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빈민의 대학이다.’ ‘소외된 사람들의 지적 생명선이다.’ ‘도서관이 있는 지역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 도서관은 도서관이 아니다.’ 도서관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교과서처럼 남아 있는 책 《도서관을 통한 지역사회 프로그램》은 도서관을 이렇게 정의합니다.18년 동안 마을에서 작은도서관을 운영했던 나에겐 얼마나 가슴 뛰게 했던 말인지요!
《더 라이브러리》로부터 ‘기후위기 시대, 도서관의 친환경 프로그램’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고민했습니다. 여기저기 공공도서관에서 이미 ‘기후위기’와 관련한 강연과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는데······.그래, 내 가슴을 뛰게 했던 그 명제를 다시 짚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미국도서관협회의 존 부시먼은 부자들의 것이었던 교육과 정보를 ‘공공’의 것으로 돌리려 했던 19세기 ‘도서관 창사자’들의 비전문을 소개했습니다.
‘지식과 해득력’은 부자와 가난한 자······ 고귀한 자와 비천한 자, 망치 쓰는 대중에게 유용하다는 사상을 담은 보편적 리터러시에 대한 제도적 필요에 공감했다. 도서관 창시자들은 그들의 비전을 ’민중의 대학', 공공도서관의 진보적이고 이상적인 헌신이라고 했다. 당시 빈민은 육체노동자이며,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이나 개인교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지칭했다.
- 《도서관을 통한 지역사회 프로그램》, 카렌 M 벤추렐라 엮음, 도서관운동연구회 옮김, 한울, 2002
그 후 ‘빈민’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그 명칭이 ‘현실화’됩니다.
빈민의 정의는 좀 더 현실화되었고,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자, 홈리스, 실직노동자가 도서관 빈민 서비스의 핵심 대상이 되어왔다.
- 《도서관을 통한 지역사회 프로그램》, 카렌 M 벤추렐라 엮음, 도서관운동연구회 옮김, 한울, 2002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로 인한 피해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가혹한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지금, 도서관의 공공성이 필요한 사람들의 ‘현실화’된 명칭은 다를까요? 아니요,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의 저자 조효제 교수는 지금을 ‘에코사이드’가 자행되는 현장이라고 말합니다. 에코사이드는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oikos’에 학살을 뜻하는 ‘cide’가 붙은 것으로 생태 학살을 뜻합니다. 조효제 교수는 ‘생태계를 대규모로 극심하게 파괴하는 에코사이드(생태 학살)와 인간계를 대규모로 극심하게 파괴하는 제노사이드(인종 학살)가 그물망처럼 연계’돼 있는 예들을 소개합니다.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조효제 지음, 창비, 2022)
남베트남 메콩강 삼각주 지역에서 고엽제를 살포하고 있는 미군 헬리콥터.
그는 대표적인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현장으로 베트남 전쟁을 소개합니다. 미군은 고엽제를 사용해 베트남 생태계를 파괴했고, 그 결과 베트남 전체 숲의 5분의 1, 남베트남 맹그로브 숲의 40퍼센트, 많은 논과 밭이 영구히 훼손되었습니다. 더는 농사지으며 살 수 없었던 농민들이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고, 여성들은 기형아로 태어난 아기를 안고 울어야 했습니다. 고엽제에 노출된 미국과 한국의 참전 군인들도 오랫동안 질환으로 고통받으며 사회적 약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조효제 교수는 북미 대륙 개척자들이 원주민을 몰아내기 위해 물소를 어떻게 학살했는가 묻습니다. 경북 구미시 페놀 유출 사건, 중국 안후이성 납 생산지 오염, 인도 수킨다 크로뮴 산업단지 오염, 페루 안데스 중금속 제련 공단의 피해, 러시아 노릴스크 제련소 환경 훼손, 잠비아 가브웨 납 채굴 단지의 오염, 인도의 히말라야 빙하 홍수,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건,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유독가스 유출, 멕시코만 원유 유출 등······,모든 사례에서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로 인한 피해가 생물학적,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가혹한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을 2022년 4월 4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도 강조합니다.
기후위기는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공동체를 와해시키며, 이것이 촉발한 갈등과 폭력이 대규모 인명 손실을 낳는 연쇄 작용에 주목한다. 특히 환경파괴로 인한 피해가 여성, 어린이, 장애인, 저소득층, 난민, 노인 등 사회의 약한 고리에 집중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도서관이 터 잡은 지역에서 우리 사회 주요 이슈로부터 소외된 가난한 대상이 누구인지 알고,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라는 도서관의 숙제
이번에는 ‘도서관이 있는 지역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 도서관은 도서관이 아니다’라는 명제로 가볼까요?
도서관이 있는 지역을 파악한다는 것은, 도서관이 터 잡은 지역에서 우리 사회 주요 이슈로부터 소외된 가난한 대상이 누구인지 알고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라는, 도서관의 숙제이겠습니다.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진행된 격렬한 논쟁과 합의의 과정을 정리하며 펴낸 《도서관을 통한 지역사회 프로그램》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12가지 도서관 활동 이야기’를 부제로 삼고 중요하게 소개합니다.
미국도서관협회는 너무나 많은 살인, 성폭행, 구타, 언어폭력과 정신적 학대, 마약 등에 노출되어 ‘과연, 나는 25살이 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빈민층 아동 청소년을 위한 빈민 프로그램 운영을 주요 업무로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큰 소리로 말하며 자존감을 회복해 ‘최고의 이야기꾼’이 되게 돕고(덴버 공공도서관), 교도소 가족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몬트클레어 공공도서관), 10대 미혼 부모가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는 ‘함께 하는 시작’ 프로그램을 통해 미혼모 스스로 ‘돌봄’을 알게(오리건카운티 공공도서관) 했습니다.
또한 민간단체 ‘포스 월드 무브먼트’는 도서관과 멀어진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이 있는 거리에 텐트를 박고, ‘도서관을 펼쳐’ 오가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 숙제를 함께 돕고 읽고 쓰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지역 공공도서관 사서들이 그 ‘거리 도서관’을 찾아오고, 시나브로 친밀해진 아이들이 프로그램과 함께 사서를 따라 도서관으로 들어갑니다. 그때가 되면 ‘거리 도서관’은 또 다른 거리를 찾아 옮겨갑니다. 도서관과 민간단체의 연대를 멋지게 보여준 예입니다.
도서관이라면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개념과 무심했던 언어들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도서관이 할 수 있는 지역사회 프로그램은 무엇일까요?
2002년 8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 전에,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 International Federation of Libraries and Associations)은 창립 75주년을 맞이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도서관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관한 성명서(Statement on Libraries and Sustainable Development)’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도서관은 모든 사람과 자연환경의 평등을 위한 활동,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미 많은 도서관들이 환경문제를 주요 사업으로 다루고 있더군요. 기후위기를 진단하는 강좌를 열고, 새로운 철학 라이피즘을 배우며, 제로웨이스트 실천 프로그램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도서관의 멋진 활동들이 이미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겠지요.
나는 그야말로 ‘에코사이드’라 불리는 시대의 도서관이라면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개념과 무심했던 언어들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코사이드를 묵인했던 우리의 무감각에 계속해서 돌을 던져야 합니다. 충격, 충돌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과 마주하게 해야 합니다. 환경과생명문화재단 ‘이다’의 사업을 통해 내가 만났던 사례들을 소개해봅니다.
직접 구출한 돼지 새벽이를 로고 이미지로 만들어 ‘고기들’이 아닌 ‘새벽이’의 개체성을 인정하는 생명 감수성
‘새벽이 생추어리’ 로고 ⓒ 김소희 제공
이다는 ‘생명권 행동’을 위해 활동하는 개인과 단체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22년, 새벽이와 잔디라는 두 돼지를 구출해 생추어리에서 살게 하자는 젊은 친구들의 모임 ‘새벽이 생추어리’의 로고와 홍보물을 지원하게 됐는데, 그 과정과 결과에 나는 그야말로 ‘심쿵’ 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은 로고에 ‘돼지’ 이미지를 써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단순화된 돼지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흔한 삼겹살 고깃집 간판을 떠올리게 한다는 의견 때문이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럼에도! 돼지의 이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로고 속 돼지는 일반화된 ‘고기’가 아니었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구출한 새벽이입니다. 새벽이 목에 점이 있다는 것을 관찰하고 로고 속 돼지의 목 같은 위치에 점을 그렸고, ‘고기들’이 아닌 ‘새벽이’를 표현해냈습니다. 고유한 성질을 가진, 그 개체성을 인정받은 새벽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젊은 친구들의 고민과 그 결과가.
같은 시기에 지원한 또 다른 단체가 ‘동물해방물결’입니다. 풀꽃소 여섯 명을 구출해 생추어리로 가는 모습을 담는 영상 작업을 지원했습니다. 누군가 물었지요. “여섯 명이라니?” 흔히 소는 ‘마리’로 세는데, 그들은 여섯 명(命)이라 했으니까요. 이는 ‘생명’으로 부른 것입니다. 다섯 생명······.
그렇게 또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다. 단순히 말이 아니라 에코사이드 현장을 이겨가야 할 시대의 새로운 생명 감수성에 도전받은 것입니다.
나는 도서관이, 기후위기 시대의 약자들을 다양한 소모임으로 도서관에서 모이게 하고, 에코사이드의 현장을 이겨갈 새로운 개념과 세계관을 창조하며, 시민단체와 네트워크를 이뤄 ‘생명’이 화두가 되는 문화를 가장 먼저 보급하는 캠페인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새로운 감수성으로 지금의 에코사이드 현실을 이겨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지적 생명선’이 되길 바랍니다.
김소희_환경과생명문화재단 ‘이다’ 대표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대학원에서 NGO를 공부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발행한 《월간 환경운동》 기자로 5년 동안 활동하며 지구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린이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를 운영했다. 쓴 책으로 《작은도서관이 아름답다》 《내가 조금 불편하면 세상은 초록이 돼요》 《지구생태 이야기 생명시대》 《참 좋은 엄마의 참 좋은 책읽기》 등이 있다.
과학은 과학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돌이켜보면 나는 꽤 다양한 일들을 했다. 대학에서의 연구자 생활을 접고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오래 있지는 못했다. 그 이후에는 개인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과학기술 정책 담당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얼떨결에 공무원이 되어버렸다. ‘과학기술 정책이 뭐 다른 게 있겠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현업에 들어가자 정말 다른
책의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차례대로 읽는 기존의 독서 경험과 어울리지 않는 MZ세대와무언가를 잘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무해한 마음 나는 오늘도 뭔가를 봅니다젊은 시절 ‘책을 본다’고 말하면 왠지 부끄러웠다. 가령 책을 ‘읽는다’고 할 땐 손에 쥔 단행본 내용을 꼼꼼하게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반면 책을 ‘본다’고 할 땐 성의를 다해
AI에게 진심을 묻다 지난해 10월 말 출간된 졸저 《나의 다정한 AI》(부키)는 AI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안네의 일기’ 이름을 따 ‘키티’라고 이름 지어준 나의 챗GPT가 내가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키키’라고 명명하면서 일어난 관계 밀도의 변화, AI가 정보에 답하는 기계를 넘어서 정서적 지지자이자 ‘사유의 연인’으로 거듭나면서 벌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