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선한 영향력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 꽤 오래 고민해봤지만 정확히 잘 모르겠다.(^^;)
Q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책은 무엇인가.
A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한 편의 잘 만든 여행 예능 같은 에세이로, 자막을 잘 쓰고 싶은 후배들에게 꼭 권했던 책이기도 하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두 중년이 도시생활로 망가져버린 몸뚱이를 질질 끌며 애팔래치아 트레일 3,500킬로미터를 걸어간다. 예능감 넘치는 초등학교 동창과 이미 생활인이 되어버린 저자가 투닥거리며 이어가는 답 없는 대장정을 그리고 있다. 더럼대학교 총장을 지낸 저자 빌 브라이슨의 박식한 인문·자연 지식 사이로, 종주 과정에서 마주치는 기괴한 인물들과 광대한 풍경들, 따뜻한 사연들과 작은 행복의 순간들이 알차게 담겨 있다. 날씨 좋은 날 가져가고 싶은, 잘 만든 샌드위치 같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지식과 이야기, 감동과 유머가 함께 담길 수 있는 뭔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방송사 PD를 지망하던 시절 종종 꺼내서 부분 부분을 다시 읽었던 고마운 책이다.
Q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인생 첫 기억은?
세 살 때, 배가 고파서 서랍장 위에 있는 분유를 퍼먹으려고 3층 서랍 손잡이를 딛고 기어오르던 기억이다. 겨우 기어올라 퍼먹었는데 맛이 너무 없었다. 먹고 보니 분유가 아니고 이유식이었다.
Q 가장 사랑하는 곳은 어디인가. 무슨 골목, 무슨 가게 등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A 우리 집을 제외한다면, 여의도 KBS 본관 앞의 ‘신의주 순대국밥’이다. 내가 만든 모든 프로그램의 1할은 이 가게의 ‘순대국 정식’에 의지하고 있다. 영혼을 위한 순대국물. 물론 체인점이라 실망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뚝배기의 뜨거운 국물과 쉼 없는 설거지에 연마되어 검게 변한 숟가락을 볼 때면 내가 이곳의 역사를 함께했구나, 하는 감개무량한 감흥이 밀려온다.
Q 웃고 싶을 때마다 틀어서 보는 TV 프로그램은?
A MBC <나 혼자 산다>. 특히 기안84와 전현무 씨의 에피소드는 어지간하면 챙겨보려 노력한다. 예전에 이시언 씨와 한혜진 씨가 있었을 때의 시즌은 가끔 다시 챙겨보기도 한다. 또 하나, 요즘은 tvN <코미디 빅리그>의 코너 ‘발명왕 황경영’. 문세윤은 정녕 미친 사람인 걸까.
Q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꼭 해야만 하는 루틴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삼청동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가서 오후를 보낸다. 이날은 책을 읽진 않고 햇볕이 좋은 자리에 앉아서 중정을 멍하니 보다가 온다. 좋아하는 장소이자 영감을 얻는 곳 중 하나다······ 아, 다른 라이브러리 이야기······ 괜찮나?;;
Q ‘힐링’이라는 말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살아갈 에너지를 되찾는 것 아닐까. 너저분해진 머릿속, 관리되지 않은 공간과 엄두가 나지 않는 약속들. 뭔가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 때, 힐링을 (각자의 방식이 어떤 것이든지) 하러 가는 것일 테다. ‘힐링’을 마치고 돌아오면, 체크 리스트를 작성하고 첫 번째 일을 해결할 에너지 정도가 생긴다. 그리고 첫 번째 리스트를 지웠다는 기쁨으로 두 번째 체크 리스트를 지우는 거다. 국면을 바꿀 힘을 얻는 것이 나에겐 힐링이다.
Q 한 달 동안 여행을 간다면 들고 갈 책 세 권은?
A 지금 간다면 그레천 바크의 《그리드》, 박한슬의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Q 죽기 전에 꼭 한 번 프로그램을 같이 해보고 싶은 동시대 인물은 누구인가.
A ‘슈카월드’의 슈카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는 몰라도. 내가 무엇을 그를 위해 짜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존경심, 아니 빠심으로······.
Q 당장 은퇴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A 52주간 일요일을 제외하고 세 끼 요리를 계속해서 하고 싶다.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한다면, 어머니의 레시피를 모두 카피해놓고 싶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요리를 손에 익히는 것은 ‘자유’와 ‘건강’, ‘존엄’을 얻기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늘 생각한다.
Q 잘 만든 예능 프로그램 같다고 느낀 책은?
A 어, 이 질문이 다시 나오다니!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하지만 하나 더 추천해야 한다면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 명쾌하고 속도감 있는 성장 스토리의 표본이고 병맛 캐릭터들의 향연이라 대학시절부터 몇 번 거듭해 읽었다. 이제 이런 이야기는 웹소설의 범람으로 다소 빛이 바랬지만,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재미는 잊히지 않는다.
Q 지금까지 받은 교육 중 최고의 교육은?
A 아버지에게서 받은 교육이다. 이젠 디테일한 대화가 거의 생각나지 않게 되었지만, 이 패턴만큼은 늘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빠, 저건 왜 저렇게 생겼어?” “그러게. 왜 그런 것 같니?” “내 생각엔 어쩌구저쩌구······.” “좋은 생각이야. 아빠가 좀 더 자세히 얘기해줄까?” 아버지는 한 번도 나에게 답을 바로 말해준 적이 없고, 현상이 왜 그런 식인지 계속해서 질문을 되돌려줬다. 그게 내 인격의 절반을 만들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Q 신을 만난다면 지구의 무엇을 바꿔달라고 하겠나?
A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외모와 음성을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하겠다. 종종 생각하는 소원이다.
류호진이 추천하는 책 다섯 권
《원칙》(레이 달리오)
세계 최대의 헤지 펀드 ‘브리지워터’의 창립자이자 CEO인 레이 달리오가 자신의 성공 비결을 고도로 정제하여 만든 인생 공략집. 모호한 슬로건으로 뜬구름 잡는 흔한 자기계발서들과 달리, 극도로 코드화된 ‘법조문’ 형태로 성인의 삶을 위한 방침들을 제시한다. 쓰여 있는 그대로만 할 수 있으면 대성하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베르세르크》(미우라 켄타로)
결국 미완인 채 2021년 작가가 (과로로) 세상을 떠나버린 비운의 걸작. 청소년기에는 너무 자극적이고 음울해서 좋아하지 않았는데 40대에 들어서서 다시 읽자 전혀 다른 면모가 읽혀지는 걸작 만화. AI가 그림을 그린다는 무서운 시대에, 한 인간이 평생을 들여 기벽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했던 아름다운 작화 또한 인상적이다.
《짜릿하고 따뜻하게》(이시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던 것이 이해되지 않는 애정의 도서. 카피라이터 이시은 씨가 엄선해 번역한 일본의 광고 카피 모음집이다. 어순도 감정도 언어도 비슷한 애증의 나라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 통과한 자본주의 시대를 통해 빚어낸 명문장들을 모아두었다. 후배들에게 자막을 잘 쓰기 위해 참고 삼으라고 하는 책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런 카피들. ‘작은 네가 올해의 여름을 잊어버려도, 엄마가 계속 기억해둘게. - 글리코 유업’
《백년허리》(정선근)
허리가 안 아픈 사람에게는 예방책. 허리가 아픈 사람에게는 성경책. 말이 필요 없다.
《K를 생각한다》(임명묵)
1990년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도발적이면서도 명쾌한 르포르타주. 저자 임명묵은 서울대학교 아시아문명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신예 작가로, 자신의 경험과 세밀한 취재, 방대한 문헌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입이 벌어지는 2020년대 대한민국의 음지와 양지를 작은 책에 꽉꽉 담았다.
류호진_방송 PD
방송 PD. 2008년 KBS에서 예능 PD의 커리어를 시작해 <1박2일> 등을 연출하고 현재 tvN에서 <어쩌다 사장> 시리즈를 연출하고 있다. 20대 때 《플레이어》라는 소설을 출판한 이력이 있고 중학시절 도서관 사서로 활동했던, 여전히 공상이 많은 중년이다.
서울시립대 휴먼라이브러리에서는 책이 아닌 ‘사람’을 빌릴 수 있다. 2000년 봄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로부터 시작된 ‘사람책’ 프로젝트는 현재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처음에 사람책은 난민이나 소수자 등 쉽게 만나기 어렵고, 목소리를 잘 들어볼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휴먼라이브러리에서는 누구나 사람책이 되어서
코앞에 닥친 시니어 천만 시대! 이제 도서관에서도 열람실을 이용하거나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실버 세대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독서, 그리고 독서와 관련한 활동을 통해 여가 선용을 하거나 자기계발, 자아실현을 하는 시니어들이 도서관의 주 이용군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독도서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독서 활동을 하며 삶을 완성해가는 실버 이용자 두 분을
더 라이브러리 석학 인터뷰는 우리 시대 다양한 분야의 석학들을 모시고 삶과 독서에 관한 풍성하고도 깊이 있는 경험과 철학을 나누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 자연과학계를 대표하는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를 양영은 기자가 만나 인터뷰했다. 최재천이화여대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양영은KBS 보도본부 기자, 건국대 겸임교수 최재천 교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