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의 인생은 어디에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책을 읽기로 했다. 마침 집 근처에 ‘감초마을 현진건 기념 도서관’이라는 예쁜 이름의 도서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알고 보니 요즘 도서관은 책을 열람하고 대출해주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지역 주민을 위해 다양한 문화 강좌를 여는 평생 배움터였다.
호기심에 골라본 강좌가 ‘시니어를 위한 글쓰기 특강’이었다. 55세 이상의 시니어들만 신청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제시한 글감으로 짧은 생활 에세이를 써온 뒤 한 사람씩 소리 내어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글쓰기를 위해 모였다. 나이도 사는 곳도 달랐다. 세월의 파도를 가르며 살아온 이웃들의 글은 솔직하고 담백했다. 치매에 걸린 90세 노모를 돌보며 사는 60대 딸, 은퇴한 뒤 주말농장을 오가며 농사짓는 부부, 세련된 신식 며느리와 육아 갈등을 겪는 시어머니, 자식들 독립한 후 처음으로 자기 방이 생겨 기뻐하는 주부……. 꾸밈없이 써 내려간 글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이름을 날리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멋지게 포장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주변과 나를 되돌아보며 쓰는 글에는 타인의 마음을 활짝 열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어느덧 몇 주가 흘러 내가 쓴 글을 발표할 차례가 되었다. 원고를 집어 드는 순간, 손이 떨리고 눈앞이 아득했다. 이게 다 뭐라고,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내 글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긴장을 누르느라 숨을 가다듬으며 읽고 있는데 누군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신없이 글을 다 읽고 나자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손등으로 눈가를 닦는 사람도 보였다. 그 순간 내 가슴속 무언가가 쿵 떨어졌다. 갑자기 주변의 빛깔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날 이후 매주 부지런히 글을 써서 모임에 가져갔다. 머릿속에서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많은 문장들이 별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밤늦은 시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식탁을 책상 삼아 글을 쓸 때는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별것 아닌 내 글에 눈물을 보이며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너무나 놀랍고 신기했다.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독자가 되어주었고 독자가 생긴 이상 우리는 작가였다. 일주일 동안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기대감과 책임감은 한 문장이라도 정성을 다해 쓰도록 나를 채찍질하고 부추겼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먼 북소리》의 문장을 짚어본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아주 가냘프게.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글쓴이의 낭독이 끝나면 열심히 박수를 쳤다. 그 작은 교실을 메우던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잊을 수 없다. 글쓰기 강좌에서 내가 들었던 박수 소리는 작가 하루키가 말한 먼 북소리 같았다고나 할까? 지금까지의 삶을 바꾸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박수를 받는 인생이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마지막으로 박수를 받아본 순간이 언제였나.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의 박수 소리를 듣는 순간, 허물어졌던 나를 바로 세우고 싶어졌다.
우리는 서로가 쓴 글을 읽어보며 울고 웃었다. 마치 거울 같았다. 그 거울 앞에 서서 비로소 내 진짜 얼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누군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에세이를 쓴 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는 ‘나만의 소설 쓰기’ 강좌에 참여했다. 과제는 ‘자신이 가장 못 잊을 일’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그 당시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나는 점점 생명이 꺼져가는 아버지를 보며 새 생명을 키운다는 사실이 못내 미안하고 슬펐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시간을 소설로 풀어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못다 한 말을 다 했다. 글을 통해 오래 묵은 내 상처가 치유되는 시원함을 느꼈다. 참 신비한 경험이었다.
에세이 쓰기가 자신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면 소설은 좀 달랐다. 내 이야기지만 마치 타인의 이야기처럼 객관화하는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과거의 기억들이 고정된 채 굳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고쳐 쓰며 새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났다.
그 이후 삶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소설에 담았다. 그러면 소설이라는 그릇은 내가 지닌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어주었다. 최근에 쓴 졸고 〈순화의 집〉이라는 소설 속에서 주인공 순화는 매일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한 컷, 한 문장을 부지런히 찾는다. 늘 똑같아 보이던 일상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마음이 순화를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살게 한다.
무엇보다 2년 남짓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좋은 선생님과 글 쓰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도서관이 없는 나의 글쓰기를 상상할 수 없다. 대부분의 도서관은 공공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누구나 뜻만 있다면 도서관에서 글 쓰는 법을 배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
어느덧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국문학을 전공했던 내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삶의 파도를 넘으며 꿈은 점점 희미해졌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글을 쓰면서 내 안의 뭔가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는 젊은 날의 꿈처럼 ‘작가가 되는 일’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나는 눈을 맞추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단 한 사람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그냥 쓴다.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내 마음을 움직인 것들을 이웃들에게도 똑같이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다. 마음을 다해 쓴 글을 읽고 사람들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일이 좋다. 기쁨과 위로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쓴다.
명정희_소설가
2025년 제3회 만추문예 소설 부문에 〈순화의 집〉으로 당선. 일상과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 삶의 단면을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저는 손으로 사부작사부작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실은 공예를 잘하지도 못하고 끈기도 부족합니다. 소질 있다는 말을 듣고 덜컥 시작한 목공은 나무를 자르고 조립하는 것보다 사포질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슬쩍 발을 뺐고, 우드 카빙은 조각도에 손을 베인 뒤 학을 뗐습니다. (수저 세트를 몇 년째 완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팬데
버려진 사진들2007년, 지역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존 말루프(John Maloof)는 한 경매장에서 무명작가의 사진과 필름이 담긴 상자를 낙찰받는다.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쓸 자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원하는 사진들을 찾지 못한 말루프는 호기심에 함께 있던 필름들을 현상해보는데 거리의 풍경, 사람들의 솔직한 표정과 몸짓이 선명하게 담겨 있는 사진에 매료된
미안해!바로 얼마 전에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매장은 80여 평. 잡지, 만화, 소설, 생활실용서, 문고판 등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아동서, 인문서, 예술서 선반도 있고, 나머지 공간에는 문구류나 토트백 등을 두고 있었습니다. 도쿄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로, 지하철역 입구 근처에 자리해 지역의 다양한 고객층에 대응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