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사직도서관 옆 카페 로이스 ⓒ오은경
사직도서관 가는 길
광주광역시립 사직도서관은 양림동에 있다. 양림동은 동명동과 가깝다. 나는 언젠가 동명동에서 양림동으로 이동한 적이 있다. 도보로 이동했으나, 머릿속에서 약도는 지워진 지 오래였다. 친구를 따라 걸었을 것이다. 친구는 양림동 거리와 카페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그때 그 카페는 ‘로이스’라는 카페로, 커피를 즐겨 마시는 친구가 원두를 구입하기 위해 애용한다는 곳이었다. 당시에 나는 자주 친구네 집에서 친구가 직접 내려준 커피를 마셨다(친구를 떠올리면 커피와 보드카 등 여유로움과 행복함이 함께 연상된다). 때로 친구는 내게 로이스에서 구매한 원두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친구로부터 핸드드립 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사직도서관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긴 거리를 걸었다. 여름이었으므로 볕이 가득하고 날이 더웠다. 나는 못 본 새 달라진 거리 풍경을 따라 걸으며 과일 가게와 아기자기한 벽화를 구경했다. 과일 가게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고 손님이 북적였다. 수박, 복숭아, 청포도 등 여름 과일들에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청년들의 움직임이 바쁘고 활기찼다. 가게 앞에 신호등이 있었으므로 녹색불로 신호가 바뀌기 전까지 가게를 구경할 수 있었다.
양림동에 도착했을 때는 먼저 목을 축이고 싶었다. 카페를 들르고 싶었다. 나는 평소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었고 도서관을 좋아했다. 도서관이 지닌 특유의 고즈넉함과 적막함이 시원하고 편안했다.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북구 우산동에 있는 무등도서관을 자주 갔었다. 나는 무등도서관과 가까운 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중간에는 말바우시장이 있었다. 시장을 가로질러 도서관까지 걸었다. 도서관 바로 앞 공원은 오르막길로 이어져 있었다. 무등도서관 지하에 마트가 있어 간단한 취식이 가능했지만 가끔은 길을 따라 내려가 분식집에서 밥을 먹었고 또 음식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사직도서관 옆 카페 로이스 ⓒ오은경
로이스에서 시간을 잊다
광주에는 네 개의 시립도서관이 있는데 디지털정보도서관을 제외한 네 군데의 분위기는 어딘가 닮아 있었던 것 같다. 디지털정보도서관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최근에 검색을 통해 존재를 알게 되었다. 무등도서관을 제외한 세 곳 모두 금남로와 가까우며 서로 인접해 있다. 사직도서관의 경우, 내가 살던 곳이나 동선에서 거리가 먼 편에 속했다. 사직도서관은 올해 여름에 처음 가봤다. 양림동이라는 동네 또한 낯설기는 매한가지였다. 나는 핸드폰으로 지도 앱을 켜 로이스를 검색해봤다. 사직도서관에서 가까웠다. 로이스를 방문했을 때 사장님은 부재중이셨다. 가득 쌓여 있는 원두와 핸드드립 기구, 특히 유리로 된 서버들에 눈길이 갔다. 곧 사장님이 돌아오셨다. 사장님께 카페 내부를 촬영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한 뒤 내부 사진을 담았다. 곧 사장님께서는 로이스 카페가 10년도 더 된 곳이며 로이스라는 이름 또한 선교사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로이스는 기독간호대학 바로 뒤편에 있었다. 카페 문을 열면 바로 앞에는 십자가가 있었다. 나는 맛있는 커피를 두 잔이나 대접받은 뒤 사장님과 대화를 나눴다. 내가 시를 쓰며, 광주에서 나고 자랐고 몇 해 전 로이스를 방문했다고······ 또 로이스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원두로 알려져 있다고 전해드렸다. 사장님은 원두 1킬로그램을 건네시며 주변 사람들과 나누라고 하셨다.
그날, 나는 사직도서관에 가지 못했다. 미리 예매해둔 ktx를 탑승해야 할 시간이었다. 커피를 마시느라 도서관 방문 시간을 놓친 것이었다. 나는 가까운 전철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정확히 한 주가 지나 다시 양림동에 갔다. 도서관에서 맡은 강의로 한 달간 매주 광주에 와야 했다. 지도 앱과 함께 길을 찾았다. 카페 로이스에서 지인들에게 선물할 원두를 구매하고 문을 열었다. 양림동은 한적했다. 낮이었고 볕이 뜨거웠으며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광주 사직도서관 내부(좌), 도서관 내 카페 (우) ⓒ오은경
도서관이 보낸 시간만큼 서가를 채운 책들
카페 로이스에서 나와 도서관까지 가는 길은 가까웠다. 사람이 적고 한적한 골목을 따라 걸었다. 새로 생긴 카페와 아기자기한 식당가가 이어졌다. 그늘은 없지만 시원했다. 걸음걸음이 가벼웠다.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원기둥 모양의 도서관 건물이었다. 입구에 서 있는 나무는 수령이 오래된 것 같았다. 둥글게 부푼 나뭇잎들이 인상적이었다. 나뭇잎은 빽빽했다. 입구에 들어섰을 때는 도서관 특유의 냉기를 느꼈다. 건물 전체가 그늘인 것 같았다. 도서관은 고요했다. 나는 먼저 책을 읽고 작업할 공간을 찾았다. 강의를 시작하려면 세 시간 남짓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많은 텍스트를 읽어야 했다. 계단을 올라 열람실로 향했다. 열람실 외에도 휴게실, 상담실 등 다양한 시설이 눈에 띄었다. 다양한 공간과 다채로운 쓰임새가 신기했다.
열람실에는 각종 장서가 있었다. 1989년도에 설계된 도서관답게 책이 많았다. 다양한 도서 분류 항목들이 세부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책들은 도서관이 보낸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열람실은 책을 대여하는 중간 공간 외에 크게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었다. 두 곳 모두 사람들이 모여 앉을 자리가 있었다. 나는 일인용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폈다. 맞은편은 창이 나 있었다. 바깥은 반쯤 하늘이었고 아래로는 나무가 보였다. 바람이 불어왔다. 도서관은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시원했다. 왜 도서관은 언제나 시원할까 늘 궁금했었다. 그리고 언젠가 광주광역시립 무등도서관에서 보냈던 시간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산책길의 최종 코스
무등도서관을 자주 갔었다. 방문의 목적은 책 읽기를 위해서였으나 꼭 책 읽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도서관이라는 장소가 좋았고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어서였다. 더 어렸을 때는 동선이 한정되어 있었는데 내가 사는 동네는 광주 북구였고 가까운 도서관을 찾았다. 중학생 때부터는 일곡동에 위치한 일곡도서관을,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지금은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삼각동의 도서관이 바로 그곳이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도서관은 내게 도서관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어주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나는 가보지 못한 동네를 가는 것이 어렵고 낯설었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새로운 곳도 익숙해졌고, 오래 본 거리의 경우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는 아니었다. 그때는 도서관이 주는 조용함과 책 속 그림들의 다양함이 좋았다. 그림책 속 비극에 빠진 공주와 왕자, 믿을 수밖에 없을 만큼 구체적이던 산타클로스는 어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돌이켜보면 지금은 사라진 그 도서관이 어린 시절 내 산책길의 최종 코스였던 것 같다.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였으며 그때는 의식하지 않았지만 전에 살던 집 앞 도서관이었다. 나는 같은 동네에서 아파트를 옮겨 이사했고 이사를 온 다음 전에 살던 아파트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그러나 도서관에 가기 위해 살던 아파트 바로 앞까지 가야 했다. 가끔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 놀이터에서 놀기도 했다. 흙이 있는 곳이라면 돌을 찾아 사방치기 놀이를 하기도 했고 이유 없이 땅을 파거나 두꺼비 집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도서관을 떠올리면 거기까지가 이동하기 편한 동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의 2층과 3층에는 열람실, 유리관에 보관된 각종 생물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내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이 이처럼 뜬금없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장면으로 이루어졌다니!). 나는 온전히 부패하지도 보존되지도 못한 어떤 것들을 바라보았다. 도서관 1층에는 자판기가 있었는데 어린 나는 몇백 원씩 동전을 모아 율무차나 우유를 뽑아 마시곤 했다(그때 자판기 우유가 얼마나 맛있던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도 도서관은 사람이 없었다. 이용하는 사람 하나 없이 텅 빈 도서관에 나는 누워(그때 어린이 도서관에는 누워 읽는 소파가 있었다) 그림책을 펼쳤다.
이번에 사직도서관을 갔을 때 열람실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깨끗하고 맑은 공기 속 사람들은 책을 읽고 있었다. 작업을 하는데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통화를 하러 바깥으로 나왔다. 목소리를 숨기기 위해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바깥에는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모두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작업에 열중할 뿐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창가가 있었다. 창밖에는 사직도서관 입구에서부터 보이던 나무가 서 있었다. 계속 푸른 나뭇잎을 매달고 있었다. 푸른 나뭇잎을 가까이 바라보았다. 나무는 사직도서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통화는 이미 마친 상태였다. 전화를 끊고서도 나는 오래 창밖을 바라보았다.
공부를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학생이었지만 도서관은 좋아했습니다. 온갖 장르의 책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광활한 서가, 나만의 동굴이 되어주었던 자유열람실의 칸막이 책상, 축 가라앉은 휴게실, 눅눅한 공기가 떠도는 구내식당. 그 모든 게 한데 뒤섞인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저에게는 낡고 꼬질꼬질하지만 더없이 따스한 애착 담요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속에 폭 감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입장료 5원의 신세계로부터기억 속 최초의 도서관은 대구 중심가에 있던 시립도서관이다. 붉은 벽돌로 육중하게 지어진, 일제 강점기의 양관이었던 그 도서관이 애초 어떤 용도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듣기로는 형무
여름휴가를 제주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후로 나는 줄곧 도서관을 생각하고 있었다. 올해 4월, 돌이 갓 지난 아이와 제주에 방문했을 때, 제주 토박이인 친구가 회심의 미소를 띠고 우릴 데리고 갔던 곳을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곳은 고(故)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한 기적의 도서관(2004)이었다. 장난스러우면서도 독특한 삼각 형태의 외형을 지닌 이 도서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