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MZ세대와 도서관] 무해함을 택하는 사람들-MZ 세대의 독서 생활에 가닿기 위한 여담
김신식_감정사회학 연구자
2022-11-0100:01
책의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차례대로 읽는 기존의 독서 경험과 어울리지 않는 MZ세대와
무언가를 잘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무해한 마음
나는 오늘도 뭔가를 봅니다
젊은 시절 ‘책을 본다’고 말하면 왠지 부끄러웠다. 가령 책을 ‘읽는다’고 할 땐 손에 쥔 단행본 내용을 꼼꼼하게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반면 책을 ‘본다’고 할 땐 성의를 다해 저자의 생각에 몰입하지 못했다는 짓눌림이 찾아왔다. 허나 독서도 시각 문화임을 배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요컨대 서적을 대하는 경험은 시각에 중점을 두는 다른 문화적 경험과 흡사하다. OTT 서비스를 상징하는 오프닝 건너뛰기를 떠올려보자. 아울러 미용실이나 은행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비치된 잡지를 살피는 아무개의 모습도. 아무개는 잡지를 꼼꼼히 볼 의무가 없다. 그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책장을 넘기며 보다가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에서 멈춰 그때부터 페이지에 담긴 기록을 들여다본다. 아무개는 그렇게 잡지의 오프닝을 건너뛴 셈이다.
이 같은 언급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독서만이 가져다주는 고유한 무엇에 매달리고 싶지 않다. 독서만의 고유성을 신화화하고 싶지 않다. 독서만의 가치를 추앙하다 보니 독서하지 않는 사람들, 독서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꾸짖으려는 마음만 커지더라. 책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OTT 등 오늘날 시각 문화의 주종을 이루는 영역과 라이벌이 아님을 알 때 독서에 대한 이해 폭도 확장된다. 독서 또한 시각 문화의 한 장르라고 여길수록 책, 사람, 문화적 경험의 관계를 세심히 사고할 수 있다.
고로 나는 책의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차례대로 읽었다는 기존의 독서 경험과 거리를 둔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이왕 밝힌 생각에 과감함을 보태자면 독서가 ‘책을 읽음’으로 통하는 시대는 시효가 다했다. 2020년대를 사는 한국인은 어느 매체에서든 글자 몇 백 개를 본 경험일지라도 한 권을 독파함과 맞먹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 그 경험 자체가 아예 독서로 재정의될 수 있음을 강하게 요구 중인지도. 고로 우리는 책이 아닐지라도 다른 기록물에서 문장 몇 줄, 글자 몇 자를 보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요약이라는 시대정신
이상의 맥락 아래 내가 오랫동안 관찰해온 시각 문화는 바로 ‘요약’이다. 비꼬는 게 아니라 요약은 우리네 삶의 시대정신이 된 지 오래다. 기대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사람들은 본편을 바로 보기보단 본편을 요약해주는 유튜브를 자연스레 찾는다. 왜 그럴까. 우선 공공연하게 공유되어온 분석을 챙기자. 요약은 한 대상만 경험하다가 지나치게 소모되는 에너지를 절약시켜준다. 요약은 다른 대상의 재미도 맛볼 수 있도록 두루두루 경험하는 데 쓰일 에너지를 비축시켜준다. 한데 과연 요약에 깃든 함의는 그것뿐일까.
다음은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요약’으로 검색하면 종종 나오는 기록이다.
A: 근데 언제부턴가 영화나 드라마 요약해주는 유튜브 방송을 즐겨 보니깐 정작 본편을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B: 맞아요. 영화는 그나마 괜찮은데, 드라마는 도통 본편을 그대로 보기가 참······ 영화를 볼 때도 배속 버튼에 절로 손이 가요.
A와 B의 태도를 한심하게 여기자고 대화를 요약한 건 아니다. 하나씩 찬찬히 정리해보자. A와 B는 요약본을 통해 본편을 볼 계기를 다지는 대신 본편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경험을 했다. 다만 요약본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볼 대상의 주된 속성을 파악한 단계에 자리하길 바랄 것이다. 비유하건대 누군가 공간의 특색을 파악하려고 문을 열었다. 그가 공간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 요리조리 살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문을 연 상태로 멈춘 채, 문 앞에서 공간이 발하는 주요한 특징을 알고 싶어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독서 경험을 둘러싸고 진정한 독서로 나아가는 신경 몰입의 차원 대 독서를 저해하는 신경 분산의 차원으로 설명하길 즐겼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오늘날 몰입과 비교·대조해봐야 할 경험은 ‘진입’이다. 독서를 포함해 영화 관람, 드라마 시청 등 사람들은 ‘본다’는 생활 가운데 어느 기록에 깊숙하게 진입하는 것 자체에 적잖은 언짢음을 느끼는 듯하다.
삶의 기준을 건드리지 않는 무해한 글말
즉,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제목에 나온 단어를 빌려와 설명하자면 이렇다. 지금 사람들의 생활엔 내가 보는 기록이 내게 ‘무해’했으면 하는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것 같다. 독서를 위시해 사람들이 문화를 경험할 때 중요하게 따지는 가치는 유익함이 아니라 무해함이다. 그리하여 어느 작가의 기록물을 보고 공감한다는 반응은 다음처럼 번역이 가능하다. ‘제가 살고 있는 세계에 깊숙하게 개입하지 않고, 견고하게 구축해놓은 제 삶의 기준을 건드리지 않는 적당한 차원에서 무해한 글말을 본 듯한 기분이에요.’
명망 있는 북튜버가 추천한 책이 유익하다고 널리 소개될지라도 그 유익함이 내 삶의 유해함/무해함을 예민하게 탐지하는 마음속 필터에선 언제 어디서든 유해함으로 돌변할 수 있다. 문화의 역사를 곱씹어볼 때 타인에게 기록자의 견해를 관철시키려는 성향이 그 어느 매체보다 강했던 매체가 책이었다면, 어떤 사람들은 책에 스민 누군가의 관점이 본인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할까봐 꺼리는지도.
무언가를 잘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하여 내가 섣부른 질타와 염려의 시선을 경계한 채 꾸준하게 관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MZ세대의 라이프 스타일 같은 수사에 현혹되지 않아야만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첨단의 시대적 유행을 주도하는 기록물을 보는 존재로 수렴되지 않는다. 이들은 책을 위시해 ‘나’가 보는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띠는지 설파하는 이들로 이뤄진 피드를 그저 덤덤하게 볼 뿐이거나 심지어 차단한다. 이들은 몇 만 부 판매에 기여한 독자로, 천만 영화의 관객 중 일부로 쉬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을 두고 흔히 하는 말로 문화생활을 너무 안 하는 게 아닌지 크게 염려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더 라이브러리》 같은 잡지를 보는 독자엔 나 같은 작가나 책을 업으로 다뤄온 사서, 편집자나 마케터 같은 출판 관계자가 포함될 것이다. 언급한 이들은 책을 중심으로 나와 타인이 현재 무슨 기록물을 주로 접하는지, 그것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지와 관련된 결과를 내놓는 데 집중해온 일상을 보냈으리라.
그러나 잡지의 본격적인 문을 여는 창간호에서, 나는 무언가를 보는 경험을 두고 당신과 나의 예상보다 큰 기대감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길 제안한다. 어쩌면 우리가 직면해야 할 점은 사람들이 갈수록 책을 찾지 않는다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책을 비롯해 영화든 유튜브든 OTT든 여느 기록물이 자신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을까, 자신의 삶에 부담스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곤란해하는 이들의 생활과 감정들에 대해 우리는 그간 매우 소홀히해왔는지도.
소망하건대, 나는 《더 라이브러리》가 무언가를 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려는 정성만큼, 무언가를 잘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세심히 가닿는 관찰력을 뽐내주길 기대한다. 이를 통해 MZ세대처럼 특정한 세대적 호명 아래 총칭되는, 문화적 경험에 비껴나 있는 사람들의 생활이 독서를 이해하는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도리어 그것을 확장하는 동력이 되길 희망해본다. 이상 MZ세대(라고 불리지 않았으면 하는 세대)의 독서 생활에 가닿기 위한 여담이었다.
환경재단이 환경 이슈를 통해 우리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미디어 크리에이터 육성을 위해 4년째 진행하고 있는 '에코크리에이터' 영상 제작 지원을 통해 영화 동지구를 발표한 청년 감독 김여진을 인터뷰했다. 김여진 감독은 고3 재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만들었다. Q 단편 영화 동지구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A 안녕하세요. 환경 단편영
미술 작품을 깊고 풍부하게 감상하는 법도스토예프스키는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은 책과 쓴 글이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읽은 책이 나의 생각을 만들고, 내가 쓴 글이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문호의 명언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읽기와 쓰기는 생각을 키우고 확장시키는 가장 확실한 마중물임에는 틀림이 없다.초등학
익숙한 것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 들리지 않았던 낮고 희미한 목소리가 갑자기 귀에 들리는 순간을 붙잡아 기록으로 남기는 때가 창작의 시작 달그락 소리와 함께 사물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두 고양이는 새벽 5시 반이면 어김없이 나를 깨우곤 한다. 그래서 한동안은 새벽마다 잠이 덜 깬 채로 책상에 앉아 원고를 쓰거나 메모