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인간의 직관이 마지막까지 지킬 성이라 믿었던 영역이 무너진 사건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여전히 바둑을 둔다. 프로기사라는 직업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아주 작은 변화가 생겼다. AI로 복기하는 바둑기사가 생겼고, AI가 바둑 선생 역할을 하고 있다. 승부의 세계는 그대로다. 다만, 훈련 방법과 해설자의 언어가 바뀌었다. 직업은 사라지지 않았다. 직업 내부에 변화가 생겼다.
‘AI 부메랑’이라는 뒤늦은 청구서
‘부메랑’은 다시 돌아온다. AI를 믿고 해고했던 사람을 다시 부르는 현상, 이른바 ‘AI 부메랑’이 일어나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다. 이 회사는 2023년 말부터 사실상 신규 채용을 중단하고 AI를 활용한 자동화를 추진했다. 이 회사의 AI 어시스턴트는 상담원 700명 분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간 약 1천 명의 직원이 감소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객 만족도가 떨어졌다. 챗봇은 문의량은 감당했지만, 화가 난 고객을 진정시키고 분쟁의 맥락을 읽어내는 일에는 무력했다. 기계적 단순 대답은 가능했지만, 환불 협상, 뉘앙스 파악 등에 문제가 생겼다. 결국 회사는 사람 상담원을 다시 채용하기 시작했다. 포드 역시 품질 검사와 설계 검토에 AI를 도입하며 인력을 줄였다가, 리콜이 잇따르자 퇴직자를 포함한 베테랑 엔지니어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이 일은 소수 기업에 일어난 해프닝이 아니다. 미국 채용기업 로버트 하프(Robert Half)의 조사에서 채용 담당자의 32퍼센트가 AI를 이유로 없앴던 직무에 다시 사람을 뽑았다고 답했다. 포레스터(Forrester) 조사에서는 AI 때문에 직원을 내보낸 경영자의 55퍼센트가 그 결정을 후회한다고 응답했다. 가트너(Gartner)는 고객 서비스·운영 부문에서 감축을 단행한 기업의 절반이 2027년까지 유사 기능 인력을 다시 고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AI가 조직의 암묵적 관행과 축적된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결정적으로 AI를 감독하고 유지하는 데도 사람이 필요했다. 기술이 사람을 대체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던 일 중 일부 설명 가능한 부분만 대체 가능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청구서로 돌아왔다.
인류는 이런 소동을 여러 번 겪어왔다. 기술 발달에 따른 실업 공포는 최소 200년의 역사를 갖는다.
19세기 초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은 방직기가 숙련 직조공의 생계를 위협하면서 터져 나왔다. 실제로 많은 장인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기계화는 의류 가격을 낮추고 수요를 폭발시켰다. 그 결과 공장 노동자·기계 수리공·운송 종사자라는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1980년대 스프레드시트의 등장도 비슷했다. 장부를 손으로 계산하던 경리직은 급감했지만, 같은 시기 회계사와 재무분석가의 수요는 오히려 늘었다. ATM 도입 이후 은행원이 사라질 것이라던 예측도 빗나갔다. 지점 운영비가 줄자 은행은 지점을 늘렸다. 은행원의 일은 현금 출납을 벗어나, 상담, 재산 관리, 고객 관리 등으로 옮겨갔다(Bessen, 2015). 그리고 단순 업무를 기계가 처리하고 비용이 낮아지면서 인간은 더 복잡한 사회문제 해결 모델링과 전략적 판단에 노력을 기울이고 이런 인재를 키우려 노력했다.
MIT의 경제학자 대런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와 보스턴대 경제학자 파스쿠알 레스트레포(Pascual Restrepo)(2018)는 이 두 얼굴을 대체 효과(displacement effect)와 복귀 효과(reinstatement effect)로 설명했다. 기계가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더라도 그로 인해 절감된 생산 비용과 고도화된 산업 구조 속에서 인간만이 비교 우위를 갖는 새로운 직무가 계속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노동 시장은 균형을 회복한다. 미국 경제사학자 조엘 모커(Joel Mokyr) 등(2015)의 표현을 빌리면, 매번 “이번에는 다르다”고 말해왔지만 결과는 일자리 소멸이 아니라 이동이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정직하게 말해두어야 한다. 이 사례들은 위안이지 보증이 아니다. 과거에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추론은 취약하다. 실제 문제는 총량이 아니라 이행기에 있다. 일자리가 옮겨가는 동안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기술 격차와 소득 단절은 통계 평균 뒤에 가려진다. 알파고 이후에도 바둑은 남았지만, 그 사이 은퇴한 기사들의 시간까지 통계가 보상해주지는 않았다.
사서직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재편된다
그렇다면 사서는 어떨까? 나는 사서직이 사라지는 직업이 아니라 재편되는 직업이라고 믿는다. 다만 이 믿음도 근거가 필요하다. 질문을 바꾸었다. ‘무엇이 대체 가능한가’보다 ‘무엇이 대체 불가능한가’를 먼저 묻기로 했다.
자동화는 규칙성과 반복성이 있는 작업에 가장 잘 맞는다. 메타데이터 1차 추출, 색인 후보 생성, 요약과 번역, 단순 참고, 질의응답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이용자의 모호한 정보 요구를 대화로 풀어내는 일,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떻게 가 닿을지를 가늠하는 일, 도서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을 안으로 들이는 일, 정보 윤리와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알고리즘이 흉내 내기 어렵다. 클라르나의 챗봇이 끝내 감당하지 못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미국의 도서관학자 랜키스(R. David Lankes)(2011)는 사서의 사명을 ‘공동체의 지식 창출을 촉진해서 사회를 개선하는 것’으로 재정의했다. 자료를 보존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매개하는 자가 사서라는 것이다. 이 정의는 AI 시대에 오히려 더 잘 맞는다. 보존과 검색을 자동화할수록 매개자의 자리는 선명해진다.
첫째는 AI 리터러시 교육자이다. 이용자가 생성형 AI를 비판적으로 사용하도록 돕고, 신뢰할 만한 출처와 합성 콘텐츠를 구분하는 안목을 길러주는 일이다. 둘째는 알고리즘 감사자이다. 도서관이 도입한 추천 시스템, 디스커버리 시스템, 챗봇이 이용자의 권리를 침해하는지, 특정 집단의 목소리를 누락시키는지를 점검하는 일이다. 노영희(2013)는 일찍이 사서가 이용자 프라이버시 보호의 최전선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문제의식은 알고리즘 시대에 더 절실해졌다. 셋째는 데이터·디지털 큐레이터이다. 곽우정과 노영희(2021)가 제안한 빅데이터 기반 맞춤 서비스는 이제 ‘잘 모은 데이터’를 넘어 ‘잘 정리되고 출처가 분명한 데이터’를 요구한다. 토마스 파디야(Thomas Padilla)(2019)가 말한 ‘책임 있는 운영(responsible operations)’이 사서의 일상 업무로 들어오는 셈이다.
세 좌표는 별개가 아니다. AI 리터러시를 가르치려면 알고리즘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감사하려면 양질의 데이터 큐레이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서직의 미래는 신기술 하나를 익히는 일이 아니라 이 셋을 하나로 통찰할 수 있는 시야를 갖추는 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대마다 길이 다르다
‘사서’라는 한 단어로 묶이지만, 현장에는 세 세대가 공존한다. 첫 직장에서부터 LLM을 업무 도구로 받아들인 신규 사서, 디지털 도서관 전환의 첫 물결을 통과해본 중견 사서, 기관의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시니어 사서가 그들이다. 아마도 2026년을 기준으로 보면 시니어 사서들은 ‘전자화’라는 물결을 온몸으로 겪어본 세대이기도 할 것이다.
신규 사서에게 필요한 것은 도구 사용 자신감과 도구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이다. 도구에 익숙한 만큼 의심도 익숙해져야 한다. 중견 사서의 강점은 ‘잇기’이다. 이는 신규 사서의 언어와 시니어 사서 언어를 번역하는 능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난 전환기를 겪어본 이들이 신구 세대를 잇는다. 시니어 사서에게는 ‘무엇을 도입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할 책임이 따른다. 도서관은 한번 도입한 시스템을 되돌리기 어려운 기관이다. 무게중심은 달라도 세 세대에게 필요한 능력은 같다. 이용자 권리와 도서관 가치를 중심에 놓는 판단력이다.
준비할 것들
ACRL(Association of College and Research Libraries, 미국대학·연구도서관협회, 2025)이 제시한 AI 역량은 인식, 분석과 평가, 활용, 윤리적 고려의 네 축이다. IFLA(International Federation of Library Associations and Institutions, 국제도서관협회연맹, 2025)의 안내 도구도 비슷하다. 두 문서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기술적 숙달이 아니라 비판적 판단력이다. 어떤 도구를 도입할지, 도입하지 않을지, 도입한다면 어떤 안전장치를 마련할지를 스스로 묻고 답하는 능력이다.
현장 사서들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무엇을 배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AI 강의는 대부분 도구 사용법에 치우쳐 있다. 학회를 포함한 전문가들의 논의는 현장과 거리가 있을 때가 있다. 그 사이의 빈 공간, ‘현재 우리 도서관에서, 이번 회계연도 안에, 우리 인력으로’ 무엇을 해볼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 안내를 채우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붙는다. 이것은 사서가 자기 직업을 갱신할 시간과 권한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성적 인력 부족, 고용 형태에 따른 격차, 기관마다 다른 교육 기회는 새로운 역량을 쌓을 여유 자체를 주지 않는다. 도서관계의 미래 논의가 개인의 ‘자기계발’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양성 교육과정 개편, 보수교육의 제도화, 협회 차원의 가이드라인, 인력 정책에 대한 사회적 재논의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사서가 ‘공동체의 지식 인프라를 설계하는 사람’이 되려면, 그 사람의 노동 조건도 그 정의에 걸맞게 갱신되어야 한다.
그동안 필자는 ‘THE LIVERARY’에 AI 관련 다양한 글을 게재해왔다. LLM 환각, AI와 인간의 창의성, 모두를 위한 접근권, 공공 LLM, 이용자 행동 분석, 알고리즘 감사, 피지컬 AI, 편향과 프라이버시, AI 규제와 이용자 권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매번 다른 주제 같았지만 결국 한 질문으로 모인다.
기술이 빠르게 변할 때, 사람의 일은 어디에 자리 잡아야 하는가?
이 질문도 처음이 아니다. 1960년대 컴퓨터 목록, 1990년대 인터넷, 2000년대 디지털 도서관과 검색엔진. 그때마다 사서들은 비슷한 두려움을 느꼈고, 그때마다 새로운 일을 찾아냈다.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믿음의 근거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다. 도서관은 자료를 공급하는 기관이기 이전에 사회적 신뢰와 비판적 사고의 인프라였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자동화할 수 있는 것을 자동화하는 것은 좋다. 다만 자동화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누가 지킬 것인지에 대한 답을 우리는 갖고 있어야 한다.
칼럼 시리즈를 쓰는 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그래서 사서(도서관)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였다. 매번 명확히 답하지 못했다. 마지막 글에서 한 줄로 정리해본다면 이렇다. 사서의 일은, 기술이 답하지 못하는 질문을 끝까지 묻는 일이다. 이 자료가 이 이용자에게 정말 필요한가? 이 알고리즘에 빠진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이 도구의 결과를 시민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가? 모델 성능이 아무리 좋아져도 이런 질문은 풀리지 않는다.
누군가 아직도 AI를 포함한 새로운 기술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다면, 다음과 같이 답하고 싶다. “그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두려움이야말로 선생님이 이 일을 진지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계가 처음 들어오던 해에도 우리들의 선배는 결국 새로운 일을 찾아냈습니다. 그 일은 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입니다.”
칼럼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다음 글은 또 어디선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박진호_한성대 크리에이티브인문대학 지식정보문화트랙 교수
한성대 크리에이티브인문대학 지식정보문화트랙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다. 주요 연구 관심사는 오픈 데이터와 시맨틱 웹이며, 정보기술 관련 주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오전 8시 22분. 437번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하나둘 올라탔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오른 존재는 사람이 아니었다.키 약 130센티미터, 바퀴 기능을 갖춘 두 다리에 팔 두 개, 가슴팍에는 작은 화면이 달린 로봇이었다.로봇은 잠시 멈추더니 교통카드 단말기 앞에 섰다. 위의 장면은 아직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2022년 말 ChatGPT가 세상에 등장한 뒤 3년이 흘렀다. 복잡한 입력 방식을 벗어나 대화(Chat)라는 인터페이스를 도입한 엔진(GPT)의 파급력은 인공지능의 대중화를 열었다. ‘프롬프트’, ‘환각’이라는 낯선 단어들은 일상어로 자리잡았고, 도서관 현장에서도 생성형 AI 도입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제 4년이
LLM 시대, 텍스트의 외형적 설득력과 내용의 진실성은 별개대규모 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의 등장은 인간이 언어를 기반으로 지식을 구성해온 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언어는 지식 전달의 매개이자 세계를 이해하는 창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LLM은 언어를 이해하기보다는, 수많은 텍스트에서 추출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