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학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영화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번역가로 일하는 동시에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전공을 선택했을 때, 그리고 학교에 다닐 당시 이러한 경로를 미리 계획하거나 예상했는지 궁금하다.
A나도 내가 졸업 후에 번역을 하고 시나리오를 쓰게 될지 몰랐다. 모두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된 일이고, 그래서 지금도 ‘번역가’와 ‘시나리오 작가’로 소개될 때마다 괜히 움츠러들게 된다. “저는 번역도 하고 시나리오도 써요”라고 말하는 건 할 수 있는데, 내 이름 뒤에 ‘번역가’, ‘시나리오 작가’가 뒤따르는 순간 내가 하는 일이 직업의 영역에서 규정되니까. 아직은 그게 어색하고 얼떨떨하게 느껴지는 단계인 것 같다. 이게 내 옷이 맞는지 확신이 없달까.
Q 만들어질 수도,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소개가 재미있다. 무슨 의미인지 이야기해줄 수 있나. 가능하면 작업 중인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A시나리오는 늘 예비 단계다. 소설은 완성하는 순간 소설로서 독립적인 가치가 생기지만 그 어떤 위대한 시나리오도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에는 스케치고, 상상도다. 영화가 아직 오지 않은 건지, 영원히 오지 않을지, 쓰는 중에는 알 수 없다. 그걸 모르면서 쓰는 게 시나리오고, 그래서 무모하고, 조금은 두렵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일이다. 지금 작업 중인 시나리오는 두 개인데 둘 다 때가 엇갈린 사랑 이야기다.
Q 첫 번역서인 에리카 발솜의 《대양의 느낌: 영화와 바다》에 대해 듣고 싶다. 원서를 우리말로 옮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원서 《An Oceanic Feeling: Cinema and the Sea》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영화학을 이렇게 할 수 있구나 싶었다. 학자들 중에 (사실 시네필들 중에도) 책만 읽고 영화만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 안에서만 세계를 보고, 안다고 생각하는 거다. 저자는 영화와 바다를 매개로 우리로 하여금 극장 밖의 세계를 더 예민하게 감각하게 한다. 《대양의 느낌: 영화와 바다》에는 수많은 작품이 언급되는데,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진다. 모든 명명과 구분을 무화하는, 끝없는 대양을 보러. 번역은 가장 능동적인 독서이자 치열한 해석 행위라고 하는데, 번역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 책을 나에게 자명성이 더 뚜렷한 언어로 옮겨보고 싶어서였다.
Q 최근에는 소설 번역을 마쳤다고 들었다. 비문학과 문학을 번역할 때의 차이가 있다면?
A많이 다르다. 내가 번역한 책들에 한해 이야기해보면, 학술서 혹은 학술적인 언어로 쓰인 책은 저자가 기반을 두고 있는 이론을 이해하고 논지를 정확하게 파악해 내용을 오류 없이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념을 오역하거나 문투를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옮기는 것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반면 소설은 작가가 쓴 문장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좀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띄어쓰기나 문장부호의 위치만으로도 원문의 뉘앙스가 달라질 수 있어 시제를 바꾸거나 문장을 나누는 일에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이야기고, 번역에는 예외도, 딜레마도 너무 많다.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에 있는 작가들도 있고(제발트, 클루게, 엘렌 식수, 파스칼 키냐르, 다와다 요코……). 더 들어가면 애초에 우리가 언어의 완전성을 전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다. 예전에는 시는 완전한 번역이 아예 불가능한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쩌면 ‘번역된 시’가 더 시의 본질에 가깝지 않을까, 숙명적으로 불완전하게 감각할 수밖에 없는 게 시라면…… 그런 생각을 한다. 번역에 관해 이야기하면 늘 자가당착에 빠지는 기분이다. 정영목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번역가는 분열적인 직업인 것 같다.
Q 번역해보고 싶은 책이 있나?
A축구에 관한 책! 영국은 축구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읽는 흥미로운 책들이 정말 많다. 계급, 내셔널리즘, 남성성, 공동체와 소속감, 이주와 인종 문제, 하위문화 등 사회의 여러 층위가 축구라는 스포츠에, 그러니까 그라운드 안과 밖 모두에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주로 선수나 감독의 자서전, 혹은 전술 관련 도서들이 많이 번역되어 있는데, 기회가 되면 이런 책들을 소개해보고 싶다.
Q 번역과 시나리오 집필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에 대해 들려준다면? 둘 다 글을 매개로 하긴 하지만 다른 역량이 요구되는 작업일 듯하다. 동시에 번역도 넓은 의미에서 창작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원서와 아예 다른 언어로 새로운 글을 써내야 하니까.
A정말 그렇다. 번역은 원서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도 창작에 가까운 사고를 해야 할 때가 많다. 완전히 다른 두 언어 사이에서 의미망과 문화적 맥락을 새롭게, ‘말이 되게’ 구성해야 하니까. 또 번역어를 선택하는 판단에는 결국 역자의 가치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연주자들이 같은 악보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시나리오는 계속해서 첫 문장을 쓰는 일처럼 느껴진다.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을 언어로 먼저 불러내야 하니까. 두 작업은 다른 종류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방식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데, 나의 경우 상호보완적이라고 느낀다. 무엇보다 번역은 도착어 능력을 훈련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인데, 한국어로 시나리오를 쓰는 입장에서 이 점이 큰 도움이 된다. 모국어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다 보면, 그 언어 체계 안에 축적된 사람들의 감정과 사고방식을 더 높은 해상도로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Q 영화제 예심위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눈에 띈다. 심사를 맡을 때 보통 몇 편의 영화를 보나. 또 영화들을 어떤 마음가짐이나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도 궁금하다.
A내가 심사에 참여한 영화제의 경우, 500여 편의 출품작 가운데 각 예심위원에게 100편 정도의 작품이 할당된다. 이를 개별 시사한 뒤 최소 다섯 편에서 열 편을 선정 이유와 함께 추천하면, 이후 프로그래머들이 다시 검토해 최종 상영작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심사를 할 때는 최대한 ‘좋고 싫음’의 판단을 유보하려고 한다. 영화제의 국제경쟁 섹션은 새로운 감독, 새로운 목소리를 발굴해 소개한다는 의미가 큰 만큼, 무난한 영화보다 배짱 있는 영화들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취향과 거리가 멀어도, 관습적인 서사나 장르 문법을 답습하지 않고 동시대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들에는 결국 설득당한다.
한편 다소 투박해 보여도 마음이 가는 영화들이 있다. 이미지와 리듬에서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특히 그렇다. 그럴 때는 선정 코멘트를 구구절절 쓰게 된다. 거의 지지 성명처럼. 그런 작품이 최종 상영작으로 선정되면 정말 기쁘고, 주변에 소문을 낸다. 이 영화 내가 뽑았어, 꼭 봐, 하면서.
Q ‘슬로우 시네마’에 대해 석사 논문을 썼다. 점점 더 빠르고 짧아지는 시대에 ‘슬로우’와 ‘시네마’라는 말이 다소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슬로우 시네마’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인가.
A슬로우 시네마가 속도와 생산성만을 강조하는 지금 시대와 멀게 느껴진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좋아한다. 슬로우 시네마의 느림을 몸으로 체험하며 그 무료함을 견디는 것은 속도와 생산성에 대한 하나의 저항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쉼 없이 자극에 노출되고, 책과 영화마저 요약본과 하이라이트로 소비되는 문화에서 정적인 이미지와 긴 시간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전혀 다른 시간 감각을 회복하게 만든다.
사실 시네필 문화는 슬로우 시네마를 지나치게 엄숙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온 집중을 다해서, 한 번에 끝까지 보고,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압박 같은 것들. 그런데 동시대 슬로우 시네마를 대표하는 몇몇 감독들은 훨씬 느슨하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경험하게 한다. 2014년 타이베이에서 열린 전시에서 차이밍량은 미술관 안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이 잠을 잘 수 있도록 했다. 라브 디아즈는 자신의 아홉 시간짜리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사람들이 나갔다가 다시 극장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다고 했다. 언제 돌아오든 영화는 계속 상영되고 있을 거라면서. 나는 이런 태도가 오히려 슬로우 시네마를 더 살아있는 방식으로 경험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폐쇄된 관람 환경에서 관객의 시간과 몸을 영화에 완전히 ‘헌납’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일상의 흐름 속에서 능동적으로 느린 시간성 안으로 접속해, 그 안에서 마치 체류하듯 천천히 감각하게 만드는 것.
크리스 마커의 동명 영화 속 이미지를 텍스트와 함께 수록한 책이다. 〈환송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이 영화 속에서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흑백 스틸들을 붙잡아 오래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소중하다. 사실 〈환송대〉의 마법은 컷이 전환되며 이미지가 움직이는 바로 그 순간에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스틸 이미지에서 책이라는 매체로의 이동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펼칠 때마다 이 영화를 처음 봤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기억이다.
1974년, 베르너 헤어초크는 친구이자 평론가인 로테 아이스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헤어초크는 뮌헨에서 파리까지 3주 동안 걸어간다. 그는 자신이 걸어가야만 아이스너가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얼음 속을 걷다》는 출발부터 신화 같은 그 여정의 기록이다. 이 책은 추위와 허기, 탈진, 축축한 옷, 발이 으스러지는 감각 같은 것들로 가득한 고통스러운 육체의 기록인 동시에, 세상에서 동떨어져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에 도달하려 했던 사람의 광기 어린 정신의 기록이기도 하다. 헤어초크의 바람대로 아이스너는 살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모해 보이는 일을 앞두고 겁이 날 때마다 이 여정을 생각한다. 믿을 수 있다면, 어쩌면…….
《로버트 맥키의 스토리_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로버트 맥키)
제목 때문에 실용서로 보이기 쉽고(사실 이 책의 원제는 ‘Story’다) 실제로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바이블과도 같은 최고의 작법서지만(맥키가 정확한 언어로 설명하는 지침들은 스토리텔링을 공부하는 데 정말 유용하다), 이 책이 특별한 건 인류가 왜 오랜 역사 동안 이야기에 매료되어왔는지, 인간은 왜 타인의 삶과 허구의 서사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려 하는지 말하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가 지녀야 할 태도에 관한 대목을 좋아한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이 그어져 있고, 내가 이 책으로 계속 돌아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억나는 것들을 말해보면 다음과 같다. 고통받는 영혼을 사랑하라는 것, 작품 안에서 솔직해지고, 자신이 만든 모든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인물은 작가의 자기 인식이라는 것.
손효정_시나리오 작가, 번역가
만들어질 수도,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은 책을 만나면 번역을 한다.
올해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이 600호를, 창비 시인선이 500호를 맞이했다.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선정 이유로 “강력한 시적 산문을 쓴 현대 산문의 혁신가”라는 평을 했다.지금 이 시대에 시는 어떤 매혹을 가지고 있을까.문학과지성사 전 대표이자 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그리고 35년 이상 시를 쓰면서 여덟 권의 시집을
미소 짓는 습관을 가지면서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의 얼굴 살 치료를 12년간 해온 이하영 원장은미소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 수 있는지 알려주고자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의료 인문학자 이하영 원장만의 ‘무의식을 바꿔주는 독서 방식’과생각을 정리하고 삶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책쓰기의 효과에 대해서 들어본다. [인터뷰 개요]
'오르지 않는 건 내 월급'뿐이고, 그마저도 ‘통장을 잠시 스쳐갈 뿐.’재테크 용어들은 낯설고, 투자는 원금마저 잃을까 두렵기도 하다. 재테크 멘토 슈엔슈는 투자에 대한 압박감을 내려놓고 소비에 대한 개념부터 바꾸자고 말한다.예금 적금은 재테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남들 따라 잘 모르는 주식을 덜컥 사본 사람,《전업맘, 재테크로 매년 300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