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진_시인, 건축 엔지니어
2019년 문학동네 신인상 수상으로 활동 시작. 쓰고 지우는 일들을 반복한다. 연필과 지우개 사이. 엔터키와 백스페이스키 사이 어딘가에서.
영상 ⓒ한여진 깎지 않는 연필 ‘깎지 않은 연필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다.’(《연필 깎기의 정석》, 데이비드 리스 지음·정은주 옮김, 프로파간다, 33쪽)연필을 깎기 위한 각종 도구와 방법과 상황과 마음가짐으로 가득한 데이비드 리스의 위 책은 그러나 흑연이 드러나지 않은 연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찬사도 잊지 않는다. 사물로서의 연필의 목적은 무언가를 쓰
책 대신 농민신문을 탐독하던 소녀어린 시절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1970년대 말 초등학교에 들어갔던 내게는 읽을 책이 부족했다, 아니, 거의 책이라고 생긴 건 교과서와 참고서 정도일 뿐이어서, 새 교과서를 받아들자마자 교과서의 지문들을 수도 없이 읽어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거의 외우다시피 하곤 했다.우리 옆 동네는 담배 농사를 많이 지었는
고백하건대, 내 손은 생산적인 딴짓을 하기에 적합한 기량을 갖추고 있지 않다. 쓸데없이 길쭉하고 매끄럽지만, 그런 손에 보통 기대되곤 하는 섬세함 따위는 없다. 집중력이 좋지도 않은 까닭에 뜨개질이나 요리, 수공예처럼 깊은 몰입을 요구하는 취미도 가질 수 없다. 나는 나를 쉽게 투박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내가 가진 것 중 유일하게 촉을 세우고 있는 것은
영상 ⓒ한여진 깎지 않는 연필 ‘깎지 않은 연필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다.’(《연필 깎기의 정석》, 데이비드 리스 지음·정은주 옮김, 프로파간다, 33쪽)연필을 깎기 위한 각종 도구와 방법과 상황과 마음가짐으로 가득한 데이비드 리스의 위 책은 그러나 흑연이 드러나지 않은 연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찬사도 잊지 않는다. 사물로서의 연필의 목적은 무언가를 쓰
책 대신 농민신문을 탐독하던 소녀어린 시절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1970년대 말 초등학교에 들어갔던 내게는 읽을 책이 부족했다, 아니, 거의 책이라고 생긴 건 교과서와 참고서 정도일 뿐이어서, 새 교과서를 받아들자마자 교과서의 지문들을 수도 없이 읽어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거의 외우다시피 하곤 했다.우리 옆 동네는 담배 농사를 많이 지었는
고백하건대, 내 손은 생산적인 딴짓을 하기에 적합한 기량을 갖추고 있지 않다. 쓸데없이 길쭉하고 매끄럽지만, 그런 손에 보통 기대되곤 하는 섬세함 따위는 없다. 집중력이 좋지도 않은 까닭에 뜨개질이나 요리, 수공예처럼 깊은 몰입을 요구하는 취미도 가질 수 없다. 나는 나를 쉽게 투박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내가 가진 것 중 유일하게 촉을 세우고 있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