내고 필요한 서비스만 제공받도록 하는 네덜란드의 실용적인 상인 정신을 잘 보여주는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출을 위한 회원비를 제외하고 헤이그중앙도서관은 숙제 도우미, 글쓰기 워크숍, 어린이 미술 워크숍, 외국인들을 위한 무료 네덜란드 회화 연습 교실, 외국어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모국어로 된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네덜란드어로 연습해 무대 위에 올라 소개하는 문학 이벤트등 다양한 활동들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도서관에는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있다
2층에는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독서 모임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도서관이 하나의 독서 모임을 운영하는 것과는 달리 다양한 테마의 여러 독서 모임들이 있었다. 아라비아 문학, 퀴어 문화, 쿠르드 문화, 인도 역사, 페미니즘, 카리비아-수리남, 범아시아 문학 등 다양한 테마로 이루어진 독서 모임이 인상 깊었다. 각 모임은 영어, 아랍어, 네덜란드어 등 사용하는 언어가 각각 달랐다. 각각의 모임들과 함께 이 달의 선정 도서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독서 모임은 전단지로 홍보되는 경우가 많은데, 밝고 큰 공간에서 매달 그들이 읽는 도서를 전시하고 사용 언어와 어떠한 테마로 운영되는지를 시민들에게 소개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관심과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헤이그 도서관의 북클럽을 소개하는 코너 Studio B ⓒ송영인각 북클럽이 선정한 이달의 도서.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가 맨 아래 왼쪽 끝에 보인다. ⓒ송영인
특히 1975년까지 네덜란드의 영토였던 수리남 출신의 이민자와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가 많은 네덜란드는 사회적 통합과 동화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도서관의 본질인 독서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네덜란드어를 하지 못하는 이민자일지라도, 영어와 아랍어 등의 다른 언어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고, 다양한 문화적 관심 분야를 다룸으로써 이민자들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도서관의 컬렉션도 터키어, 이탈리아어, 우크라이나어, 아랍어,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로 구비되어 있었다.
2층의 또 다른 코너에는 ‘이야기를 듣는 거실’이라는 이름의 재미있는 공간이 있었다. 작은 집처럼 생긴 공간에는 오래된 다이얼 전화기가 있었는데 각 번호마다 헤이그중앙도서관을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녹음된 이야기를 수화기 너머로 들을 수 있었다. 이민자로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 독서 모임 리더의 도서관 이야기, 헤이그의 대표 시인이 들려주는 도서관 이야기. 이보다 더 도서관을 재미있고 개성 있게 소개하는 방법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듣는 거실 코너와 이용자들의 도서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다이얼 전화기 ⓒ송영인
3층으로 올라가니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네덜란드의 국가 이미지답게 ‘Garbology(쓰레기학)’라는 환경문제에 관심을 촉구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가 만들어낸 쓰레기를 서기 2500년 미래의 고고학자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로부터 출발한 재미있는 작품, 버려진 전자기기 안의 남겨진 자료, 버려졌지만 완전히 버려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아이러니를 다룬 작품, 쓰레기를 모티브로 한 비디오 아트와 설치 미술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환경문제 테마로 기획된 Garbology 전시 ⓒ송영인
크고 작은 1만 3천 건의 다양한 전시회와 이벤트들이 2024년 헤이그 도서관에서 진행되었고, 참여한 도서관 이용자들은 23만 5천 명이었다. 이야기 가득한 도서관에서부터 환경문제를 다루는 전시 공간까지, 다음 층에는 또 무엇이 날 놀라게 할지 더욱 궁금해졌다.
예산 삭감에 대응하는 창의적인 방법
다음 층으로 올라가니 눈이 휘둥그레지는 논픽션 음악 코너가 나왔다. 자그마치 연습용 피아노가 세 대, 도서관 중앙에 마련된 그랜드 피아노와 방음벽까지 모두 갖춘 음악 연습실이 있었다. 음악 연습실 사용료는 시간당 3.5유로(5,500원)로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 있다. 음악 악보가 비치된 코너에는 ‘당신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공도서관 음악 컬렉션 앞에 서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공공도서관에서는 피아노가 한 대만 있어도 신기할 일인데, 피아노가 네 대에 음악 연습실까지 있다니 갑자기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완벽하게 방음이 되는 음악 연습실과 연습실 안의 피아노 ⓒ송영인
오늘의 탐방은 여행자 콘셉트지만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도서관 인포데스크로 갔고, ‘헤이그 음대’라 적힌 명패 뒤에서 일하고 있는 도서관 사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음악 코너의 인포데스크는 세 자리였는데 각각 다른 명패가 있었다. 헤이그 음대, 네덜란드음악협회, 헤이그 도서관. 필자를 벨기에에서 일하고 있는 사서이며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레고르 버르웨머런(Gregor Verwijmeren) 사서는 필자의 벨기에식 네덜란드어 억양을 신기해했다. 벨기에 네덜란드어권 지역과 네덜란드는 같은 네덜란드어를 사용하지만 다른 발음과 억양을 사용하는데, 외국인이 서울에서 부산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생각하면 네덜란드에서 필자가 어떻게 보일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레고르 사서는 네덜란드에서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사서이며 글을 쓰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더욱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는 친절하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주었다.
‘당신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공도서관 음악 컬렉션 앞에 서 있습니다!’ ⓒ송영인
“헤이그 음대 건물은 2015년에 현재 중앙도서관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새로 이사 간 건물에는 저희 음악 컬렉션이 들어갈 자리도, 주어진 예산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어차피 중앙도서관과 멀지 않으니 이곳으로 옮겨 음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우리의 컬렉션을 개방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네덜란드 음악협회도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예산 삭감 문제로 결국 헤이그 음대처럼 같은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공공도서관일 뿐만 아니라 헤이그 음대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요. 저를 포함한 십여 명의 동료들은 중앙도서관에서 일을 하지만 소속은 헤이그 음대입니다. 음악 연습실도 음대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이 함께 사용합니다. 또한 음대 학생들은 저 그랜드 피아노로 도서관 시민들을 위해 콘서트를 열기도 합니다.”
헤이그 음대 사서이자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레고르 버르웨머런 사서 ⓒ송영인
어쩐지 평범한 공공도서관 음악 컬렉션 같지 않더라니, 헤이그 도서관의 방대한 음악 컬렉션과 음악 코너에 있는 엄청난 시설들은 이러한 사연을 담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음악 컬렉션 앞에서 그레고르 사서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하고, 서로 도서관과 책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
다른 층의 북클럽 소개 공간, 전시회 공간이 있던 큼지막한 공간과 같은 위치에 ‘Podium B’라는 공연장이 자리 잡고 있었고, 공연이 없을 때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었다. 음대 학생들이 시민을 위해 공연한다는 곳의 한쪽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는데 이 피아노는 공연하는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 공연과 음료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공연장 옆으로는 도서관의 두 번째 카페인 스카이라인 카페가 있었는데, 그 이름처럼 헤이그의 탁 트인 시내 전경과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었다.
헤이그 음대생들의 연주회가 열리는 Podium B와 스카이라인 카페 1 ⓒ송영인
헤이그 음대생들의 연주회가 열리는 Podium B와 스카이라인 카페 2 ⓒ송영인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각자 자기 몫을 계산한다’는 의미의 더치페이. 여기서 ‘더치’는 ‘네덜란드의’라는 뜻이다. 실용적이고 손익 계산이 빠른 것 외에도 이들은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이 실험 정신과 창의성으로 한때 세계 무역을 쥐락펴락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 도서관 탐방은 또 다른 방식으로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시민들의 일상,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도서관을 여행자로서 돌아보며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문화와 시각을 배울 수 있었다. 우연이 선물해준 만남으로 도서관의 창의적인 예산 삭감 대응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그레고르 사서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송영인_벨기에 앤트워프대학 학술도서관 사서
송영인_벨기에 앤트워프대학 학술도서관 사서
벨기에 앤트워프 대학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다. 현재 브런치에서 필명 ‘고추장와플’로 유럽 생활과 문화에 대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쓰고 있다.
벨기에 앤트워프(Antwerp)의 공립도서관 페르메커(Permeke)를 방문했다. 앤트워프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벨기에의 심장과도 같은 이 도시에 대해 짧게 설명부터 하고 시작하겠다. 앤트워프는 유럽 전체에서 물동량으로 로테르담과 치열하게 1, 2위를 다투는 유럽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벨기에의 GDP를 끌어올리는 가장 부유한 도시이다. 벨기
해리포터가 갑자기 나타가 마법을 쓸 것 같은 앤트워프대학(Universiteit Antwerpen) 도서관 건물은 천주교 예수회가 1575년에 세운 중등교육 학교 건물에서 기원한다. 1902년부터는 예수회에서 세운 세인트 이나시우스 경상대학으로 쓰였고, 2003년 여러 대학들이 ‘앤트워프대학’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면서 현재의 건물에 도서관이 들어서게 되었
곳곳에 수로가 흐르는 중세도시의 모던한 핫 플레이스현재 벨기에에서 핫한 공공도서관인 겐트(Gent) 시의 더 크록(De Krook, 네덜란드어에서 ‘oo’는 장모음 ‘ㅗ’라서 ‘더 크록’이라 읽는다)에 다녀왔다. 강이 돌아가는 곳, ‘하회(河回)’라는 뜻의 네덜란드 고어 ‘de Krook’에서 도서관의 이름을 따 왔다. 겐트는 수로가 도시 곳곳을 통과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