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마전도서관 입구 ⓒ표명희
도서관이 도피처가 돼버렸다. 이사를 하면서다. 뉴스로 접하던 층간소음이 내 문제가 될 줄이야······. 처음엔 낯선 환경 탓이려니 하며 적응해보려 애썼지만 한 달도 못 가 위층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위층 여자는 세 살, 네 살짜리 아들 둘이 있는 4인 가족의 안주인이라는 사실부터, 집이 작업실인 나처럼 그녀 역시 아이들을 돌보며 24시간 집에 머무는 전업주부라는 것, 하지만 나처럼 2년 주기로 움직이는 세입자가 아니라 자기 소유의 집 주인이라는 사실까지, 흘러나온 정보가 하나같이 절망적이었다.
간곡한 당부와 함께 나는 준비해 간 소음 방지용 슬리퍼를 압박용 선물로 건넸고 위층 여자는 앞으로 좀 더 주의하겠다는 말로 답례했다. 위층의 ‘주의’는 이틀을 넘기지 않았다. 세 살, 네 살짜리 사내아이들의 또록또록한 까만 눈동자를 보던 순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위층 문을 다시 노크하며 서로 감정 상하느니 내 집 환경을 바꾸는 게 더 빠르고 현명한 일 같았다. 작업용 책상을 거실에서 구석방으로 옮기고 집 안은 온종일 메탈, 록, 교향곡 등 장르 불문의 크고 빠른 음악으로 채우고 급기야 잠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바꿔보기도 하는 등 온갖 시도 끝에 얻은 결론은 이사 외에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한들 이사 한 달 만에 또 이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긴 고민 끝에 얻은 차선의 방법은 ‘작업실로서의 집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대안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게 도서관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작가에게 도서관이란 성전이요 책은 성서나 다름없는 것이건만, 이젠 지극히 현실적인 관계 설정이 불가피해졌다. 도서관의 작업실 화.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도보 3분 거리의 ‘슬세권’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마전도서관과의 각별한 인연은 이렇듯 내 집 탈출 계획과 함께 시작되었다.
마전도서관 열람실 내부 ⓒ표명희
열린 공간, 내집 거실처럼 편하게 오가는 서가와 열람실
인천 서구 마전동에 있는 시립 도서관인 이 마전도서관은 내가 이사할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부터 집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두 요소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야트막한 산을 끼고 있는 아파트 단지라는 점이었다. 친환경적 입지와 도서관, 자연과 문명을 다 품은 듯한 이 두 요소가 작가인 나에게는 최상의 주거 환경인만큼 선뜻 집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서관은 2층 콘크리트 슬래브 건물에 3, 4층 높이로 보이는 컨테이너 건물을 덧댄 모습이다. 컨테이너 외벽이 언뜻 보면 창고 건물을 연상시키지만 블랙에 가까운 무채색 톤이 심플하면서 모던해 보인다. 요즘 새로 지어지는 도서관들 대부분이 유리와 메탈 소재의 화려한 하이테크형 디자인인 것에 비하면 소박한 외양의 이 도서관이 오히려 더 개성 있고 세련돼 보인다. 건물 내부도 3년 남짓 된 새 도서관답게 밝고 깔끔하면서 기능적이다. 널찍한 로비 중앙에 있는 계단을 통하면 도서관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서가로 연결된다. 2층은 서가를 중심으로 열람실과 휴게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복층형의 열린 구조여서 내 집 거실을 오가듯 편안한 분위기다.
열람실 좌석은 창가와 서가 쪽 벽면을 따라 카페식 일인용 좌석들이 이어져 있고 가운데 통로에 6인용 책상들이 일렬로 배치돼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벽면 쪽 일인용 좌석이다. 하얀 벽과 마주하는 그 아늑한 구석자리에 앉으면 나의 일이 노동이 아니라 수도자의 면벽 수행처럼 격상되는 기분이다.
서가와 열람실은 약간의 층고 차이로 구분되는 구조인데 나직한 몇 개의 계단이 두 공간을 연결하고 있어 서가를 오가는 일이 징검다리 건너다니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오르락내리락 계단을 오가며 서가의 책장 사이를 거니는 일은 도서관 생활에 묘한 활력을 준다. 건축에 문외한인 나도 실내를 오가다 보면 이 건물 설계자의 공간 구성의 의미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잘 갖춰진 책과 자료들하며 일인용 소파가 있는 휴게실까지 더없이 쾌적한 작업 환경인 이곳은 내 집 문제를 피해 온 도피처로는 과분할 정도다. 단점이라면 공공의 장소여서 바이오리듬을 외부 환경에 웬만큼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다. 도서관 운영 시간을 따라야 하고 휴게실 안락의자에서도 잠은 청할 수 없는 등 절반은 학교나 회사처럼 조직 생활 패턴이다. 조직 생활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시간이 점심시간인 만큼 나도 그 시간은 충분히 누리려 한다.
마전도서관에서 1분 거리의 중국집 ⓒ표명희
잃어버린 미각을 찾아서······ 도서관 옆 짜장면 집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내가 잘 가는 곳은 도서관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있는 중국집이다. 도서관에서 가깝다는 것과 혼밥이 가능하다는 게 단골인 이유다. 내 미각은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로 예민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둔감한 편이다. 중국 음식의 맛이 내겐 대한민국 어디나 다 똑같게 느껴진다. 어느 중국집이든 놀라울 정도로 맛있어서 이 집과 저 집의 맛 차이를 구분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 구분할 수 있는 건 짜장면과 짬뽕의 맛 정도인데 이는 내가 시켜먹는 주된 메뉴가 남북 분단을 연상시키는 그릇에 담겨 나오는 짬짜면이어서 가능하다.
신빙성 없는 나의 미각과는 별개로 이 도서관 옆 중국집은 동네에서 꽤나 알려진 프랜차이즈 맛집인 건 분명해 보인다. 평일에도 점심시간엔 자리가 없고 주말에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아 줄을 서야 한다. 피크 타임만 피하면 나 같은 혼밥족도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데 식당이 워낙 넓고 좌석이 많기 때문이다. 또 하나 좋은 점은 음식이 나오는 데 3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눈쌓인 마전동묘원 ⓒ표명희
성스러운 거대한 정원, 공원묘지를 산책하다
칼로리 높은 중국 음식을 먹고 나면 산책은 필수다. 도서관 건너편에도 산이 있고 뒤에도 나지막한 산이 있는데 식후 산책로로는 뒤쪽 동산이 더 낫다. 우리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기도 한 이 야트막한 산은 앞서 말한 대로 집을 구할 때 가장 결정적 역할을 했던 요소다. 특이한 건 우리 아파트 단지 쪽이 아닌 반대편 비탈이 인천 가톨릭 교구의 공원묘지로 조성돼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원묘지를 불편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시설로 여기지만 서양 사람들은 공원묘지 옆 주택을 로망으로 여긴다. 그들에게 공원묘지는 성스러운 거대한 정원이다. 내가 한때 머물렀던 부다페스트에서도 도심에 공원묘지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올림픽공원만큼이나 넓었다. 그 공원묘지는 군데군데 예배당이 딸린 성소이자 야외 조각 박물관까지 겸한 종교와 예술의 종합 전시마당 같은 곳이었다.
드넓은 평지의 서양식 공원묘지와 달리 나지막한 산의 비탈을 깎아 만든 우리 식 공원묘지는 독특한 멋이 있다. 집 구하러 다닐 때 첫눈에 반한 이 공원묘지는 내 취향이 별나서가 아니라 눈부시게 화려했기 때문이다. 마침 4월의 봄날이어서 비탈진 언덕 층층마다 피어 있는 봄꽃 무리가 거대한 꽃다발, 아니 화려한 웨딩 케이크 같았다. 만발한 꽃들 사이사이 층층의 무덤들은 그 주인공들이 순교자처럼 보이게 하는 비장미도 있었다.
강원도 산골의 계단식 논처럼 층을 이루며 나 있는 이 공원묘지는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무수히 많은 산책로가 만들어진다. 편한 길로 천천히 걸으며 개항지 인천과 가톨릭의 인연에 얽힌 역사를 떠올려볼 수도 있고, 칼로리 소모를 더 높이려면 급한 경사로를 택할 수도 있다. 경사와 속도를 조절하며 오르다 맨 꼭대기에 이르면 뜻밖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십자가를 지고 선 예수와 그 앞에 앉은 마리아 조각상이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나도 이 조각상 앞에 서면 두 손이 절로 모아진다. 내친 김에 염원도 같이 싣는다. 내 집이 다시 작업실이 되고 도서관이 예전처럼 나의 성전이 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배경으로 하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마을을 둘러싼 문학적·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문학관 기행 연재를 맡은 신구도서관재단 이창경 이사가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을 방문하고 쓴 에세이를 10월호에 싣는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지난여름 한탄강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사직도서관 가는 길광주광역시립 사직도서관은 양림동에 있다. 양림동은 동명동과 가깝다. 나는 언젠가 동명동에서 양림동으로 이동한 적이 있다. 도보로 이동했으나, 머릿속에서 약도는 지워진 지 오래였다. 친구를 따라 걸었을 것이다. 친구는 양림
프랑스 파리 동쪽 교외에 위치한 몽트뢰이(Montreuil)의 로베르 데스노스 시립도서관에 다녀왔다. 나는 파리 서쪽 교외에 위치한 낭테르(Nanterre)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이 더욱 특별했다. 프랑스어로 ‘방리유(Banlieu)’는 파리 도심 바깥의 교외 지역을 뜻한다. 이 단어는 중세시대에 성벽이 있는 주요 도시 주변의 마을을 가리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