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동쪽 교외에 위치한 몽트뢰이(Montreuil)의 로베르 데스노스 시립도서관에 다녀왔다. 나는 파리 서쪽 교외에 위치한 낭테르(Nanterre)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이 더욱 특별했다.
프랑스어로 ‘방리유(Banlieu)’는 파리 도심 바깥의 교외 지역을 뜻한다. 이 단어는 중세시대에 성벽이 있는 주요 도시 주변의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근대에 들어 도시 성벽이 사라지고 파리 같은 대도시가 성장하면서 외곽 지역 전체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방리유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다. 부유한 방리유도 일부 존재하지만, 대부분 저소득층 주민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치안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방리유 지역의 주민 상당수가 비(非)백인이다. 아랍계, 북아프리카계 이민자 및 그들의 2세, 3세가 많이 거주하며, 이는 프랑스의 사회적 불평등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낭테르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내가 사는 집에서 멀지 않은 도로에서 알제리계 17세 소년 나엘(Nahel)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프랑스 전역의 이민자들, 특히 10대 청소년들에게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방리유 곳곳에서 대규모 폭력 시위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방리유는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문제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내게 이번 방문이 더욱 의미가 있었다. 서쪽 방리유에 사는 아시아인이 동쪽 방리유를 찾은 것이었으니까.
로베르 데스노스 도서관을 찾는 청소년들
로베르 데스노스 도서관은 나치군에 맞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삶을 마감한, 초현실주의 시인 로베르 데스노스((Robert Desnos, 1900~1945)의 이름을 딴 몽트뢰이의 시립도서관이다. 도서관은 크게 어린이를 위한 공간과 청소년 및 어른을 위한 공간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도서관 2층에는 삼삼오오 모여 함께 공부하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한 무리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흔쾌히 응해주었다. 같은 고등학교 졸업반이라는 열일곱 살 학생 세 명에게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도서관을 방문하는지 묻자, 항상 오는 것은 아니고 시험이나 조별 과제, 중요한 숙제가 있을 때 찾는다고 답했다. 마침 이들은 학교 시험 기간이라 시험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내가 “한국 청소년들은 도서관보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하자,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는 우리가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고, 필요한 게 있으면 도서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내게 가장 신선했던 점은, 도서관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공부를 도와준다는 사실이었다. 한 학생은 “가끔 여기 선생님들이 학생들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기도 해서 시험 준비에 정말 좋은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도서관이 단순한 독서 공간을 넘어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학습 지원을 제공하는 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도서관 사이트에 안내된, 매달 한 번 토요일 오후에 열리는 청소년 독서 클럽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한 학생은 “관심이 없어서 안 가봤다”고 했고, 다른 학생은 “지금 처음 들어봤는데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셋 모두 중학생 때부터 시험공부를 하러 이 도서관을 방문하기 시작했으며,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과 함께 와서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고 했다. 각각 IT, 사이버 보안, 의학 전공을 희망하는 이 세 학생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서도 이 도서관을 계속 이용할 것 같다고 했다.이유는 간단했다. “조용한 공간이 많고, 자리가 항상 넉넉하기 때문이에요.”
1층에는 책이나 잡지를 읽는 어른들과 함께 공부하는 10대 청소년들이 섞여 있었다. 도서관 직원과 가까운 자리에 컴퓨터가 배치된 공간이 있었고, 이곳에서 헤드폰을 끼고 열심히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3D 게임을 하는 그들에게 뭐라고 하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도서관 통유리창 너머로는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들과 보호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 공간을 둘러보다 복도로 나오니, 책장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10대 세 명이 보였다. 인터뷰 요청을 하자 이들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열세 살인 세 명의 학생도 모두 학교 시험공부를 하거나 책을 빌리기 위해 이 도서관을 찾았다고 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도서관의 가장 큰 장점은 “분위기가 좋고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세 명 모두 어릴 때는 지금 동네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동네 도서관을 이용했다고 한다. 한 학생은 전에 살던 동네의 도서관이 로베르 데스노스 도서관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도서관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만 자주 이용할 수 있었고,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문이 닫혀 있을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자주 이용하지 못했어요.”
한 학생은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가면 엄마가 장을 보는 동안 자신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엄마가 저를 도서관에 데려다주고 장을 보러 가곤 하셨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죠.”
책을 빌리러 자주 오는 한 학생은 판타지 소설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도서관에서 매달 한 번 토요일 오후에 열리는 청소년 독서 클럽에 대해 알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세 명 모두 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또한 학교에서도 독서 시간이 있지만 시험이 많아 학기 중에는 책을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고, 방학 때 집중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방학이 끝나면 책을 읽고 치르는 독서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책을 한 권 제시하면, 우리는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질문을 만들고 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작성해야 해요.”
이 말을 들으며 나는 문득 대학 시절 들었던 교육철학 수업이 떠올랐다. 당시 교수님께서 하셨던 시험 방식과 비슷했는데, 이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그 방식을 이용해 독서 시험을 본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각자의 장래 희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한 명은 정신과 의사, 한 명은 심리학자, 또 다른 한 명은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나는 이들에게 책을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고 요청했고, 세 명 모두 자연스럽게 책을 펼쳐 들고 포즈를 취해주었다.
내가 경험한 여러 도서관들—파리 시내 도서관, 내가 다니는 파리 대학 도서관, 그리고 전에 살던 지역 소도시의 도서관들을 모두 통틀어—중에 몽트뢰이 로베르 데스노스 시립도서관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왜냐하면 도서관이 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9호선 출구에서 나와 1분만 걸으면 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아이들은 보호자와 함께 자연스럽게 공원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원, 놀이터, 도서관이 하나로 어우러진 공간을 만나게 된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어린 시절부터 도서관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청소년들이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는 유년기부터 도서관을 이용했던 이러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그들에게 도서관은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안식처인 부모와 함께 좋은 추억을 쌓았던 공간인 것이다. 도서관 1층과 지하의 어린이 공간을 보며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도서관 사서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풍경, 어른과 아이가 함께 카드놀이를 하는 모습, 어린이가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는 장면, 아이가 푹신한 의자에 앉아 엄마와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런 장면들은 현재의 청소년들이 로베르 데스노스 시립도서관을 찾는 이유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들에게 도서관은 학업을 위한 공간이기 전에, 익숙하고 편안한 장소인 것이다.
나는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하나의 경험치가 생겼다. 조금이라도 문화적인 공간에 가면 그곳이 무료거나 매우 저렴하더라도 비(非)백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무료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5유로 미만으로 연극을 볼 수 있는 시립극장에서도, 분명 공연장이나 극장 밖으로 나가면 비백인이 훨씬 많은데 그 안에는 신기하게도 백인과 극소수의 나 같은 아시아계만 있었다. 아랍계나 북아프리카계 주민들은 아예 없었다. 그러나 몽트뢰이 로베르 데스노스 도서관은 달랐다. 도서관 내부와 외부에서 보이는 인종 구성이 거의 동일했다. 나는 이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곳’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들며 삶의 일부가 된 공간임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처럼 도서관이 지역 주민과 소통하며 사회적 장벽을 허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로베르 데스노스 시립도서관은 방리유 지역 도서관이 지향해야 할 중요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도서관의 가장 큰 장점이자,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몽트뢰이 로베르 데스노스 시립도서관은 우리 모두가 인종과 세대를 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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